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68화 (168/221)

< 『해외편 - 168』 >

『해외편 - 168』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최대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원정에서 개막전 승리는 2차전과 3차전으로도 이어졌다.

LA 다저스의 2선발 투수로 확정된 딜런 아담스는 작년까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에이스였다는 걸 증명하듯 8이닝 무실점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타선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3선발 투수인 존 로더키는 기대 이하의 투구 내용으로 7이닝 5실점을 기록했지만, 이미 기세가 잔뜩 오른 LA 다저스 타선의 폭발적인 득점 지원에 힘입어 행운의 첫 승을 따낼 수 있었다. 특히, 이날 다저스 타선을 이끈 건 앞선 두 경기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이적생 데니스 플린이었다.

무려 4타수 4안타 2홈런을 몰아치며 자신의 가치가 결코 고평가되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형수는 8회에 시즌 첫 번째 대타로 타석에 섰고, 큼지막한 2루타를 터트리며 게레로 감독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원정 다음 상대는 2027 시즌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를 통틀어 가장 패배가 많았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14억 달러.

2028 시즌을 위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스토브리그에서 이적 계약에 쏟아 부은 돈이다.

무려 14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을 지출하며 스토브리그 역대 최대금액을 사용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더 이상 작년과 같은 최하위 구단이 아니었다.

바이런 벅스턴, 알렉스 잭슨, 칼럼 레니, 크리스찬 그림즈, 리즈 버틀러, 알렉스 버뎃까지 이름만 들어도 억소리가 나오는 최고의 선수들을 모조리 이적 시켜왔다.

그 효과가 고스란히 반영되었음인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개막전부터 LA 다저스와 함께 유일하게 스윕을 일궈내며 올 시즌 최대 돌풍이 될 것임을 확신시켜줬다.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중 어느 팀이 4연승을 이끌 것인가에 대한 모든 언론과 팬들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샌디에이고 원정 경기가 시작됐다.

LA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포스터 그리핀이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선발 투수는 앤드류 폴이었다. 두 투수 모두 4선발 투수들이었지만, 선발진이 약한 팀으로 간다면 충분히 2선발까지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이날의 경기를 투수 놀음으로 지켜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관전 포인트는 다저스와 파드리스 중 어느 팀의 타선이 더 강한가였다.

사람들의 기대대로 경기는 진행되었다.

최종 스코어 7:12.

LA 다저스보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화력이 한수 위임이 증명되었다.

이날 경기에서 새롭게 샌디에이고에 둥지를 튼 이적생 바이런 벅스턴과 알렉스 잭슨은 나란히 2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자신들이 어째서 막대한 이적료를 받았는지를 확실하게 증명한 날이기도 했다.

이튿날도 화력 다툼이었고, LA 다저스는 2연패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무려 5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승세를 자랑했다.

그렇게 3월 23일이 되었고, 팀의 연패를 끊기 위해 내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흐흐. 샌디에이고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너랑 배터리가 됐네.”

형수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 역시 마주 웃었다.

이틀 연속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타선에 밀린 게레로 감독이 마지막 3차전에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토렌스보다는 타격 능력이 뛰어난 형수를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1년 만이네?”

형수의 말에 마운드에 서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선발 투수 맥스 프리드를 바라봤다.

작년 LA 다저스 홈 개막전에서 만났던 첫 상대가 맥스 프리드였다. 형수의 말대로 이후 재대결을 한 적이 없었기에 1년 만에 다시 맥스 프리드와 맞상대를 하게 된 거였다.

팀의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나와 팀의 연승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는 맥스 프리드는 작년의 복수까지 더해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반드시 나를 상대로 승리하고 말겠다는 의욕이 강할 것만 같았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 투수에게 퍼펙트 게임으로 패배를 했으니 맥스 프리드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지는 묻지 않아도 알만했고, 그래서 그런지 맥스 프리드의 공은 다른 날보다 훨씬 더 힘이 실려 있는 듯 보였다.

1회 초부터 맥스 프리드는 전력 피칭으로 다저스 타자들을 압도했다.

삼진 2개와 내야 땅볼로 안정적인 1이닝을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맥스 프리드의 모습에 나 역시 질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히, 이틀 연속으로 LA 다저스의 마운드를 완전히 박살내버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타자들의 기세를 초반부터 확실하게 꺾어놔야 오늘 경기가 쉽게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번 타자 마누엘 마고에게는 초구부터 100마일이 넘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이어서 투심 패스트볼을 연속으로 던져 헛스윙을 유도했고, 마지막 결정구로는 초구와 같은 101마일의 강속구로 루킹 삼진을 이끌어냈다.

2번 타자는 윌리 아다메스.

작년까지 4번 타순에 붙박이였던 윌리 아다메스였으나 올 시즌 워낙 거물급 선수들이 이적을 해오면서 2번 타순으로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힘이 잔뜩 실린 헛스윙과 함께 윌리 아다메스의 하체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눈에 들어온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배트를 휘둘러대는 성격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전했다.

‘결정구는 체인지업.’

내 생각과 마찬가지로 형수 역시 체인지업을 요구했고, 바깥쪽 코스의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공을 던졌다.

부웅!

예상대로 윌리 아다메스는 배트를 시원스럽게 휘둘렀고,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두 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쾌조의 스타트에서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도미닉 스미스.

스토브리그를 통해 바이런 벅스턴과 알렉스 잭슨을 이적시켜 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두 도미닉 스미스가 타순 조정을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

매년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팀의 간판 타자로서 확실한 임팩트가 부족한 도미닉 스미스였기에 올스타 선수인 바이런 벅스턴이나 알렉스 잭슨이 3번 타자로 기용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도미닉 스미스는 3번 타순을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있었다.

고작 5경기뿐이라 하더라도 4할 중반의 타율과 1개의 홈런은 분명 좋은 성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뒤를 받치고 있는 바이런 벅스턴과 알렉스 잭슨으로 인해 상대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해오니 도미닉 스미스의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타석에 서 있는 도미닉 스미스의 표정은 상당히 자신만만했다.

‘초구부터 유인구라니.’

형수가 보내온 초구 사인은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으로 살짝 빠져 나가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좌타자에게 분명 좋은 미끼였지만, 급하게 승부를 걸어올 필요가 없는 도미닉 스미스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초구를 굳이 버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믿자.’

머릿속의 잡생각을 털어내며 형수를 믿고 던지기로 했다.

와인드업을 하고 컷 패스트볼을 던졌다.

쇄애애액.

퍼엉.

“볼!”

아쉽게도 내 예상대로 도미닉 스미스의 배트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형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도 초구에 내가 스트라이크를 잡는 성격임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생각한 것 같지만, 내가 봤을 때 전혀 아니었다.

더욱이 3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인구 승부보다는 정면 승부를 지속적으로 받아 온 도미닉 스미스였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공을 내게로 다시 던져주는 형수의 얼굴에서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초구부터 자신의 생각대로 타자가 끌려오지 않으니 포수로서 당연히 고민이 될 수밖에.

형수가 다시 2구에 대한 사인을 보내왔다.

‘투심?’

이번에도 유인구였다.

도미닉 스미스의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투심 패스트볼.

초구에 이어 2구까지 유인구를 던질 필요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 이내 형수에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몸 쪽 포심 패스트볼.’

내 사인에 형수가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쇄애애액.

퍼엉!

“스트라이크!”

1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고른 3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걸치는 포심 패스트볼이었고, 도미닉 스미스의 배트가 살짝 늦어지면서 타구가 파울 밖으로 날아갔다.

4구로 파워 커브를 던져서 유인을 해봤지만, 실패.

5구로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상체만 움찔 거렸을 뿐, 도미닉 스미스의 배트는 요지부동이었다.

풀 카운트임에도 불구하고 도미닉 스미스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볼넷을 던지지 않는 내 성향, 대기 타석에서 열심히 배트를 휘두르며 자신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바이런 벅스턴, 이런 상황들이 엮이니 도미닉 스미스로서는 반드시 내가 유인구가 아닌 정면 승부구를 던져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원하는 대로 던져준다.’

단, 절대 좋은 코스로는 던져주지 않는다.

고민 끝에 고른 공은 투심 패스트볼.

몸 쪽으로 살짝 꺾여 들어가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지는 않는 굉장히 까다로운 공을 던져준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로진백을 손에 묻히고는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졌다.

내 손을 떠난 공이 도미닉 스미스의 몸 쪽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향하자 그의 배트가 벼락처럼 튀어 나왔다.

하지만, 투심 패스트볼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지 배트 안쪽에 공이 맞았다.

딱.

타구가 크게 바운드가 되면서 꽤 높이 튀어 올랐다.

1루 수비를 보고 있던 케럴 발렌타인이 타구를 향해 급하게 몸을 움직였고, 도미닉 스미스와 나 역시 1루를 향해서 빠르게 뛰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20개의 도루를 꾸준히 해왔을 정도로 준족 소리를 들었던 터라 도미닉 스미스의 달리기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크게 바운드가 되면서 허공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기에 케럴 발렌타인이 어떻게 수비를 하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급한 마음에 포구보다 송구를 먼저 생각하면 공을 놓치거나, 악송구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기에 나 역시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들었다.

‘늦었다.’

죽어라 1루로 뛰는 도미닉 스미스였기에 타구를 잡고 송구를 하기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야 안타를 허용해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사이, 케럴 발렌타인이 글러브가 아닌 맨손으로 떨어지는 타구를 낚아채면서 그대로 송구를 해왔다.

펑! 팟!

내 글러브에 공이 들어오는 것과 도미닉 스미스의 발이 1루 베이스를 밟는 것이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다.

1루심을 돌아보니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아웃을 선언했다.

판정이 떨어지자 나와 다저스 수비수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면, 1루심의 판정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1루 코치가 어떻게 아웃이냐며 항의를 했고, 그 사이 샌디에이고 감독이 1루심에게 다가가 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힐끔거리며 더그아웃을 바라봤고, 전화를 하던 코치 중 한 명이 고개를 가로로 젓자 그제야 1루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아슬아슬했다.”

형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케럴 발렌타인에게 다가갔다.

“케럴, 정말 멋진 수비였어. 고마워.”

“당연한 거잖아. 고마워 할 필요 없으니까 척은 부담 없이 마음껏 수비를 믿고 공을 던지기만 해.”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케럴 발렌타인이었지만, 차분한 성격에 매너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 작년부터 서로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2회 초, 다저스의 공격은 4번 타자 데니스 플린부터 시작이었다.

< 『해외편 - 168』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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