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119화 (119/221)

< 『해외편 - 119』 >

『해외편 - 119』

4월 2일, 3일, 4일은 굉장히 중요한 원정 경기가 잡혀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LA 다저스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다저스의 가장 오랜 된 라이벌 구단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악연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중요한 건 두 팀 모두 상대팀을 만났을 때에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기운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 원정에 척이 등판했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단 말이야!”

빅터 페르난도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처음으로 시즌을 시작한 빅터 페르난도는 불펜 투수로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기만 한다면 다저스의 불펜 투수로 시즌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가능할까?

“그리핀도 좋은 투수잖아. 충분히 기대를 해볼만 해.”

다저스의 3선발 투수인 포스터 그리핀은 앞서 등판했던 2경기에서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챙기진 못했어도 나름 3선발 투수로서의 실력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리핀의 실력이야 의심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척도 알다시피 그리핀은 앞에 있었던 2경기에서 잘 던지고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고, 거기에 2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감기에 걸려서 컨디션이 완전 엉망이었다고. 뭔가 이번 시즌 초에는 운이 따라주질 않는 것 같단 말이야. 거기에다 오늘 상대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는 작년 시즌 그리핀에겐 잊고 싶은 팀이기도 하고.”

7이닝 2실점, 6이닝 1실점.

좋은 투구를 했음에도 그리핀은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 못했고,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등판 일정을 미뤄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감기로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졌었던 포스터 그리핀이었다.

감기 기운은 거의 가셨지만, 꾸준하게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했다.

거기에 빅터 페르난도의 말처럼 그리핀에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작년 시즌 지우고 싶을 정도로 참담한 성적표를 남긴 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핀이 선발로 등판을 하게 된 이유는 그를 대신해서 마운드에 오를 투수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4선발 투수인 나단 코스코는 런닝 도중 발목이 살짝 꺾이면서 내일 등판까지도 미룬 상황이고, 5선발 투수인 앤디 클레먼트는 앞선 2경기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기에 믿음직스럽지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리핀으로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등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3패는 좀 심했지.’

승리는 없고, 3패만 있다.

평균자책점도 5점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참혹했다.

말 그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그리핀은 무참하게 얻어맞으며 실점을 했다.

작년의 일이라고 하지만, 과연 쉽게 극복할 수 있을까?

컨디션이 베스트라면 모를까,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어이 선발 등판을 한 그리핀에게 오늘 경기는 어쩌면 작년의 악몽을 다시 되돌리느냐, 극복하느냐의 중요한 시작점이라 할 만했다.

‘앞 선 경기들처럼만 해주면 되는데.’

이런 내 바람은 3회를 넘기지 못했다.

2.1이닝 5실점.

그리핀은 강판을 당하고 말았다.

7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는데 무려 67구를 던졌다.

문제는 연속으로 안타를 맞으면서 더 이상 마운드의 붕괴를, 그리핀의 자신감을 떨어트릴 수 없다 판단한 게레로 감독이 과감하게 투수를 교체해버렸다.

선발 투수가 3이닝도 견디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면 그 기분은 어떨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고 끔찍하다.

겪어보진 못했어도 충분히 짐작은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그리핀은 그대로 클럽 하우스로 향했다.

이후 경기를 지켜볼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그리핀이 내려온 마운드에 올라선 건 경기 직전까지 줄곧 내 곁에 앉아서 쉬질 않고 떠들어대던 빅터 페르난도였다.

180cm가 조금 못 되는 투수로서는 굉장히 작은 키의 빅터 페르난도는 우완 투수로 작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른 공을 던질 줄 알았다.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이 최대 97마일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놀랍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원하는 코스로 컨트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제구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을까?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97마일까지 나오는 빠른 패스트볼을 던질 줄 알아도 타자가 예상을 한다면?

딱!

타구가 총알처럼 1루수와 2루수 사이를 꿰뚫고 우익수에게 이어졌다.

‘버릇이 너무 심해.’

빅터 페르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구분하게끔 타자에게 알려준다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패스트볼을 던질 때의 투구폼과 변화구를 던질 때의 투구폼이 확연하게 달랐다.

더 보태서 변화구의 위력도 메이저리그 수준급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뻔히 보이는 패스트볼과 변화구, 이것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잘 차려진 밥상인데 변화구의 위력마저 위협적이지 못하니 빅터 페르난도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당연하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시즌 초, 빅터 페르난도가 보여주는 불펜에서의 활약을 끝까지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점을 알기에 빅터 페르난도도 부단히 투구폼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투구폼이라는 게 어디 쉽게 고쳐지는 문제여야지.

손 쉽게 교정이 가능하다면 지금보다 투수들의 질적양적 팽창은 몇 배나 더 증가할 거다.

‘패스트볼의 구속을 포기한다면 어쩌면…….’

내가 본 빅터 페르난도의 해결책은 현재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이라 부를 수 있는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포기하는 거였다.

작은 체구에서 무리하게 구속을 끌어올리려다보니 변화구를 던질 때와 투구폼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는 빅터 페르난도가 쉽게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딱.

타구가 높이 뜨며 중견수 던컨 카레라스의 글러브에 잡히면서 3회가 끝났다.

용케도 실점을 피한 빅터 페르난도가 밝게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3회가 끝나기도 전에 5점이나 득점에 성공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탄탄하게 마운드를 가져가며 다저스 타선을 붙들고 늘어졌다.

결국, 경기 최종 스코어는 2:7로 5점차 다저스의 패배.

그 과정에서 빅터 페르난도는 4이닝까지 마운드를 지켜내며 롱 릴리프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록, 2실점을 하기는 했지만 빅터 페르난도의 체력이 충분히 선발 투수로의 전환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경기가 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2027년 LA 다저스의 라이벌 구단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첫 대결은 여러 가지로 좋지 못한 채 끝이 났다.

3선발 투수 포스터 그리핀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대한 정신적 타격이 컸고, 지구 우승을 위해서는 반드시 꺾어야 하는 라이벌에게 첫 경기부터 패배를 했기에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일 경기도 쉽지 않을 텐데.”

4선발 투수인 나단 코스코가 등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의 경기를 설욕할만한 투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니, 내일 뿐만이 아니다.

그 다음날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스윕을 당할지도 모르겠네.”

“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곁에서 나란히 걷던 형수가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샌프란시스코 이번 원정 경기가 쉽지 않겠다고.”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내일 경기도 그렇고, 그 다음 경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3연패를 당한 상태로 샌디에이고 원정 경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형수의 말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3연패를 당한다면, 곧바로 치러지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원정 첫 번째 경기 선발 투수는 나였다.

팀의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 필 맥카프리가 빠진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나였기에 나마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때는 다저스의 성적이 곤두박질을 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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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결국은 3연패, 스윕을 당하고 말았네. 젠장!”

형수가 가방을 정리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1차전부터 내리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덕분에 서부 지구 1위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시즌 초반이었기에 순위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지만, 상대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점이 문제다.

항상 선두 경쟁을 해왔던 상대팀이었기에 시즌 초반이라 하더라도 3연패를 당한 건 데미지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3경기 연속 완봉승과 3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을 텐데, 팀의 연패까지 끊어야 한다니… 너도 참 기구한 팔자다. 흐흐흐!”

형수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 뭐.”

3경기 연속 완봉승, 31이닝 연속 무실점, 팀의 연패 탈출.

하나, 하나 거창한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다.

완봉승.

내일 있을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면 연속 경기 완봉승 기록, 데뷔 후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 팀의 연패 탈출 모두 달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완봉승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시즌 내내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한 선발 투수들 중에서도 완봉승을 하지 못하는 투수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승리가 완봉승이다.

처음부터 완봉승을 생각하고 마운드에 오르면 결코 완봉승을 거둘 수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기록에 연연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승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지면 된다.

“아, 맥카프리 복귀 한다고 하더라.”

“그래? 더 이상 통증은 없나보네.”

“그런가봐. 지혁이 너도 알지? 보이더 앨런 그 자식이 며칠 전부터 깐죽거렸던 거.”

“그랬던가?”

“하긴, 아무리 철없이 날뛰는 병신새끼라 하더라도 지혁이 널 상대로 깐죽거릴 리가 없지.”

형수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보이더 앨런 그 자식이 며칠 전부터 은근히 내 앞에서 깐죽거리더라고. 공도 뭣같이 던지는 새끼가 미트질이 어떻다며 은근히 사람 짓뭉개는데 정말 이빨을 다 털어버리고 싶더라. 병신 새끼가 지가 맥카프리야? 어제 1이닝 동안 3점이나 털린 주제에 누구한테 지적질을 하는 건지. 참.”

생각보다 쌓인 게 많은 듯, 형수가 얼굴이 벌겋게 변할 정도로 언성을 높였다.

“그런 놈들 일일이 상대할 필요도 없어. 넌 네가 할 일만 잘 하면 돼. 혹시 알아? 나중에는 네가 주전 포수가 돼서 보이더 앨런을 쥐 잡을 듯 잡게 될지.”

“그렇네!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야! 보이더 앨런 그 병신 같은 놈 때문이라도 내가 하루 빨리 주전 포수가 되고 만다!”

이상한 부분에서 의욕을 불태우는 형수였다.

그것보다도 필 맥카프리의 복귀가 지금 상황에서는 꽤 반갑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감정은 딱히 좋지 않았지만, 다저스 팀의 입장을 생각했을 때 승률 높은 필 맥카프리의 복귀는 구단, 선수, 팬 모두 환영할 일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 지혁이 넌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맥카프리가 복귀하면 분명 지가 에이스 행세를 할 텐데, 솔직히 내가 너라면 기분이 딱히 좋을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물론, 맥카프리가 에이스인 건 맞지만 그래도 올 시즌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본다면 넌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 최고의 투수잖아. 그런 네 앞에서 맥카프리가 에이스라고 거들먹거리면 좀 그렇지 않겠어?”

“별게 다 신경 쓰이네. 필 맥카프리가 다저스 에이스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내가 지금 잘 던졌다고 하더라도 필 맥카프리가 에이스 투수라는 건 구단부터 시작해서 팬들까지 모두 다 아는 당연한 사실인데, 그걸로 내가 왜 감정 싸움을 해?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그래? 하긴, 성적이 이미 증명을 하는데 그런 애 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겠지.”

형수의 말을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이번 시즌까지다.

‘필 맥카프리가 LA 다저스의 에이스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이번 시즌이 끝이다.’

내년부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에이스의 자리를 차지할 거다.

< 『해외편 - 119』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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