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63』 >
『해외편 - 163』
《한국인 투수 차지혁 메이저리그 역대 최연소 MVP 수상!》
『예견된 일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LA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 차지혁(만 20세)은 지난 14일 있었던 내셔널리그 MVP 투표 결과에서 투표인단으로부터 1위표 30표의 몰표를 얻으며 만장일치로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다. 차지혁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연소 MVP에 오르면서 이전까지 기록되어 있던 올라 바이다 블루(21세), 조니 벤치(21세), 스탠 뮤지얼(21세)이라는 쟁쟁한 역사적인 인물들보다 한 살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의 선수로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점은 차지혁이 올 시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를 한 따끈따끈한 신인 투수로 신인상과 사이영상까지 모두 석권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다. 올 시즌 차지혁의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수준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2027년 차지혁의 기록은 이미 전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26게임에 선발로 마운드에 올라 20승 무패(내셔널리그 다승부문 공동 4위)를 기록했으며, 208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고작 21실점 밖에 기록하지 않아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0.91)을 달성했다.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은 1968년 밥 깁슨의 1.12였으니 무려 59년만의 신기록이며, 현대야구에 접어들면서 메이저리그 최초의 0점대 평균자책점 투수가 되었다. 여기에 탈삼진 328개를 잡아내며 이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다승왕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데뷔 신인 20승이라는 기록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데뷔시즌 퍼펙트 게임과 연속 퍼펙트 게임, 이후 3번째 퍼펙트 게임까지 달성하며 총 9번의 완봉승을 거두었으니, 역대 그 어떤 메이저리그 투수보다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자부할 만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업적을 달성한 차지혁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LA 다저스의 뿌리 깊은 저주를 차지혁조차 벗어나지 못했다는…….』
- 씨발,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절대 에레이 다~져스랑은 계약하지 말라고 했잖아! NLCS에서 4, 5, 6차전 연속으로 깨지면서 광탈 모드 들어가는 거 보다가 열 받아 죽는 줄 알았네!
┗ 격공! 좀비만 만났다 하면 다저스는 맨날 깨짐. 이건 차지혁이 3명으로 늘어나서 연속 3연승 해놓고 시작해도 불안할 정도라 할 말이 없음!
┗ 진심 눈물 나더라. 포시에서 완봉승하면 뭐함? 팀이 개판인데!
┗ 5차전에서 필 맥카프리가 5회에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7차전에서 차지혁에게 희망을 걸어봤을 텐데.
┗ 5회에 더그레이 세인트에게 쓰리런 맞았을 때 진짜 욕이 절로 나오더라. 미친놈이 유인구 승부를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왜 갑자기 정면 승부를 해서는 홈런을 쳐 맞은 건지. 차지혁이었으면 삼진으로 그냥 잡았을 텐데!
- 탈출만이 정답 아닐까요? 차지혁 이번 시즌 성적 보면 다른 구단에서 이적 협상 무조건 들어올 것 같은데?
┗ 바이아웃 금액 1억 달러. 양키스에게는 껌값! 양키스로 이적 하자!
┗ 양키스는 절대 안감. 시즌 초반부터 뉴욕 쪽 언론 차지혁 신나게 까던거 잊었나? 차라리 보스턴을 가서 양키스 완전히 물 먹였으면 좋겠다.
┗ 아메리칸리그로 가면 차지혁 홈런 못 보는 게 아쉽지 않을까요?
┗ ㅋㅋㅋ타율이 1할 겨우 넘는 차지혁에게도 타자는 노답인 듯. 그냥 공만 던지는 게 최고일 듯.
┗ 아무리 투수라고 하지만 1할은 좀 심했지. 솔직히 차지혁 타석에 서면 그냥 아웃이구나 생각밖에 들지 않음.
┗ 샌디에이고로 이적! 예전에 차지혁한테 4억 달러 배팅했다고 하던데, 이번에 샌디에이고 구단주 열 받아서 돈 풀기 시작하면 메이저리그 최초로 5억 달러 찍고 이적할지도 모름. ㅋ
┗ 5억 달러. 존나 내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의 돈인지 가늠도 안 된다. 나도 야구나 할 걸.
┗ 너 같은 생각으로 야구 하는 놈들은 마이너리그에 많다. 돈 없어서 햄버거나 처먹다가 결국은 방출되서 노가다 하더라.
- 메이저리그에서 0점대 방어율이라니 진짜 차지혁은 인류 최강의 투수다!
- 시즌 막판에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25승, 탈삼진 400개 충분히 찍었을 텐데!
┗ 아무리 차지혁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좀 아니다. 6경기 남았었는데 5승? 거기에 탈삼진 400개? 아무리 빨아준다 해도 작작 좀 하자.
┗ 병신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평균 13개 탈삼진 기록했으니까 통계적으로 충분히 400K 기록하고도 3개가 남는다!
┗ 윗님 생각에 나도 동감! 차지혁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투수라서 어쩌면 신인 최다승 타이 기록 26승도 올렸을지 모릅니다.
┗ 이게 다 윌리 아다메스 그 망할 놈 때문입니다.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
┗ 윌리 아다메스 암살단 모집합니다!
- 차지혁 언제 귀국하나요? 인천 공항에 꽃다발 들고 가고 싶은데…….
┗ 차지혁 귀국하는 날 공항뿐만 아니라 인천 전체가 마비 된다. 그냥 집에서 TV로 박수나 쳐줘.
- 시즌도 끝났는데 차지혁 예능에 얼굴 좀 안 보여주려나?
┗ 차지혁은 TV에 나와서 웃고 떠드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보기 힘들 겁니다.
┗ 방송국에서 출연료 좀 대박으로 주면 또 모르지.
┗ 출연료?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차지혁 올 시즌 연봉 외에 부수입이 얼만지 못 봤냐? 다저스 유니폼 판매로만 차지혁한테 떨어지는 돈이 한화로 400억이 넘는다고 하더라. 메이저리그 초상권 재벌이라 불리는 선수들도 가뿐하게 즈려 밟아줬다. 여기에 광고랑 차지혁 유일한 스폰서이자 사외 주주인 울의 개인 투자금까지 더하면 연봉은 그냥 취미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밖에 되지 않는다고 함.
┗ 스포츠 재벌 사이에서도 넘사벽이겠네.
┗ 된장녀들 환장 하겠다.
┗ 세계 최고의 여신이 버티고 있어서 헛된 희망 고문일 뿐 ㅋㅋ
결국, 2027년의 야구가 끝났다.
가을 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끈질긴 야구에 LA 다저스는 3차전까지 2승 1패라는 좋은 상황 속에서도 4, 5, 6차전을 연속으로 패배하며 챔피언십시리즈를 마감하고 말았다.
이 정도면 정말 저주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매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사전 조사에서 LA 다저스는 항상 우승후보 중 한 팀으로 손에 꼽혀왔다. 그러나 LA 다저스는 1988년 이후 단 한 번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준우승 한 번이 전부일 정도로 가을 야구에서만큼은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올해는 다를 거라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3차전에서 내가 완봉승을 거둘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LA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와일드카드를 손에 넣고 꾸역꾸역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월드 시리즈마저 재패하며 다시 한 번 가을 야구의 왕임을 증명했고, LA 다저스는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지고, 상대팀을 압도해도 단기전 시리즈 승부에서는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중학교 시절부터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쳐본 적이 없기에 LA 다저스에서의 경험은 내게 새로운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차라리 타자였다면 매 경기 출장해서 조금이라도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었을 텐데.
투수라는 보직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우승을 지켜보며 우승 반지를 원한다면 절대 LA 다저스와는 계약을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기력하게 3연패를 당한 동료 선수들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했다.
신인상, 사이영상, 시즌 MVP를 수상하고도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면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시즌을 마감하는 선수단 파티에서는 즐거웠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변하기도 했다.
“병신들, 니들이 점수를 내지 못해서 결국은 카디널스에게 진 것 아냐!”
술이 잔뜩 취한 필 맥카프리의 외침이었다.
“그러는 너는? 더그레이 세인트에게 쓰리런을 맞은 게 결정적이었잖아!”
누군가의 반박에 필 맥카프리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잔을 내던지며 분위기는 더욱더 험악해졌고, 기분 좋게 끝내야 할 파티는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뭐?”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형수가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해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졌다고 생각하나 싶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어딨겠어? 다 똑같지.”
대답을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4차전과 6차전에서 1점, 2점 차이로 패배했던 걸 생각하면 타자들의 빈약했던 공격력이 무능력하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까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여겼다.
어쨌든 형수는 투수가 아닌 타자였으니까.
그러나 내 대답이 부족했는지, 형수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었던 건지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 전, 내 기분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한 통의 문자가 왔다.
2027년 시즌 너무 수고 많았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할 수 있었던 시즌이었어요.
신인상, 사이영상, MVP 모두 진심으로 축하하고, 척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곁에서 함께 축하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다음에는 반드시 척의 곁에서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며 축하를 해줄게요.
사랑해요.
안젤라 쉴즈의 문자였다.
찝찝하고 개운하지 못했던 기분이 한 순간 씻은 듯이 맑아졌다.
문자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그녀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다.
몇십분 동안이나 답장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은 짤막하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무척이나 안젤라가 보고 싶네요.
@
“가는 거야?”
내 물음에 양쪽 어깨에 큼지막한 가방을 짊어진 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잖아. 확실하게 주전 포수가 되기 전까지는 남들처럼 쉬지 않겠다고.”
굳은 각오를 다진 형수였다.
1월 팀 훈련이 시작되기 전까지 형수는 부모님이 계신 한국이 아닌 야디어 몰리나가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카롤리나에 있는 야구 캠프에서 동계 훈련을 하기로 이미 모든 스케줄을 짜놓은 상태였다.
형수가 이렇게까지 훈련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2028년 시즌 시작과 동시에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쓰기 위함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토렌스의 타격 능력이 형수에 비해 떨어진다 하지만, 팀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포수로서의 무게 중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개막전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토렌스가 아닌 형수를 주전으로 기용할 확률은 결코 높지 않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형수 본인 스스로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쉴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대신 말 좀 잘 해줘.”
형수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고, 형수는 1월에 보자며 집을 나섰다.
휴식기.
야구 선수에게 황금과도 같은 휴식기가 찾아왔지만, 형수는 그걸 반납했다.
나는 내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기로 예약을 해놓은 상태다.
우선 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고, 1년 동안 떠나있었던 집이 그립기도 했다.
당분간은 집에서 푹 쉬면서 개인 훈련만 할 생각이었다.
세계적인 기업과 한국 언론 등에서 무척이나 날 귀찮게 하려고 작정하고 있었지만, 그 문제는 황병익 대표가 모두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놓은 상태였기에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귀국일도 속여가며 몰래 귀국하기로 했으니 떠들썩한 한국 언론이 얼마나 이 문제를 걸고 넘어갈지 벌써부터 예상이 갔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언론사와의 접촉은 최대한으로 자제하기로 했고, 웬만한 일에는 무대응으로 나갈 생각이었다.
부모님께도 말을 하지 않고 깜짝 귀국을 하기로 했기에 괜히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갑작스런 내 모습을 보고 부모님과 지아가 얼마나 놀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간소하게 짐을 꾸릴 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십니까?”
내 물음에 의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척, 나야.”
“트라웃?”
놀랍게도 집까지 찾아온 사람은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 『해외편 - 163』 > 끝
ⓒ 독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