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36』 >
『해외편 - 136』
26.8.
무슨 수치냐면 오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발 타자들의 평균 연령이다.
놀라울 정도로 젊은 팀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
젊다는 건 그만큼 열정적이라는 뜻이고, 발전 가능성 또한 높다는 말이다.
반대로 노련하지 못하고 이미 최고의 성장점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기량이 부족하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는 부족한 경험과 연륜을 채워줄 노련한 코치진이 존재했다. 덕분에 메이저리그 30개의 팀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젊은 팀으로 성공적인 리빌딩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번 타자 브라이언 케니시는 24살이지만, 벌써 2년 동안 주전 멤버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넓은 수비 범위, 민첩한 몸놀림, 빠른 상황 판단 능력까지 향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그러나 브라이언 케니시와 같은 타자는 내게 있어 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부웅!
“스윙! 타자 아웃!”
브라이언 케니시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파워가 부족한 타자에게는 가차 없다.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로 승부를 한다.
어설프게 변화구를 던지며 유인구 승부를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욱이 투수 친화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더 과감하게 승부를 할 수 있었다.
‘샘 브루노아. 브라이언 케니시와 비슷한 케이스의 타자.’
역시 고민할 것 없었다.
형수에게도 미리 말을 해뒀다.
한 방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타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타자들에 대해서는 과감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빠른 승부를 가져가겠다고.
투수와 타자 간에 승부가 길어질수록 불리한 건 투수 쪽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타자들은 젊다.
젊기 때문에 그만큼 패기롭다.
한참이나 어린 투수가 정면으로 승부를 해오는데 그걸 피한다?
메이저리거라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퍼엉!
“스트라이크!”
샘 브루노아가 깜짝 놀라며 포수 미트를 바라봤다.
몸 쪽으로 바짝 붙어서 날아오던 공이 살짝 휘어지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버리니 타자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겠지.
체크 스윙으로 몸을 풀고 다시 타자 박스에 들어선 샘 브루노아는 오히려 홈베이스 쪽으로 몸을 붙이고 섰다.
몸 쪽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그럴 리가. 어디까지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샘 브루노아의 행동에 형수는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포심 패스트볼을 요구해왔다.
좌타자에게 좌투수가 던지는 몸 쪽 패스트볼은 공포 그 자체다.
타석에서 몸 쪽으로 붙는 사람이 있다면 내 할머니라 하더라도 맞춰버릴 거다.
돈 드라이스데일이 했던 말이다.
위협구와 빈볼을 잘 던지기로 유명했던 돈 드라이스데일처럼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굳이 빈볼을 던질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
쇄애애애액.
퍼- 어엉!
“스트라이크!”
타석에 서 있던 샘 브루노아는 움찔했던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 과감하게 몸 쪽으로 승부를 해오는 내 투구 때문인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날 죽일 듯 노려봤다.
내 입장에서는 꽉 찬 몸 쪽 스트라이크를 던진 것이지만, 샘 브루노아의 입장에서는 도발적인 위협구로 여겨질만했으니까.
또 다시 몸 쪽으로 바짝 붙어서는 샘 브루노아의 모습에 나 역시 살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해보자 이건가?’
이런 내 생각과 다르게 형수는 몸 쪽으로 바짝 붙이는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굳이 상대의 도발에 넘어갈 필요가 없다는 듯 형수는 무조건 체인지업을 던지라고 했고, 그 역시 나쁜 결정이 아니었기에 주문하는 대로 공을 던져줬다.
부- 웅!
펑!
“스윙! 타자 아웃!”
샘 브루노아는 체인지업에 속절없이 헛스윙을 하고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노려봤다.
눈빛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느껴졌다.
비겁하게 승부를 피했다고 여기겠지.
그게 투수와 타자의 차이다.
투수는 자신의 뜻대로 승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자는 그럴 수가 없다.
투수와 타자간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투수니까.
투수에게 비겁하다?
고의사구를 던졌을 때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샘 브루노아가 씩씩 거리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타석에는 3번 타자 더그레이 세인트가 자리를 잡고 섰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골수팬의 아들로 태어난 더그레이 세인트는 18살에 4라운드 상위 지명까지 포기하면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을 한 괴짜다.
아버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광팬이었다고 스스로 증명했으니 돈이 아닌 철저한 꿈을 좇은 낭만적인 선수라 부를 만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은 그의 행동처럼 낭만적이지 못했다.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
투수로서 명확하게 한계가 보인다는 구단의 평가에 더그레이 세인트는 미련없이 타자로 전향을 했다.
지독한 연습벌레.
더그레이 세인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을 한다.
5년의 긴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메이저리그에 입성을 한 더그레이 세인트는 불과 3년 만에 팀의 중심 타자이자, 간판 타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중이다.
교본과도 같은 자세로 타석에 서 있는 더그레이 세인트의 모습에 형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초구 사인을 보내왔다.
‘커브?’
놀랍게도 형수가 요구한 초구는 파워 커브였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낮은 코스의 파워 커브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파워 커브를 던지지 않았으니 충분히 더그레이 세인트를 상대로 손쉽게 스트라이크 하나를 뺏어 올 수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퍼엉!
“스트라이크!”
다행스럽게도 초구부터 커브를 던질 줄 몰랐는지 더그레이 세인트의 배트가 꼼짝도 하질 않았다.
2구로는 바깥쪽 아래로 걸치고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딱.
기계와도 같은 가장 이상적인 스윙 궤적과 함께 타구가 3루 선상 밖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자신이 때려낸 타구의 방향, 스윙 폭 등을 계산하는 듯 더그레이 세인트는 타석에서 살짝 자세를 바꿔 섰다.
‘계산기라고 하더니.’
더그레이 세인트의 또 다른 별명이 계산기다.
타석에 설 때마다 투수가 던진 공을 계산해서 스탠스의 위치를 조정하고 스윙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놀라운 모습으로 무수히 많은 안타와 홈런을 생산해내는 더그레이 세인트는 약간 기계와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약점이라면…….’
더그레이 세인트에게는 크게 부각되는 약점이 없다.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 대단하지 않기에 타격 센스라거나, 파워가 압도적이지도 못하다는 게 유일한 단점으로 꼽힌다.
단지 그런 단점을 혹독한 연습으로 일정부분 상쇄시키고 있을 뿐이다.
컷 패스트볼 사인을 주는 형수에게 고개를 저었다.
‘구위로 한 번 부딪혀보자.’
메이저리그 3년 차인 더그레이 세인트는 통산 홈런수가 86개에 이른다.
평균으로 따지면 28.6개다.
충분히 파워를 갖춘 거포라 부를만하지만, 경기가 있기 전 더그레이 세인트의 영상을 분석하고 앞서 있었던 경기들을 관전한 결과 파워보다는 정확하게 타격을 할 수 있었던 스윙 메커니즘 덕을 본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내 구위를 믿고 모험을 걸어볼 만한 상대였다.
문제는 과연 어느 곳에 공을 던질 것이냐다.
‘몸 쪽 높은 코스.’
통상적으로 가장 치기에 까다로운 코스 중 하나다.
괴력을 발휘하는 괴물 같은 타자들에게는 맛있는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코스겠지만, 더그레이 세인트와 같은 타자에게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더그레이 세인트의 경우에 몸 쪽 높은 코스의 공을 장타로 만들어 낸 비율이 그리 높지 못했다.
와인드업을 하고 곧바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졌다.
따- 악!
타구가 순식간에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역시.’
우익수 빌 맥카티가 조금씩 뒤로 이동하더니 워닝 트랙 앞에서 안정적으로 타구를 잡아냈다.
“넘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형수가 마스크를 벗으며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확신은 못했지만,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
“조심해야지.”
“어쨌든 수고했다. 1회부터 기분 좋은 시작이다. 아주 깔끔했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수고했다며 격려를 해주었다.
자리에 앉으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수들이 수비를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탄탄한 수비력이다.
젊은 선수들이라 그런지 각자의 수비 범위가 상당히 넓었고, 몸놀림이 빠르고 민첩했기에 팬들은 그물망 수비라고 표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최고의 수비력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씩 발생하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확실히 부족했다.
이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경험이 쌓여야 늘어나는 부분이었기에 딱히 흠이라고 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점만 제외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수비력은 내셔널리그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혔기에 투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안하게 투구를 할 수 있는 팀이었다.
든든한 야수들을 등 뒤에 세우고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발 투수 가렛 글리슨의 첫 번째 상대는 LA 다저스 부동의 1번 타자로 완벽하게 자리를 차지한 던컨 카레라스였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두 번째는 볼, 세 번째는 파울.
가렛 글리슨은 스트라이크와 볼을 적절하게 뒤섞으며 던컨 카레라스를 상대했지만, 결국 7구만에 안타를 허용하며 1회 선두 타자부터 출루를 허용하고 말았다.
던컨 카레라스는 빠르다.
매년 30개 이상의 도루를 항상 해왔을 정도로.
덕분에 게레로 감독으로부터 재량껏 도루를 허용하는 그린 라이트(green light)를 받은 유일한 선수였고, 그 기대에 부흥이라도 하듯 올 시즌에는 벌써 16개나 되는 도루를 성공시키며 커리어 하이를 충분히 일궈낼 수 있을 정도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2루를 훔쳐버리니 투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우투수인 가렛 글리슨이라면 1루에서 언제든 도루를 할 준비를 마친 던컨 카레라스가 머릿속에서 쉬질 않고 맴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표정 변화도 없네.’
가렛 글리슨의 최대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탄탄한 체력이다.
주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분명 크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타자를 만나더라도 자신 있게 자신의 공을 던지다가 주자만 생기면 어처구니없는 볼질을 하거나, 실투를 반복하며 무너지는 투수가 있다.
소위 멘탈이 약하다 평가를 받는 투수다.
반대로 주자가 있건, 없건 한결같이 자신의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있다.
나 역시 그에 해당하는 투수고 가렛 글리슨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아무리 멘탈이 좋다 평가를 받아도 홈런을 맞으면 투구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렛 글리슨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처음처럼 똑같은 투구를 했으며, 더불어 매년 평균 200이닝을 항상 넘어서는 이닝이터로서 강철 체력의 투수로도 유명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7년 동안 부상으로 한 달 이상 로테이션에서 빠진 적도 없었고, 상황에 따라서는 등판 간격을 하루 정도는 앞당기는 것까지도 가능할 정도의 체력과 튼튼한 내구성을 지닌 가렛 글리슨이었기에 매년 스토브 리그가 시작되면 항상 이적설에 이름을 올리는 투수 0순위였다.
2번 타자 크레이그 바렛을 상대로 가렛 글리슨이 초구를 던졌다.
“뛴다!”
1루 주자였던 던컨 카레라스는 초구부터 주저없이 2루를 향해 내달렸다.
도루를 의식해서였는지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 미트에 꽂혔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포수 세바스티안 로버츠가 앉은 자세에서 그대로 2루에 송구를 했지만, 던컨 카레라스의 발이 살짝 빨랐다.
“세이프!”
2루심의 판정에 다저스 홈팬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반대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원정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전설이 되어버린 포수 야디어 몰리나 이후 이렇다 할 포수를 육성하지 못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그나마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포수가 세바스티안 로버츠였지만, 냉정하게 실력 면에서는 리그 평균 수준 밖에 되질 않았다.
2루를 훔친 던컨 카레라스를 바라보다 2구를 던지는 가렛 글리슨.
바깥쪽으로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날아온 공을 그대로 때려내는 크레이그 바렛과 타격음이 울리자 곧바로 3루를 향해 질주하는 던컨 카레라스.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선수들 모두 벌떡 일어나서 타구를 좇았다.
타구는 1루수 헤일리 하비의 글러브를 살짝 넘기며 안타가 되었다.
3루 코치가 마구 휘젓는 팔을 보며 던컨 카레라스는 3루 베이스를 밟고는 곧장 홈으로 내달렸다.
“나이스!”
1회부터 아주 쉽게 득점에 성공하는 LA 다저스였다.
실점을 하는 순간에도 가렛 글리슨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멘탈이 강한 건지, 감정이 없는 건지 모르겠네.”
쉽게 1점을 냈지만, 이후는 의외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해외편 - 13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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