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59』 >
『해외편 - 159』
“오랜만에 뵙습니다.”
차동호 기자는 여전했다.
트레이드 마크라고 여겨도 상관이 없을 금테 안경과 체형에 비해서 커 보이는 서류 가방을 여전히 어깨에 걸치고 나타났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는 차동호 기자였지만, 어차피 내가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괜찮다고 했던 것과 다르게 차동호 기자는 무척이나 맛있게 밥을 먹었다. 무려 두 그릇이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자 주혜영이 차를 내왔고, 차동호 기자는 곧바로 인사를 했다.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 덕분에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과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차동호 기자는 가만히 주혜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녀가 남기고 간 차를 가볍게 들이켰다.
무슨 차냐, 향이 참 좋다는 말을 하고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내셔널리그 8월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하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투수의 모든 상은 결코 투수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상이기에 가장 우선적으로 제가 승리 투수가 될 수 있고,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해준 다저스의 모든 선수들과 함께 나눠야 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9월 한 달이 남아 있는 시점에서 벌써 20승을 올리셨습니다. 루키 시즌 20승의 기록은 43년 만의 대기록입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앞서 했던 질문의 답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해서 개인적인 소감을 밝히라면 무척이나 기쁩니다. 현재 5선발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프로 무대에서 20승은 무척이나 기록적인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선발 투수가 시즌 전체를 부상 없이 소화할 경우 메이저리그의 경우 32게임을 등판할 수 있습니다. 32게임 중 20승이라고 본다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 32번이나 선발로 등판하는 투수는 무척이나 보기 드물고,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저 역시 올 시즌 목표가 20승이었습니다. 시즌 일정이 한 달이나 남아 있는 상황에서 20승의 고지에 올라섰다는 건 사적으로도 무척이나 기쁘고, 행복하며, 뿌듯한 데뷔 시즌으로 평생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동호 기자는 녹음기를 켜놓은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들 중 포인트가 될만한 단어들만 간략하게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었다.
“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을 시작으로 6경기 정도가 남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만약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쌓게 된다면 1912년 래리 체니가 기록했던 데뷔 시즌 26승과 타이기록을 세울 수가 있게 됩니다. 등판 경기 수 자체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타이 기록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차지혁 선수의 기록이 더욱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될 텐데,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으십니까?”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즌 목표였던 20승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만족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경기를 확률적으로 계산했을 때, 남은 6경기 중 4경기는 무난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여기에 한 경기만 더 더한다면 25승 투수로 루키 시즌을 마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구가 기록의 스포츠이고, 통계적으로 계산이 가능한 스포츠라고 불리지만 경기는 실제로 해봐야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고, 아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통계적인 계산으로 제가 24승에서 25승 투수가 될 수 있다면 그 역시 무척이나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경기는 해봐야 압니다.”
내 대답에 차동호 기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남은 6경기에서 차지혁 선수가 얼마나 승리를 더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실제로 더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투수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마지막으로 이닝입니다. 현재 기록으로 보자면… 휴우! 차지혁 선수는 25게임에 선발로 등판해서 무려 206이닝을 소화했고, 325개의 탈삼진을 잡았으며, 0.70이라는 꿈의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한 신인 투수라고 하기엔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기록인데, 차지혁 선수 본인은 스스로의 기록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물어 볼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팬들이 팬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언급을 할 정도의 ‘기적’과도 같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 역시도 내 기록에 대한 의심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차동호 기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솔직히 제 기록이기는 하지만 이게 현실인가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길게 대답할 것도 없었다.
차동호 기자도 굳이 긴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는 듯 웃으며 날 바라봤다.
“차지혁 선수 본인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는 말씀이시군요. 하하하. 하지만, 어쨌든 기록은 기록이고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으니 이 기록에 대해서 더욱더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현실적으로 올 시즌 차지혁 선수가 새롭게 기록에 등재할 수 있는 것들은 탈삼진과 평균자책점입니다. 탈삼진 기록의 경우 1973년 놀란 라이언의 383개를 현대 야구에서 최고의 기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차지혁 선수가 325개를 기록하고 있으며, 경기당 13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으니 남아 있는 경기에서도 이와 같은 수치를 유지할 경우 무려 403개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달성할 수 있게 됩니다.”
400개의 탈삼진.
1800년 대에는 500개가 넘는 탈삼진을 기록한 투수도 있었지만, 그때의 기록을 지금과 비교하기엔 어려우니 실질적으로 놀란 라이언의 383개가 최고라 부를 만 했다.
이 기록조차 무려 1973년도의 기록이다.
무려 54년 만에 새로운 기록이 달성되는 거다.
“탈삼진도 대단한 기록이지만, 무엇보다 더 놀라운 기록은 다름 아닌 평균자책점입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은 1968년 밥 깁슨의 1.12를 최저 기록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0.16을 기록했던 랠프 웍스와 더치 레너드의 0.96의 기록은 1910년대 이전의 기록이라서 정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니 실질적으로 현재 차지혁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탈삼진과 평균자책점은 투수에게 있어 굉장히 자부심 넘치는 기록인데, 이 두 가지의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으십니까?”
“현재로서는 제가 새로운 기록을 쓸 수 있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차동호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투수에게 있어 탈삼진과 평균자책점은 마음대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수치 상으로 봤을 때, 당장 남은 여섯 경기에서 7이닝을 모두 소화하고 2실점씩만 한다 하더라도 당장 평균자책점이 1점대로 치솟아 버립니다. 선발 투수가 7이닝 2실점이면 충분히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평가를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지만, 당장 다음 경기에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탈삼진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은 분명 있습니다.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자분들과의 인터뷰에서 말을 하듯이 전 매 경기마다 팀을 위해서, 승리를 위해 공을 던지지 결코 개인의 성적과 기록에 연연해서 공을 던지진 않습니다. 모든 분들이 기대하시고 계신 기록들은 지금처럼 제가 욕심 부리지 않고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진다면 어느 정도 보상이 뒤따를 수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건 솔직한 내 진심이다.
그리고 차동호 기자는 이런 내 진심을 조금의 의심이나,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번 질문은 좀 민감하고 거북할 수 있습니다만, 미리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일각에서는 현재 차지혁 선수의 기록이 너무 뛰어나서 데뷔 시즌의 기록이 선수 생활 전체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할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커리어 하이(career high).
개인통산 최고의 성적을 달성한 한 시즌의 기록을 부르는 말.
보통은 특정 선수의 최고 전성기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종종 주변에서 들려오는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는 말이 내게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이제 갓 데뷔를 한 선수에게 커리어 하이라니.
돌려서 말하면 데뷔와 동시에 전성기를 찍고 이제 내리막길을 간다는 소리였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가 없다.
질문을 하는 차동호 기자 역시 미안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이미 수많은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나오고 있는 내용들이라 한 번쯤은 내 입장을 밝힐 필요는 있었다.
“저도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남은 여섯 경기 전까지의 기록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명 위대한 투수라 불리는 선수들의 커리어 하이에 충분히 비교가 되니 그런 소리가 나온다는 걸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한 신인 투수입니다. 올 시즌의 기록이 저 스스로도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이긴 하지만, 단언하건데 전 아직까지도 부족한 부분이 무척이나 많은 신인 투수일 뿐입니다. 기록상으로만 놓고 본다면 저 역시 어쩌면 올 시즌의 기록을 뛰어넘을 더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다고는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못 미친다고 해서 그것이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든 선수는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전 아직 배워야 할 부분도 많고, 이루고 싶은 목표들도 많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더욱더 확실하게 적응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숙의 단계에 들어서면 분명 올 시즌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자신있게 대답했다.
나는 아직 전성기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선수라는 걸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 내 대답에 차동호 기자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 역시 차지혁 선수의 말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차지혁 선수의 말에 무척이나 흥분이 됩니다. 과연 차지혁 선수의 전성기 시절에는 어떤 공을 던질 것인지, 어떤 성적을 낼 것인지 벌써부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이후로도 인터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차동호 기자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참 깔끔하고 매너가 있었다.
다른 기자들처럼 개인적인 신상을 털어보겠다고 교묘하게 질문을 해오거나, 갑작스럽게 날 당황시켜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은 절대 없었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 LA 다저스의 포스트시즌에 대한 가능성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데뷔 시즌부터 포스트시즌을 경험한다는 건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현재 다저스의 선수들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당연히 포스트시즌에 진출을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팀의 포스트시즌 더 나아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공을 던질 뿐입니다.”
“저 역시 차지혁 선수가 포스트시즌과 월드시리즈 무대에서도 멋지게 투구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짐을 챙겨서 구단으로 향했다.
2일부터 시작되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을 시작으로 시즌 종료까지 남은 게임은 고작 30게임.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의 순위는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치열한 1위 다툼으로 사실상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현재 1위는 LA 다저스였고, 0.5게임 차이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바짝 추격을 하고 있었으니 하루 아침에 순위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었다.
설령 2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승리를 쌓아 승률을 올려야만 와일드카드라도 확보할 수 있으니 이미 포스트시즌과 거리가 멀어진 구단들과 다르게 LA 다저스의 남은 일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봐야 했다.
2일 바닥을 박박 기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손쉽게 승리를 챙기고 3일, 시즌 21승을 향해 내가 등판했다.
그리고…….
-오 마이 갓! 다저스의 선발 투수 척! 시즌 첫 강판입니다!
< 『해외편 - 15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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