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20』 >
『해외편 - 12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메이저리그 데뷔전의 상대팀인 동시에 내가 이룩한 첫 번째 메이저리그 퍼펙트 게임의 희생팀, 더불어 각종 기록과 현재 진행 중인 연속 완봉승, 연속 이닝 무실점의 시발점이 된 구단이다.
“저놈들 눈에 독기가 철철 넘친다.”
형수의 말대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수들의 눈빛, 표정, 행동 하나까지도 복수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파이팅이 넘쳤다.
“이해가 간다. 지금 샌디에이고 6연패 중이던가? 시즌 첫 게임부터 퍼펙트를 당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겠냐?”
모두가 내 덕이라는 듯 형수가 나를 향해 히죽거렸다.
시즌 첫 번째 경기에서 퍼펙트를 당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이후로도 최악의 경기력으로 현재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꼴등을 달리고 있었다.
4승 11패.
2할6푼7리의 승률로 양대 리그 최악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번 시즌을 위해 스토브리그에서 쏟아 부은 돈을 생각하면 일부 언론에서 조롱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갈 정도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구단주는 아무리 샌디에이고가 많은 돈을 들인다 하더라도 결코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와 같은 명문팀이 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말에 ‘자본주의에서 돈으로 사지 못할 건 없다’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돈으로 명문팀을 만들겠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주의 야심찬 계획이 진행됐지만, 현실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고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주였지만, 많은 언론들은 조만간 그가 폭발을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부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게 자존심이라고 했던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성적이 반등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불 거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늘 경기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올 시즌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서는 현재 성적의 시작점인 LA 다저스, 그리고 퍼펙트 게임을 헌납한 나에게 반드시 복수를 성공시키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걸로 따지면 우리도 만만치 않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만큼이나 오늘 경기는 LA 다저스에게도 중요했다.
3연패의 쇠사슬을 끊어야 했으니까.
오늘 4연패를 기록하면 내일 경기도 비관적이고, 현재 쇠약해진 선발진을 생각하면 최악의 경우 8연패의 수렁으로까지 완전히 미끄러질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는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했다.
오죽했으면 선수들에게 특별한 지시사항이나 전달사항을 잘 전하지 않는 게레로 감독이 직접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들에게 승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했을 정도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감독은 선수들에게 칭찬밖에 하지 않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비권위적인 감독이다.
메이저리그의 특성상 워낙 고액 연봉자들이 많기에 감독의 권위가 일부 특정 선수들에게는 결코 통하지 않기도 했지만, 하고자 한다면 감독 고유 권한인 선수 기용이라는 무기를 얼마든지 휘두르는게 가능했다.
더군다나 게레로 감독은 올 시즌 LA 다저스의 사령탑에 앉으면서 다저스 구단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즉, 고액 연봉자라 하더라도 선수를 휘두를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쓴소리는 물론, 기분 나쁠 말조차 하지 않는 게레로 감독을 두고 다저스 선수들은 천사라 부르고 있었다.
게레로 감독을 위해서라도 오늘 승리를 꼭 안겨주고 싶었다.
“역시 다르네!”
형수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선발 투수, 앤드류 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025년 드래프트 빅4로 불렸던 초특급 투수 유망주 앤드류 폴이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7년 6300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맺으며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그는 작년 마이너리그에서 선발로 풀타임을 소화하고 올 시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발을 들였다.
오늘 경기 이전까지 2경기 선발로 출장해서 1승 1패를 기록했다.
90마일 중후반의 빠른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포크볼을 구사하는 앤드류 폴은 향후 15승의 고지를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에이스급 투수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포크볼이 죽이더라.”
형수의 말처럼 앤드류 폴의 결정구는 포크볼.
오늘 경기에서 다저스 타자들이 앤드류 폴의 포크볼에 얼마나 대처를 잘 하느냐가 중요했다.
“시작한다.”
연패를 내달리고 있는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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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오늘 경기 팽팽한데요?”
TV를 보며 꼼꼼하게 경기 내용을 기록하던 차동호가 안경을 위로 올리며 대답했다.
“벼랑 끝에 선 팀과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팀의 경기니까 팽팽할 수밖에 없지.”
“샌디에이고도 그렇고 다저스도 그렇고 어디든 오늘 경기에서 패배하면 그 후유증이 한 동안 계속해서 지속되겠죠?”
“당연하지. 양 팀 다 선발진이 무너졌잖아.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믿을 수 있었던 맥스 프리드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선발 투수가 없으니 붕괴된 마운드를 대신해서 타선이라도 불이 붙어야 하는데… 상대가 차지혁이니 뭐.”
말을 하며 차동호가 피식 웃었다.
차동호의 말에 대학 후배이자, 같은 기자로 일하고 있는 홍석이 말을 이었다.
“마운드야 다저스도 상태가 안 좋기로는 마찬가지죠. 그래도 필 맥카프리가 복귀한다고 하니 그나마 믿을 만한 1, 2선발은 확실하지만, 나머지는 솔직히 기대 이하라서.”
홍석의 말에 차동호는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다저스의 현실이었고, 실제로 1, 2선발 투수를 제외하고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싶은 3선발 투수를 보유하고 있는 구단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앤드류 폴도 확실히 잘 던지긴 잘 던지네요.”
어떻게든 점수를 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다저스의 타자들에게 매 이닝 안타를 맞고 있었지만, 6이닝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있는 앤드류 폴이었다.
위기도 2차례나 있었지만, 그때마다 칭찬받을 위기 관리 능력까지 선보이며 다저스 타자들을 침묵시켰다.
“그러니까 대형 계약을 맺었겠지. 앤드류 폴도 운이 나쁘지. 하필이면 차지혁이 내셔널리그에 들어왔으니 말이야.”
“그렇긴 해요.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셔널리그는 신인 투수들의 전쟁터, 아메리칸리그는 신인 타자들의 전쟁터가 될 거라고 예측을 했었는데, 아메리칸리그와 다르게 내셔널리그는 차지혁 독주 체제나 다름이 없으니…….”
같은 국적의 한국인 이전에 차지혁을 응원하는 야구팬으로서 차지혁의 독주가 기쁘기는 했지만, 치열함이 사라진 모습이 살짝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홍석이었다.
차동호는 홍석의 아쉬움을 모르지 않았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신인왕 타이틀 경쟁은 엄청나게 뜨거웠다.
메이저리그 역대급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2025년 신인 드래프트 톱3였던 마이크 테일러(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시몬 산체스(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모든 전문가와 야구팬들의 기대대로 시즌 초반부터 무섭도록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특히 신인 드래프트 역대 최대 금액으로 계약을 한 마이크 테일러는 시즌 첫 경기부터 3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며 현재 아메리칸리그 홈런 부문 단독 2위에 올라가 있었다.
시몬 산체스 역시도 3할 중반의 타율과 6개의 홈런, 8개의 도루 등으로 신인왕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었다.
아메리칸리그 신인들의 경쟁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다르게 내셔널리그 신인들의 경쟁은 차지혁의 활약이 워낙 뛰어나서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경쟁 신인 투수들 케이티 지코(필라델피아 필리스), 알렉스 코트로나(시카고 컵스), 앤드류 폴, 니노마에 류지(뉴욕 메츠)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차지혁의 성적이 워낙 압도적이고 상대적으로 사토시 슌이 타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다른 신인 투수들의 평가가 더욱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시원스럽게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차지혁의 모습에 홍석이 왼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오늘도 탈삼진 열 개는 무난하겠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지금 페이스라면 완봉승도 그렇고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도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데 이쪽에 초점을 두고 중간 기사라도 하나 내보낼까요?”
홍석의 물음에 차동호는 오늘 경기 기록을 가만히 살펴봤다.
6회까지 차지혁은 총 73개의 공을 던졌고, 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전히 볼넷은 없었고, 사구도 없었다.
3개의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실점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어느새 37이닝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기록 자체만 놓고 본다면 홍석의 말대로 충분히 완봉승과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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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경기는 7회 초였다.
내 생각보다 경기는 훨씬 더 치열했다.
기본적으로 앤드류 폴의 컨디션이 좋았기에 전체적인 구속, 구위, 제구가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거기에 잘 맞았다 싶은 타구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수비수들에게 모조리 잡히면서 꽤 많은 안타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저스 타자들은 점수를 내지 못했다.
대기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르다 앤드류 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101개.’
100구를 넘었다.
지금까지 던진 투구수를 생각했을 때, 앤드류 폴이 다음 이닝에도 마운드에 올라올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했다.
무실점으로 호투를 벌이고 있기는 했지만, 매 이닝마다 안타를 맞았고 실점 위기의 순간도 2차례나 있었기에 투구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게레로 감독은 이번 이닝에서 어떻게든 앤드류 폴을 끌어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공을 보라고 타자들에게 주문을 했다.
부- 웅.
웨인 스테인의 방망이가 돌아가다 멈췄지만, 누가 봐도 스윙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앤드류 폴의 포크볼은 말 그대로 살인무기였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포크볼로 위기를 피했고, 탈삼진 개수를 늘였다.
‘구속도 그렇고 꺾이는 타이밍과 각도도 정말 좋아.’
BA 구종 평가에서 70점을 받았다고 하더니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위력적인 포크볼이었다.
무엇보다 와일드 피치나 패스트 볼이 나올 확률이 높은 포크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경기에서 위기 때마다 앤드류 폴이 포크볼을 던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떠한 공이든 잡아내고 마는 포수 오스틴 헤지스 덕분이었다.
지금도 원바운드가 될 정도로 큰 낙차로 떨어진 공을 오스틴 헤지스는 가슴으로 블로킹하고는 재빨리 공을 주워 타자를 태그했다.
다시 한 번 포크볼에 삼진을 당하고 만 웨인 스테인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포크볼에만 속지 말자.’
포크볼을 경계하며 타석에 섰다.
오늘 경기에서 3번째 타석이고, 앞 2번의 타석에서는 삼진과 땅볼로 출루를 하지 못했다.
‘확실히 힘이 떨어져 보이네.’
마운드에 서 있는 앤드류 폴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투구수도 그렇지만, 체력적으로도 다음 이닝에는 절대 마운드에 올라올 수가 없음이 확실해졌다.
타석에 서기 전부터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무조건 기다리자고 다짐을 했다.
쇄애애액.
퍼엉!
몸 쪽으로 너무 붙어서 날아오는 초구는 볼이었다.
앤드류 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컨트롤이 제대로 안 되나 보네.’
체력이 떨어진 투수는 구속, 제구 뭐 하나 제대로 되질 않는다.
두 번째 공이 날아왔고,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빠지면서 다시 볼 판정을 받았다.
초구와 두 번째 공이 모두 볼이니 세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던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
거기에 컨트롤이 제대로 안되니 어설프게 변화구를 던지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가능성을 좁히고 들어가면 결론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
‘칠까?’
투 스트라이크까지 무조건 기다리겠다고 했던 다짐이 흔들렸다.
칠까, 말까 그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사이 앤드류 폴의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퍼엉!
“스트라이크!”
한 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이었고, 명백한 실투였다.
내가 고민을 하는 동안 날아가 버린 기회였다.
잠시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나 스윙을 했다.
지나가버린 기회에 아쉬운 마음이 무척이나 컸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기회는 다시 온다.’
체력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앤드류 폴이다.
투수인 나를 상대로 볼넷을 허용하고 싶지 않을 테니, 결국은 또 한 번 실투를 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배트를 조여 쥐고 타석에 들어섰다.
< 『해외편 - 120』 > 끝
ⓒ 독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