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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44화 (144/221)

< 『해외편 - 144』 >

『해외편 - 144』

타석에 서 있는 바이런 벅스턴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01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한 바이런 벅스턴은 당시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으며, 많은 이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성장을 시작했다.

놀라운 건 2013년에 있었던 바이런 벅스턴에 대한 BA의 평가였다.

공을 느긋하게 지켜 볼 줄 알고, 간결하고 짧은 스윙으로 공을 칠 수 있으면서도 손목 힘이 좋아 굉장히 빠른 배트 스피드로 안타 생산 능력이 뛰어나다는 컨택 평가 점수 70점.

마른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파워를 지니고 있어 그라운드의 모든 방향으로 홈런을 날릴 수 있으며, 미래에는 25~30개의 홈런을 무난하게 칠 수 있다는 파워 평가 점수 60점.

우타석에서 1루까지 4~4.05초의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는 스피드 평가 점수 80점.

펜스 플레이, 타구 판단 능력, 주력을 이용한 광범위한 필드 커버 능력 등 부족한 부분이 느껴지지 않아 오죽했으면 한 스카우트는 ‘현재 빅리그에서 벅스턴보다 수비를 잘 하는 중견수가 누구지?’라고 했을 정도의 수비 평가 점수 80점.

고교때 92~94마일을 던지는 투수였기도 했던 강견에 무턱대고 강하게 던지기보단 중계, 3루, 홈까지 어디로 던지느냐에 따라 어깨 강도를 조절하는 영리한 모습까지 보였던 어깨 평가 점수 70.

컨택 70, 파워 60, 스피드 80, 수비 80, 어깨 70.

놀라운 수치다.

보통 BA 20-80스케일 평가에서 50점이면 메이저리그 평균, 60점이면 평균 이상, 70점이면 올스타급, 80점이면 MVP급이라 부른다.

잠재능력만 놓고 본다면 올스타 이상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과대 평가를 받은 바이런 벅스턴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서 자신의 평가가 결코 과분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냈다.

2016년 메이저리그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과 MVP를 석권한 바이런 벅스턴은 2010년 이후 6년 만에 미네소타 트윈스를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로도 바이런 벅스턴은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했고, 2020년 미네소타 트윈스를 떠나 텍사스 레인저스와 8년 272M, 2억 7천 2백만 달러에 계약을 맺게 된다.

놀라운 건 2029년 구단 옵션 계약이 남아 있는데, 만약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바이런 벅스턴과 1년 계약을 연장하게 될 시엔 4천만 달러라는 연봉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연봉 4천만 달러를 받을 지도 모르는 유일한 선수가 바이런 벅스턴이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타석에 서 있는 바이런 벅스턴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운드에 서 있는 나를 압박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선입견일수도 있다.

바이런 벅스턴이라는 타자가 가지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가 무의식중에 나를 위축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우우.”

크게 숨을 토해내며 형수의 사인을 기다렸다.

형수는 섣부르게 사인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13타수 6안타 1홈런.

26일과 27일에 있었던 텍사스 원정 경기에서 바이런 벅스턴이 기록한 성적이다.

무려 0.462의 타율이다.

반올림해서 두 타석 당 안타 하나씩 뽑아냈다는 뜻이니 형수로서는 아무리 바이런 벅스턴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연구를 했다 하더라도 마음 놓고 사인을 보낼 곳이 없는 입장이었다.

주저하는 형수의 모습에 내가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

바이런 벅스턴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알려졌고, 형수 또한 알고 있지만 앞서 있었던 두 경기에서 안타를 모두 맞았기 때문에 사인을 보내지 못했던 것뿐이다.

형수는 내 결정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타를 맞았던 코스라 하더라도 투수가 다르고, 통계적으로 취약한 부분이었으니 다른 대안을 찾기가 힘들었으리라.

‘안타를 맞더라도 현역 메이저 최고의 타자에게 맞는다면 내가 손해 보는 일도 없지.’

다른 때였다면 반드시 안타를 맞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최선을 다하면서도 즐길 수 있도록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쐐애애애액.

퍼- 어엉!

빠르게 날아간 공은 그대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며 포수 미트에 꽂혔다

코스 때문인지, 공의 스피드가 97마일이 나왔기 때문인지 바이런 벅스턴은 꼼짝도 하지 않고 공을 지켜보기만 했다.

타석에 물러난 바이런 벅스턴은 장갑을 벗었다 다시 착용하며 가볍게 양쪽 어깨를 돌린 후에야 자리를 잡고 섰다.

배트를 쥐고 있는 손목이 살짝 조여지는 게 보였다.

즐기겠다 마음을 먹으니 여유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어지며 타자의 행동 하나, 하나가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좋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적당한 긴장감과 여유가 몸 상태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파워 커브로 몸 쪽으로 붙인다.’

몸 쪽으로 떨어지는 커브를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타자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타자들은 몸 쪽으로 붙어서 떨어지는 커브를 결코 선호하지 않는다.

딱.

바이런 벅스턴은 떨어지는 커브를 비스듬하게 깎아서 커트해 버렸다.

3구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지만, 볼이 되고 말았다.

4구는 바운드가 될 정도로 낮게 떨어지는 파워 커브로 바이런 벅스턴의 배트를 유인해봤지만 역시 쉽게 걸리지 않았다.

바이런 벅스턴과의 마지막은 5구, 몸 쪽으로 바짝 붙인 포심 패스트볼에서 났다.

99마일의 빠른 패스트볼에 바이런 벅스턴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만 거다.

딱!

내야에서 높이 솟아오르는 공을 크레이그 바렛이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이닝이 종료됐다.

삼진은 하나도 없이 모두 범타로 끝이 난 1회였다.

“삼진이 없어서 아쉽겠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형수가 능글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음에 잡지 뭐.”

태연스러운 내 대꾸에 형수는 뜨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역시 변했어! 내가 알던 차지혁이 아니야! 내 친구를 돌려줘!”

형수의 장난에 피식 웃고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니 게레로 감독이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손은 괜찮은 건가?”

“예. 멀쩡합니다.”

“다행이군.”

게레로 감독은 편하게 앉아서 쉬라는 듯 살짝 몸을 비켜주었고,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이제는 지정석이 되어버린 자리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셨다.

“푸하~ 휴! 이틀 동안 정신없이 두드려 맞았더니 나도 모르게 엄청 긴장했나보다.”

음료수를 벌커벌컥 마신 형수가 곁에 앉으며 그렇게 말했다.

원정 1차전과 2차전에서 LA 다저스가 허용한 실점이 무려 21점이다.

팀 방어율에 거대 블랙홀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치명적인 실점이었다.

팀의 실점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선수는 투수지만, 포수 역시도 만만찮게 데미지를 받는다.

특히, 특정 투수 한 명이 대량 실점을 한 것과 여러 명의 투수가 골고루 실점을 한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쪽이 포수에게는 크나큰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투수들의 구종, 구질, 제구, 컨디션 등이 모두 나빴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말은 포수가 투수를 제대로 리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형수가 앞서 있었던 2경기를 통해 가졌을 압박감은 상상외로 컸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면서 즐겨봐.”

내 말에 형수가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났다.

“누구야, 너?”

형수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짓고는 마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마운드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멕시코인이 깔끔한 동작으로 연습투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단 말이야. 훌리오 유리아스가 다저스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분명 한 번 정도는 월드 시리즈를 제패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올 시즌 지혁이 너, 필 맥카프리, 훌리오 유리아스 무적 3인방이 완성될 수도 있었을 텐데.”

형수의 말을 넘겨들으며 마운드 위에서 투구하고 있는 훌리오 유리아스를 바라봤다.

2012년 국제 드래프트 시장에서 LA 다저스와 계약을 한 훌리오 유리아스의 당시 나이는 16살이었다. 이후, 다저스의 유망주 팜에는 빅3라고 하는 최고의 재능을 갖춘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작 피더슨, 코리 시거, 훌리오 유리아스다.

코리 시거의 경우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훌륭하게 성장했고, 자리도 잡았지만, 작 피더슨과 훌리오 유리아스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다저스에서 무척이나 애지중지 키웠던 훌리오 유리아스는 커쇼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 재능이 대단했다.

‘15살에 92마일을 던졌으니 진짜 괴물이지.’

15살의 나이에 148km의 공을 던진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재능을 타고 났다는 뜻이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에 140km를 던졌으니 타고난 어깨만 놓고 본다면 훌리오 유리아스는 내가 올려다보지도 못할 까마득한 곳에 서 있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 훌리오 유리아스를 다저스에서는 당연히 보물처럼 여겼다.

철저하게 투구수와 이닝 제한을 걸어뒀고, 집중적을 관리를 하며 제2의 커쇼로 만들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하지만, 다저스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부상.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상이 훌리오 유리아스에게 찾아온 거다.

수술을 하고, 재활을 가졌지만 제2의 커쇼를 떠올릴 만큼 위력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구속 저하와 제구력 난조의 최악의 상황에 빠지면서 결국, 다저스에서는 훌리오 유리아스를 트레이드 시키며 새로운 유망주의 성장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스카우트들에게 극찬을 받았던 훌리오 유리아스였지만, 부상이후 그는 그저 그런 선수 중의 한 명이 되었고 2번의 트레이드 끝에 결국 마지막 종착점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됐다.

‘텍사스에서도 당시 훌리오 유리아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었지.’

모두가 담담하게 훌리오 유리아스의 미래를 평가했을 때, 놀랍게도 그가 부활했다.

90마일을 간신히 넘겼었던 구속이 몇 달 사이에 98마일까지 치솟았으며, 억지로 무리해서 구속을 올리지 않으니 몸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면서 들쑥날쑥했던 제구력도 제자리를 찾았다.

16살의 나이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하며 장밋빛 미래를 보장 받았던 훌리오 유리아스는 부상을 당하면서 무려 7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치이다가 화려하게 본 모습을 찾아갔다.

정확하게 10년.

2022년, 26살의 나이에 훌리오 유리아스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7년 동안 받았던 설움을 모두 토해냈다.

그해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훌리오 유리아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보물이 되었다.

2022년 14승, 2023년 16승, 2024년 19승, 2025년 17승, 2026년 21승.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쌓고 통산 87승을 거머쥔 훌리오 유리아스는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2억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기까지 했다.

형수의 말처럼 훌리오 유리아스가 LA 다저스에 남아 있었다면 분명 엄청난 전력이 되었을 거다.

퍼엉!

“스윙! 삼진 아웃!”

97마일의 패스트볼 앞에 코리 시거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한 때는 다저스의 미래를 함께 짊어질 유망주였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서로를 넘어서야만 하는 타자와 투수로 마주한 두 사람의 모습이 한 편으로는 씁쓸하게 보이기도 했다.

세 명의 타자를 상대로 하나의 범타와 두 개의 삼진으로 너무나 깔끔하게 이닝을 마친 훌리오 유리아스는 텍사스 팀 동료들과 함께 웃는 얼굴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원정 두 경기는 정신없는 난타전이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숨 막히는 투수전이 될 것 같은데?”

형수가 마스크를 들며 나를 향해 그렇게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가볍게 웃어주고는 더그아웃을 빠져나왔다.

숨 막히는 투수전이든, 피를 말리는 투수전이든 상관없다.

마운드 위에 서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척~! 파이팅!”

고막으로 파고 들어오는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관중석에서 늘씬하게 잘 빠진 몸매의 여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안젤라 쉴즈, 이상할 정도로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여자였다.

단 한 번의 만남과 단 한 번의 전화 통화가 전부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 나를 응원해주는 그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도 자꾸만 들었다.

“누굴 그렇게 넋 놓고 쳐다보는 거야?”

트라웃이 내 곁을 지나가다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관중석에서 날 향해 연신 파이팅을 외치는 안젤라 쉴즈를 확인한 트라웃의 입꼬리가 한 껏 올라갔다.

“여자 친구?”

“그, 그게…….”

“굉장한 미인인데? 하하하.”

웃으며 앞장 서서 걸어가는 트라웃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을 하지 못 한 거야?’

여자 친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트라웃의 물음에 주저했다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 나는 언제쯤 첫 눈에 반할만한 멋진 남자가 생길까?’

‘남자 친구 있잖아? 그런데 무슨 남자 타령이야?’

‘오빠가 뭘 알아! 남자나 여자나 첫 눈에 반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야! 지금 남자 친구는 그냥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 내 진정한 사랑을 전해줄 멋진 왕자님을 위한 연습생일 뿐이라고.’

‘TV에서 나오던 어장관리녀냐?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 그리고 사람 마음 가지고 노는 거 아냐.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한다.’

‘어장관리는 무슨! 기껏해야 만나서 영화나 보는 사이인데! 그리고 나 그렇게 못된 년 아니거든! 단지 나는 내 모든 걸 다 헌신 할 수 있는 첫 눈에 뿅 가는 그런 멋진 이상형을 만나고 싶을 뿐이라고! 에잇! 네가 뭘 알아! 야구 밖에 모르는 로봇이! 심장은 있으세요? 예쁜 여자 연예인에게는 눈도 안 주면서 야구 선수만 보면 넋이 나가는 이상한 변태 주제에! 흥!’

지아와 투닥거리며 했던 말, 첫 눈에 반하는 사람.

“내가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더욱더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지혁아!”

형수의 외침에 그제야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허겁지겁 마운드로 향했다.

< 『해외편 - 14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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