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64』 >
『해외편 - 164』
“어쩐 일이에요?”
문을 열어주자 트라웃은 혹시 방해가 됐냐며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사과를 받아야 할 정도로 방해가 될 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손사래까지 치며 집으로 들였다.
간단하게 마실 만한 음료를 내주고 소파에 앉자 트라웃이 말을 꺼냈다.
“올 시즌 정말 멋진 활약을 해줘서 팀의 주장으로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트라웃을 비롯해 동료 선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선수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트라웃이 여러 가지로 많은 신경을 써줬다는 것 잘 알고 있어요.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한다면 마땅히 제가 먼저 해야 할 것 같네요.”
내말에 트라웃이 빙긋 웃었다.
“류도 그랬지만, 너희 한국 선수들은 항상 타인을 먼저 배려해주고, 다른 어떤 놈들처럼 건방지지 않아서 좋아.”
“트라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랬던가? 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트라웃의 얼굴엔 현재의 기분이 무척이나 좋다는 게 저절로 느껴졌다.
내 성적, 트라웃의 성적, 내가 상을 받은 것과 다른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쉬지 않고 잡담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30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슬슬 트라웃이 날 찾아온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런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왔을 리는 없고, 무슨 일 있나요?”
트라웃은 남아 있는 음료를 모두 마시고는 대답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내년 시즌이 다저스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야.”
2023년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어 온 트라웃이다.
어깨연골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으로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무려 4년을 강제로 쉬어야만 했다. 올 시즌 재기에 성공했지만, 예전의 트라웃의 명성에 비하면 확실히 아쉬움이 큰 성적이었다.
0.332라는 통산 타율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0.287의 타율에 24개의 홈런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트라웃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올 시즌 80%이상 경기에 출장을 하면서 3500만 달러의 거액을 연봉으로 챙겼으니 성적대비 너무나도 막대한 돈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다저스 구단 입장에서는 트라웃에게 주는 연봉이 아까울 수 있다.
그런데 1년이나 계약 기간이 더 남아 있고, 내년이면 트라웃의 나이가 37살이며, 연봉 역시 3500만 달러에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연봉에 맞는 성적이라면 최소한으로 40개 이상의 홈런을 날려주고, 120타점과 3할의 타율, 4할의 출루율은 가볍게 넘어야 한다.
전성기 시절의 트라웃이라면 불가능하거나, 무리하다 부를 성적이 아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재의 트라웃을 생각한다면?
‘어렵겠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다고 하지만 나이가 발목을 잡는다.
“구단에서 잡아준다면 어떤 계약이든 수용할 생각이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
트라웃이 어떤 계약이건 수용하겠다 말하지만, 적정 수준이라는 게 있다.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고 제대로 된 활약 한 번 해준 적 없다고 무턱대고 적은 돈을 제시한다?
트라웃뿐만 아니라 다저스 구단에도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된다.
당장 선수들의 머릿속에 다저스 구단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쪽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저스로서도 트라웃과의 새로운 계약에 조심스럽게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계산을 해봤을 때, 당장 트라웃의 성적으로는 그의 적정 몸값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설프게 트라웃과 계약을 하느니 차라리 아름답게 이별을 택하는 편이 다저스 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라 할 수 있다.
트라웃 역시 이 점을 알기에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큰 변화가 없는 이상 내년 시즌이 내 야구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마지막.
이보다 더 가슴 먹먹한 단어가 또 있을까?
누구보다 화려하게 야구를 시작했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던 트라웃이지만 부상의 악령에게 발목이 잡혀 선수로서의 후반기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은 트라웃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도 언젠가는 트라웃처럼 마지막 시즌을 준비할 때가 오겠지.
당장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트라웃에게 위로를 건넨답시고 주절거릴 수도 없다.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한 신인이 할 말은 아니었으니까.
“내 인생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르고, 설령 다른 구단에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게 된다 하더라도 다저스 구단을 위해 내년만큼은 최고의 선물을 해주고 싶은 게 내 진심이다.”
“최고의 선물이라면?”
“월드 시리즈 우승 밖에 더 있겠어?”
대답을 하며 트라웃이 피식 웃었다.
“어떤 누가 지금 팀 분위기를 완전히 헤집어놔서 주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누굴 가장 먼저 찾아갈까 싶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 사람이 척 너였어. 솔직히 말해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타자들이 조금만 더 집중력을 발휘해서 점수를 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더라. 그리고 아쉽기로 따지면 어느 누구보다 척 네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트라웃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확실히 필 맥카프리로 인해 팀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가라앉은 건 사실이다.
투수조와 야수조 사이에 신경전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가겠지만, 누군가는 휴식기 내내 되새기겠지.
그 작은 차이가 내년 시즌 팀 케미스트리(chemistry)에 미묘한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
트라웃은 그 점을 염려해서 직접 선수들을 다독이고자 움직인 거다.
“영광이네요.”
“무슨 소리지?”
“다른 누구도 아닌 절 가장 먼저 찾아와서 이렇게 말해주니까 제 입장에서는 영광스럽다고 할 만해서요.”
“당연한 거잖아. 척 넌 우리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니까 이 정도의 대우는 당연한 거라고.”
트라웃의 과장된 말투와 행동에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저 다음은 누구죠?”
“생각 중이야. 그리핀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벌써 여행을 떠났다고 하더라고.”
순서로 따지면 필 맥카프리가 먼저겠지만, 그는 이미 이번 겨울 이적을 확실하게 결정해놓은 상태였다. 이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필 맥카프리의 성격상 트라웃과의 대화를 순순히 받아들였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였다.
때문에 나 역시 필 맥카프리보다 먼저 떠오른 선수가 있었다.
“시거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코리 시거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LA 다저스 야수조의 중심축이다.
트라웃이 주장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선수단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코리 시거였으니까.
“지금쯤 시거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걸?”
“예?”
“야수들은 시거가 맡기로 했거든.”
이건 트라웃 혼자 생각해서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코리 시거와 트라웃의 합작이다.
야수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코리 시거가 야수들을 다독이고, 투수들에게는 거부감이 없는 트라웃이 움직이는 거다.
정말 멋진 계획이다.
트라웃과는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눴다.
문 밖까지 트라웃을 배웅하자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40년 동안 이어진 다저스의 저주를 우리 손으로 반드시 풀어내자.”
트라웃이 내민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내년에는 반드시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하나씩 가져가는 겁니다.”
“한국에 잘 다녀오고. 1월에 보자고.”
트라웃은 자신의 차를 타고 멀어져갔다.
다저스 선수단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트라웃과 시거가 자발적으로 선수들을 방문하며 내년 시즌에 대한 희망을 퍼트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무적으로 보였고, 나 역시 나이가 들면 저렇게 행동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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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해서 부모님을 만나니 내 예상대로 두 분 모두 무척이나 놀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날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연락이라도 좀 줄 것이지!”
어머니는 집에 마땅히 먹을 반찬이 없다며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하려고 했지만, 식구들이 먹다 남은 김치찌개에 밥 두 공기를 맛있게 먹으니 그제야 집에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빠?”
학교에서 돌아온 지아 역시 거실에서 TV를 보던 내 모습에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해서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날 한참이나 쳐다봤다. 그리고는 무슨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지 밤 12시가 훌쩍 넘을 때까지 날 붙들고 수다를 떨다가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고서야 제 방으로 도망을 갔다.
3일 정도를 푹 쉬고 나서야 언론에서 내가 입국해서 집에서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수많은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귀찮게 굴었지만, 황병익 대표의 호언장담대로 순식간에 주변이 정리되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최상호 코치와 함께 개인 훈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훈련장으로 황병익 대표가 낯선 인물과 함께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의 매운맛을 톡톡하게 보여주고 있는 차지혁 선수의 활약상은 항상 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박형석이라고 합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박형석이라는 낯선 남자의 악수를 받아들이며 황병익 대표를 슬쩍 바라봤다.
누구냐는 내 눈짓에 박형석이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는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회 소속으로 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라면 간단하게 KBO다.
“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황병익 대표가 아무나 데리고 왔을 리가 없고, 특별한 목적도 없이 나와의 만남을 주선했을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박형석이 날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하하하. 소문대로 성격이 시원시원하시군요. 뭐, 차지혁 선수께서 워낙 바쁘신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뺏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서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훈련장이라서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내 말에 박형석은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지혁 선수도 아시다시피 내년에 부산 올림픽이 있습니다. KBO 입장에서는 당연히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는 차지혁 선수를 올림픽 국가대표팀 선수로 차출을 원하고 있습니다. 차지혁 선수도 잘 아시겠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 면제가 됩니다.”
2028년 부산 올림픽.
박형석의 말처럼 내게는 군 면제가 달려 있는 올림픽이었다.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마땅히 군대를 다녀와야 하겠지만, 운동선수에게 군대는 굉장히 치명적인 곳이다. 때문에 나 역시 할 수만 있다면 면제를 받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특수 상황을 반드시 이용해야만 했다.
“이번 부산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알리고자 차지혁 선수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차출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역대 가장 강한 국가대표팀을 꾸릴 생각이니 차지혁 선수께서 반드시 차출에 응해주셨으면 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정식 종목에서 사라졌다.
12년 만에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다시 부활했지만, 한국은 미국, 쿠바, 일본에 밀려 두 차례의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무려 20년 전의 기억일 뿐이었다.
“국가대표팀에 뽑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올림픽은 8월에 열린다.
공교롭게도 메이저리그 시즌 후반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린다.
구단과 팬들 입장에서는 환영하지 못할 일이지만, 올림픽의 경우 국가대표팀에 차출이 되면 선수 본인이 거부하지 않는 이상 구단에서는 절대 거부할 수가 없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부상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표팀에 합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대답에 박형석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정식으로 국가대표 차출에 대한 협조 공문은 5월 중으로 구단에 통보가 될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이 다른 곳도 아닌 부산에서 개최되는 만큼 반드시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 소식을 꼭 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니 차지혁 선수께서도 그 전까지 절대 부상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러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혹시 국가대표에 장형수 선수도 생각하고 계십니까?”
“음… 이건 극비입니다만, 현재 KBO에서는 국내 선수들보다는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한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전력적으로 보강을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실력 위주의 차출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장형수 선수 역시 당연히 차출 대상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실하게 차출이 확정된 선수는 차지혁 선수 외엔 더 이상 없습니다.”
박형석의 말에 최상호 코치와 황병익 대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척이나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가족들에게도 오늘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2028년은 내게 무척이나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 분명했다.
40년 동안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LA 다저스의 우승과 20년 만에 다시 한 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 대표팀과 군대 면제라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공을 던져야 했다.
< 『해외편 - 16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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