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21화 (121/221)

< 『해외편 - 121』 >

『해외편 - 121』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바라보며 투수가 갖는 마음가짐은 단 하나다.

아웃을 시키자.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삼진 아니면 범타.

그 외엔 투수가 타자를 상대로 아웃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대로 타자는 투수를 상대로 아웃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홈런, 안타, 볼넷, 사구는 기본적으로 출루율에도 영향을 주는 살아 나가는 방법이다.

외적으로 출루율과는 상관이 없지만 수비 에러, 폭투, 야수 선택 등 투수와 다르게 타자는 어떻게든 1루 베이스를 밟을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3할의 타율과 4할의 출루율을 기록하는 타자들은 많지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투수는 자신 외에 8명이나 되는 야수들의 도움을 받지만, 타자는 오직 홀로 투수를 포함 총 9명의 수비수들 사이로 타구를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타자는 열 번 중 세 번만 안타를 쳐도 잘 치는 거라고 칭찬을 받는 거다.

지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앤드류 폴이다.

3구로 던졌던 실투를 다행으로 여길 거다.

상대 타자가 투수였기에 다행이지, 웬만한 타자였다면 본능적으로 실투임을 알아채고 그대로 장타 혹은 홈런까지도 날려버릴 수 있었던 공이었다.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

실투를 깨끗하게 지우고 집중을 해야만 한다.

실투를 되새기며 무리하게 힘을 줘서 공을 던지면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게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커진다.

‘역으로 생각하자.’

내가 지금 앤드류 폴이라면 과연 타자가 어떻게 행동할 때 가장 신경이 쓰일까?

스윽.

평소보다 홈 플레이트 쪽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앤드류 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볼 컨트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타자가 몸 쪽 코스로 밀착하면 투수의 입장에서는 부담감이 커진다.

사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몸 쪽 승부를 피할 수밖에 없다.

퍼엉!

“볼!”

예상대로 앤드류 폴은 과감하게 몸 쪽으로 승부를 보기보다는 바깥쪽으로 공을 던졌고, 그마저도 컨트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한참이나 공이 빠지고 말았다.

1스트라이크 3볼.

타자에게 유리한 카운트다.

무엇보다 다음 타자가 오늘 앤드류 폴을 상대로 2안타, 멀티히트를 기록한 던컨 카레라스다.

앤드류 폴로서는 어떻게든 투수인 날 잡아두고 2아웃 상황에서 던컨 카레라스와 승부를 하려고 할 거다.

결론적으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기 위해 공을 던지겠지.

홈런이나 장타를 노리기보다는 정확하게 타격을 해서 안타를 만들어 내는 일에 집중하며 앤드류 폴을 바라봤다.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후에야 앤드류 폴이 힘차게 킥킹 동작을 하며 공을 던졌다.

한 가운데.

또 다시 실투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배트를 휘둘렀다.

부웅!

퍽!

“아……!”

포크볼.

3볼 상황에서 포크볼을 던질 줄이야.

완벽하게 당했다.

오늘 앤드류 폴의 효자 노릇을 톡톡하게 해주고 있던 포크볼을 잊고 있었다.

아니, 잊었다기보다는 볼 컨트롤이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 3볼 상황에서 포크볼을 던질 거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마운드 위에서 앤드류 폴이 희미하게 웃었다.

‘쳐야 할 공은 기다리고, 기다려야 할 공에 헛스윙이라니.’

타석에 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타격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투수가 타격까지 잘 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투수에게 타격까지 잘 하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다.

헛스윙으로 체면을 구겼지만, 아직 승부는 끝난 게 아니다.

2스트라이크 3볼의 풀 카운트 상황이니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또 다시 포크볼을 던질 확률은?

‘모르겠네.’

진심으로 앤드류 폴의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1스트라이크 3볼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포크볼을 던진 앤드류 폴이니 풀 카운트 상황이라고 던지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나라면?’

머릿속을 정리하는 사이 앤드류 폴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쇄애애액.

날아오는 공을 바라보며 배트를 휘두르려다 급히 멈췄다.

포크볼이다.

앤드류 폴은 풀 카운트 상황에서도 망설임없이 포크볼을 던졌다.

체력은 떨어졌어도 타자 바로 앞에서 수직으로 꺾이는 각은 여전히 훌륭했다.

원바운드가 되는 공을 재빨리 포구한 오스틴 헤지스는 공이 담긴 글러브로 내 몸을 태그하면서 1루심을 바라봤다.

1루심은 오스틴 헤지스의 고개를 저으며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노 스윙.

배트가 돌아가지 않았다는 1루심의 판정에 오스틴 헤지스가 마스크를 벗으며 항의를 했다.

앤드류 폴 역시도 배트가 돌아간 것 아니냐며 1루심을 향해 말을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나는 볼넷으로 1루까지 출루할 수 있었다.

“완전 돌아갔는데 운이 좋군.”

1루수 도미닉 스미스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판정은 심판이 하는 거니까.”

내 대꾸에 도미닉 스미스는 피식 웃었다.

웃음 속에 날카로운 적의가 담겨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에게 2번이나 삼진을 당한 도미닉 스미스였으니 나를 곱게 볼 리가 없었다.

“설마 도루를 하려고?”

“글쎄.”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고는 리드폭을 조금 더 넓혔다.

우완 투수인 앤드류 폴은 도루 저지율이 평균보다 아래였다.

세트 포지션에서 투구를 하는 동작이 길지는 않았지만, 결정구로 사용하는 포크볼이 문제였다.

아무래도 원바운드 성 볼이 많이 발생하는 포크볼이었기에 발이 빠르지 않다 하더라도 포크볼을 던지는 순간 도루 스타트를 끊으면 90퍼센트 이상의 높은 확률로 도루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펑.

리드폭을 넓게 잡으니 곧바로 견제구가 날아왔다.

다른 투수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같은 투수들의 습관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기에 견제구 역시도 어렵지 않게 파악을 할 수 있었다.

“무리하지 마.”

1루 코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투수에게 도루 사인은 웬만해선 나오질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팀 투수도 투수가 주자로 나갔을 경우 도루에 대한 견제를 높게 가져가질 않는다.

‘도루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앤드류 폴을 흔들어 놓을 필요는 있으니까.’

나 역시 도루를 할 생각은 없다.

앤드류 폴의 신경을 자꾸만 거슬리게 만들어서 던컨 카레라스가 타격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었다.

마치 도루를 할 것처럼 리드폭을 넓게 가져가자 앤드류 폴이 다시 한 번 견제구를 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리드폭을 넓게 가져가면서 신경을 건드렸고, 그 결과 어느새 던컨 카레라스는 1스트라이크 2볼의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딱!

앤드류 폴이 던진 4구를 던컨 카레라스가 그대로 때렸다.

총알과도 같은 스피드로 2루수와 1루수 사이를 뚫어버리는 타구에 곧바로 2루를 향해 내달렸다. 타자로서의 타격 능력은 메이저리거 수준이 아니지만, 그 외적으로 주루 플레이만큼은 수준급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에 2루 베이스를 밟고 곧장 3루로 향했다.

3루에 있던 주루 코치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타구의 스피드, 코스를 생각했을 때 발이 빠른 주자라면 얼마든지 3루까지도 내달릴 수 있었기에 나 역시 자신이 있었다.

양팔을 아래로 빠르게 끌어내리는 3루 코치의 모습에 3루 베이스의 모습이 눈에 보이자 그대로 몸을 날렸다.

오른손이 3루 베이스에 닿고 조금 후에 엉덩이 쪽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를 외치는 3루심의 모습에 나는 왼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로 1사 1, 3루다.

여기서 희생 플라이 하나만 나와도 득점에 성공한다.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지?”

3루 코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훑어보며 그렇게 물었다.

“괜찮아요.”

“무리하지 말라고. 척 너는 우리 팀의 소중한 핵심 선수라는 걸 잊지 마.”

“예.”

진심어린 말과 함께 내 어깨에 묻은 흙을 털어주는 3루 코치였다.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가 앤드류 폴의 마지막 방어선을 허물어버리고 말았다.

2번 타자 크레이그 바렛의 우중간 적시타와 3번 타자 코리 시거의 좌측 펜스를 맞추는 큼지막한 2루타로 인해서 점수는 순식간에 3점으로 늘어났다.

결국, 7회까지 호투를 펼쳤던 앤드류 폴은 6.1이닝 3실점으로 마운드를 다음 투수에게 넘겨야만 했다.

이어진 7회 말 수비에서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고, 8회 초 공격에서는 앤드류 폴에게 억지로 막혀 있던 LA 다저스의 타자들이 신나게 방망이를 휘두르며 3점을 더 보태며 오늘 승부의 쐐기를 박아버렸다.

6:0.

3연패의 수렁에서 탈출을 했다.

동시에 4경기 연속 완봉승이라는 놀라운 기록과 함께 40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면서 2008년 브래드 지글러가 세웠던 데뷔와 동시에 세운 39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마저 깨트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4경기 연속 10탈삼진 기록도 세우면서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세웠던 8경기 연속 10탈심진 기록에도 반환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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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 1차전에서 6:0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2차전에서는 포스터 그리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경기 때와 마찬가지로 4회에 급격하게 무너져 버리면서 4:8이라는 점수 차이를 내주며 패배를 하고 말았다.

7연패 뒤의 소중한 1승을 챙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3차전에서도 식지 않은 방망이를 휘두르며 2:5로 2연승과 동시에 위닝 시리즈를 챙겨갔다.

6일 동안의 원정 경기에서 1승 5패라는 초라하다 못해 참혹한 성적표를 들고 LA로 돌아왔다.

그 사이 순위는 다시 한 계단 내려앉으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콜로라도 로키스 다음으로 서부 지구 3위였고, 그마저도 반 경기 차이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게 바짝 쫓기고 있었기에 8일 경기가 무척이나 중요해지고 있었다.

“하필이면 샌프란시스코가 상대라니.”

형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LA 홈경기의 첫 번째 시리즈 상대가 현재 연승 가도를 내달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였다.

발목 부상으로 로테이션을 건너뛰었던 4선발 나단 코스코가 복귀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과연 마운드와 타선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평가를 받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것보다도 내일 가정부는 언제 오는 거야?”

형수의 물음에 나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8일 날 오기로 약속은 했는데, 정확한 시간을 말하지 않았기에 언제 오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은 안 되겠지?”

“아침 밥 때문에?”

“음식 솜씨가 진짜 좋잖아. 이왕이면 아침부터 든든하게 먹으면 좋지.”

가정부가 다녀간 첫 날, 형수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밥을 먹고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완벽하게 자기가 원하는 맛이라며 돈을 더 주는 일이 있어도 그녀를 반드시 가정부로 고용하고 말겠다고 했었다.

“전화해서 일찍 오라고 하면 안 되려나?”

“지금 시간에?”

형수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맛을 다셨다.

원정 경기를 끝내고 곧바로 돌아왔다고 하지만 시간은 한참이나 늦은 상태였다.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해서 내일 일찍 오라고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라 형수도 포기하고 말았다.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고 했지?”

“어쩌다보니 물어보지 못했어.”

“얼굴은 평범하고?”

“왜? 평범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볼라고?”

내 물음에 형수는 그저 음흉스럽게 웃기만 했다.

“확실한 건 네 스타일은 아니라는 거. 그러니까 헛꿈 꾸지 마라.”

형수는 보통의 평범한 남자다.

즉, 무조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의 외모를 두고 평가하길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부로 왔던 그녀는 예쁘다고 할 만한 얼굴이 아니었다.

평범하다고 했지만, 예쁘냐, 못 생겼냐의 이분법적 논리로 따지자면 못 생겼다는 쪽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줄 만했다.

“내일 오면 확실하게 고용 계약서도 작성하고 이왕이면 아침 일찍 올 수 있도록 해야겠다. 너는 이번 일에서 빠져. 내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확실하게 고용을 할 테니까. 알겠지?”

미국에서 음식 투정 한 번 부려본 적이 없는 형수였지만, 역시 한국인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음식 하나에 저렇게 의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아침 8시가 되자 놀랍게도 초인종이 울리며 그녀가 왔다.

“안녕하세요. 운동 하시는 분들이라 아침을 차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왔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일찍 온 걸까요?”

수수한 차림의 그녀의 모습에 나보다도 누가 왔냐며 어슬렁거리며 현관문으로 다가오던 형수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성난 멧돼지처럼 달려와서는 덥석 손부터 잡았다.

“어서 오세요! 눈알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 『해외편 - 121』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어제 후반부 작업을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잠깐 눈만 붙였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일어나니 새벽 2시 ㅠㅠ

죄송합니다.

.

날씨가 무척이나 춥네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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