소설리스트

100마일-170화 (170/221)

< 『해외편 - 170』 >

『해외편 - 170』

시즌이 시작됐다 싶었더니 어느덧 5월에 접어들었다.

모든 사람들의 예상대로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는 하루만에도 순위가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혼돈의 지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매년 우승 후보로 꼽히는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여전한 전력으로 순위 다툼에서 빠지지 않았고, 천문학적인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신흥 강자로 우뚝 올라서서 호시탐탐 지구 1위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나름 전력을 보강한 콜로라도 로키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이렇다 할 전력 보강이 없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만이 여기저기 치이면서 지구 꼴찌를 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3월 18일 개막전 선발을 시작으로 선발 5인 체제 속에서 나는 로테이션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꼬박꼬박 등판을 했다.

3월에 있었던 3차례 선발 등판에서 3승, 4월 6차례 선발 등판에서 4승 1패를 기록하면서 5월이 되기 전에 7승을 올리면서 내셔널리그뿐만 아니라 아메리칸리그까지 통틀어 다승 부문 1위를 독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일이라면 4월 23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원정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패배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저주 받은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에 속한 구단으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두 거대 공룡 틈바구니에서도 제 역할을 제법 톡톡히 해내고 있는 구단 중 하나였다.

특히 2020년 이후, 유망주 육성을 통해 외부 선수가 아닌 내부 선수들을 가장 훌륭하게 키워내고 있는 구단 중 한 곳이기도 했다. 다만, 그렇게 키워낸 선수들을 비싼 값에 팔아먹기 바쁘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최대 강점은 젊음과 패기다.

선수단 평균 연령이 24.2세로 굉장히 어렸지만, 2023년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지구 순위 3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팀 리빌딩을 이뤄냈고, 외부 선수 영입보다는 내부 선수 육성을 통해 선수단 몸값을 가장 저렴하게 지출하고 있는 구단이기도 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한 나는 8이닝 2실점으로 첫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앞서 있었던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LA 홈 경기에서 LA 다저스 타자들의 방망이가 영 불안하다 싶더니 결국은 볼티모어 원정 첫 경기에서 무득점으로 경기를 마치고 말았다.

선발 투수로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를 보였지만, 역시 승리 투수가 되는 일은 타자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경기였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처음으로 패배를 한 날, 모든 언론이 떠들썩하게 기사를 내놓았다.

1패 한 게 그렇게까지 기사거리가 될 만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몇몇 인지도도 없는 찌라시 언론에서는 2년차 징크스의 시작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기사를 내놓으며 비웃음을 사기 바빴다.

8이닝 2실점, 타선의 지원이 없었기에 패배를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부진한 성적인가?

첫 패전투수가 되고 2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17개의 탈삼진을 앞세워 완봉승을 따내니 전날까지 근거도 없이 부진을 들먹이던 기사들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3, 4월 9번 선발로 등판해서 7승 1패를 기록하는 동안 120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양대리그 최고의 투수로서의 위용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8실점, 0.95라는 평균자책점이 확실히 작년보다 올 시즌이 힘들다는 걸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었다.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밥을 먹던 형수가 나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뭐가?”

“상 좀 그만 타라. 3월에도 받고, 4월에도 받고. 다른 선수들도 좀 받아야 하지 않겠냐?”

“상 받기 싫어서 일부러 성적을 떨어트릴 순 없잖아.”

“…그 말이 더 얄밉다.”

온갖 인상을 찌푸리는 형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는 먹음직스러운 두부찌개를 크게 한 수저 떠서 먹었다.

“참, 2일이라고 했었나?”

형수의 물음에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밥을 씹으며 녀석을 바라봤다.

내 표정에 형수가 다시 말했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 차출 명단 발표 말이야. 2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지?”

“맞아.”

“나도 차출 되겠지?”

“가능성이 높지. 이번에 양태준 감독도 해외파 특히, 메이저리거를 중심으로 국가대표팀을 꾸린다고 했으니까.”

“젠장! 옛날에는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도 군대 면제 시켜주더니 왜 야구만 금메달로 상향 조정을 해서는 내 발목을 붙잡냐고.”

형수의 투정에 나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 올림픽까지만 하더라도 국가대표 야구 선수들은 동메달만 따도 군대 면제를 받았다.

하지만, 새롭게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야구가 부활하면서 야구 선수들은 동메달이 아닌 금메달을 따야만 군대 면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안게임 밖에 군대 면제를 받을 길이 없는데,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조건은 다른 스포츠 종목들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문제였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을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다.

대만 야구가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한국의 벽을 넘기엔 한참이나 멀었고, 유일한 라이벌인 일본이 아시안게임에서는 메이저리거와 일본 프로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차출하지 않으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야구는 절대 강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으로도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당하면서 아시안게임에 매달린 결과 야구 국가 대표팀은 지속적으로 금메달을 따내며 국가대표로 선정만 되면 군대 면제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당연히 축구를 비롯한 다른 종목들의 불만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대표선수들은 지속적으로 군대 면제를 받는데, 타 종목 특히 축구의 경우 2015년 이후로 제대로 된 메달을 따지 못하면서 군대 면제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축구계의 반발이 심해졌다.

물론, 상관없는 이야기다.

야구는 야구고, 축구는 축구니까.

그런데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축구계의 끈질긴 발목 잡기는 끝이 없었다.

무엇보다 올림픽 야구 동메달 역시 그렇게 높은 벽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사실 야구 국가대표에 승선만 하면 군대 면제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결국은 여론에 악영향을 끼쳤고, 야구만 금메달을 따야 군대 면제라는 조건이 붙게 되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이 있잖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아시안게임에서 따면 된다.

나조차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종목 선수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은 확실히 심할 것 같기도 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앞으로 2년 후에 아시안게임이 열리니 이번에 금메달을 못 딴다 하더라도 그때 금메달을 목에 걸면 군대는 면제다.

나와 형수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군대 문제로 프로 생활에 지장을 받을 일은 없다고 봐도 상관없었다.

다음날, 한국에서 올림픽 국가대표 차출 명단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투수 10명, 포수 3명, 내야수 7명, 외야수 5명.

총원 25명.

예전보다 1명이 늘어난 숫자였다.

나는 당연히 투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고, 형수 역시도 포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구단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시즌 중에 보름가량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좋을 순 없었다.

아시안게임과 다르게 올림픽의 경우에는 국가 대표팀 차출에 구단이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역시 국제야구연맹인 IBAF에서 강제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활약을 해야 야구의 위상도 높아진다는 취지였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많네.”

형수의 말대로 이번 올림픽 대표팀 차출 명단에는 일석 고등학교 선배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당연히 유한석 선배였다.

연봉총액 600만 달러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했던 유한석 선배는 국내 고교 넘버원 투수로 각광을 받으며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쉽게도 메이저리그 진출 5년 차인 지금에서야 겨우 빛을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애틀로 트레이드 되면서 올 시즌에 겨우 선발진에 합류했는데, 8월에 국대에 차출 당하게 생겼으니 이러다가 복귀했는데 선발 자리 없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걱정스러운 표정의 형수였다.

“그래도 군 면제가 우선이니까.”

물론, 냉정하게 2년 후 아시안게임을 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림픽 대표팀 차출을 거부하고 2년 후 아시안게임 차출을 요청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야구계에 엄청난 인맥을 자랑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유한석 선배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군대 면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올림픽 대표팀 차출 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령, 형수의 말대로 구단으로 복귀를 했을 때 선발 자리를 뺏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4월 형수의 성적은 말 그대로 바닥을 찍었다.

홈런은 5개나 기록했지만, 타율은 2할 초반을 찍었고, 삼진수도 굉장히 높았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토렌스의 백업 포수로는 형수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 정도.

‘이것도 위안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형수에게는 무척이나 잔인했던, 나에게는 내셔널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안겨준 4월이 지나고 5월이 시작되면서 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발 경기에 등판했다.

시즌 스케줄이 중간에 피츠버그 3연전이 낀 샌드위치 시리즈였기에 5일 전, 나를 상대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들로서는 내가 무척이나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LA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들 앞에서 5월 첫 선발 등판 경기가 시작됐다.

《LA 다저스 차지혁 2경기 연속 완봉승! 시즌 8승!》

《차지혁만 만나면 무기력한 SF, 3전 3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차지혁에게 시즌 3번째 완봉승 헌납!》

《명장 콜 머먼트 감독의 자존심을 번번이 상처내는 차지혁, 이쯤되면 천적 관계라 불러도 좋다.》

《차지혁! 애리조나 격파! 시즌 9승 신고하며 LA 다저스 서부 지구 순위 1위 수성!》

《35이닝 무실점! 차지혁 콜로라도 완봉승! 2028 시즌 메이저리그 첫 번째 10승 투수!》

《전통의 강호 보스턴 레드삭스! LA 홈에서 차지혁에게 뜨거운 맛을 보며 패배!》

《새로운 신기록? 2027년 46.1이닝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에 거의 다다른 차지혁! 2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전에서 종전 기록을 갱신한 것인가?》

4월 28일부터 이어진 무실점 기록이 5월 19일까지 이어졌다.

시즌 초반부터 1, 2점을 내주는 경기가 워낙 많았기에 연속이닝 무실점 기록에는 신경조차 쓸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어쩌다보니 어느덧 45이닝 무실점이라는 기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5월 승률이 완전한 100%를 기록하고 있었다.

4일부터 시작된 선발 경기에서 연승을 기록하며 아직 2경기나 남아 있는 5월 스케줄임에도 벌써 4승을 기록하고 있었으니 무척이나 고무적인 상황이라 부를 만 했다.

이런 페이스를 지속한다면 전반기 15승은 무난했다.

후반기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보름을 빠짐에도 불구하고 10경기가 배정되어 있었으니 올 시즌 목표로 삼았던 20승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모든 걸 확신할 순 없다.

갑자기 부상을 당할 수도 있고, 불운이 겹치면서 승수를 쌓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당장 다음 경기의 상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무실점 기록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첫 번째 선발 경기에서 완봉승을 따내기는 했지만, 이후 2번의 선발 등판 경기에서는 각각 8이닝 2실점과 7이닝 1실점으로 연속 실점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2위로 LA 다저스의 가장 강력한 1위 경쟁자로 등극한 상태다.

이미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올 시즌 1위는 LA 다저스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일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라 있었다.

이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기다리던 24일이 되었다.

< 『해외편 - 170』 > 끝

ⓒ 독고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