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67』 >
『해외편 - 167』
《슈퍼 에이스 차지혁! 시범경기 최종 점검 끝!》
『2027년 메이저리그 데뷔와 동시에 최고의 선수로 우뚝 올라섰던 LA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 차지혁은 2028년 5번의 시범경기 동안 큰 기복 없는 안정적인 피칭으로 2년차 징크스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말끔하게 종식시켰다.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첫 번째 시범경기에서 차지혁은 3이닝 무실점으로 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 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어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두 번째 시범경기에서는 3이닝 동안 단 1개의 피안타만을 기록하며 5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 호투를 이어나갔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세 번째 시범경기에서는 아쉽게도 4이닝 동안 2실점을 하고 말았다. 이번 스토브리그를 통해 새롭게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2루수 데니스 플린의 실책에 이은 실투로 인한 투런 홈런을 허용한 것이 실점의 이유였다. 그러나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어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시범경기에서 차지혁은 각각 4이닝, 5이닝 무실점 호투를 보이며 그 어떤 투수보다 완벽한 시범경기를 마치며 최종 점검을 끝냈다. 데뷔 시즌이 화려할수록 우려가 높을 수밖에 없는 2년차 징크스도 슈퍼 에이스 차지혁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차지혁 2년 연속 LA 다저스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낙점!》
《게레로 감독 올 시즌 월드 시리즈 우승에 강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그 어느 때보다 LA 다저스는 강하다고 발언!》
《美 배팅업체, 월드 시리즈 우승 후보 ‘1순위’ LA 다저스 전망!》
《스토브리그 역대 최대 돈 보따리 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올 시즌 내셔널리그 우승에 확신!》
《美 CBS,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대 격전지로 예상!》
《마이크 트라웃, 은퇴 시즌이라는 생각으로 월드 시리즈 우승에 최선을 다하겠다.》
《3월 18일 토요일 메이저리그 2028 시즌 개막!》
《개막전,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최대 라이벌 LA 다저스 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다저스 차지혁과 자이언츠 도니 케일, 숨 막히는 투수전 예상!》
2028년 3월 18일 토요일.
긴 겨울잠에 빠졌었던 메이저리그가 기지개를 켰다.
개막전은 원정 경기였고, 그 상대는 LA 다저스와 함께 항상 지구 우승을 다투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AT&T 파크에는 기나긴 겨울 동안 야구가 개막하길 기다렸던 수만 명의 팬들로 북적거렸다.
“오늘 개막전에서도 퍼펙트 게임?”
토렌스의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불펜에서 마지막 몸 풀기를 끝내자 화려한 개막식이 펼쳐졌다.
폭죽이 터지고, 여러 축하 행사들이 이어지고 양 팀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소개가 끝나고 나서야 LA 다저스의 1회 초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쇄애애액.
퍼어엉!
마운드 위에서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개막전 선발 투수는 에이스 도니 케일이었다.
“그렇게 이적설에 휩싸이더니 결국은 남았네.”
형수가 내 옆에 앉아 도니 케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올 시즌 29살이 된 도니 케일은 명실상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이다.
90마일 후반의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과 90마일 중반의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를 제대로 던질 줄 아는 도니 케일은 놀랍게도 언더핸드스로(underhand throw) 투수였기에 그 가치가 훨씬 더 고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구속의 공을 던져도 언더핸드스로 투수의 공이 더 위력적이며, 변화가 크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희귀성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타자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상대하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장점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우투수인 도니 케일을 상대로 좌타자들은 일반적이 오버핸드 투수들보다 조금 더 오래 공을 지켜볼 수 있다. 거기에 언더핸드스로 투수의 최대 단점이라 불리는 체력 문제와 부상에 대한 위험성은 분명 선발투수보다는 불펜, 특히 마무리나 원포인트릴리프(one point relief)로서의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도니 케일은 선발 투수로서 우뚝 섰다.
부웅!
“스윙! 타자 아웃!”
작년에 이어 올 시즌에도 다저스의 1번 타자인 던컨 카레라스는 좌타자임에도 불구하고 도니 케일의 커브에 완벽하게 속으면서 헛스윙 삼진으로 시즌 첫 번째 타석을 장식했다.
시즌 첫 타석부터 삼진을 당했으니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던컨 카레라스의 표정은 당연히 밝을 수가 없었다.
이어진 2번 타자 크레이그 바렛도 내야 땅볼로 아웃이 되었고, 3번 타자인 코리 시거 역시도 외야 뜬 공으로 무기력하게 1회 초 공격을 마치고 말았다.
“지혁아, 깔끔하게 세 타자 연속 삼진 부탁한다!”
오른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렇게 응원을 하는 형수를 뒤로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시즌 개막전, 첫 번째로 상대하게 된 타자는 데릭 힐이었다.
개막전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토렌스와는 길게 사인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었다.
쇄애애애애애액.
퍼- 어어엉!
“스트라이크!”
리그 최정상급 수준을 리드 오프인 데릭 힐이었지만, 작년 시즌 나를 상대로 그는 6타수 무안타로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했다.
단순한 자부심이 아닌 구위를 믿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내 투구에 데릭 힐은 일곱 번째 타석에서도 결국 안타를 치지 못하고 삼진을 당하며 마운드에 서 있는 내가 볼 수 있을 정도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등을 돌렸다.
데릭 힐이 떠난 자리엔 마틴 배긴스가 들어섰다.
작년 시즌, 한 경기에서 두 번씩이나 기습 번트를 성공시켰던 마틴 배긴스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에 나는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내야수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시 기습 번트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내야수들 모두 한 발 앞에서 수비를 하면서 경기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딱.
타구가 높이 떠오르자 곧바로 수비의 신, 크레이그 바렛이 발 빠르게 달려가 교본과도 같은 안정적인 수비로 아웃 카운트를 늘렸다.
순식간에 2아웃이 되었고, 타석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첫 번째 피홈런의 주인공인 길버트 라라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들어섰다. 고작 단 한 번 말도 안 되는 홈런을 터트린 주인공이지만, 내게서 홈런을 뽑아낸 몇 안 되는 타자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길버트 라라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컷 패스트볼이었지?’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는 낮은 쪽 볼을 그대로 걷어 올렸던 길버트 라라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토렌스가 사인을 줬다.
초구는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투심 패스트볼.
초구부터 볼을 던져달라는 요구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버트 라라의 자세에서 눈빛까지 모든 것이 초구라도 원하는 공이면 여지없이 풀스윙을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와인드업을 하고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쇄애애애액!
부우우- 웅!
마운드까지 바람 소리가 들렸다.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의 파워를 자랑하는 길버트 라라의 스윙은 역시 무시무시했다.
있는 힘껏 배트를 돌리는 길버트 라라의 모습에 마스크를 쓴 토렌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에 그것도 투심 패스트볼에 당했다는 사실에 길버트 라라의 눈가가 잔뜩 일그러졌다.
타석에서 벗어나 허공에 빈 스윙을 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타석에서 자세를 잡았다.
‘몸 쪽 높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
토렌스의 두 번째 사인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코스와 구종이었다.
무엇보다 길버트 라라는 몸 쪽 높은 코스라고 못 치는 타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지막지한 파워를 앞세워 몸 쪽 높은 코스의 공을 여러 번 홈런으로 만들어 버렸을 정도였다. 차라리 몸 쪽 낮은 코스의 공이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해낼 확률이 높았다.
이런 사실을 모를 토렌스가 아니었기에 그를 믿고 사인대로 공을 던져줬다.
부우우웅!
이번에도 헛스윙이었다.
바깥쪽에 이은 몸 쪽 코스에 완전히 농락을 당한 길버트 라라였다.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생각해보면 내게서 홈런을 때리기 이전까지 길버트 라라는 계속해서 삼진을 당하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3번 타자로서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겼었다.
피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대결 성적으로는 내가 훨씬 우세했다.
2스트라이크 노볼 상황에서 투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롭게 공을 던질 수 있다.
반대로 타자는 구석까지 몰렸다는 심리적인 상황으로 인해 냉정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아진다.
작년까지 9년 연속 30홈런의 기록을 잇고 있는 길버트 라라라고 다르지 않다.
부우웅!
바깥쪽으로 살짝 빠지는 체인지업에 길버트 라라의 배트가 허공에 폭력을 가했다.
삼구삼진.
타자라면 가장 치욕스러운 아웃이었다.
더욱이 시즌을 시작하는 첫 번째 타석에서 삼구삼진을 당했다는 건 당사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기분일 거다.
“홈런 하나 때렸다고 히죽거리던 얼굴이 얼마나 보기 싫던지. 하하하.”
토렌스가 내게 수고했다며 그렇게 말을 이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니 게레로 감독이 박수를 치며 나를 칭찬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모두 하이파이브를 하며 시즌 첫 번째 이닝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 차지혁 선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고스란히 시즌 개막전에서도 이어가고 있네요. 제가 봤을 때, 차지혁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꾸준함이라고 봅니다. 사실, 모든 운동 선수에게 꾸준함을 요구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차지혁 선수는 크게 기복이 없는 피칭으로 항상 매 경기마다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니 구단 입장에서도 이보다 더 고마운 선수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차지혁 선수의 장점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매 경기마다 꾸준하게 자신의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건 확실히 구단 입장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리즈 맥과이어 선수 헛스윙 삼진 아웃입니다! 이것으로 차지혁 선수 벌써 삼진 12개째를 기록합니다!
-96마일 투심 패스트볼에 리즈 맥과이어 선수 완벽하게 속았어요. 좌타자인 리즈 맥과이어 선수의 몸 쪽으로 날카롭게 파고 들어오는 투심 패스트볼은 정말 예술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군요. 던지는 구종마다 모두 리그 정상급이라 부를 정도로 완벽하게 구사를 하는 차지혁 선수를 보면 과연 저런 투수가 또 다시 나타날지 의문이 들 정도예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지혁 선수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던질 수 있을 때에만 새로운 구종을 경기에서 던진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차지혁 선수가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해 1년이 넘도록 훈련을 했다고 하니 근성 또한 대단한 선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뛰어난 재능에 노력과 근성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차지혁 선수가 지금처럼 메이저리그에서도 우뚝 설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군요.
-유격수 크레이그 바렛! 숏바운드로 공을 잡고 1루로 송구~ 아웃! 8회 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공격이 끝났습니다. 이어서 9회 초 LA 다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부웅!
퍼엉!
헛돌아가는 배트와 포수 미트에 정확하게 꽂히는 공을 보며 나는 왼손을 하늘로 번쩍 들었다.
경기 종료.
2점차 리드를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개막전 기분 좋은 완봉승을 거뒀다.
9이닝 무실점, 14탈삼진, 2피안타.
마운드로 올라온 토렌스가 개막전 승리구를 내게 건네며 수고했다는 말을 했다.
“토렌스도 수고했어요.”
2028년 3월 18일 개막전.
LA 다저스 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최종 스코어 2:0.
승리 투수 차지혁(1승).
< 『해외편 - 16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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