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29』 >
『해외편 - 129』
언론에서는 쉬질 않고 떠들었다.
약점이 없다 여겼던 나에 대한 공략법을 찾았다며 온갖 추측성 기사들을 실시간으로 쏟아냈다.
한편으로는 신인 투수인 내가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해왔구나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커트만으로 투구수를 늘린다면 솔직히 현존하는 그 어떤 선발 투수라도 긴 이닝을 소화할 수가 없게 된다.
아무리 투수가 뛰어나다 한 들, 명색이 메이저리그 타자들이었으니 자신의 타율마저 내던지고 커트만 하고자 한다면 투수로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문제는 경기 내용이다.
대다수의 메이저리그 팬들은 결코 원하지 않는 경기 내용이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가 추구해왔던 야구와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야구다.
거기에 고액 연봉자들이 즐비하는 구단들의 경우 선수들의 자존심이 워낙 세기에 쉽게 따라할 수도 없는 작전이었다.
콜 머먼트 감독과 같이 완벽하게 선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극소수의 감독들만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작전인 셈이다.
문제는 커트 작전을 펼치고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결국 패배를 했다는 사실이다.
4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둔 나를 7이닝 만에 그것도 2실점으로 끌어내리긴 했지만, 결과는 패배.
무엇보다 LA 다저스 언론과 팬들의 집중적인 조롱과 비난을 받아야 했기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언론과 팬들로서도 콜 머먼트 감독의 작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상당했다.
결과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커트 작전으로 인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는 소리다. 덧붙여 승리한다 하더라도 일부 팬들의 조롱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으니 실제로 공략법이라고 나온 것도 경기에서 매번 사용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똑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아야지.”
타자들이 커트만 하겠다고 하면 분명 힘든 경기가 된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도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면서 당하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통해 어느 정도 정면 돌파 방법도 찾았다.
다음부터는 상대팀에서 커트 작전을 펼쳐오면 그날은 6이닝만 막겠다는 생각으로 전력투구를 할 작정이었다.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간다면 과연 누가 승자일까?
적어도 내가 패자라는 말을 할 순 없을 거다.
그렇게 경기가 누적되면 결국 팬들의 원성이 높아질 것이고, 그때쯤이면 어느 감독도 나를 상대로 커트 작전을 펼칠 수가 없게 된다.
어느 순간 양념처럼 커트 작전을 들고 나올 수는 있어도 한 경기 전체를 끌고 나갈 순 없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쓰디쓴 패배라고 할 순 없어도 거칠 것 없이 달려가던 승리 행진이 멈춰지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 둘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역시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스팩이었다.
분명 내가 가진 투수로서의 스팩은 굉장히 뛰어났다. 하지만, 1년 동안 시즌 전체를 압도할 정도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에서 느낀 체력 부족이 그 첫 번째였다.
13이닝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외부적으로 내 체력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작정하고 전력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하니 한계 투구수가 명확하게 보였다.
90~100구.
중간 중간 완급조절을 하면서 던진다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트 작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던질 수 있는 투구수의 한계는 100구 언저리였다.
많다고 한다면 많을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체력을 더 길러야해.’
선발 투수에게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한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바탕이고, 더 넓게 보면 시즌 전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니까.
체력을 기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런닝이다.
하지만, 하루에 소화해야 할 훈련량이 정해져 있는 나에게 런닝 시간을 늘릴 수는 없었다.
시간이 아닌 과정을 변화시켜야 했다.
그 변화를 위해 구단 트레이너를 찾아갔다.
“인터벌 런닝이라고 아시죠?”
LA 다저스 구단 트레이너 코치, 존 슈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어트의 꽃이라 불리는 인터벌 런닝은 굉장히 많은 방법이 있지만, 요체는 간단하다.
전력질주와 가벼운 런닝을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운동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체지방 감소를 시킬 수 있으며 체력을 기를 수 있는 달리기 훈련으로 혼자서도 쉽게 할 수 있지만, 워낙 힘들다보니 전문적으로 육상을 하는 선수들을 제외하면 꾸준히 할 수 없는 훈련이었다.
효과만큼이나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정해진 시간 동안 효과를 보기에 이보다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하죠. 문제는 한 번 훈련을 한 선수들이 두 번 다시는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렇죠. 하하하.”
존 슈밀의 웃음 속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인터벌 런닝을 꾸준히 하게 되면 우선 놀라울 정도로 체력이 증가하죠. 인간의 체력이라 하면 크게 두 부분으로 분류를 할 수 있죠. 근력과 지구력. 크게 봤을 때 이 두 부분을 통틀어 체력이라고 하는데, 인터벌 런닝은 의외로 지구력뿐만 아니라 근력에도 상당한 효과를 주죠.”
달리는 것에서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존 슈밀의 말에 내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학문적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을 했기에 전체적으로 쉽게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요지는 충분히 전달을 받을 수 있었다.
“전력 질주를 통해 온 몸의 근력이 향상된다는 뜻입니까?”
“간단하게 핵심만 말하자면 그렇죠.”
기껏 길게 설명을 해놓고 내가 간단하게 물어버리자 존 슈밀이 어색하게 웃었다.
“단거리 육상 선수들의 체형을 떠올려보면 더 이해가 쉽죠.”
단거리 육상 선수들의 몸은 균형이 딱 잡혀 있는 근육질의 체형들이다.
폭발적으로 가속을 하며 온 몸의 근육의 힘을 쥐어짜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전력으로 달리는 것만으로 스프린터들처럼 좋은 몸을 가질 순 없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혹독하게 근력 훈련을 하니까요. 단지 인터벌 훈련을 통해 지구력만 길러지진 않는 다는 걸 말하는 거죠.”
파워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분간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내 물음에 존 슈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오늘부터 합니다.”
그렇게 간단한 런닝은 지옥의 인터벌 훈련으로 변형됐다.
단 2시간의 인터벌 훈련을 마치고 났을 때 내가 한 가장 첫 번째 생각은.
‘그만 둘까?’
아주 오랜만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과 폐는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훈련을 마친 내게 존 슈밀은 내일도 할 수 있겠냐며 물었는데, 그의 입가에 걸려 있는 웃음이 다른 방법을 찾을까 고민하던 내 결정을 한 순간에 지워버렸다.
훈련을 하겠다는 내 대답을 듣고 돌아서는 존 슈밀의 눈에는 과연 언제까지 버티는지 지켜보겠다는 듯 호기심이 가득했었다.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운동을 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니 서서히 체력이 회복되었다.
이제는 두 번째 구종 훈련을 할 때였다.
어제 선발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투구를 할 순 없었지만, 각종 영상 자료들을 분석하면서 이론적으로나마 구종에 대한 지식과 훈련 방법을 찾을 수는 있었다.
구단 내에 위치한 전력 분석실을 찾아가 내가 원하는 자료들을 이동용 저장장치에 카피를 떠서 집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개인 훈련장에 마련되어 있는 사무실 겸 영상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
“하아아아암.”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곁에 앉아 있던 카메라 감독이 하품을 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눈물을 손바닥으로 스윽 닦아낸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곁에 앉아 있는 항지연 PD에게 말했다.
“벌써 3시간째 저러고 비디오만 보고 있는데 저걸 굳이 찍어야 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걸 계속해서 찍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만 한 카메라 감독이었다.
“어차피 카메라를 고정시켜놔도 상관없으니까 우선은 찍어두고 나중에 적당하게 편집을 해야겠죠.”
지루하긴 솔직히 황지연 PD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차지혁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인터벌 런닝 훈련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날 정도였다.
‘그런 훈련을 매일 해야 한다니.’
황지연 PD로서는 차지혁이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힘겨워 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을 모두 채워가는 차지혁의 모습에서 그가 어째서 세계 최고의 프로 야구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우뚝 서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독종도 저런 독종은 없을 거야.’
괜히 온 몸이 으스스해지는 황지연 PD였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카메라 감독의 말에 황지연 PD도 살짝 허기가 느껴졌다.
그때, 차지혁이 앉아 있는 사무실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비디오 영상에 완전히 빠져 있던 차지혁은 시선을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시키며 손만 움직여 수화기를 들었다.
아주 짧은 통화가 끝나고 차지혁이 비디오 영상을 종료시켰다.
사무실을 나와 가볍게 몸을 풀며 빠르게 스트레칭을 한 차지혁이 황지연 PD와 카메라 감독에게 다가왔다.
“점심 식사 하러 가시죠.”
“예!”
내 말에 가장 먼저 카메라 감독이 벌떡 일어나며 카메라를 챙겨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늘어난 인원수만큼이나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배고프시죠?”
가정부인 주혜영의 음식 솜씨는 첫날부터 황지연 PD는 물론 카메라 감독과 신입 작가의 입맛까지 완벽하게 사로잡은 상태였다.
“전 오늘 경기가 있어서 먼저 먹고 있었어요. 어서들 앉으세요.”
형수의 밥그럿은 벌써 반이나 비워져 있었다.
나야 어제 선발로 경기를 뛰었지만, 형수는 달랐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 3연전에서 언제든 경기에 바로 투입이 될 수 있도록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기에 점심만 먹기 위해 집에 들른 거였다.
“저도 배가 고파서 먼저 먹었습니다.”
신입 작가까지도 한 자리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황지연 PD와 카메라 감독도 빈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역시 혜영 씨 솜씨는 최고입니다!”
카메라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들며 칭찬을 시작하자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주혜영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언제 미국에 왔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형수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언니 혼자 아이를 키우시는 거예요?”
신입 작가의 물음에 주혜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혜영의 나이는 32살.
10년 전,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온 주혜영은 3년 동안 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고아원에서 자라 가족이 없는 주혜영은 자신의 가정이 생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총기 사고가 발생하면서 남자친구가 3년 전에 죽고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혜영이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황지연 PD의 물음에 주혜영은 5살이고, 이름은 힐리나, 한국 이름으로는 소은이라고 했다.
“그럼 누님이 여기서 일하실 때는 누가 소은이를 봐주는 겁니까?”
형수의 물음에 주혜영이 다행스럽게도 미혼모 복지 기관에서 아이를 돌봐주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홀로 힘들게 타지에서 아이까지 키우며 살고 있는 주혜영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게 여겨졌던 거다.
더욱이 고아로 자란 그녀였기에 아이에 대한 애착심이 얼마나 강한지도 충분히 느껴졌다.
주혜영은 자신으로 인해 분위기가 가라앉자 소은이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며 밝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에 대한 연민이 짙게 깔려버린 상황인지라 분위기는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누님, 잘 먹었어요.”
형수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주혜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른 때보다도 한층 애틋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친 누나처럼 여겼던 주혜영이었기 때문인지 형수는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혁아, 나 간다. 촬영 잘 하고.”
형수가 집을 나가고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신입 작가와 카메라 감독이 애써 재밌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미 입 안의 음식들은 꺼끌꺼끌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한국에서 내 경기를 볼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있을 부모님과 지아가 보고 싶어졌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가족들을 떠올리니 야구 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한국 시간에 맞춰서 전화라도 한 통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해외편 - 129』 > 끝
ⓒ 독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