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38』 >
『해외편 - 138』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에 저절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글러브로 가슴을 가렸다.
문제는 공을 잡는 볼 집이 아닌 손바닥 부분으로 공을 막았다는 점이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들어 반사적으로 글러브에서 손을 빼냈다.
흔하게들 말하는 총알과도 같은 타구의 속도는 대략적으로 100마일을 기본적으로 상회한다.
한 해에 가장 빠른 타구들의 경우 최소 115마일에서 120마일을 넘기기까지 한다.
투수가 던지는 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빠르기다.
지미 곤잘레즈의 타구는 대략적으로 100마일 이상으로 빨랐다.
무엇보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준비 동작부터 던지는 순간까지 집중해서 지켜보는 타자와 다르게 투수의 경우엔 공을 던지고 난 직후 타구가 곧장 날아오니 그 빠르기는 단순 비교로 따질 수가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투수는 공을 던지고 나서 끝까지 자신의 공을 지켜봐야만 한다.
“지혁아!”
포수인 형수가 가장 먼저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마운드로 달려왔다.
동시에 야수들도 마운드로 모여들었고, 더그아웃에서는 게레로 감독이 가장 먼저 달려 나왔으며, 뒤이어 투수 코치와 의료진까지 뛰쳐나왔다.
“다치지 않았어?”
형수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이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척의 반사신경이 좋지 못했다면 큰 사고가 났을 거야.”
코리 시거의 말에 다른 야수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 좀 보여주게.”
게레로 감독에게 손바닥을 내밀자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잠깐 사이에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제가 살펴보도록 하죠.”
의료진이 곁으로 다가오자 게레로 감독이 살짝 옆으로 비켜섰다.
“어떻습니까?”
손바닥을 꾹꾹 누르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등 의료진의 간단한 촉진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손바닥 엄지손가락 아래의 두툼한 부분에 공을 맞았기 때문인지 그곳을 건드릴 적마다 절로 눈가가 일그러졌다.
“다행스럽게도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의료진의 말에 게레로 감독과 투수 코치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눈빛을 보였다.
“단순 타박상 정도로 생각하면 됩니다만, 통증이 계속해서 지속된다면 병원에서 자세하게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의료진의 말에 누구보다도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이닝까지 던져보고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공을 던지는 손은 어차피 왼손이다.
오른손은 글러브를 끼고 있는 손일뿐이다.
투구를 함에 있어 아주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반대로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약간의 통증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의료진의 말처럼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저 손바닥에 강한 충격을 받은 단순 타박상 정도로 밖에 생각 들지 않았기에 성급하게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정말 괜찮겠나?”
게레로 감독은 절대 무리할 필요 없다는 듯 날 바라봤다.
당장 승리를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경기도 아니었으니까.
“통증이 심해지거나, 투구에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곧바로 교체 요청을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게레로 감독은 내가 아닌 의료진을 바라봤다.
끄덕.
그 정도는 괜찮다는 듯 의료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게레로 감독도 알겠다며 대답했다.
“자네 뜻을 존중하겠네. 하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더 심해지거나, 투구에 문제가 있다 판단이 든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교체를 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게.”
“알겠습니다.”
게레로 감독은 이어서 의료진에게 간단하게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간단한 치료만이라도 하라고 했다.
의료진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가볍게 손바닥 주변을 마사지하듯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주심이 다가왔다.
“경기를 속행해야 하니 지속적으로 치료가 필요하다면 교체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주심의 말에 게레로 감독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군소리 없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정말 괜찮은 거지? 괜히 무리하지 말지?”
“괜찮아. 누구보다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내 대답에 형수는 알겠다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직까지도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확실히 처음보다는 훨씬 좋아진 상태였다.
‘글러브로 막지 못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가슴에 정통으로 타구를 맞았다면 아마도 생각보다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얼굴로 타구가 날아들었거나, 무릎과 같은 곳이었다면?
상황에 따라서는 그대로 시즌 아웃, 심한 경우에는 야구 인생 자체가 끝날 수도 있었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새삼 마운드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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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을까?”
정혜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운드 위의 차지혁을 바라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지혁이 공을 던지고, 그 공이 다시 되돌아오기까지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놀라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교체를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괜찮은 모양이야.”
에바가 정혜영을 안심시켜주고 있었지만, 놀라긴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던진 공에 의외로 크게 부상을 입는 투수들이 많다.
아무리 차지혁이 위력적인 공을 던진다 하더라도 부상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운동선수의 최대 약점이 바로 부상이다.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며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부상 한 번으로 기량이 반토막 나거나, 은퇴를 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세계가 바로 운동선수들의 인생이다.
현재 차지혁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는 투수인 건 사실이지만, 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지거나, 은퇴를 하게 된다면 그저 한 순간 반짝했던 비운의 선수로 기억될 뿐이다.
‘드라이브(drive)성 타구라서 다행이었어. 만약 코앞에서 바운드가 됐다거나, 타구의 방향이 하체 쪽으로 향했다면 정말 큰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으니까.’
타구가 직선으로 날아간 것이 그야 말로 행운이라 여기는 에바였다.
“아직도 심장이 떨려서 도저히 못 보겠어.”
정혜영의 말에 에바가 그녀의 손을 잡아줬다.
“오늘 경기의 승패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차지혁 선수라면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공을 던지려고 하지 않을 테니 괜찮은 걸 거야.”
“그렇겠지?”
언론과의 인터뷰, 이번에 제작되어 방송된 다큐까지 차지혁은 누구보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몇 번이나 피력했었다.
그런 차지혁을 두고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없다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에바는 그런 비난을 옳지 못하다고 여겼다.
팀을 위해 희생을 한다?
말은 좋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희생해서 부상을 입거나, 기량이 떨어지면 팀은 언제든 선수를 방출하거나 트레이드 시켜버릴 수 있었다.
프로는 결국 결과로 말을 할 뿐이다.
희생정신 조금 부족하다고 실력 좋은 선수를 싫어하는 팀은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 정말 팬이라 자처한다면 팀을 위한 희생정신도 좋지만, 그보다 더 우위에 놓을 수 있는 건 오래오래 그 선수가 팀의 일원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현역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운드 위에서 다시 투구를 시작한 차지혁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주변에서 차지혁을 걱정하던 다저스의 홈팬들이 하나, 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향해 격려의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다.
“오늘 경기가 중요한 승부처도 아닌데 왜 척에게 계속 던지게 하는 거야? 당장 척을 교체시켜!”
“척은 우리 다저스의 보물이라고! 함부로 굴리지 말란 말이야!”
“이봐! 척!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으니까 적당히 내려가라고! 나는 네가 포스트 시즌과 월드 시리즈에서 던지는 모습을 보고 싶단 말이야!”
일부 팬들은 차지혁을 보호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멀쩡하게 보여도 투수가 몸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 알기에 하는 팬들의 조언이었다.
‘과연 데뷔 시즌에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가 또 있었을까?’
에바는 다저스 팬들의 차지혁 사랑에 감탄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차지혁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필리건이라며 과격하기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팬들이지만, 차지혁과 같은 투수라면 그 어떤 구단의 팬들보다도 격렬하게 사랑을 해줄 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성적이 조금만 떨어지면 그 사랑이 애증으로 변해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하겠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선수들이라면 누구나가 느끼는 기분일 것이다.
“미국 여자들은 모두 저렇게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는 거야?”
에바는 정혜영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들이 앉은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랜디 존슨과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다운 한 미녀, 안젤라 쉴즈가 꽤나 열정적으로 차지혁을 응원하고 있었다.
근래 가장 뜨겁게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모델인 안젤라 쉴즈를 모를 에바가 아니었다.
“모델인가? 엄청 예쁘네.”
정혜영의 말에 에바가 픽 웃었다.
“혜영, 너도 상당히 예뻐. 그러니까 부러워할 것 없어.”
“그래? 에바도 무척이나 예쁜 거 알고 있지?”
에바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다시 안젤라 쉴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경기 직전 랜디 존슨과 함께 존재감을 뽐냈었던 안젤라 쉴즈였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하게 차지혁을 응원하며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꽤 차지혁에 대한 팬심이 깊은가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운동 선수와 모델.
너무나 흔해빠진 조합이지만, 그만큼 쉽게 이뤄지는 조합이기도 했다.
‘안젤라 쉴즈가 차지혁 선수에게 대쉬를 한다고 하더라도 받아주지 않겠지? 분명히 그럴 걸야. 차지혁 선수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생각을 하던 에바는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나싶어 고개를 흔들고는 경기에 집중했다.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차지혁은 보란 듯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8번 타자 세바스티안 로버츠와 선발 투수이자 9번 타자인 가렛 글리슨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당당하게 마운드를 내려갔다.
모두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던 6회 초 LA 다저스의 수비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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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으로 돌아오니 가장 먼저 게레로 감독이 손부터 내밀었다.
“손 좀 보여주게.”
오른손을 내밀자 게레로 감독은 손을 꽤나 자세하게 살펴보다가 가볍게 손바닥을 눌렀다.
“통증은 없는 건가?”
“약간 남아 있기는 하지만,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게레로 감독의 표정이 한결 밟아졌다.
“알겠네.”
게레로 감독을 지나쳐서 더그아웃 한 켠에 엉덩이를 깔고 앉자 기다렸다는 듯 투수 코치가 다가왔다.
그 역시도 내 손부터 살펴봤고, 크게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맥브라이드 단장이 직접 전화까지 걸어서 오늘 경기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자네를 교체시키라고 지시를 했네.”
“예?”
“내가 지금까지 다저스에서 코치로 일한지 5년이 넘었지만, 맥브라이드 단장이 경기에 직접적으로 선수 교체를 지시한 적이 없었기에 상당히 충격적이었네. 말은 하지 않아도 감독도 꽤 기분이 좋지 않을 거야.”
게레로 감독을 다시 바라봤지만, 그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투수 코치의 말처럼 맥브라이드 단장의 행동으로 인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괜히 저 때문에 감독님께서 기분이 상했겠군요.”
“자네 잘못은 아니지. 하지만 오늘 일을 꼭 기억해줬으면 하네. 자네가 우리 다저스에 얼마나 소중한 선수인지 말이야.”
투수 코치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게레로 감독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손은 괜찮은 거야?”
필 맥카프리가 곁에 앉았다.
평소 딱히 대화를 자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그의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공을 던지는 손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다행이군.”
진심인지, 거짓인지를 굳이 파악하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네가 부상으로 빠지면 그만큼 팀에 손해가 크니 무리하지 말고 던져.”
이건 진심이었다.
어떤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 말을 남기고 필 맥카프리가 몸을 일으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곁에서 맴돌고 있던 토렌스가 다가왔다.
“맥카프리가 뭐라고 그래?”
“부상당하지 말라고 하던데요?”
“그래?”
토렌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맥카프리도 알고 있는 거지. 네가 밉더라도 네가 없으면 월드 시리즈는커녕 지구 우승조차도 당장 장담하기 힘들다는 걸.”
“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맥카프리는 내년이 계약 마지막해거든. 구단에서는 맥카프리와 연장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데, 계약 기간과 조건 때문에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나봐. 그것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는 맥카프리가 올 시즌이 끝나고 이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어쨌든 그렇게 떠나기 전에 우승 반지 한 번 껴보고 싶은 거겠지. 그래도 자신의 야구 인생에 있어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팀인데 우승 한 번 못해보면 그렇잖아? 그러니 싫어도 네가 필요하다 판단을 한 거겠지.”
“그런가요?”
“분명 그럴 거야. 그리고 그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야. 너야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지만, 몇몇 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잖아?”
나이가 들어 당장 내년 시즌조차 장담할 수 없는 선수,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유망주들로 인해 팀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선수, 계약 기간은 끝나 가는데 협상은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는 선수 등 일부 선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모두를 위해서라도 부상은 절대 당하지 말도록 해. 대놓고 몸을 사린다 하더라도 널 욕할 선수는 아무도 없으니까 차라리 그렇게 해. 대신, 마운드에서는 지금처럼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만 보여줘.”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웃는 토렌스의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요.”
< 『해외편 - 13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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