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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51화 (151/221)

< 『해외편 - 151』 >

『해외편 - 151』

7월 3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2027년 메이저리그 전반기가 마감됐다.

LA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2위를 마크했고, 1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는 고작 1게임 차이 밖에 나질 않았다.

언제든지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살얼음판 같은 순위 다툼이었다.

후반기는 7월 27일 화요일에 시작되고, 상대팀은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과의 LA 홈 경기다.

7월은 평화와 폭풍이 휘몰아치는 격정적인 한 달이다.

7월 4일부터 시작되는 IBAF 챔피언스 리그는 분명 후반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순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당장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만 하더라도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기나긴 휴식으로 체력을 재충전하는 LA 다저스의 상황은 결코 같다고 할 수 없었다.

챔피언스 리그가 끝나면 곧바로 25일에는 올스타전이 열린다.

그리고 단 하루 26일에만 메이저리그 공식 휴식일이 주어지고 27일부터 10월 3일까지 62게임의 시즌 후반기가 펼쳐진다.

전반기 100게임에 비교하면 분명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게임 수였지만, 3월부터 시작된 치열한 페넌트 레이스는 게임 수가 적다하더라도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선수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결코 전반기 못지 않았다.

그리고 단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언제 어떤 식으로 통보가 올지 모르는 이 살벌한 트레이드가 심적으로 엄청난 불안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말 같이 가지 않을래?”

짐을 한 가득 챙긴 형수가 마지막으로 날 바라봤다.

말투부터 표정과 눈빛까지 함께 가주었으면 하는 작은 간절함이 느껴졌지만 내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갈 이유가 없잖아.”

“집에서 혼자 훈련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집이 편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고.”

7월만 되면 푸에르토리코, 카롤리나로 떠나겠다고 말을 했던 형수는 3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가 끝나고 LA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짐을 쌌다.

2주 동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설적인 포수 야디어 몰리나가 운영하는 야구 캠프에서 특별 훈련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더니 며칠 전부터는 갑자기 나에게도 함께 가지 않겠냐고 은근히 권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수인 내게 포수 전문 훈련이 주를 이루는 야구 캠프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에 단칼에 거부를 해버렸다.

“나 간다.”

짐을 짊어지고 현관문을 나가는 형수를 배웅하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했다.

2주 동안의 온전한 혼자만의 자유.

가정부인 주혜영에게도 2주 동안 유급 휴가와 동시에 넉넉하게 휴가비도 줬다.

급여야 어차피 에이전시에서 주는 거였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휴가비만 형수와 함께 상의를 해서 챙겨줬다.

나와 형수가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주혜영의 도움도 컸다.

항상 신선한 재료로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준다는 것만으로도 타국 생활을 하는 나와 형수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2주 동안에는 이 집에 오직 나 혼자만 지내게 되었다.

그런 나를 위해서인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많은 휴가비 덕분인지 뉴욕 메츠 원정을 다녀오니 냉장고와 냉동실에는 나를 생각해서 만들어 놓은 반찬과 음식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2주 정도는 충분히 먹고도 남을 넉넉한 양이었다.

이제는 2주 동안 어떻게 지내느냐가 문제다.

특별하게 뭘 하겠다고 생각을 한 건 없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고, 그러자면 결국은 훈련 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이 기간 동안 틈틈이 시간이 나면 안젤라가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그녀도 무척이나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매번 LA로 오라고 하는 것도 이기적인 행동이라 한두 번 정도는 내가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조금만 더 쉬었다가 훈련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도중 전화가 왔다.

“예, 선배님.”

-어디야?

다짜고짜 어디냐고 묻는 사람은 유혁선 선배였다.

“집입니다.”

-그래? 특별하게 약속이 있는 건 아니지?

“예, 약속은 없습니다.”

-잘 됐네. 한 시간 내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예? 그게 무슨… 선배님? 선배님?”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유혁선 선배의 행동에 나로서는 의구심만 생겨났다.

두 번인가 집에 초대를 했었던 유혁선 선배였다.

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날 때면 항상 경기장에도 찾아오고 구단에도 찾아와 날 만나곤 했었다.

이런 저런 조언과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기에 유혁선 선배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찾아오는 거라 여기고는 유혁선 선배가 오기 전까지 몸이나 풀어놓자는 마음에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개인 훈련장에서 스트레칭을 시작으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자 유혁선 선배가 나타났다.

“독종이 따로 없다니까.”

친근해진 유혁선 선배는 오늘 같은 날에도 훈련이냐며 나를 향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운동 선수가 훈련을 하지 않으면 뭘 하냐며 가볍게 대꾸를 해주고는 갑작스런 방문 목적을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작스럽게 오셨어요?”

“너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왔지.”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요?”

누굴 소개하려고 하냐는 내 물음에 유혁선 선배는 곧 알게 될 거라며 히죽 웃기만 했다.

“밥은 먹었어? 좀 출출한데 라면 있으면 하나 끓여 먹자.”

유혁선 선배의 말에 나는 알겠다는 듯 하던 운동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였다.

“야~ 여기 김치 진짜 끝내주네? 어디서 산 거야? 어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주신 거야?”

“아뇨. 저희 집에서 일해주시는 가정부가 한 겁니다.”

“진짜? 김치 진짜 잘 하네. 나중에 김치 먹고 싶으면 여기와서 먹어야겠다.”

가까워지니 정말 친근하게 지내는 유혁선 선배였다.

원래 이미지도 그렇고, 성격도 워낙 활발하고 재밌었기에 싫다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라면에다가 김치를 맛있게 먹고 대충 치우고 나니 유혁선 선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왔어? 알았어! 내가 지금 나갈게! 오케이!”

유혁선 선배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곧바로 집을 나갔다.

누굴 데리고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모습을 보여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는 눈에 띄는 것들을 치우고 나니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여니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커쇼?”

큰 키에 잘생기진 않았지만 맑은 눈동자와 어울리는 선한 표정을 가진 남자, LA 다저스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한 때 지구 최강의 투수라 불렸던 클레이튼 커쇼가 큼지막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차에 대해서는 류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실례가 되는 것 아닌지 조심스럽군요.”

커쇼의 인사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갑작스러운 클레이튼 커쇼와의 만남.

LA 다저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하고 은퇴한 커쇼는 코치직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현재는 사회봉사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했다.

현역 시절부터 사회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도 2012년부터 프로젝트로 진행되어 시작된 커쇼의 챌린지(Kershaw’s Challenge)는 커쇼가 설립한 자선 단체로 초창기 미국과 아프리카의 아동들만 지원하던 사업이 현재는 전 세계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확대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소문에는 차 역시도 한국에 재단을 설립 중이라고 하던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더 차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저보다 한참이나 선배님이시니 편하게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들처럼 편안하게 척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커쇼는 내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전반기 척의 활약은 정말 인상적이더군. 솔직히 나는 척의 경기 기록을 보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더군. 마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판타스틱해서 말이야. 하하하.”

커쇼의 입에서 저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7번의 사이영상과 2번의 MVP를 탔던 커쇼의 수상 기록이나, 메이저리그 통상 성적과 기록도 일반적인 야구 선수들이 보기에는 믿기지 않는 판타지인 건 마찬가지일 거다.

“남은 후반기에도 전반기에 못지 않은 성적으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되길 바라겠어.”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인사치레가 끝나고 나자 유혁선 선배와 커쇼가 날 찾아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커쇼가 직접 유혁선 선배에게 연락을 해서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그 이유는.

“예? 커브요?”

놀란 나를 향해 커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맥브라이드 단장이 내게 몇 번이나 부탁을 해왔었지. 자네에게 커브를 가르칠 수 있겠냐고. 솔직하게 말해서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네에 대한 평가를 정확하게 내릴 수가 없어서 거절을 했던 거야. 그리고 변명 같겠지만 내가 하는 일이 12월부터 1월, 2월까지는 무척이나 바빠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부족하기도 했고.”

랜디 존슨뿐만 아니라 커쇼에게도 부탁을 했었던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LA 다저스 입장에서는 이적료까지 포함해서 3억 달러 가까이 지출을 감행하면서까지 한국에서 날 데리고 왔으니 어떻게든 돈값은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걸 지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전반기 내내 자네의 경기를 보면서 무척이나 흥분이 됐어. 이른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날 뛰어넘는 다저스의 새로운 전설이 될 것 같았거든.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괜히 욕심이 나더라고.”

“욕심이라면?”

“척, 자네는 분명 굉장한 실력을 갖고 있고, 재능 또한 부족하지 않아. 단점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지. 하지만, 자네가 던지는 구종들을 보면 모두 일관될 정도로 패스트볼 계열만 던지고 있다는 게 한 편으로는 무척이나 아쉽더라고.”

“그건…….”

내가 원했던 일이다.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두고 비슷한 패스트볼 계열의 변화구들만을 선택한 이유는 타자를 압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었다.

타자와의 복잡한 수 싸움을 하기 보다는 정면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공격적인 투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네의 투구 패턴이나 경기 운영 방식을 보면 무슨 생각인지는 충분히 알 만해.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 지금도 자네에 대한 분석이 쉬질 않고 이뤄지고 있을 거야. 자네 정도의 투수가 해부를 당한다고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경이적인 기록은 1년, 길어야 2년 내에 끝이 날거야. 이후로도 정상급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겠지만, 지금 자네의 모습을 기억하는 팬과 언론들은 많은 부분 아쉬움을 드러내겠지. 그건 자네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커쇼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기도 했지만, 어차피 오랜 시간 리그를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메이저리그라는 야구 천재들만 모인 리그에서 정상급 투수로 마운드 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자랑할 일이다.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게 모호했다.

매년 20승을 거두면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투수라 부를 만 하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투수라고 매년 사이영상을 차지하고, MVP를 수상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절대 그런 투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커쇼는 위대한 투수인 거다.

지구 최강의 투수라는 타이틀을 괜히 붙인 게 아니다.

“제가 선배님의 커브를 익히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내 물음에 커쇼가 빙긋 웃었다.

“최소한 다저스의 팬들이라면 자네를 나와 비교하는 일은 없을 것 같군.”

나는 물론이고 유혁선 선배마저 놀란 얼굴로 커쇼를 바라봤다.

커쇼 정도의 선수가 자신을 아래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배워볼 텐가?”

하늘이 내려준 커브라고 할 정도로 메이저리그 역대급 12to6커브를 구사했던 커쇼에게 직접 배운다는 건 엄청난 기회고, 다시 없을 행운이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배우겠다고 대답을 하려고 하는 순간, 커쇼가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쁜 사람이라서 어디 한 곳에서 진득하게 자네를 가르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그러니까 내게 커브를 배우려면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 움직여야만 해.”

“예? 어디로 움직여야 한다는 말입니까?”

“아프리카.”

< 『해외편 - 15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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