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56화 (156/221)

< 『해외편 - 156』 >

『해외편 - 156』

2027년 7월 25일, 제 98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펜웨이 파크에서 열렸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팬 투표와 선수단 투표, 감독 추천을 통해 뽑힌 양측 34명의 선수들 중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수는 양 팀 동일하게 10명.

야수들이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 번이라도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있지만, 투수의 경우에는 올스타에 뽑혔다 해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고 보장을 할 순 없다.

특히, 투수들의 경우 선발로 확정되지 않으면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는 확률이 무척이나 낮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투수 입장에서 올스타전 선발로 마운드에 서는 건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일이다.

“아메리칸리그 타자들에게 확실하게 내셔널리그 최정상 투수의 힘을 보여주길 바라겠네.”

내셔널리그 올스타 감독으로 선정된 콜 머먼트 감독(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시즌 전반기에 나를 상대로 커트 작전을 내놓으며 날 꽤나 괴롭혔던 콜 머먼트 감독이었지만, 오늘만큼은 한 팀이 되어 그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올스타전이 축제라고 불리지만, 승패에 대한 부담감은 분명 존재했다.

바로 올스타전에서 승리한 리그의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홈 어드밴티지를 얻기 때문이다.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1차전은 물론, 1경기를 홈에서 더 치를 수 있는 홈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올스타전 승리였기에 양대 리그 우승 후보라 불리는 구단은 올스타전에서의 승리를 무척이나 바랄 수밖에 없다.

‘콜 머먼트 감독이라면 더욱더 승리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겠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언제나 내셔널리그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으니, 가능만 하다면 콜 머먼트 감독은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수들에게 온갖 작전 야구를 지시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양대리그를 통틀어 전반기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준 내가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는 걸 가장 반겨했을 사람이 콜 머먼트 감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식순 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1회 초,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투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에이스 마르코스 몰리나였고, 그의 공을 받아주는 포수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안방을 책임지고 있는 제이퍼 하웰이었다.

사이영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마르코스 몰리나와 올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제이퍼 하웰은 무척이나 막강한 조합이라 부를만했다.

연습투구를 마치고 경기가 시작되자, 내셔널리그 올스타팀 1번 타자 데이몬 와일리(신시내티 레즈, 2루수)가 타석에 들어갔다.

신시내티 레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데이몬 와일리를 상대로 마르코스 몰리나는 90마일 중후반의 묵직하고도 빠른 패스트볼을 던져 3루수 땅볼을 이끌어냈다.

이어진 타석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간판타자 더그레이 세인트였다.

낮고 빠른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섞어가며 공을 던졌지만, 더그레이 세인트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날 생각이 없는지 마르코스 몰리나로 하여금 7구까지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이 난 8구.

딱!

약간 밋밋하게 들어온 체인지업을 더그레이 세인트는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밀어서 때려냈고, 타구는 그대로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총알처럼 뚫고 지나가버렸다.

안타를 맞은 마르코스 몰리나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1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건 지미 그랜(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루수)이었고, 그는 마르코스 몰리나가 던진 초구를 그대로 강타해선 타구를 기형적으로 긴 우측 펜스 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380피트, 대략 116미터에 이르는 기형적으로 긴 펜웨이 파크의 우측 펜스까지의 거리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았다.

아쉽게 펜스를 맞고 타구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왔고, 상대적으로 발이 빠른 데이몬 와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타구의 속도와 우익수 수비를 보고 있는 알렉스 잭슨(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훌륭한 펜스 플레이와 강한 어깨로 인해 3루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홈런이 되지 못한 지미 그랜의 타구에 내셔널리그 올스타를 응원하는 팬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펜웨이 파크를 집어 삼켰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힌 상황에서 두 명의 주자를 각각 2루와 3루에 놓고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을 하게 된 존 킹슬리(콜로라도 로키스, 3루수)였다.

내셔널리그 올스타 투표 중 가장 치열한 포지션이 바로 3루수 부문이다.

LA 다저스라는 공룡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이점으로 인해 코리 시거가 매년 득표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존 킹슬리, 길버트 라라(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테드 웨인 에버모어(시카고 컵스), 마크 바라스(뉴욕 메츠) 등 쟁쟁한 3루수가 내셔널리그에는 넘쳐났다.

타석에 선 존 킹슬리는 신중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8년 동안 3할 밑으로 타율이 떨어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마르코스 몰리나의 패스트볼을 그린 몬스터에 직격시키며 깔끔하게 2타점을 올리는 2루타를 터트렸다.

1회 초부터 2실점을 한 마르코스 몰리나의 표정은 같은 투수로서 차마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아무리 올스타전이라 하더라도 선발 투수가 이렇게까지 쉽게 무너졌다는 건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길만했다.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실점을 했다 하더라도 올스타전 선발 투수를 1회 만에 교체시키는 꼴사나운 모습은 선수 본인에게 너무나도 비참한 행위였으니까.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함인지 마르코스 몰리나는 5번 타자 코리 시거를 상대로 중견수 뜬 공을 유도해냈고, 6번 타자 클린트 프레지어에게는 3루수 땅볼을 만들어내며 더 이상의 실점 없이 1회를 끝낼 수 있었다.

1회부터 2점을 리드한 상황에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공격을 막기 위해 글러브를 들었다.

처음으로 올라서는 펜웨이 파크 마운드였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다만.

‘그린 몬스터가 진짜 위협적이기는 하네.’

펜웨이 파크의 명물, 그린 몬스터.

홈런을 쉽게 허용하지 않지만, 2루타를 무지막지하게 생산해내는 녹색 괴물.

투수들에게 있어 분명 걸리적거리는 부분인 건 확실했고, 나 역시 마운드에 서서 11m의 녹색 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웬만해선 좌측으로 타구를 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불펜에서 달궈놨던 어깨가 식지 않도록 곧바로 연습구를 던졌다.

오늘 내 공을 잡아 줄 포수는 워싱턴 내셔널스의 주전 포수이자,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한 테리 레드메인이었다.

올해 27살인 테리 레드메인은 25살 때부터 흔한 말로 포텐이 폭발하면서 워싱턴 내셔널스의 안방을 차지했다.

포수로서의 능력은 물론, 공격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평가를 받는 테리 레드메인은 현역 메이저리그 포수들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할 정도로 그 기량이 뛰어났다.

퍼어어엉!

미트질이 무척이나 깔끔했다.

토렌스의 신들린 미트질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그 외적인 부분 특히 블로킹이나, 도루 저지 능력은 오히려 토렌스보다 뛰어났기에 비교를 할 수 없는 공격적인 능력까지 합산하면 토렌스보다 훨씬 윗줄의 포수인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내가 던지는 공을 받으며 테리 레드메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을 표시했다.

투수는 포수에게, 포수는 투수에게 서로 만족하며 연습구를 끝내자 1회말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1번 타자, 아드리안 론돈이 타석에 들어섰다.

2014년 국제아마추어시장을 통해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을 한 아드리안 론돈에 대한 기대치는 대단했다. 기대만큼 엄청난 잠재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 실력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드리안 론돈의 미래가 한 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처럼 변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결점 수비력을 갖춘 크레이그 바렛의 등장.

탬파베이 레이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아드리안 론돈은 크레이그 바렛이라는 수비의 신 앞에 무참히 내쳐졌다.

크레이그 바렛에게 치이던 아드리안 론돈을 재빠르게 낚아 챈 곳이 뉴욕 양키스였다.

뉴욕 양키스는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 이후, 이렇다 할 주전 유격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탬파베이 레이스의 특급 유망주였던 아드리안 론돈은 무척이나 군침 도는 선수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3:3이라는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아드리안 론돈은 뉴욕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었고, 2027년 현재까지 5년 동안 유격수로서는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며 핵심 선수로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크레이그 바렛이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아메리칸리그에서 골든 글러브를 단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면, 아드리안 론돈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실버 슬러거를 놓친 적이 없었다.

평균 이상의 수비실력과 유격수로서는 최정상의 화력을 갖춘 아드리안 론돈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탬파베이 레이스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아드리안 론돈을 1번 타자로 기용할 줄이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재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선발 타순 모두 막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아드리안 론돈의 1번 타순은 적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테리 레드메인은 특별하게 사인을 보내지 않았다.

불펜 피칭을 하며 잠깐 호흡을 맞추는 사이에 모든 리드를 나에게 맡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같은 팀이지만, 올스타전이 끝나면 결국은 상대팀으로 만나야 하니 내 피칭 스타일을 파악해보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고, 올스타전이니 내 마음대로 공을 던져보라는 의도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온전히 내 생각대로 공을 던질 수 있었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초구는… 체인지업.’

굉장히 공격적인 성향인 아드리안 론돈이었기에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휘두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당연히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르는 타자들은 열에 아홉이 패스트볼을 노리고 들어온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상대 투수의 투구 스타일을 미리 생각해왔다면 나를 상대로는 당연히 패스트볼이 가장 확실한 노림수다.

테리 레드메인에게 체인지업 사인을 보내고 곧바로 와인드업을 하며 공을 던졌다.

쇄애애액!

부웅!

마운드에 서 있는 나에게 또렷하게 들려올 정도의 바람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나무 배트.

완만하게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공.

퍼엉!

가죽 미트에 박혀 들어가는 묵직한 소리.

균형까지 잃어가며 크게 헛스윙을 한 아드리안 론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두 번째 공을 던지기 전, 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2구는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컷 패스트볼.’

초구에 헛스윙을 했다고 아드리안 론돈이 침착하게 다음 공을 지켜볼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아드리안 론돈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럴 리가 없다.

체인지업을 확인했으니 패스트볼이다 싶으면 주저 없이 풀스윙을 해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던져 주면 그만이다.

따- 콰작…!

우타자인 아드리안 론돈의 배트 손목 부근에 공이 충돌했다.

배트가 공을 쳤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무 배트는 산산조각이 났고, 공은 어설프게 포수 뒤쪽으로 떠오른다 싶다가 떨어져 내렸다.

“잡…….”

내가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며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테리 레드메인이 포수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뒤로 몸을 날렸다.

영화 속에 나오는 슈퍼맨처럼 왼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허공으로 다이빙을 한 테리 레드메인의 포수 미트 속으로 공이 안정적으로 들어갔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테리 레드메인이 바닥에 추락했고, 그는 곧바로 왼손에 낀 미트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아웃!”

주심이 큰 소리로 외치며 오른 주먹을 힘껏 움직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펜웨이 파크를 뒤흔드는 거대한 함성이 울렸고, 그보다 먼저 내가 테리 레드메인을 향해 달려가서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냐는 내 물음에 테리 레드메인은 당연하다는 듯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설마 날 탓하지는 않겠지?”

“무슨 소리죠?”

“삼진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는데 설마 나 때문에 나만 멋진 모습을 보였다고 탓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농담을 건네는 테리 레드메인을 향해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마운드로 돌아가 로진백을 손에 묻히는 사이 타석을 향해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들어섰다.

“왔군.”

무척이나 기다렸던 상대, 마이크 테일러였다.

< 『해외편 - 156』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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