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45화 (145/221)

< 『해외편 - 145』 >

『해외편 - 145』

투수와 다르게 타자에게는 한 방이라는 게 있다.

투수는 지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만, 타자의 경우에는 연거푸 삼진을 당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한 방 터트려주면 이전까지의 무기력했던 모습을 깨끗하게 털어 내버릴 수가 있게 된다.

따- 악!

때론 소리만으로도 홈런임을 알게 해준다.

지금이 그랬다.

“넘어갔다!”

“휘유~ 오늘 벌써 두 개째네!”

“오늘은 완전히 미치는 날이네!”

무덤덤하게 베이스 런닝을 하는 타자, 방금 홈런을 쳤고, 앞 선 타석에서도 홈런을 치면서 2연 타석 홈런이라는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타자임에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아까도 그러더니 지금도 웃지를 않네. 그만큼 자존심에 타격이 크다는 거겠지?”

형수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도 웃지 않는 미치 네이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지난 두 경기에서 아무리 삼진만 여섯 번 당하고, 팀에서 유일하게 무안타 기록을 남겼다 하더라도 오늘 같은 팽팽한 투수전에서 유일한 득점을 혼자서 독식하고 있는데 얼굴 좀 펴면 안 되나. 주변 분위기 식어 버리게 너무 분위기 잡고 있네.”

곁에서 투덜거리는 형수와 다르게 나는 미치 네이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아직 5월인데 벌써부터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지.’

단순히 지난 두 경기에서 팀 내 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안타를 치지 못했다고 저러는 게 아니다.

맥브라이드 단장과 게레로 감독이 암암리에 미치 네이의 트레이드를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레이드가 될 팀이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현재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에서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했다.

우선적으로 미치 네이의 부족한 수비력이 문제가 되기에 지명 타자제도가 없는 내셔널리그의 팀으로의 트레이드는 힘들었다.

평균 2400만 달러의 고액 연봉자인 미치 네이를 쓰기보단 적당한 수준의 1루수를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아메리칸리그에서도 지명 타자에게 2400만 달러를 쓰기는 어렵겠지만.’

지명 타자를 두고 사람들은 흔하게 반쪽짜리 타자라고 부른다.

배트는 잘 휘두르는데 수비로는 쓸모가 없으니 반쪽 짜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지명 타자에게 연봉으로 2400만 달러는 준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은 연봉 보조 조건이 삽입되어야만 미치 네이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먹을 수 있다.

자신이 7월에 있을 트레이드에서 팀을 떠날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미치 네이로서는 아무리 홈런을 친다 하더라도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더욱이 수비에 대한 고집이 있는 미치 네이에게 지명 타자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는 아메리칸리그로 간다는 건 충격적인 소식일 거다.

‘트레이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단장들끼리 긴박하게 시간을 다투며 이리저리 재면서 보통 성사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계신 겁니까?’

‘물론 트레이드는 무척 비밀스럽고도 긴박하게 이뤄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따금씩은 노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단 내부적으로도 이미 미치 네이가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될 거라는 소문은 있질 않습니까?’

‘그런 말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조심스러운 일이질 않습니까.’

‘그렇죠. 실질적으로 트레이드는 단장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르는 일급 비밀처럼 이용되니까요. 저번에 제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유망주 한 명과 운 좋게 계약을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그 유망주가 텍사스로 트레이드 되기로 잠정적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자세히 알아보니 알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트레이드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성사되야 결론이 났다 할 수 있으니 7월 달이 돼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대로 트레이드는 단장들끼리 확실하게 사인을 해야 결정 나는 일이다.

트레이드만큼이나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한 일도 없었다.

목표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잡음을 만들어 내고, 떡밥을 던지고, 상대를 자극하는 등 이런저런 수를 모두 동원해야 하는 일이 트레이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사 직전에 엎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실제로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가 클럽 하우스에서 자신의 짐을 빼가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을 하고,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활약을 하기 시작하니 덩달아 황병익 대표도 바빠졌다.

특히, YJ에이전시의 경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를 집중적으로 관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꽤나 유능한 이미지를 심어 둔 상태였다.

황병익 대표는 에이전시의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하며 미래성이 좋아 보인다 싶은 유망주들을 중점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다녔는데, 불과 몇 개월 동안 미국에서만 4명이나 되는 유망주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계약을 성사시킨 유망주들이 모두다 투수라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투수 전문 에이전시가 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황병익 대표였다.

“멋진 홈런이었어.”

게레로 감독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미치 네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며 세웠지만, 당사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지나쳐버렸다.

자신의 칭찬을 무시해버렸음에도 게레로 감독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더 쉽게 말하면 미치 네이의 태도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트레이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문제겠네.’

게레로 감독과 미치 네이의 관계는 이미 심각하게 균열이 갔다고 봐도 좋았다.

미치 네이에게 두 번씩이나 홈런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훌리오 유리아스는 자신만의 투구를 이어나갔다.

빌 맥카티와 웨인 스테인을 삼진으로 잡으면서 대기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던 나를 다음 이닝 선두 타자로 만들어 버렸다.

헬멧과 배트를 내려두고 글러브와 모자를 챙겨서 6번째로 마운드에 올랐다.

5이닝 무실점.

무엇보다 강력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단 한 명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고무적인 일이었다.

‘1회에 있었던 트라웃의 눈부신 호수비가 없었다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트라웃이 몸을 날려가며 타구를 잡지 않았다면, 분명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완벽한 투구를 유지하고 있지는 못했을 거다.

‘밥이라도 한 번 사야 되려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텍사스 레인저스의 7번 타자 챈스 코엔이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경기 첫 번째 탈삼진의 주인공이 바로 챈스 코엔이었다.

챈스 코엔과의 승부는 어렵지 않았다.

6구에서 87마일 체인지업을 무리하게 타격하는 바람에 투수 앞 땅볼이 나왔고, 차분하게 타구를 잡아 1루로 송구했다.

이어진 8번 타자 벤자민 조시 로페즈를 상대로는 5구 삼진으로 오늘 경기 6번째 탈삼진을 기록했다.

마지막 9번 타자 투수 훌리오 유리아스는 파워 커브와 포심 패스트볼을 이용해서 삼진을 잡아내며 6이닝을 깔끔하게 마칠 수 있었다.

마운드에서 내려와 재빨리 글러브와 모자를 벗어두고는 배트와 헬멧을 챙겨 더그아웃 밖으로 나갔다.

6회 말,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서야 했기에 방금 마운드에서 내려왔다고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마운드 위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삼진을 당하고 재빨리 글러브와 모자를 챙겨 마운드에 오른 훌리오 유리아스가 서 있었다.

방금 투수와 타자로 대결을 벌였는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었다.

‘타격은 정말 쉽지가 않아.’

투수로서의 성적과 기록은 양대리그를 모두 통틀어 최고라 부르고 있었지만, 타석에서의 성적은 처참했다.

35타수 5안타 타율 0.143.

보직이 선발 투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겨우 1할대의 타율이라는 점이 무척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오늘 경기에서도 여지없이 삼진을 당했으니 이제는 36타수 5안타가 되었다.

타율은 당연히 더 바닥을 찍었겠지.

그나마 위안이라면 1홈런 정도?

‘이번에는 제발 살아서 나가자.’

굳게 다짐을 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굳은 다짐이 민망할 정도로 눈 깜짝 할 사이에 2스트라이크 노볼 상황이 되고 말았다.

안타는 바라지도 않고 살아서 나가자는 의욕 하나만 가지고 타석에 섰지만, 훌리오 유리아스는 투수인 나를 상대로 투구수를 줄이고, 체력을 비축하기 최적의 상대로 여겼는지 고민없이 스트라이크를 꽂아 버렸다.

‘차라리 초구 스트라이크를 노리고 휘두를걸.’

이미 지나가 버린 후회에 아쉬워하며 다시 배트를 조여 쥐었다.

‘이번에는 친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에 대해서는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배트를 휘두르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담았다.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지는 훌리오 유리아스.

‘온다.’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 같다.

아무리 투수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3구까지도 한복판으로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건지.

날아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다, 당했다…….’

부웅!

펑!

“스윙! 타자 아웃!”

패스트볼이 아니라 체인지업이었다.

꼴사납게 허공에 방망이질을 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니 동료 선수들이 웃는 얼굴로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휴우.”

“지혁아, 너 조만간 공포의 빵할 타자 되겠다. 흐흐흐!”

웃는 얼굴로 나를 놀려대는 형수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한숨만 푹 쉬고 말았다.

투수는 공만 잘 던지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타율이 1할 밑으로 떨어진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상대 투수에게 대놓고 쉬어가는 타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입안이 씁쓸했다.

나 역시 상대 투수들을 타자로 만날 때마다 가볍게 생각하긴 하지만, 입장을 바꾸니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알면서도 현재의 타격 연습만으로는 성과가 나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타자들은 하루에 수천 번씩 배트를 휘두르며 연습을 한다.

형수만 하더라도 타격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겠다며 손바닥이 까지고 피가 흐를 정도로 배트를 휘둘러댔었다.

지금까지도 형수는 하루에 꼬박꼬박 2천 번 이상 스윙 연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티 배팅과 실전 배팅까지 더하면 몇 번이나 배트를 휘두르는 건지 알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율 3할을 못 찍고 있다.

그런데 하루에 한 시간 가량 스윙 연습 하는 게 고작인 내가 3할을 치는 타자들처럼 안타를 뻥뻥 치길 원한다?

‘도둑놈이지.’

그래도 도둑놈 소리 듣더라도 2할만 넘어봤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타격이라…….”

아무래도 타격 훈련 시간을 늘려야 할 것만 같았다.

6회 말, 다저스의 공격은 선두 타자인 내가 삼진으로 시작했지만, 후속 타자들이 각각 안타와 볼넷을 얻어내며 다시 한 번 득점 기회를 잡았다.

미치 네이에게 홈런 두 방을 허용한 것이 유일한 오점이었던 훌리오 유리아스였지만, 6회 말에는 안타와 볼넷을 허용함으로써 완벽하다 부를 피칭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1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코리 시거.

한 때는 LA 다저스의 황금빛 미래를 함께 꿈꿨던 훌리오 유리아스를 상대로 코리 시거는 2루타를 터트리며 2타점을 올렸다.

2루 베이스 위에서 손을 번쩍 들며 세레모니를 하는 코리 시거의 모습에 훌리오 유리아스는 쓴웃음과 함께 감독의 지시로 마운드를 내려가야만 했다.

“실투 하나가 결국은 유리아스에게 가장 치명적인 실점이 되고 말았군.”

“투수가 원래 그렇죠.”

“하긴.”

99번 완벽하게 던져도 1번의 실투로 패배를 기록할 수 있는 포지션이 투수인만큼 토렌스는 너 역시 조심하라는 듯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퍼펙트 게임 중이라는 거 알고 있지?”

토렌스의 물음에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퍼펙트를 할 생각이야?”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요?”

“물론, 투수가 제 마음대로 퍼펙트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이상하게도 넌 좀 다르단 말이야. 척 네가 퍼펙트를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하하하.”

“그럴 리가요.”

말이 되냐는 듯 대꾸하면서 나 역시 웃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토렌스와 웃는 사이 트라웃과 형수가 나란히 범타를 기록하며 6회 말이 끝났다.

“갔다 올게요.”

내가 모자를 눌러쓰며 일어나자 토렌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시계 선물은 나한테만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저 녀석이랑 타격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데 퍼펙트 게임 포수까지 해버리면 후반기에 내가 돌아와서도 여기 그대로 앉아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예?”

뜬금없어 하는 나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며 토렌스가 속삭이듯 말했다.

“세 번째로 받고 싶은 시계 모델도 이미 다 정해놨어.”

토렌스의 엉뚱한 소리에 나는 피식 웃고는 더그아웃을 빠져나왔다.

포수 장비를 모두 착용한 상태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형수가 물었다.

“토렌스가 뭐라고 한 거야?”

“너랑 퍼펙트 게임 하지 말라고 하던데?”

“뭐!”

크게 소리친 형수가 더그아웃 쪽으로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형수의 머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건 쉬웠다.

“시계 선물 받고 싶어?”

“당연하지!”

“한 번 해보자. 퍼펙트 게임.”

< 『해외편 - 145』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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