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58화 (158/221)

< 『해외편 - 158』 >

『해외편 - 158』

《NL올스타 8:4로 AL올스타에 승리!》

《존 킹슬리(COL) 올스타전 MVP!》

《NL선발 투수 지혁 차(LAD) 104mph의 강속구로 2이닝 무실점 호투!》

《전반기 홈런왕 마이크 테일러(TOR) 2연타석 홈런! 팀 패배로 MVP 수상에는 실패!》

《2027년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신인 대결에서 승리한 지혁 차(LAD)!》

올스타전이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즌 후반기가 시작됐다.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7월의 트레이드는 모두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굵직한 트레이드는 없었고, 이슈가 되었던 대형 트레이드들은 모두 협상 마지막에 뒤집혀버리면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모두가 트레이드 될 거라고 예상했던 미치 네이 역시 팀에 잔류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의하면 미치 네이가 트레이드지 되지 못한 이유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너무 과도한 연봉 보조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확한 금액까지는 알 수 없지만, 통상적인 액수를 크게 벗어나는 범위라고만 귀뜸을 해주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요구를 돌려서 말하면 미치 네이의 가치를 굉장히 낮게 책정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팀에 남을 수 있게 된 미치 네이였지만, 이미 게레로 감독과의 불편한 관계가 5월 달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만 놓고 본다면 후반기 전망이 그리 밝다고는 할 수 없었다.

후반기 첫 경기는 27일 화요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LA 홈경기부터 열렸다.

그리고 3일 뒤, 30일 금요일에 지역 라이벌인 LA 에인절스와의 시즌 첫 번째 시리즈 경기의 2차전에 내가 선발로 등판했다.

1차전에서 1점차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둔 LA 다저스는 나를 선발로 내세우며 무난하게 위닝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구단의 바람대로 결과는 1:4의 LA 다저스의 승리.

8이닝 1실점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며 나는 시즌 16승을 거뒀다.

시즌 후반기 첫 경기부터 승리해서 좋기도 했지만, 정말 내가 기뻤던 건, 보고 싶었던 부모님과 지아가 LA에 도착했다는 사실이다.

기쁜 마음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가족의 방문을 알고 있었던 주혜영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예전에 전화 통화로 부모님에게 주혜영에 대해서 말을 했었지만,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라 사이가 서먹서먹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내 우려는 괜한 생각이었다.

“지혁이랑 형수에게 그렇게 맛있는 밥을 차려준다면서요? 정말 고마워요.”

어머니는 주혜영이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과분한 감사 표현에 주혜영도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어느새 주혜영과 어머니는 친근한 사이라도 된 것처럼 편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 친구는?”

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오는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지아가 툭 던지듯 물었다.

“영화 촬영 중이야.”

“지에이치 3편 말하는 거지?”

“응.”

“어때?”

“뭐가?”

“여자 친구 생기니까 좋아? 집안은? 나이는 동갑이라고 했던가? 남자는 몇 놈이나 만나봤대? 얼굴만 봐서는 남자들이 가만히 뒀을 것 같지 않던데? 더군다나 자유분방한 미국이잖아? 그런 과거까지도 다 이해하고 받아준 거야? 진도는 어디까지 갔어? 아프리카에서도 그렇고 LA에서도 여기서 일주일이나 있었다면서? 하여간,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더니…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한 집에서 살림을 차리고 살아? 이건 뭐 야구를 하러 온 건지, 연애를 하러 온 건지!”

쉬질 않고 쏟아지는 지아의 말에 내가 헛웃음을 지으니 아버지 역시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엄마랑 아빠도 그렇고 나도 한 번 보고 싶으니까 8월 달 중에 시간 한 번 내서 오라고 해봐. 혹시 알아? 미래의 시누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안 그래?”

“그만 까불어라.”

가볍게 머리에 꿀밤을 먹여주자 지아가 오랜만에 만난 하나 밖에 없는 동생 때린다며 아버지에게 찰싹 달라붙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이것 봐! 내가 말했잖아! 이제 오빠는 우리 가족보다 자기 여자 친구가 우선이라니까! 남자는 다 똑같아! 아들 놈들은 다 똑같아! 여자한테 홀리면 가족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니까! 이제 아빠랑 엄마도 뒷방 늙은이 신세야! 으이구~ 불쌍한 우리 아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아의 행동에 내가 어이없어 하자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오셔서는 지아의 등짝을 시원스럽게 후려쳤다.

짝!

“꺅! 엄마!”

“엄마가 쓸 때 없는 장난 하지 말라고 했지! 힘들게 혼자서 고생하는 오빠를 그렇게 놀려 먹으면 재밌어?”

엄마의 말에 그제야 난 지아의 말과 행동들이 모두 날 놀리기 위한 연극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이~ 엄마 때문에 다 망했네! 오빠 표정 진짜 웃겼는데!”

깔깔 거리며 웃는 지아의 모습에 내가 허탈하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지아까지 정말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니 기분이 좋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예, 너무 잘 먹고 훈련도 아주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혜영 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손이 야무진지. 월급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줘. 객지에서 혼자 운동할 때는 먹는 게 제일이야. 사람은 어디서든 든든하게 먹어야 아프지 않고 건강한 거야. 아무리 엄마가 이것저것 해줘서 보낸다 하더라도 방금 한 음식보다 못하니까. 그냥 해주는 데로 감사합니다 하고 맛있게 먹어. 사람도 보니까 싹싹한 게 좋더라. 되도록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편의도 좀 봐주고 그래.”

그 잠깐 사이에서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머니는 주혜영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틀린 소리도 아니었고, 나와 형수 역시도 주혜영이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잘 알기에 어머니의 당부에 잘 알겠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17일에 한국으로 가신다고요?”

“15일 오클랜드 원정 경기까지만 지켜보고 한국으로 가야지.”

대략 보름이 조금 넘는 일정.

마음만 같아서는 더 오래 머물면 좋겠지만, 지아의 방학이 끝나기 전에는 돌아가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원정 경기까지 따라다니시려면 피곤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내 물음에 아버지는 걱정할 것 하나 없다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황병익 대표가 통역부터 시작해서 미국에서의 일정을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끔 사람을 붙여준다고 했다.

오늘 저녁 에인절스와의 3차전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필라델피아로 원정 경기를 떠나야 하는데 부모님은 3일까지 LA에서 머물다가 4일 피츠버그 원정에 경기장으로 곧장 오시기로 이미 스케줄을 짜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정말 언니는 시간이 안 되는 거야?”

지아의 물음에 내가 장난하지 말라며 한 마디를 하려다 부모님까지도 모두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 같아 안젤라가 어떤 상황인지를 납득시켜야만 했다.

“어쩔 수 없지만, 아쉽네. 맨날 TV랑 인터넷 사진으로만 봐서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정말 TV에 나오는 것처럼 예뻐?”

“실물이 훨씬 낫지.”

내 대답에 지아의 표정이 보란 듯이 일그러졌다.

“어쭈? 팔불출이 다 됐네?”

지아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역시 남자는 여자를 만나야 변한다고 하더니… 야구 기계가 이제는 좀 사람처럼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아야!”

“넌 오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참! 엄마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오빠가 변한 게 느껴지지 않아? 난 공항에서 보는 순간 딱! 알겠던데! 엄마, 설마 질투하는 거야? 엄마들은 아들이 여자 친구 사귀면 엄청 상실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런 거야? 응?”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야 말로 오빠가 여자 친구 생겼다고 하니까 며칠 동안이나 시무룩해서 밥도 잘 안 먹고 그랬잖아? 오빠한테 예쁜 여자 친구가 생기니까 질투하니?”

“흥! 질투는 무슨! 난 애초부터 저런 야구 로봇한테는 관심조차 없었거든요!”

지아의 말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얼굴까지 빨갛게 변하는 지아를 보면 분명 어머니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즐겁게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짐을 챙겨서 야구장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선수단 전용기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날아가야 했기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4일 피츠버그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곤 집을 나왔다.

지역 라이벌답게 LA 에이절스는 3차전까지 패배를 하는 수모를 당하진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곧바로 전용기를 타고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3연전을 마치고 4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원정 3차전을 위해 구단 전용기가 펜실베이니아주로 향했다.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에 속해 있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해적선이라고도 부르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현재 중부 지구에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올 시즌 무섭도록 승수를 쌓았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6월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압도적으로 1위 자리를 지켰지만, 6월 한 달 내내 완전히 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순위가 3위까지 미끄러진 상태였다.

반대로 5월까지 중부 지구 최하위였던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6월 한 달 동안 무섭도록 승수를 챙기며 현재는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갔기에 언론에서는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의 6월을 하늘과 땅이 뒤바뀐 달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6승 2패.

시즌 후반기가 시작되고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여전히 무서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토니 브렉맨.’

경기장 한 쪽에서 배트를 휘두르며 몸을 달구고 있는 타자.

193cm 가량의 키에 적당히 근육이 붙은 몸집의 금발 백인 선수가 바로 6월 내셔널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한 토니 브렉맨이다.

차기 해적선장이라 불리는 토니 브렉맨은 본래 훌륭한 타자다.

외야 어느 포지션에 갖다 놓아도 수준급의 수비력을 갖췄다고 평가를 받고 있으며, 메이저리그 7년 통산 타율이 0.291로 타격에서도 실력이 뛰어났다. 여기에 해마다 평균 25개 이상의 홈런을 때릴 수 있는 파워와 20개 이상의 도루를 할 정도로 빠른 발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피츠버그 파이리츠 입장에서는 제 2의 앤드류 맥커친을 꿈꿔볼 수 있는 선수다.

그런 토니 브렉맨이 6월 한 달 동안 크레이지 모드를 발동시켰다.

타율 0.394, 출루율 0.549, 장타율 0.663이라는 무지막지한 성적을 기록하며 퍼펙트 게임을 포함 6월 동안 4승 무패를 기록한 나를 가차 없이 제치고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일각에서는 드디어 토니 브렉맨의 기량이 만개를 했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일부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반짝 활약일 것이라며 냉정하게 평가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6월 한 달 동안 폭발적인 활약을 한 토니 브렉맨이 후반기가 시작된 지금도 무서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경기의 분수령.

내가 오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토니 브렉맨의 상승세를 꺾어놔야만 한다.

“후우우.”

매 경기마다 쉬운 경기가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매 경기가 재밌는 메이저리그였다.

무엇보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부모님과 지아가 경기장까지 찾아와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반드시 승리 투수가 되어 부모님과 지아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

딱.

높이 떠오른 타구를 바라보며 살짝 삐뚤어진 모자를 바로 썼다.

굳이 볼 것도 없었다.

타구는 중견수인 던컨 카레라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1루로 뛰어가는 토니 브렉맨 역시도 베이스를 밟지 못하고 멈춰섰다.

3타수 1안타.

내게서 2루타를 뽑아내기는 했지만, 타점이나 득점으로는 연결되지 못했던 안타였다.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토니 브렉맨이 고개를 돌렸다.

토니 브렉맨과의 승부가 끝으로 나 역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8이닝 2실점.

2점이나 앞서고 있으니 9회 말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승리가 날아갈 일은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실점을 2점이나 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지켜보는 경기였기에 무실점으로 되도록 가장 멋있는 승리, 완봉승을 따내고 싶었지만, 폭주하는 해적선을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거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만약, 타선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히려 2실점으로 인해 패전 투수가 되었겠지.

아이싱을 하는 내내 입 안이 쓰게 느껴졌다.

“하필이면 가족들이 응원 온 날 2실점이라니…….”

내 중얼거림에 곁에 앉아 있던 형수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넌 시합에 출전이라도 했지. 난 뭐냐? 젠장! 부모님 오셨을 때, 멋지게 한 방 때려줬어야 했는데! 아~ 벌써부터 지아의 냉혹한 눈길이 두렵다!”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토렌스가 복귀했다.

토렌스의 복귀로 다시 백업 포수의 자리로 돌아간 형수로서는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못 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토렌스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지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구단 내에서의 관심도가 크게 상승한 형수였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주전 포수가 될 순 없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맥브라이드 단장도 그렇고, 게레로 감독도 다저스의 미래를 짊어질 핵심 선수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잖아. 혹시 알아? 내년 시즌부터는 네가 주전 포수가 될 수 있을지.”

내 말에 그제야 형수가 살짝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까?”

“가능성 있어. 그러니까 시즌 초반처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느긋하게 여유를 가져.”

“나도 알지. 그런데 내 얼굴을 봐라.”

시커멓게 탄 얼굴을 바짝 들이대는 형수였다.

“이 꼴이 될 정도로 땡볕 아래서 그렇게 특훈을 했는데 정작 시합에서는 훈련의 성과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으니 내 심정이 얼마나 답답하겠냐? 몰리나가 그러더라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실전에서 써먹지 못하면 절대 몸에 배지 않는다고. 이렇게 벤치나 달구다가 2주 동안 개고생해가며 익힌 훈련들이 다 날아갈까 걱정이다.”

형수의 푸념을 듣는 동안 경기가 끝났다.

기대대로 샌디 펠런이 2점차 리드를 굳건하게 지켜주며 세이브를 올렸다.

이걸로 17승 무패 0.7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여전히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흘렀다.

< 『해외편 - 158』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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