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14』 >
『해외편 - 114』
황병익 대표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기업 CF는 그렇다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제작하는 선수 광고 영상은 되도록 찍는 편이 좋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직접 선정한 선수 광고 영상은 기본적으로 성적과 인기가 따라줘야 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신인 선수에게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 간 적이 없었습니다. 차지혁 선수의 경우 고작 2경기 만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선수 광고 영상을 제안한 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제작하는 선수 광고 영상은 어디까지나 선수를 홍보하는 영상이다.
물론, 선수 홍보를 하면서 메이저리그를 광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선수 개인 플레이 영상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선수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했다.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제작하는 선수 광고 영상의 경우 현재 가장 뛰어난 메이저리거라는 공증이기도 했다.
다만, 모델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마운 일이죠.”
솔직히 나 역시도 다른 건 몰라도 선수 광고 영상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 업체의 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이센스 계약으로 차지혁 선수가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게임 시장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계약금도 상당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야구 게임을 하는데 현재 최고의 투수나 다름 없는 차지혁 선수로 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습니까?”
슬쩍 웃으며 말을 하는 황병익 대표였다.
“라이센스 계약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게임 홍보 광고나 모델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여전히 없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조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필 사진이나, 실제 경기 영상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황 대표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내 말에 황병익 대표는 귀찮은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성대준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차지혁 선수와 공동으로 재단을 하나 만들었으면 한다고 하더군요.”
“재단이요?”
“차지혁 선수를 광고 모델로 유일하게 독점하고 있는 울 아닙니까? 요즘도 매출이 아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해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 규모도 상당히 커졌습니다. 뭐, 그것보다도 성대준 대표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차지혁 선수와의 유대관계를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단 이름도 ‘차앤울 재단’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기본적으로 재단의 규모는 자세하게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3:7 혹은 4:6의 규모로 울 측에서 부담을 더 하겠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야구를 하는 유소년들을 중심으로 후원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재단이라는 소리에 내가 벌써 그럴 처지인가 싶었지만, 한 편으로는 나쁘지 않다 여겼다.
“좋은 뜻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울 측에서 조금이라도 상업적으로 재단을 이용하려는 생각이라면 앞으로의 모델 계약도 모두 계약 해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단과 관련된 부분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상의를 드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저보다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나을 겁니다.”
“조만간 한국에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하하.”
이후로도 황병익 대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차지혁 선수의 휴식을 방해하고 말았군요.”
“아닙니다. 이런 날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한국 언론과 방송사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강력하게 경고를 해두겠습니다. 아무리 통제를 하려고 해도 한국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워낙 극성스러워서인지 통제가 제대로 되질 않는군요.”
미안하다는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방송국과 언론사들이야 에이전시로 연락을 해봐야 백이면 백 거절이라는 소리밖에 못 들으니 그들로서도 날 찾아올 수밖에 없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물론, 훈련과 경기에 방해를 하지 않으니 이해를 하는 것이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피해를 준다면 그때는 강력하게 법적인 조치를 할 생각까지도 갖고 있었다.
“추가적으로 의논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곧장 연락을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2경기 연속 퍼펙트 게임 신기록을 축하합니다.”
황병익 대표를 배웅하고 곧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정말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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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님, 이런다고 차지혁 선수가 촬영을 허락할까요? 제가 볼 때는 정말 의미 없는 행동인 것 같은데요? 피디님도 아시다시피 차지혁 선수는 그룹 광고도 거부한다고요. 그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죠?”
카메라 감독의 말에 황지연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압니다. 돈에 달관한 인간이잖아요.”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황지연이었다.
그녀가 볼 때 이 세상에서 돈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없었다.
가지지 못한 자는 굶주려있고, 가진 자는 더 욕심을 내는 게 바로 돈이다.
아직 어려서 돈이라는 요물이 지닌 힘을 모르는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생각이 드는 황지연이었다.
‘야구만 했으니 세상 물정을 알 리가 없지.’
중요한 건 차지혁이 아무리 거부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어떻게든 방송 촬영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장실에서 직접 내려온 특별 지시였다.
오죽했으면 황 부장이 방송 촬영을 끝내기 전까지는 한국 땅 밟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포를 했을까.
정상적인 루트를 통하자면 당연히 에이전시 쪽에 먼저 연락을 줘야 한다.
하지만, 차지혁은 이미 방송가와 언론에 소문이 자자했다.
에이전시에 연락을 해봐야 돌아올 대답은 거절이라는 걸 알기에 황지연은 예의가 없다 찍히더라도 직접 차지혁에게 달라붙어 거머리 작전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대로 계속 쫓아다니실 건 아니죠?”
카메라 감독의 말에 뒤쪽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앉아 있던 신입 작가가 불안한 표정으로 황지연을 바라봤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다른 수가 생기기 전까지는 촬영 허가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주변을 맴돌겠다는 황지연의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계획에 카메라 감독과 신입 작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특히, 여자인 신입 작가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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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으로 오십시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태어나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처음이었다.
LA에서도 돈 좀 있다는 사람들만 이용한다는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지배인을 따라서 도착한 곳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금발 남자가 바로 LA 다저스의 구단주 마크 앨런이다.
‘실제 나이는 70이 넘었다고 했던가?’
확실히 보기에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마크 앨런이었다.
“어서 오게.”
구단주 마크 앨런이 직접 일어나서 악수를 해왔다.
악수를 하고 나자 마크 앨런이 옆에 있는 여자를 소개해줬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만나본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자의 미모는 대단했다.
“내 딸 로앤 앨런이네. 오늘 자네를 만난다고 하니 자신도 꼭 데려가 달라고 하는 통에 이렇게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네. 이해해주게.”
“괜찮습니다.”
“반가워요. 로앤 앨런이에요. 당신의 시합은 정말 놀라웠어요.”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몰랐지만, 말투나 행동에 자신감이 충만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얼굴의 맥브라이드 단장이 웃으며 나와 악수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구단주와의 저녁 식사 자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유쾌하지는 않았다.
특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위압적이지는 않았지만 구단주라는 위치가 워낙 높다보니 나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로앤 앨런은 나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대고 있었다.
야구를 어떻게 시작했냐, 힘들지는 않냐, 메이저리그에 진출 했을 때 각오가 어땠냐, 퍼펙트 게임을 달성 했을 때는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났냐 등등 내 입장에서는 하나도 궁금할 것 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예의 없이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적당한 선에서 대답을 해주었다.
자리는 불편했지만, 음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최고급 레스토랑답게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음식들은 나중에 부모님과 지아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나를 제외하고 가볍게 와인까지 마시며 식사를 마치고 나자 구단주 마크 앨런이 의외의 말을 했다.
“자네가 정말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약속을 하지. 자네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절대 부족함이 없는 세계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고 먼저 자리를 일어나는 구단주 마크 앨런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나와 다르게 그는 오늘 이 자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오늘 만남 즐거웠어요.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로앤 앨런의 질문에 정중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가요?”
묘한 미소를 남기고 로앤 앨런이 등을 돌렸다.
역시나 맥브라이드 단장이 마지막이었다.
단장이었지만, 구단주와 그 딸이 앞에 있으니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자리가 불편했죠?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약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맥브라이드 단장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환한 웃음을 보이고는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레스토랑을 나오며 오늘 저녁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생각을 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힘든 저녁이었다.
그리고 되도록 이런 불편한 식사 자리는 없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진심이었다.
레스토랑 앞에 대기하고 있던 구단에서 보내온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은 만족스러웠나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관으로 걸어가던 중 황지연이 불쑥 접근해왔다.
말투에 꽤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부터 계속해서 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황지연이 참 끈질기다고 생각이 들었다.
“예. 만족스러웠습니다.”
간단하게 대꾸하고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서 황지연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깨끗하게 무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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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애액!
퍼어엉!
“좋다! 아주 힘이 펄펄 넘치네!”
형수가 웃으며 공을 돌려줬다.
아직 젊기 때문인지 전 경기에서 13이닝, 145구나 던졌음에도 체력은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이러다가 오늘도 퍼펙트 게임 하는 거 아냐?”
형수가 다가와 장난스럽게 말했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기에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 상대는 콜로라도 로키스다.
앞서 상대를 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보다도 공격력이 좋다 평가를 받는 팀이었기에 퍼펙트 게임은커녕 실점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어제 있었던 1차전에서도 두 팀의 투수진을 난타하며 8:9라는 스코어가 발생했다.
가까스로 LA 다저스가 승리를 가져가긴 했지만, 콜로라도 로키스 타자들의 배트가 굉장히 달궈진 상황이었기에 오늘 경기는 한 순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토시 슌 그 자식은 진짜 조심해라.”
어제 경기에서도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의 돌격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낸 사토시 슌이었다.
“그래야지.”
시범경기에서 완벽하게 나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사토시 슌과의 재대결.
나 역시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있었다.
< 『해외편 - 11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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