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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50화 (150/221)

< 『해외편 - 150』 >

『해외편 - 150』

-오 마이 갓! 마이크 테일러 시즌 28번째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대단합니다!

-3경기 만에 또 다시 홈런을 쏘아 올리는 마이크 테일러! 오늘 경기까지 78경기에서 28번째 홈런을 터트렸으니 남은 전반기와 후반기에도 지금과 같은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로 루키 시즌 50홈런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굉장합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루키 시즌 최다 홈런은 1987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뛰었던 마크 맥과이어의 49홈런이질 않습니까?

-그렇죠. 약물로 얼룩진 과거로 인해 명예가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하지만, 마크 맥과이어가 대단한 타자였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죠. 특히 아직까지도 보유 중인 루키 시즌 최다 홈런과 단일 시즌 70홈런의 고지를 가장 먼저 밟았던 것, 당대 최고의 홈런 타자들이었던 배리 본즈, 새미 소사와의 홈런 레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야구의 인기를 크게 이끄는데 기여한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부끄러운 스테로이드 시대의 부산물이죠.

-스테로이드 시대라 일컬어지는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25명이나 되는 타자들이 5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으니 확실히 부끄러운 약물 시대라는 오명은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야구 개혁이 일어난 이후부터 국제야구연맹인 IBAF에서는 3개월에 한 번씩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약물 검사를 통해 약물과의 전쟁을 선포했죠. 금지 약물을 복용했을 경우에는 최소 100경기 출장 정지부터 시작해서 최고 선수 자격 정지 처분까지 내려지니 아무리 성적에 욕심이 난다 하더라도 금지 약물 복용은 꿈에도 꿀 수 없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과도한 처분이 아니냐며 진통제조차 제대로 복용할 수 없다고 아직까지도 반발하고 있질 않습니까?

-그렇지만 모든 진통제가 금지 약물은 아니죠. 어쨌든 마이크 테일러 선수가 오늘 28번째 홈런을 터트렸으니…….

“저놈도 괴물은 괴물이네.”

형수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바나나 하나를 집어서 내게 던졌다.

날아오는 바나나를 잡아 껍질을 벗기기 시작하자 형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이크 테일러가 정말 홈런 50개를 날리면 MVP까지 가져가겠지?”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마이크 트라웃이 데뷔 시즌에서 0.326의 타율에 30홈런, 83타점, 129득점, 49도루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신인왕은 물론이고 MVP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물론, 모든 수상은 상대적이다.

그 해 수상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들이 얼마나 좋은 성적을 기록했느냐에 따라 수상이 결정되니, 홈런 50개와 타율 3할4푼을 기록하고도 홈런왕과 MVP를 차지하지 못하는 선수가 생길수도 있고, 반대로 40개의 홈런과 타율 3할1푼만 기록하고도 홈런왕과 MVP를 차지하는 선수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다.

현재 아메리칸리그에서 마이크 테일러는 홈런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2위와는 무려 5개나 차이가 났다.

내셔널리그에서도 홈런 1위의 홈런 개수가 24개였으니 마이크 테일러는 양대 리그 통합 홈런 부문 1위인 셈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양대리그에서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신인들이 생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내셔널리그에서는 바로 나.

아메리칸리그에서는 마이크 테일러.

형수의 말대로 어쩌면 진기한 기록이 나올지도 모른다.

“붙으면 이길 수 있겠어?”

형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글쎄.”

신인 타자라고 하지만 마이크 테일러는 분명 엄청난 재능을 갖춘 역대급 타자인 건 분명했다. 그렇기에 신인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계약(7년 85M)을 맺을 수 있었던 거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국내에 잔류를 하면서 이적을 한 내가 더 높은 몸값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성적을 유지한다면 마이크 테일러의 가치는 결코 내 아래가 될 수 없다.

타자와 투수의 차이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5선발 로테이션을 통해 5경기 중 한 경기에만 출장하는 투수와 다르게 타자는 체력만 받쳐준다면 시즌 내내 출장이 가능하다.

당연히 투수보다 타자의 몸값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마이크 테일러를 이적시키겠다고 선언을 하면 대다수의 구단들이 달려들 가능성이 높다.

막대한 이적료는 기본이고, 계약총액이 과연 얼마까지 치솟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특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나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엄청나게 돈을 풀기 시작하면 분명 4억 달러는 넘어선다.

‘어쩌면 5억 달러로 가능할지도 모르지.’

나에게도 옵션 포함 4억 달러를 제시했었으니 타자인 마이크 테일러에게 5억 달러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은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없다.

최소한 올 시즌 후반기를 지금처럼 꾸준하게 활약하며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마이크 테일러가 향할 가장 가능성 높은 구단은?

‘콜로라도 로키스겠지.’

막대한 연봉, 그 어떤 메이저리그 구장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타자 친화적인 쿠어스 필드.

이거면 충분하다.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인 배리 본즈의 73개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

만약,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자신의 발자취를 크게 남기고 싶은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마이크 테일러는 결코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다.

‘형수도 쿠어스 필드에 푹 빠졌으니.’

한 경기 4연타석 홈런.

일부에서는 퍼펙트 게임보다 더 위대하다 부르는 이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세운 형수도 쿠어스 필드를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콜로라도 로키스로의 이적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쿠어스 필드에서의 기록을 100% 인정할 수 없다 떠들어도 어쨌든 기록은 기록.

타자의 입장에서 결코 거부하기 쉽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차피 올 시즌은 월드 시리즈가 아니면 물 건너갔고, 내년에는 어쩌면 내셔널리그 최고의 신인과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신인이 2년차가 되어 맞대결을 벌일 수도 있겠네.”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 속한 LA 다저스와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에 속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내년 시즌 인터리그를 통해 경기를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 테일러와 나를 두고 누가 더 우위에 서 있다 저울질을 하고 있었고, 맞대결을 보고 싶어 하지만 아쉽게도 올 시즌에는 다저스와 토론토가 각각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오지 않는 이상은 만날 일이 없었다.

“아! 어쩌면 다음 달에 맞붙을 수도 있겠네!”

형수의 말에 내가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다 한 가지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올스타전.”

“빙고!”

나와 마이크 테일러.

두 사람 모두 올스타에 뽑히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다.

@

6월 13일 일요일.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 4위에 머물고 있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LA 홈경기가 시작됐다.

4차전 경기 중 첫 번째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나는 5회 1실점을 하고, 7회에도 1실점을 추가하며 최종적으로 8이닝 2실점으로 2:2의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야만 했다.

5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이 끊겼고, 4월 26일부터 시작됐던 선발 경기 연속 승리도 8경기로 마감되고 말았다.

야수 실책과 실투로 각각 점수를 내주었다.

다행이라면 타자들이 똑같이 2점을 내주는 덕에 패전 투수는 면할 수 있었지만, 경기의 결과는 4:3으로 LA 다저스의 패배.

1차전의 패배는 2차전으로도 이어졌지만, 3차전과 4차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2승 2패를 나란히 가져가며 시리즈가 끝났다.

경기가 없던 17일에는 내 생에 최초의 데이트가 있었다.

17일 경기가 없는 휴식일이라는 걸 알고 안젤라가 시간을 내서 LA까지 날아왔다.

주어진 시간은 6시간.

나와 안젤라는 6시간이라는 짧다면 짧은 소중한 데이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전화로 무척이나 많은 고민과 상의를 했지만, 결국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마치고 말았다.

안젤라와 손을 꼭 잡고 거리를 걸을 때엔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달라고 했지만, 우리 두 사람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우리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날의 데이트는 각종 포털 사이트와 언론을 통해 기사화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념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주어진 6시간을 마무리 할 때 벌어졌다.

짧았던 6시간의 데이트를 마치고 안젤라를 공항까지 배웅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내게 키스를 해온 거였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한 키스가 아닌 단순하게 입술끼리 살짝 닿은 뽀뽀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귀까지 빨개진 나와 얼굴이 붉어진 안젤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기만 했다.

안젤라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게 있던 날 추궁한 끝에 형수가 이렇게 말했다.

“키스도 아니고 뽀뽀? 니들이 무슨 미취학 아동들이냐? 으이구~ 한심한 놈!”

형수에게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내겐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

18일부터 20일까지는 LA 홈에서 뉴욕 메츠를 상대로 경기가 벌어졌다.

나는 19일 2차전에 선발로 등판을 했고, 이날은 17일에 있었던 안젤라와의 데이트의 영향 때문인지 9이닝 완봉승을 거둘 수 있었다.

뉴욕 메츠와의 홈 3연전과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3연전을 연달아 치르고 곧장 워싱턴 원정길을 떠났다.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스는 현재 내셔널리그 5강 중 한 팀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워싱턴 내셔널스에는 그가 있다.

35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 루카스 지올리토.

사이영상을 3차례나 수상한 메이저리그 최강의 투수 중 한 명인 루카스 지올리토가 버티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대결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상당히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과 팬들이 원하던 나와 루카스 지올리토의 맞대결은 결국 불발이 되고 말았다.

경기 당일 식중독에 걸린 루카스 지올리토가 결국 결장을 하고 말았다.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전국 방송까지 잡혔던 중계였기에 그 실망감은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운드에 오른 건 나 밖에 없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장점은 탄탄한 타선과 막강한 선발진이다.

그러나 에이스 루카스 지올리토가 빠진 자리를 급하게 메꾼 선발 투수는 LA 다저스의 타선을 막기에 부족했고, 워싱턴 내셔널스의 탄탄한 타선도 이전 경기 완봉승으로 상승세를 탄 내 구위에 억눌려 이렇다 할 활약도 해보지 못하고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는 4:1.

9회 마운드에 오른 불펜 투수가 1점을 실점하긴 했지만,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내 성적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워싱턴 내셔널스의 저력은 다음 경기에서 곧바로 나타났다.

예정대로 2선발 투수가 등판하면서 기세가 올랐던 LA 다저스 타자들의 배트를 꽁꽁 묶어버리더니, 전날 기가 죽었던 워싱턴 내셔널스의 타자들이 살아나면서 6회에 이미 승부가 갈리고 말았다.

2:9로 2차전에서 대패를 한 LA 다저스는 3차전에서도 패배를 하며 결국은 1승 2패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들고 애틀란타로 향했다.

내셔널리그 동부 지구의 명문 구단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27일 1차전에서는 박빙의 승부 끝에 1점차 승리를 거뒀고, 2차전에서는 크게 패하며 일진일퇴를 나란히 기록했다.

마지막 3차전.

선발 투수는 나였고, 루키 시즌 전반기 마지막 선발 등판 경기이기도 했다.

“오늘 이기면 16승이네?”

말을 하는 형수는 날 못 볼 것 봤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언론에서 한창 시끄럽게 말했던 전반기 15승을 거두고 이제는 16승을 바라보고 있는 나였다.

“전반기에 15승을 따내는 선발 투수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건지.”

투덜거리는 형수에게 2010년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발 투수였던 우발도 히메네스가 전반기에만 15승을 거뒀다는 말을 해주려다 모를 리가 없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발도 히메네스 이후 더 이상 전반기 15승 투구가 배출되지 않았으니 정확하게 17년 만에 내가 전반기 15승을 달성한 선발 투수가 되었다.

‘실제로 나보다 우발도 히메네스가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투수 친화 구장인 다저 스타디움과 투수들의 무덤인 쿠어스 필드.

누가 봐도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썼던 우발도 히메네스가 더 대단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3번의 퍼펙트 게임을 포함한 8번의 완봉승을 거둔 내가 실질적인 가치 평가에서는 더욱 높다 자랑할 만했다.

“어차피 인간 코스프레만 하고 있는 놈에게 뭘 바라겠냐. 이왕지사 신의 경지로 들어서기로 했으니 오늘 경기도 깔끔하게 완봉으로 전반기 마무리해라.”

형수의 말에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 『해외편 - 150』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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