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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66화 (166/221)

< 『해외편 - 166』 >

『해외편 - 166』

퍼엉!

“그래! 바로 이거야! 내가 이런 공을 얼마나 받아보고 싶었다고!”

과장스러운 형수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음 뒤로는 확실하게 변한 형수의 미트질과 포구 자세에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받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미묘한 변화일지 모르나, 투수인 나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안정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전까지의 형수는 체격에 비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이 강했다.

반대로 말하면 포수로서의 무게감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이런 형수의 변화는 같은 포수나 투수들이라면 분명 알아차릴 거다. 더불어 배터리 코치와 투수 코치들 역시도 형수의 실력이 향상되었음을 느끼고 그 사실을 게레로 감독에게 전할 거다. 물론, 그렇다고 개막전에 선발 포수로 출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스프링 캠프 훈련과 시범 경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더 부각시킬 것이고, 토렌스가 조금이라도 부진하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형수를 선발 라인업에 넣을 것이 분명했다.

형수가 돌아오고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훈련을 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쉬지 않고 훈련만 했음에도 형수는 군소리 없이 또 다시 LA에서 땀을 흘렸다.

나와 형수가 제법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면서 덩달아 바빠진 사람이 주혜영이었다.

시즌 중에는 그래도 원정 경기도 있었고, 한 끼 정도는 구단에서 해결을 해왔었는데 집에서 훈련만 하니 삼시세끼는 물론, 중간중간 간식까지 만들어야 했기에 주방에서 쉴 틈이 없었다.

덕분에 나와 형수는 고된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역시 누님 밥이 최고! 내가 이런 밥을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다 잘 먹는 형수라고 하더라도 푸에르코리코에서 한식이 얼마나 그리웠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안젤라는 이제 슬슬 영화 촬영 끝나가지 않냐?”

“일주일 후에 안젤라 분량은 모두 끝나고 이제 완전히 돌아온다고 했어.”

“LA로 오는 거야?”

“아마도.”

“집 비워줄까?”

형수의 말에 빈 그릇을 치우던 주혜영이 작게 웃었다.

내가 형수를 바라보며 가볍게 인상을 쓰자 뭐 어떠냐며 애인끼리 오랜만에 만나는데 뭘 부끄러워 하냐며, 여긴 미국이라 어느 누구도 너희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어대며 날 곤란하게 만들었다.

“3일 밖에 시간이 없잖아? 애리조나로 스프링 캠프를 떠나야 하는데 그 전까지 3일을 화끈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어?”

“시끄러.”

“너 설마 아직도냐?”

“…미친놈.”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 황급히 자리를 떴고, 그런 날 향해 형수가 혀를 차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이윽고 주혜영에게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는 훈련장으로 향했다.

팡! 팡! 팡!

쉐도우 피칭을 하고 있을 때였다.

훈련장으로 형수가 들어오며 말했다.

“방금 연락 받았는데, 딜런 아담스하고 데니스 플린 이적 협상에 합의했다고 하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에이스나 다름없는 딜런 아담스라면 정말 대박이라 불러도 좋았다.

존 로더키와 함께 딜런 아담스의 영입은 분명 LA 다저스 선발진에 엄청난 힘을 싣기에 충분했다.

“이걸로 1, 2, 3선발은 확실하게 정해졌네.”

형수의 말대로 나, 딜런 아담스, 존 로더키로 이어지는 세 명의 선발 투수는 분명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포스터 그리핀과 나단 코스코까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선발 투수들만으로도 충분히 60~70승까지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히 막강 선발진이라 불러도 좋았다.

“딜런 아담스야 워낙 이적설에 휩싸였으니까 놀랍지는 않지만, 데니스 플린은 좀 의외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순순히 놔주지 않았을 텐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전 2루수인 데니스 플린은 수비에 있어서는 평균 수준으로 밖에 볼 수 없지만, 공격력만큼은 확실히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났다. 특히, 파워가 좋았기에 매년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였고, 실제로도 작년 시즌에도 23개의 홈런과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2루수 부문 실버슬러거에 올랐다.

“필리스에서 데니스 플린을 풀어 준 이유가 있지.”

“이유라니?”

내가 궁금해서 물으니 형수가 모르냐는 듯 대답했다.

“필리스에는 토비 바슨이 있잖아.”

“아! 토비 바슨.”

2024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작은 키의 내야수를 지명하면서 모든 구단을 놀라게 했다.

그게 바로 토비 바슨이다.

170cm가 되지 않는 작은 키의 토비 바슨은 미국 태생으로 고교 시절에도 딱히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인정을 받는 부분이라면 빠른 몸놀림뿐이었기에 무엇 때문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토비 바슨을 1라운드에 지명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떤 가능성을 봤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이듬해 토비 바슨은 싱글A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매년 상위 레벨의 리그로 올라갈 때마다 손에 꼽히는 성적으로 초특급 내야수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토비 바슨을 빅리그로 콜업하기 위해서 데니스 플린을 처분한 것일지도 모르지.”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데니스 플린의 나이를 봤을 때, 더 이상의 기량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토비 바슨의 경우 어느 정도의 선수가 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어쩌면 더스틴 페드로이아처럼 리그 최정상급의 2루수가 될지도 모르지.’

그런 기대감이라면 데니스 플린을 이적시키는 일에 필리스의 단장이 충분히 동의했을 것 같았다.

“구단 입장에서는 분명 공격력이 크게 강화가 될 테니까 데니스 플린의 영입을 기뻐하겠지만, 투수인 네 입장에서는 솔직히 좀 그렇겠다?”

“어쩔 수 없잖아. 감안해야지.”

“그렇기는 하지만…….”

형수가 말끝을 흐리며 쓰게 웃었다.

작년에 데니스 플린이 수비 실책으로 날려먹은 게임수가 10게임 가까이 된다. 물론, 역전 홈런이나, 안타를 터트리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게임도 많다. 하지만, 투수에게 수비 실책은 비자책이라 하더라도 승패와 관련이 깊었기에 모든 투수들은 당연히 수비실력이 뛰어난 수비수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실책으로 주자를 루상에 두느냐, 두지 않느냐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데니스 플린이 아무리 안타를 많이 치고, 홈런으로 점수를 내준다 하더라도 수비 실책으로 실점을 하게 만들고, 루상에 주자를 쌓으며, 투구수를 늘린다면 투수 입장에서는 정말 짜증이 날 수밖에 없어진다.

“어쨌든 데니스 플린처럼 막강한 타자가 타선에 힘을 싣는다면 팀 승리에 더욱더 큰 영향을 끼칠 테니까 좋게 생각해야지.”

내 말에 형수가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이 흐르고, 안젤라가 LA에 왔다.

“척!”

안젤라가 품에 안겨오니 향긋하면서도 달콤한 기분 좋은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6개월간의 영화 촬영을 끝내고 안젤라가 돌아왔다.

안젤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남들이 말하는 꿈에서나 나올 법한 꿈속의 여신처럼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살이 약간 빠진 것 같네요?”

내 말에 안젤라가 생각보다 영화 촬영이 힘들었다며 다시는 영화 촬영을 못할 것 같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물론, 진심일 리가 없었다. 영화 촬영을 하는 내내 전화를 할 때마다 무척이나 즐겁고 유쾌했던 그녀의 음성을 떠올리면 그녀는 이번 영화 촬영으로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얻은 것 같았으니까.

고급 레스토랑에서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니 어처구니없게도 형수가 진짜 집을 나가버렸다.

좋은 시간 보내라.

쪽지까지 남겨둔 형수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고, 무슨 일이냐며 묻는 안젤라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니 그녀 역시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밤, 나와 안젤라는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하지만, 형수가 생각하는 그런 밤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보다 훨씬 진한 키스와 스킨십은 있었다.

“정말 그게 다야? 거짓말이지? 너 설마… 고자냐?”

그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야구공에 맞고도 사람이 죽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형수에게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

안젤라와 3일간의 달콤했던 데이트를 마치고 애리조나로 향했다.

2028년 시즌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스프링 캠프의 시작이었다.

“딜런 아담스네. 자네와 한 팀이 되어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네.”

30살의 딜런 아담스는 깔끔한 인상에 걸맞는 매너를 갖고 있었다.

마운드에서도 그렇고, 야구장 밖에서도 신사로 불린다고 하더니 나와의 첫 만남에서도 무척이나 호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대로 존 로더키는 굉장히 활기차고 재밌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루키! 네 활약은 정말 잘 봤어! 어떻게 그런 멋진 투구를 할 수 있는 거야? 네 경기 영상들을 보면 내셔널리그 타자들이 불쌍해서 봐줄 수가 없더라고. 하하하! 솔직히 말해서 내가 LA로 온 이유는 바로 척 너와 상대로 만나지 않을 수 있어서였어. 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너무 무섭거든. 하하하하!”

마지막으로 데니스 플린은.

“지금까지 그 어떤 메이저리그 선수도 너와 같은 루키 시즌을 보내진 않았다. 그렇게 강렬한 루키 시즌을 보냈기에 네겐 더욱더 가혹한 2년차 징크스가 시작될 거야. 기대가 되는군. 과연 네가 2년차 징크스를 어떻게 버텨낼지. 아! 마지막으로 당부하나 하지. 괜히 2년차 징크스를 피하겠다고 무리하진 말라고. 특히 투수는 무리를 하는 순간 선수 생명이 끝난다는 것만 기억해. 내가 그런 멍청이들을 꽤 자주 봐서 말이야. 어차피 올 시즌은 네게 가혹한 시즌이 될 수밖에 없으니 순순히 받아들이라고.”

재수 없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조금 더 순화할 수도 있는 걸 데니스 플린은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닥칠 2년차 징크스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거기에 조언이랍시고 어쭙잖은 말까지 해대니 첫 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2년차 징크스.

재수는 없었지만, 데니스 플린의 말은 딱히 틀린 구석이 없다.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는 물론 팬들까지도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데뷔 시즌을 화려하다 못해 일부 팬들의 말처럼 전설적으로 보내버렸기에 당연히 2년차에 접어든 내 성적에 대한 비교가 클 수밖에 없었다.

보통 화려한 데뷔 시즌을 보낸 신인 선수들일수록 2년차 징크스가 커지기 마련이다.

2년차 징크스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최소한 15승 이상, 1점 혹은 2점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해야만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2년차 징크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의 성적만 기록해도 메이저리그 평균을 훨씬 상회하니 충분히 제몫을 해냈다고 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내가 절대 만족할 수 없다는 거지.’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2028년 시즌 성적은 20승 이상, 1점대 초중반의 평균자책점이다.

탈삼진은 300개만 넘어도 충분히 만족하고, 이닝은 작년보다 조금만 더 많은 210이닝만 소화해도 충분히 내 몫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년 성적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는 수치였지만, 올 시즌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어 한 달 가까이 쉬어야 하니 내 목표치만 하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올 시즌 나를 향한 견제들을 생각하면 작년보다 훨씬 더 힘겨운 시즌이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힘들지 않은 시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언제나 항상 힘들긴 마찬가지일 거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훈련을 소화하다보니 어느덧 시범경기 일정이 잡혔다.

“시범경기 첫 상대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면 딱 좋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이렇다 할 거물급 선수들은 영입도 못하고 오히려 좋은 선수들만 왕창 뺐겼잖아? 올 시즌 캔자스시티의 성적을 기대하는 팬들이 있을지 모르겠네.”

형수의 말대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2028년 시즌이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핵심 선수들이 무더기로 이적을 했고, 그렇게 빠져버린 공백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했다.

전문가와 팬 모두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의 꼴찌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라고 입을 모아 말을 할 정도였다.

미안한 말이지만, 2028년을 시작하는 첫 번째 상대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확실히 너무나도 달콤한 사냥감이었다.

< 『해외편 - 166』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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