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42』 >
『해외편 - 142』
“예. 이번에 해외 시장 특히, 차지혁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미국 시장부터 제대로 한 번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성대준 대표는 이후 내게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보다는 알아듣지 못할, 쉽게 이해하지 못할 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지금까지 평생 야구만 해온 내게 사업에 관한 일은 쇠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30분 넘게 설명을 한 성대준 대표의 말에 나는 황병익 대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황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 많은 돈은 아니지만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긍정적이다, 투자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황병익 대표의 말이 내 결정에도 큰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투자를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성대준 대표가 허탈하다는 듯 푸념을 했다.
“30분 동안 떠든 저보다 황 대표님의 몇 마디가 차지혁 선수의 결정권에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녔군요.”
“에이전시니까요.”
내 대답에 성대준 대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차지혁 선수에게 이토록 크게 신임을 받고 있으니 황 대표님은 행복하시겠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 한 일 중 두 번째가 차지혁 선수와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성대준 대표는 물론, 나까지도 첫 번째로 잘 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황 대표님이 가장 잘 한 첫 번째가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에이전시를 차린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차지혁 선수와 계약을 맺었겠습니까? 하하.”
성대준 대표는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투자를 결정하신만큼 차지혁 선수에게 결코 피해가 가질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성대준 대표의 손을 맞잡았다.
“투자금액에 대한 부분은 차후에 통보해 드리겠습니다.”
투자금액에 따라서 주식으로 돌려준다고 하니 이러다가 주식 부자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주식 부자인가?’
현재 울의 주식 가격은 1주당 14900원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격만 현재 584억이 넘었다.
여기에 추가로 투자를 하고 주식을 배당 받으면 그 가치가 얼마까지 치솟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투자라는 건 성공만이 보장되는 일이 아니기에 자칫 내가 가진 주식의 가치가 바닥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설마 다시 천 원으로 내려가겠어?’
고속 성장, 아니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한 울의 회사 가치는 말 그대로 단기간에 15배 가까이 폭등했다.
그 중심이자, 핵심적인 역할은 당연히 나에게 있었으니 최소한 내가 울과의 관계를 몽땅 정리하지 않는 이상은 울의 회사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거기에 성대준 대표 역시 허황되게 사업을 할 사람도 아니었으니 앞으로 울의 미래는 충분히 투자 가치가 높았다.
성대준 대표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황병익 대표와 대화를 시작했다.
“예?”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황병익 대표를 바라봤다.
너무 어이없는 말을 들었기에 황당한 표정을 짓던 내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저 역시 차지혁 선수와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대응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차지혁 선수 본인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생각했기에 말하는 것뿐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비상식적이라 살짝 화까지 나네요.”
황병익 대표가 한 말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다름 아닌 이적 협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LA 다저스와 7년 계약 기간 중 첫 해를 맞이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적이라니.
“어떻게 돈이면 다 된다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LA 다저스와 7년 계약을 하면서 걸린 바이아웃 금액이 무려 1억 달러다.
말 그대로 1억 달러를 LA 다저스에 지불해야만 나를 데리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이 1억 달러지 실질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바이아웃 금액으로 1억 달러를 책정해 놓은 선수는 나를 포함해서 고작 3명뿐이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에이스 루카스 지올리토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외야수 바이런 벅스턴이 그 주인공들이다.
바이아웃 금액으로 1억 달러를 명시한 건 말 그대로 이 선수는 절대 이적 시킬 생각이 없다는 구단의 의지를 표명하는 상징성이다.
아무리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몸값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이적료만으로 1억 달러나 되는 거액을 쓴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벌이는 구단이 나타난 거다.
“다가올 7월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대규모의 대형 트레이드가 벌어질 거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다.
지난 스토브 리그에서 상당한 돈을 써가며 선수 보강을 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갑부 구단주는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갑부 구단주는 자존심에 심각하게 금이 가자 이제는 그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기로 작정한 거다.
황병익 대표의 말대로라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갑부 구단주가 뿔났단다.
그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갑부 구단주가 LA 다저스에 정식으로 날 이적 시키고 싶다는 통보를 한 거다.
1억 달러나 하는 바이아웃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뜻을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렸고, 황병익 대표에게 연락을 해서 계약 기간, 연봉, 보너스 등 모든 것을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로 해주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한다.
당연히 황병인 대표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 판단했지만, LA 다저스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맥브라이드 단장이 얼마나 놀란 음성으로 말을 했던지 아직도 그때 했던 통화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재밌다는 듯 말을 하는 황병익 대표였지만, 정말로 맥브라이드 단장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을만한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돈을 노리고 이적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문제는 이제부터다.
7월 트레이드에서도 돈의 위력은 분명 발휘가 된다.
트레이드는 보통 비슷한 기량의 선수와 선수를 교환하는 방식이지만, 상황에 따라선 기량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 돈을 추가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졌다.
아닌 말로 적당한 수준의 선수를 트레이드 요청하고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와 막대한 돈을 추가한다면?
적지 않은 구단들이 트레이드에 응할 수밖에 없어진다.
반드시 팀에 필요한 선수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트레이드를 통해 돈을 받아뒀다가 스토브리그에서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자금을 사용할 수 있으니 절대 손해라 할 수 없었다.
“필 맥카프리도 영입 대상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계약 기간 종료까지 1년.
LA 다저스에서 데뷔를 한 필 맥카프리였고,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며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지만, 주변 말들에 따르면 이미 이적 결심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다고 했으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고 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트레이드는 불가능 할 겁니다. 시즌이 종료되고 이적을 한다면 모를까.”
“그럴 겁니다.”
현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성적은 최하위, 그것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을 통틀어 최악의 승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선적으로 필 맥카프리에게는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다.
설령, 거부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LA 다저스 입장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시즌 중에 필 맥카프리와 같은 최정상급의 투수를 트레이드 시킬 일은 없다.
“어쩌면 현재 필 맥카프리의 에이전트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협상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적은 무조건 12월이 되야 가능하지만, 협상은 그 이전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2월 1일이 되는 순간 도장을 찍으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선수들은 모두 사전에 협상을 마쳤다는 소리다.
“필 맥카프리가 올 시즌이 끝나고 이적을 한다면 다저스로서는 당장 에이스급의 선발 투수를 잃게 되니 내년 시즌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황병익 대표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LA 다저스에서의 우승이 쉽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매년 천문학적인 연봉을 선수들에게 지불하면서도 월드 시리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LA 다저스다.
선수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면 LA 다저스와는 계약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있을까.
“전 차지혁 선수가 누구와 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황병익 대표가 말한 누구란 한 사람뿐이다.
리그 최정상 아니, 리그를 지배했던 위대한 투수 클레이튼 커쇼.
지구 최강의 투수라 불렸음에도 우승 한 번 못해본 비운의 투수.
황병익 대표는 혹시라도 내가 클레이큰 커쇼와 같은 길을 걷게 될까 벌써부터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필 맥카프리가 이적을 한다면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다저스에서도 분명 그에 준하는 좋은 투수를 찾아낼 거라고 믿습니다.”
우승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심한지 잘 알고 있는 LA 다저스였기에 나는 커쇼와 같은 일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만에 하나라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는.
‘이적을 해야겠지.’
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LA 다저스가 좋거나, 정이 들어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월드 시리즈에서의 우승을 해오지 못한 LA 다저스를 내 손으로 우승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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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정해진 로테이션대로 내가 선발로 등판해야 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 경기였지만, 작은 부상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레로 감독을 비롯한 단장과 구단주의 보호로 인해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경기에서 이겨서 기쁘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 빈자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괜히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상대가 최악의 승률을 내달리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는 점이 주요했다.
이어진 24일, 25일 경기에서 LA 다저스는 1승을 추가하며 2승 1패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갔다.
침체기에 빠져버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스윕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위닝 시리즈로 기분 좋게 텍사스 원정을 떠났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는 4일에 걸쳐서 치러진다.
26일, 27일 이틀 동안에는 텍사스 원정 경기가 벌어지고, 28일과 29일에는 LA로 돌아와서 홈 경기가 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28일은 로테이션을 건너뛴 내가 다시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강하다.
이 부분은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텍사스 레인저스 역시 매년 우승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도 막상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해본 적은 없다는 점이다.
내셔널리그에서 만년 우승 후보로 LA 다저스가 있다면 아메리칸리그에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팀 모두 우승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화끈한 타격으로 공격적인 야구를 하는 구단이다.
리그 정상급의 투수들도 선발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투수력보다는 타자력이 더 뛰어나다 평가를 받는 팀으로 LA 다저스와는 반대의 성향을 갖추고 있었다.
26일에 벌어진 경기는 예상외의 난타전이 벌어졌다.
최종 스코어는 12:11.
아슬아슬한 1점차 승리였지만,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경기 결과였다.
필 맥카프리의 시즌 두 번째 강판.
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다저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타선이 막강하다 하더라도 다저스의 에이스 필 맥카프리가 등판하는 경기이니 상대 투수가 4선발임을 감안하면 생각 외로 손쉬운 승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필 맥카프리는 3이닝 동안 무려 7실점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남겨두고 마운드를 내려가야만 했다.
LA 다저스의 타자들이 부지런하게 점수를 쌓지 않았다면 뜻밖의 대패를 당할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무엇보다 1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4이닝 6실점으로 강판을 당했던 필 맥카프리가 불과 두 번째 선발 등판 만에 또 다시 3이닝 7실점이라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저스 선발진의 불안함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말았다.
화끈한 공격 야구는 27일에도 이어졌다.
5:10로 LA 다저스는 크게 패하며 1승 1패에 만족하며 LA로 돌아와 홈 경기를 대비했다.
“컨디션은 어때?”
형수의 물음에 멀쩡해진 오른손을 내보였다.
“보다시피 더할 나위 없이 좋아.”
“고작 열흘 쉬었다고 경기 감각을 잃은 건 아니겠지?”
“마운드 위에서 확인시켜줄게.”
경기를 준비하며 형수와 가볍게 말장난까지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형수는 무려 2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토렌스가 부상으로 빠져 있는 동안 형수는 꽤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특히 11개나 홈런은 공격형 포수를 선호하는 다른 구단들에게 있어 아주 탐이 나는 선수임에 틀림없었다.
경기가 곧 시작된다는 말에 형수와 함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LA 다저스의 진짜 에이스가 누구인지 오늘 확실하게 보여줘라. 나도 연속 경기 홈런을 이어나갈 테니까!”
“그럴까?”
내가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형수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내 목에 팔을 둘렀다.
“제발 나도 시계 좀 받아보자.”
“하나 선물하지 뭐.”
내 대꾸에 형수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너 많이 변했다?”
“그래?”
“제법 장난도 잘 받아주고. 요 근래 분위기도 좀 그렇고.”
눈을 가느다랗게 뜬 형수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노려보며 물었다.
“설마, 여자라도 생긴 거냐?”
“여자는 무슨.”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에도 어떤 여자랑 통화하고 그랬잖아? 도대체 누구야!”
“그냥 아는 사람이야.”
알 필요 없다는 듯 대꾸하고는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다.
“누구냐니까~?”
형수의 말을 무시하며 불펜 대기실에서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더그아웃으로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척~! 파이팅!”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 『해외편 - 1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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