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31화 (131/221)

< 『해외편 - 131』 >

『해외편 - 131』

해발 1,610m의 고지대, 낮은 공기 저항과 습도로 인해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장을 통틀어 가장 많은 홈런을 양산해 내는 쿠어스 필드는 오늘도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약간 덥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날씨 한 번 참 좋… 네.”

형수가 내 곁에서 어색하게 웃었다.

기온이 올라가면 자연적으로 타구의 비거리도 상승한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한층 더 투수에게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주는 쿠어스 필드였다.

7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3.86.

쿠어스 필드의 평균자책점이 4.78인 걸 생각하면 충분히 호투를 했다고 할 만하지만, 쿠어스 필드에 오기 전까지의 평균자책점이 0.49.

한 경기 만에 평균자책점이 두 배 가까울 정도인 0.87까지 치솟았으니 나 역시 쿠어스 필드의 높은 벽을 넘기란 쉽지 않았다.

“바람도 좀 불고 오늘도 고생 꽤나 하겠다.”

눈앞에 고생길이 훤하다는 듯 형수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조차 외야 쪽으로 향하면 투수들은 덜덜 떨어야 하는 쿠어스 필드였으니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와 바람까지 더해진 오늘은 지난 경기보다 더 혹독할 것임을 예고하는 듯 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나자 투수 코치가 오늘 경기 양 팀 선발 라인업을 알려줬다.

“카터 노드윈드가 선발인가요?”

“복귀전이지.”

콜로라도 로키스의 에이스, 카터 노드윈드가 드디어 돌아왔다.

작년 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하면서 작은 수술과 재활을 꾸준하게 거쳐 이제야 에이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돌아온 거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

투수 코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쿠어스 필드의 철벽.

카터 노드윈드의 별명이다.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쿠어스 필드에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투수력을 보여주는 선수가 바로 카터 노드윈드다. 그는 쿠어스 필드 통산 평균자책점이 2.07로 말도 안 되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웃긴 건 카터 노드윈드의 메이저리그 통산 평균자책점은 4.13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특이한 투수긴 하지.’

올해로 29살인 카터 노드윈드는 어느 구단을 가더라도 2선발은 확실하게 꿰찰 수가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4년 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을 했다.

모든 투수들이 거부하는 콜로라도 로키스였지만, 카터 노드윈드에게는 정 반대였다.

스스로 쿠어스 필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 더 편하다고 했을 정도로 그는 이적을 하고 난 이후에도 쿠어스 필드에서만큼은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의 모든 투수들과 비교해 절대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콜로라도 로키스 입장에서는 완벽한 승리 투수를 보유하고 있으니 좋았고, 카터 노드윈드로서는 상대 투수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승수를 챙길 수 있으니 좋았다.

승률 9할.

카터 노드윈드는 현재 쿠어스 필드에서만큼은 절대적인 강자였다.

저번 경기처럼 7이닝 3실점을 하게 된다면?

‘시즌 첫 번째 패배가 되겠지.’

아직까지 패배가 없는 내게 오늘은 가장 위험한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아악!”

오늘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니 토렌스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토렌스였기에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깨를 다친 거야?”

배터리 코치의 물음에 토렌스가 그런 것 같다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배터리 코치는 토렌스를 데리고 구단 의료진에게 향했다.

“어쩌다 저렇게 된 거야?”

누군가의 물음에 다른 곳에서 곧바로 답이 나왔다.

“송구를 하다가 갑자기 저렇게 쓰러지던데.”

모든 야구 선수들은 어느 순간 공을 던지다가 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부분에 정확하게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순 없지만, 중요한 건 저렇게까지 통증이 크게 느껴졌다는 건 장기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무척이나 크다는 사실이다.

토렌스의 빈자리는 크다.

현재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포수는 형수와 에릭 소리아 두 사람 뿐이다.

그 중 집중적으로 토렌스의 후계자로 육성 중인 백업 포수는 형수였으니 그가 오늘 경기부터 시작해서 꾸준하게 마스크를 쓸 기회가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형수가 코치로부터 어떤 말을 전달 받고 있었다.

형수가 둘도 없는 친구라 하더라도 경기 직전 갑작스럽게 포수가 바뀌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늘 느낌이 별로 좋지 않은데.’

쿠어스 필드, 그리고 철벽이라 불리는 카터 노드윈드, 토렌스의 공백.

여러 가지로 오늘 승리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카터 노드윈드가 마운드에 오르자 콜로라도 로키스 홈 팬들의 환호성이 구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에이스의 복귀.

팬들에게 있어 그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과연 또 있을까?

카터 노드윈드는 홈 팬들의 격한 환영 인사에 모자를 벗어 가볍게 흔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에 팬들은 더욱더 열광적으로 카터 노드윈드를 응원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댔다.

쿠어스 필드에서 공을 던지면 기본적으로 구속이 상승한다.

이 한 가지의 사실만 놓고 본다면 어째서 쿠어스 필드가 투수들에게 불리할까 싶지만, 반대로 여기면 답은 나온다.

건조하고 낮은 밀도의 공기로 인해 저항을 덜 받아 구속은 분명 상승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구의 변화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막강한 패스트볼을 가진 투수라 하더라도 변화구를 던지지 않을 순 없다.

변화구는 말 그대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투수의 무기다.

그런데 변화구가 평소보다 밋밋하게 나간다면?

투수는 당연히 어설픈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을 던질 수밖에 없고, 타자는 자연스럽게 패스트볼을 노리고 자신 있게 스윙를 가져간다.

수 싸움에서부터 이미 타자에게 지고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라, 쿠어스 필드는 왼쪽 106m, 중앙 126m, 오른쪽 107m로 무척이나 크다. 그러나 해발 0미터의 구장과 비교하면 타구의 비거리가 10m가량 늘어나기에 실질적인 구장의 크기는 왼쪽 96m, 중앙 116m, 오른쪽 97m나 다름 없이 변한다.

그뿐인가?

홈런을 의식해서 구장의 크기를 넓혔더니 외야수들의 수비 범위가 무척이나 넓을 수밖에 없다. 그 영향으로 인해 안타가 잘 나오는 곳이기도 했으니 전체적으로 홈런과 득점이 무려 50%나 상승한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태양마저 타자에게 향하지 않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니 이리저리 아무리 봐도 쿠어스 필드만큼 타자들에게 최적의 조건을 주는 곳이 없었다.

퍼엉!

“스트라이크!”

90마일의 빠른 고속 슬라이더에 던컨 카레라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카터 노드윈드의 고속 슬라이더는 쿠어스 필드에서 말 그대로 무적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여기에 최고 구속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까지 던질 수 있는 카터 노드윈드는 순식간에 던컨 카레라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부상의 후유증이 조금도 없다는 완벽한 복귀전을 예고했다.

이어진 대결에서도 카터 노드윈드는 삼진과 땅볼을 이끌어내며 안정적으로 1회를 마쳤다.

“지혁아, 가자!”

형수가 호기롭게 나서며 날 이끌었다.

갑작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형수였지만, 그런 상황을 싫어할 리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선발로 경기에 출장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쁘게 여기고 있을 거다.

마운드에 서니 확실히 다른 곳과는 공기부터 달랐다.

공의 표면도 신경이 쓰일 정도로 미끄럽게 느껴졌다.

그나마 휴미더(Humidor)에서 공을 보관해왔기에 이 정도다.

쿠어스 필드에는 기온과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일명 야구공 냉장고라 불리는 휴미더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덕택에 쿠어스 필드의 악명이 아주 조금은 수그러졌다고 했다.

퍼엉!

패스트볼의 구속은 확실히 다른 곳보다 더 나왔지만, 손가락 끝에서 실밥이 긁히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여기서 제구력까지 떨어진다면 정말 최악 중 최악.

다행스럽게도 제구력에는 문제가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타석에 타자가 들어섰다.

1번 타자는 오스카 맥스였다.

올 시즌과 동시에 콜로라도 로키스의 부동의 1번 타자였던 사토시 슌은 오늘 경기에서 8번타자에 배치가 되어 있었다. 지난 경기까지도 1번 타자로 타석에 섰었으니 나 때문에 처음으로 타순을 변경한 것 같았다.

형수가 사인을 보내고 그대로 초구를 던졌다.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오스카 맥스의 무릎 높이를 지나가며 그대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냈다.

쿠어스 필드에서 투수가 살아나려면 최대한 낮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낮은 볼이 능사는 아니지만, 낮은 코스의 공이 완벽하게 제구가 되면 그날은 쿠어스 필드라 하더라도 해 볼만 했다.

2구는 컷 패스트볼로 역시나 낮은 코스의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승부는 빠르게.’

형수와 경기 전 말을 맞춰 놓았다.

고지대인 쿠어스 필드에서는 체력 소모가 굉장히 높았기에 모든 선수들이 경기가 길어질수록 힘들어한다.

특히, 투수와 포수는 더욱 심했다.

오죽하면 더그아웃에 산소 호흡기가 설치되어 있을까.

결정구로 형수와 내가 선택한 공은 파워 커브였다.

평소 파워 커브의 낙차폭이 30cm였다면, 쿠어스 필드에서는 25cm로 줄었기에 그 부분을 반드시 머릿속에 넣어둬야만 한다.

‘굳이 존을 통과할 필요는 없어.’

승부는 빠르게 가져가지만, 굳이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구겨 넣을 필요는 없었다.

다른 구장이었다면 변화구의 변화를 믿고 존을 공략했겠지만, 쿠어스 필드에서만큼은 그런 모험을 걸 수가 없었다.

지난 경기에서 그렇게 투구를 했다가 홈런을 맞은 것으로 경험은 충분했다.

단순한 외야 뜬공도 홈런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부웅!

타자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외야로 공만 띄워 올리면 어느 정도 승부를 걸어볼 만한 곳이었기에 1번 타자임에도 오스카 맥스는 아주 힘 있는 스윙을 날렸다.

보기엔 참 바보스러운 스윙일지 모르지만, 투수 입장에서는 저런 스윙에 잘 못 걸리면 그대로 홈런이 되어버리니 참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2번 타자와의 대결에서는 유격수 앞 땅볼을 이끌어 냈고, 3번 타자인 존 킹슬리를 상대로는 6구까지 던지고 나서야 1루수 땅볼로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최대한 몸을 편안하게 만들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2회 초, 마운드에 오른 카터 노드윈드는 선두 타자인 트라웃에게 초구만에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작정하고 노리고 들어간 트라웃이었지만, 정확하게 타격이 이뤄지지 않아서 장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아무리 카터 노드윈드가 쿠어스 필드의 철벽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실점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상대 투수에 비해 그 점수가 적을 뿐.

2회가 시작되면서부터 선두 타자가 출루한 이상 충분히 득점을 기대해볼만 했다.

모두의 기대를 짊어지고 타석에 선 미치 네이는 황당하게도 초구를 때리면서 유격수 정면으로 타구를 날려버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수비로 인해 순식간에 2아웃이 되고 말았다.

‘2구만에 2아웃이라니.’

마운드에 위에 서 있는 카터 노드윈드를 완전히 도와주는 꼴이었다.

완전히 찬물을 뒤집어씌운 분위기 속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형수였다.

빌 맥카티를 밀어내고 6번 타자에 배치된 형수는 상당히 신중한 자세로 카터 노드윈드와 대결을 펼쳤다.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좌우 폭을 이용하는 카터 노드윈드의 투구에 형수는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 1볼의 상황에 놓였다.

‘슬라이더만 조심하면 된다.’

결정구로 슬라이더일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카터 노드윈드가 가장 자신 있게 던지는 공이 슬라이더였으니까.

‘슬라이더다.’

내 예상대로 카터 노드윈드는 결정구로 그의 자랑인 고속 슬라이더를 던졌다.

타석에 서 있던 형수는 포심 패스트볼을 노린 듯 스윙을 하다가 자세가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억지로 배트 궤적을 비틀어냈다.

틱.

아쉽다는 눈빛을 보내는 카터 노드윈드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타석에서 물러나는 형수였다.

‘다음에도 슬라이더를 던질 확률이 높겠지.’

2스트라이크 1볼이라는 유리한 카운트였으니 카터 노드윈드로서는 빠지는 볼을 던지더라도 하나 정도는 유인구를 던질 이유가 충분했다.

어김없이 카터 노드윈드는 슬라이더를 던졌고, 다행스럽게도 형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카운트가 2-2인 상황이었기에 볼 하나 정도 여유가 있다지만, 카터 노드윈드로서도 여기서 볼을 던지면 풀 카운트 상황에서 아무래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니 분명히 여기서 승부구를 던질 가능성도 있었다.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무엇을 던질지 나조차도 쉽게 예상이 가질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카터 노드윈드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공의 구속이 다르다.

형수의 몸 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공은.

‘체인지업.’

오늘 경기 첫 번째 체인지업이 형수를 잡아먹기 위해 날아왔다.

그런 체인지업을 향해 형수는 이미 허리를 틀며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 『해외편 - 13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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