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60화 (160/221)

< 『해외편 - 160』 >

『해외편 - 160』

《차지혁 3회 강판! 메이저리그 데뷔 한 경기 최소 이닝 기록!》

『9월 3일 금요일에 있었던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차지혁이 3회 만에 불펜투수 노릭 스턴드와 교체를 당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한 경기 최소 이닝으로 종전까지 6이닝이었던 기록을 갈아치웠다.

루키 시즌 20승을 달성하고, 무패 기록과 탈삼진, 평균자책점, 200이닝 이상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데뷔와 동시에 LA 다저스의 에이스로 거듭난 차지혁이었기에 올 시즌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최하위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시즌 21승을 손쉽게 챙길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이날 차지혁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1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타선을 상대로 삼진 2개와 땅볼 하나를 만들어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선보이며 모든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특히 1회부터 타선의 지원까지 얻으며 3점 차 리드 속에서 편안하게 투구를 가져갈 수 있었던 차지혁이었지만, 2회 말 선두 타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4번 타자 윌리 아다메스의 타구가 오른쪽 발등에 직격하면서 이날의 불운이 시작되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온 타구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발등을 내주고 만 차지혁은 재빨리 튀어 오르는 공을 잡아서 1루로 송구를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차지혁의 부상이 심할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차지혁 선수 본인 스스로도 괜찮다며 투구를 이어나가길 주장했고, 결국 게레로 감독은 그의 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등에 직격한 타구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어진 5번 타자 호마 레예스에게 던진 초구 포심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나더니 두 번째 공이 타자의 몸 쪽으로 깊이 들어와 유니폼을 살짝 스치며 시즌 첫 번째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고 말았다. 흔들리는가 싶었던 차지혁이었지만, 6번 타자 호스틴 헤지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게레로 감독의 마음을 안심시켜놓은 그 순간. 7번 타자 에디 앤더슨에게 던진 초구 커브볼이 높은 코스로 밋밋하게 들어가며 시즌 첫 번째 피홈런이 되고 말았다.

올 시즌 3개의 홈런 밖에 터트리지 못한 에디 앤더슨이었기에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이후 타자를 상대로 내야 뜬공으로 2회를 마무리 했지만, 3회 말 다시 마운드에 올라온 차지혁은 3명의 타자를 상대로 안타 하나와 연속으로 볼넷으로 내주며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었고, 게레로 감독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결국 투수 교체를 지시했다.

교체된 노릭 스턴드는 몸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채, 무사 만루라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풀 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도미닉 스미스에게 대형 만루 홈런을 맞았고, 이로서 차지혁은 책임 주자였던 3명이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순식간에 5실점 경기가 되고 말았다.

이날 경기는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며 LA 다저스가 간신히 8:7로 승리했지만…….』

2이닝 5실점.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결과였다.

교체 투수인 노릭 스턴드가 홈런을 맞으면서 3실점이 추가됐다고 하지만 어찌되었든 3명의 주자를 베이스에 보낸 건 내가 한 일이니 노릭 스턴드를 탓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욕심이었다.

분명 2이닝 5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건 내 욕심이 부른 화였다.

‘게레로 감독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윌리 아다메스의 타구가 오른쪽 발등을 강타했을 때, 게레로 감독의 뜻대로 교체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생각보다 통증이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교체를 거부했던 내 결정이 문제가 된 거다.

좌투수인 내게 오른쪽 발은 디딤발이다.

체중을 지탱하고, 모든 힘을 손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기둥 역할을 해주는 발이 오른 발이다. 그런 오른 발이 흔들렸으니 제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억지로 제구를 잡으려고 하다가 실투가 나왔고 그것이 홈런으로 이어졌다. 홈런을 맞고 난 이후엔 더 이상 실투가 나와선 안 된다고 생각하니 다시 제구가 흔들렸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 이뤄진 셈이다.

시즌 20승을 거두고 나니 그 이상의 승리에 욕심이 생겼던 걸까?

400탈삼진이 탐났던 걸까?

시즌 막바지라는 점도 분명 내 생각을 굳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시즌 초반이었다면 남아 있는 경기들을 생각해서라도 몸을 사렸을 텐데, 이제 남아 있는 경기가 몇 경기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던 건지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걸 망쳐버렸지만.’

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강판을 당하고 곧장 병원으로 가니 발등 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이 나왔다.

스윽스윽스윽.

“뭐해?”

내 물음에 형수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됐다.”

형수는 사인펜의 뚜껑을 닫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렇게 해야 뼈가 빨리 붇는다고 하더라. 흐흐흐.”

붓기가 빠져야 한다며 일주일 동안이나 반깁스를 하고 오늘 오전에 통깁스를 하고 오니 형수가 지저분할 정도로 깁스 표면에 낙서를 해놨다.

강철 다리로 재생해라, 데뷔 시즌 수고했다, 포스트시즌에 꼭 마운드에 올라와라 등등 형수는 온갖 말들을 한글로 적어놨다.

“유치하기는.”

내 말에 형수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는 예술가처럼 흐뭇해했다.

2027년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은 끝이 났다.

시즌 종료가 되는 10월 3일까지는 마운드에 올라가기가 어려웠다.

빠르다 하더라도 10월 중순은 되어야 하는데…….

‘디비전 시리즈도 어렵고 무조건 챔피언 시리즈에는 진출을 해야 할 텐데.’

10월 3일 시즌이 종료되면 곧바로 10월 5일과 6일에는 각각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와일드카드 게임이 벌어진다.

와일드카드 게임이 끝나면 아메리칸리그는 7일부터 13일까지 디비전 시리즈가 치러지고, 내셔널리그는 8일부터 14일까지 디비전 시리즈가 끝난다.

챔피언 시리즈는 아메리칸리그가 역시 하루 빠르게 17일부터 25일까지, 내셔널리그는 18일부터 26일까지의 일정이 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대망의 월드시리즈가 10월 30일 내셔널리그 홈팀에서 펼쳐진다.

통깁스를 풀고 재활과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몸을 만들려면 최소한 디비전 시리즈까지는 꼼짝없이 지켜만 봐야 한다. 그나마도 챔피언 시리즈 1차전 선발은 가능성이 희박했고, 3차전이나 4차전 정도에나 나올 수 있었다.

현재 LA 다저스는 같은 지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여전히 1위 다툼 중이었다.

‘27일부터 시작되는 샌프란시스코 원정 경기가 최종 1위를 결정지을 것 같은데.’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전문가들과 팬들조차도 지구 1위를 섣부르게 판단내리지 못했다.

현재 1게임 차이로 LA 다저스가 1위를 지키고 있었지만, 남은 일정들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홈 경기는 콜로라도(3차전), 피츠버그(3차전), 애리조나(4차전)가 남아 있었고, 원정 경기로는 애리조나(3차전), 콜로라도(3차전)이 남아 있었는데 현재 중부지구 1위까지 올라선 피츠버그의 무서운 상승세와 서부 지구 3위를 확정지은 애리조나, 콜로라도 원정은 절대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최대 승부처라 할 수 있는 27일 샌프란시스코 원정 4차전 경기는 LA 다저스에게 있어 가장 힘든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컸다.

내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4경기 출장이 가능했고, 그 중 샌프란시스코 원정 경기에서도 선발 등판이 가능했으니 분명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뭘 그렇게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형수의 말에 상념에게 깨어나며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야.”

“왜?”

“챔피언시리즈에 공을 던질 수 있게 해줘.”

“뭐?”

내 말에 형수가 가만히 날 바라보다 이내 조금씩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넌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 주구장창 벤치만 달구고 있는 백업 포수인 나한테 할 말이냐고! 너 나 놀리는 거지? 엉!”

형수가 잔뜩 골이 난 얼굴로 곰처럼 날 덮치며 헤드락을 걸었다.

“망할 자식! 오냐! 날 선발 라인업에 넣어주면 홈런이라도 뻥뻥 갈겨서 팀 승리에 최선을 다해보마! 당장 날 내일 선발에 넣어!”

악다구니를 쓰는 형수로 인해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놀랍게도 다음날 애리조나 원정 경기에서 형수가 오랜만에 선발 출전을 했다.

주전 포수인 토렌스가 훈련 도중 엄지손가락을 다치면서 포수 마스크를 쓸 수 없게 된 거다.

“흐흐흐흐! 야구의 신이 날 버리지 않았어! 남은 일정 하얗게 불태워주마!”

그날 경기에서 형수는 벤치의 설움을 폭발시키며 3타수 3안타를 터트리며 팀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렇게 하루, 하루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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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막판 뒤집기에 성공! 올 시즌 돌풍의 주역, 피츠버그 파이리츠 제압하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에 성공!》

가을 야구로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올 시즌 디비전 시리즈의 최대 이슈는 역시 지구 최대의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특히,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뉴욕 양키스의 길목을 다시 한 번 막아섰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5차전까지 접전을 벌이며 뉴욕 양키스를 진땀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을 좀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올해도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서 챔피언십까지 꾸역꾸역 올라오며 가을 야구 끝판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리그 최종 우승팀과 양대리그 통합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뿐이었다.

1년 내내 야구에 푹 빠져서 살던 팬들로서는 양대리그 통합 최대 21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어때? 발은 괜찮아?”

“내일이라도 당장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

다저스가 지구 우승을 하면서부터 나는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피츠버그 파이리츠에게 연패를 당했을 때에도 다저스가 반드시 챔피언 시리즈에 올라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내 믿음대로 다저스는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이제는 내 차례다.

게레로 감독도 내게 빠르면 2차전, 늦어도 3차전에는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컨디션을 점검해 놓으라고 주문을 했다.

시즌 종료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낼 기회다.

‘이왕이면 월드 시리즈까지 가야지.’

월드 시리즈.

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을 꿔보는 꿈의 무대다.

IBAF 챔피언스 리그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전통성과 자긍심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나 내일도 선발이다. 흐흐흐!”

형수가 자랑처럼 내게 말했다.

“그래, 멋지게 또 한 번 보여줘.”

“당연하지! 가을 사나이! 장형수! LA 다저스의 구원자! 나만 믿어라! 내가 월드 시리즈로 가는 티켓 끊어줄 테니까! 크흐흐흐흐!”

과장되게 스스로를 포장하며 자신감을 터트리는 형수였지만, 녀석이 밉다거나 자만 떤다고 핀잔을 줄 수는 없었다.

9월 한 달 누구보다 LA 다저스에서 큰 활약을 한 선수가 형수였다.

내셔널리그 9월 이달의 선수상 후보에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형수는 9월 성적이 뛰어났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디비전 시리즈였다.

디비전 시리즈 성적 23타수 8안타 1홈런.

타율 0.348으로 팀내 최고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마지막 5차전에서 역전 3점 홈런을 터트리며 팀을 챔피언 시리즈로 올려놓았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줌으로써 형수의 가치는 무척이나 상승한 상태였다.

어쩌면 정말로 내년 시즌에는 토렌스의 자리를 위협할지도 몰랐다.

“잘 봐둬. 이 형님이 내일 좀비를 어떻게 때려잡는지!”

자신만만한 말처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1차전에서 형수는 2안타를 터트리며 진정한 가을 사나이라는 걸 증명했다.

무엇보다 내가 빠진 공백을 훌륭하게 지킨 건 원조 에이스 필 맥카프리였다.

LA 다저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될지도 모른다는 필 맥카프리는 월드 시리즈를 향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1차전을 승리하고 은근히 2차전 선발을 기대했던 나를 게레로 감독은 3차전 선발로 확정지었다.

홈에서 2연승을 이어가면 원정에서 나를 선발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기를 확실하게 꺾어 버리겠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가을 좀비답게 2차전을 승리하며 1승 1패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부시스타디움(Busch Stadium)으로 우리를 끌어들였다.

< 『해외편 - 160』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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