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39』 >
『해외편 - 139』
더 던질 수 있다는 걸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교체가 되고 말았다.
맥브라이드 단장의 압력인지, 마크 앨런 구단주의 직접적인 지시인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게레로 감독은 내게 수고했다며 7회에는 마운드에 올라갈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병원으로 가서 각종 검사를 해보라는 성화에 경기가 끝나고 가겠다는 마지막 고집을 부림으로써 본의 아니게 더그아웃에 앉아서 남은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6회까지 퍼펙트 게임.
솔직히 아쉬운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과연 남은 3이닝마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통증이 남네.’
오른손의 통증이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6회 때보다 더 심해지거나, 정도가 여전한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통증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퉁퉁 부어오른 손으로 인해 글러브를 끼기가 불편해졌다.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손에 다시 한 번 충격이 가해지면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충고가 있었다.
내가 내려간 마운드를 이어 받은 건 알렉스 트레더웨이로 현재 다저스 불펜의 핵심 투수로 현재까지 평균자책점 1.13으로 리그 정상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카디널스 놈들이 발악을 한다고 해도 트레더웨이와 펠런이라면 네 승리를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걱정마.”
토렌스의 말에 나 역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웃어주었다.
토렌스와 내 생각대로 트레더웨이는 7회와 8회를 깔끔하게 막아주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상위 타선과 중심 타선을 상대로 이닝마다 안타 1개씩 내주긴 했지만 무실점으로 자신의 역할을 100% 완수해냈다.
마지막으로 9회에 마운드에 오른 다저스의 마무리 투수 샌디 펠런.
2021년 22살의 나이에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을 받으며 LA 다저스와 계약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모든 관계자들은 그가 3년 안에 다저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평균 95마일에 이르는 빠른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리고 BA 구종 평가에서 무려 70점을 받아냈던 환상적인 포크볼까지 선발 투수로서의 자질이 충분한 샌디 펠런이었다.
약점이라면 들쑥날쑥한 제구력과 체력적인 문제였는데, 다저스에서는 3년 안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고 자신을 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저스의 노력은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제구력도 잡혔고, 체력적인 부분도 분명 크게 향상이 되긴 했으나 고질적으로 샌디 펠런에게는 내구성이 부족했다.
이닝이 길어질수록 샌디 펠런은 구위가 떨어졌고, 제구력도 흔들렸다.
진단 결과 어깨와 팔꿈치가 약해 이닝 소화 능력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샌디 펠런은 선발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선발의 꿈을 꺾은 샌디 펠런은 곧바로 마무리 투수로 변신을 했다.
결과적으로 대성공.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히는 특급 마무리 투수가 된 샌디 펠런의 연봉은 평균 1500만 달러가 넘었다.
15승 투수 이상의 가치를 지닌 특급 마무리 투수라는 걸 감안하면 1500만 달러의 연봉이 결코 아깝지 않은 샌디 펠런이었다.
부웅!
“스윙! 타자 아웃!”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멋진 궤적을 그리며 들어간 포크볼.
마운드 위에서 오른손을 번쩍 치켜들며 세이브를 지켜낸 샌디 펠런의 세레모니를 바라보며 나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박수를 쳐주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LA 다저스의 최종 스코어는 0:1.
1회에 얻은 1점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승리에 기쁨의 환호를 터트리는 다저스 선수들을 뒤로하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더그아웃을 바라보니 가렛 글리슨이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8이닝 완투패.
선발 투수로서 굉장히 아쉬운 경기였다.
무엇보다 만약 9회 초에 1점이라도 점수가 나서 동점 상황이 됐다면 가렛 글리슨은 9회에도 당연히 마운드에 올랐을 거다.
8이닝까지 93개의 공을 던지고 있었으니 9회는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연장전까지도 등판이 가능한 투구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선발 투수가 호투를 벌였다 하더라도 타선에서 받쳐주지 못하면 승리를 할 수 없으니 가렛 글리슨으로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기자들이 너도나도 질문을 퍼부었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질문을 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투구를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냐?
얼마나 큰 부상이냐?
다음 선발 로테이션이 가능하냐?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단 측 관계자들과 함께 병원으로 빠져나갔다.
“조금만 일찍 움직였어도 그런 소란은 겪지 않았을 겁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구단 측 관계자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그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냥 뭐 그렇다는 겁니다.”
이후 아무런 말없이 병원에 도착해서 각종 검사를 시작했다.
다른 환자들과 다르게 대기 시간 없이 곧바로 여러 가지 검사들이 실시되었고, 모든 검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혁아! 손은 어떻데? 괜찮은 거야?”
형수가 내 손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간단한 깁스야. 생각보다 충격이 커서 그렇다고 당분간 이러고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럼 다음 경기는?”
“아마도 건너뛰지 않을까 싶네.”
“잘 됐다. 차라리 이 기회에 좀 쉬어. 괜히 무리하지 말고.”
형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너 병원에 가고 나서 랜디 존슨이 찾아왔었어. 시간 나면 전화 좀 달라고 하던데?”
“그래?”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선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끝내고 시간을 바라보니 전화를 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라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할 때에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니 아버지였다.
“놀라셨을 텐데, 전화도 안 해드렸구나.”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자책하며 서둘러 핸드폰을 받았다.
“예, 아버지.”
-손은 괜찮은 거냐?
목소리에서 절절히 느껴지는 아버지의 걱정에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자책하며 밝게 대답했다.
별일 아니다.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뿐이라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병원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하지만,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함으로써 괜한 오해나 걱정을 하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다음 선발 등판은 쉬기로 했다고?
“확실하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지만 구단 직원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따로 구단으로 통보를 한다고 했으니 아마도 쉴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 완전히 몸이 정상 컨디션을 찾으면 그때 등판을 하도록 해라. 어설프게 등판했다가 성적이 곧두박질치면 너도 그렇고 구단도 그렇고 양쪽 모두 피해를 입을 뿐이니까.
“예. 알고 있어요.”
-엄마가 바꿔달라고 하니 받아봐라.
득달스럽게 전화를 바꾼 어머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몸 상태부터 물어왔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이나 해야 했지만 그걸 귀찮아 할 순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어머니와 한참을 통화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통화를 하는 사이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랜디 존슨이었다.
“걱정이 되는 건가?”
한국과 다르게 시간이 늦은 미국이었지만, 늦은 시간임을 알면서도 랜디 존슨이 먼저 전화를 했으니 나 역시 전화를 해도 큰 실례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곧바로 전화를 했다.
-자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군.
“예. 부모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랜디 존슨과 통화는 간단하게 끝냈다.
당분간 시간이 비어서 LA에 머물 수 있으니 그 기간 동안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자는 랜디 존슨의 뜻을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기왕지사 며칠 강제적 휴식기가 생겼으니 그 기간 동안 신구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눈을 감으니 핸드폰 문자가 울렸다.
혹시라도 주무시고 계실까 싶어 망설이다가… 문자 보냈어요.
손은 괜찮으세요?
오늘 경기 관람하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부디 몸 조심해요.
시간 날 때마다 경기장에 찾아가서 응원할게요!
아주 오랜만에 온 정혜영의 문자였다.
“관람을 했다고?”
그 말인 즉, 다저 스타디움에 왔다는 뜻이라 의외였다.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미국에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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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의 모든 경기들 멋지더군.”
랜디 존슨은 그렇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주 악수를 하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내게 고마워 할 건 아니지. 그런데 손은 어떻지?”
“며칠 이러고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이군. 그것보다도 자네에게 미안한 일이 있군.”
말을 하며 랜디 존슨이 옆에 서 있는 미녀를 바라봤다.
“반가워요! 안젤라 쉴즈에요. 척의 경기는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볼 정도로 열혈 팬이에요. 어제는 무척이나 아쉬운 경기였어요. 하지만, 척의 부상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안젤라 쉴즈였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봤던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LA 다저스의 구단주 마크 앨런의 딸 로앤 앨런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안젤라 쉴즈의 아름다움은 굉장했다.
흠 잡을 곳 없는 얼굴에 늘씬한 키와 볼륨감 넘치는 몸매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혁 차입니다. 팬이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끝을 흐리며 랜디 존슨을 바라봤다.
안젤라 쉴즈가 어째서 함께 왔냐는 질문을 눈빛으로 보내니 랜디 존슨이 살짝 인상을 굳혔다.
랜디 존슨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가?
“어떤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순수하게 척을 응원하는 팬으로써 존슨 씨가 척과 만난다고 하기에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까 싶어서 안 된다는 걸 제가 억지로 따라붙은 거예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진심으로 사과를 드릴게요.”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안젤라 쉴즈의 모습에 마지못해 괜찮다는 듯 사과를 받아줬다.
“그런데 어떤 사인입니까?”
내 물음에 랜디 존슨은 간단하게, 안젤라 쉴즈는 꽤 자세하게 대답했지만, 나는 랜디 존슨처럼 간단하게 받아들였다.
사진작가와 모델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딱 그 관계일 뿐이었는데, 중요한 건 랜디 존슨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안젤라 쉴즈와 사진 작업을 할수록 자신의 커리어가 쌓이기에 그녀와의 불편한 동행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꽤 유명한 사진 작가라고 들었는데, 의외입니다.”
야구 선수로서 대성공을 거둔 랜디 존슨이고, 사진 작가로도 꽤 성공적인 길을 걷는 중이라고 들었다.
내가 한 말의 요지는 굳이 불편한 동행을 감수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유명할수록 좋은 모델들과 작업을 해야 하니까.”
랜디 존슨의 무뚝뚝한 대답에 나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건 무슨 뜻이지?”
내 반응에 랜디 존슨이 눈을 찌푸리며 날 바라봤다.
“아구계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울 수 있는 전설적인 분께서 사진계를 위해 헌신하는 걸 보니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그 외 다른 뜻은 조금도 없었으니 기분 상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에 랜디 존슨은 사과까지 할 것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저… 간단하게 뭐라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면 안 될까요?”
안젤라 쉴즈는 배가 고프다는 듯 나와 랜디 존슨에게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약속 장소가 다저 스타디움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내가 간단하게 먹을 만한 것들을 사올 수밖에 없었다.
“햄버거 괜찮겠습니까?”
“저 햄버거 무척 좋아해요! 고마워요! 잘 먹을 게요!”
모델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햄버거를 먹는 안젤라 쉴즈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랜디 존슨에게도 햄버거를 건네줬다.
“예전에는 참 많이 먹었지.”
오늘 만남에서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랜디 존슨도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안젤라 쉴즈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것저것 내게 쉬질 않고 질문을 해왔다.
< 『해외편 - 13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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