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106』 >
『해외편 - 106』
“정말 이렇게 집까지 초대를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내일 시합에 나서야 하는데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차동호 기자는 계속해서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장난감을 사주기 직전의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솔직히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기자를 집까지 초대를 하는 게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미 형수가 초대를 하겠다고 뱉어버린 말이니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였다.
한 편으로는 차동호 기자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집에 들어온 차동호 기자는 의례적으로 집이 좋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형수는 집의 주인이 원래는 케디올라 벨로였다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차동호 기자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형수의 말에 대꾸를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사실, 한국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기사화되고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 집에 대한 사실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니, 차동호 기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늦은 시간이라 식사를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일 경기를 뛰어야 하는 나와 형수가 술을 마시긴 힘들었기에 가볍게 차와 비스킷을 준비해서 꺼내 놓았다.
“상당히 구수하고 단 향이 살짝 나는군요. 무슨 차입니까?”
“민들레차입니다. 한국에서 어머니께서 직접 산에서 따다가 말려서 보내주신 겁니다. 소화에 상당히 좋다고 했습니다.”
“지혁이 어머니께서 혹시라도 미국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서 소화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보내주셨죠.”
형수가 말을 거들었고, 차동호 기자는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진다며 아주 맛있게 차를 마셨다.
비스킷에는 손도 대지 않고 차만 호로록 마신 후에야 차동호 기자가 입을 열었다.
“아는 지인을 통해서 들은 말인데, MSB 방송국에서 차지혁 선수를 찾아올 거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는 듯 차동호 기자를 가만히 바라보자 그가 설명을 해주었다.
한국 내 LA 다저스 중계권을 갖고 있는 MSB 방송국에서 나에 대한 특집 방송에 대한 제작이 아주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좋을 리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적응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TV에 출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지혁 선수의 표정을 보니 MSB 방송국에서 헛걸음만 하게 생겼군요.”
“출연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내 대답에 차동호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말을 했다.
“차지혁 선수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특집 방송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국에서 차지혁 선수를 응원하는 국민들을 위해 훈련과 경기력에 지장이 없을 정도에 한해서 특집 방송 출연을 고려해보시라는 말입니다. 이제 차지혁 선수는 더 이상 한국에서만 야구를 하는 선수가 아니질 않습니까? 이제는 전 세계인이 차지혁 선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관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더 솔직하게 말해서 차지혁 선수가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방송 출연과 언론의 노출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운동 선수지, 광대가 아닙니다.”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임은 알겠지만, 솔직히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었다.
운동 선수는 경기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된다고 믿고 있다.
자신의 가치를 얻기 위해, 혹은 인기를 얻기 위해 TV에 출연한다는 건 내 입장에서는 배제의 대상일 뿐이었다.
차동호 기자가 고개를 저었다.
“광대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차지혁 선수를 보고 야구가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을 할 수 있고, 차지혁 선수처럼 되겠다 꿈을 꾸는 아이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홀로 운동만 열심히 한다면 우물 안에서만 인정을 받을 뿐입니다.”
“차동호 기자님의 말씀이 듣기 거북합니다.”
금테 안경 너머로 차동호 기자의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이며 날 쳐다봤다.
“차지혁 선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차지혁 선수에게 야구란 무엇입니까?”
“제 인생 그 자체며,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야구가 축구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유명한 선수라 하더라도 야구팬이 아니면 그게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이 부정하고 싶은 현실입니다. 세계적인 야구 선수 자체가 거의 전무하다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유명한 선수라면 베이브 루스 정도일까요? 얼마 전 은퇴를 했던 지구 최강의 투수라 불렸던 클레이튼 커쇼도 솔직히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인지도 모를 선수입니다. 하지만, 축구 선수들은 다르죠. 차지혁 선수는 데뷔전에서부터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런데 훈련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대중 앞에 나서길 꺼려한다면 잊히고 말겁니다. 물론, 데뷔전처럼 환상적인 경기를 매번 할 수 있다면 굳이 TV에 얼굴을 비출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런 일은 흔하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질 않습니까?”
차동호 기자의 말에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야구가 왜 축구보다 아래여야 합니까? 차지혁 선수가 사랑하는 야구가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될 수 있다면 그깟 TV출연이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제가 TV출연 몇 번 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 마디로 나를 통해 야구를 광고하라는 뜻인데, 그게 한두 번으로 끝나면 얼마든지 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지속적으로 TV와 언론에 노출이 되어야 하는데, 솔직히 그것이 내 성적 하락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니, 운동에 전념해야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성적 하락은 당연하다.
“단기간에 이뤄질 일이 아니죠. 당연한 말이겠지만, 차지혁 선수의 경기력 하락에 문제가 될 정도로 잦은 노출은 저 역시 권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에는 적당한 미디어 노출이 필요하다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차동호 기자의 말에 조심스럽게 형수도 끼어들었다.
“차 기자님 말이 맞아. 지혁이 너는 너무 병적일 정도로 TV나 언론 노출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이번에도 그래. 세계가 경악할 정도로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렀음에도 방송국과 언론의 접촉을 아예 차단해버렸잖아? 구단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서 꽤 난감해했다고 하더라. 생각해봐. 구단 입장에서 너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을 줬겠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탤런트로서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야. 장담하건데, 네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지금처럼 주변의 관심을 차단하면서 운동만 한다면 다음 재계약 때는 생각보다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연봉은 중요하지 않아.”
형수가 답답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래, 연봉은 중요하지 않지. 어차피 너야 평생 쓰고도 남을 막대한 돈을 벌었으니까. 하지만, 프로 선수에게 연봉은 자신의 가치의 증명이고, 그 자체가 자존심이야. 넌 너보다 성적이 뒤처지는 선수에게 더 많은 연봉을 양보할 수 있겠어? 연봉은 단순한 돈의 액수가 아니야. 너를 평가하는 가장 냉정한 잣대라고. 그리고 네가 아무리 압도적인 성적으로 위대한 투수가 된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노출이 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네가 이룩한 업적은 그저 야구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몇 줄의 기록으로만 남을 뿐이야. 하지만, 네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야구 선수가 된다면 달라지겠지. 그리고 막말로 너 정도 되면 야구계를 위해서라도 언론 노출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뭐가 그렇게 쌓였던 건지 형수는 거침없이 말을 토해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메이저리그 데뷔전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고도 인터뷰 한 번으로 끝난 나를 형수는 굉장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대했었다.
구단에서도 몇 차례나 방송 출연과 각종 언론의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요구해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었다.
시즌 중이라는 것, 5일 뒤 다시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나로서는 당연하다 여겼는데,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라 나 역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똑같은 문제가 차동호 기자로 인해 다시 거론된 거다.
그것도 나를 잘 이해줬고, 항상 호의적으로 날 대하던 차동호 기자에게서 말이다.
“오로지 야구라는 한 길만 묵묵하게 달려온 차지혁 선수의 뚝심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존경할 만하다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차지혁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 그리고 야구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오늘 제가 한 말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해봤으면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야구 자체가 한 단계 더 발전을 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결국은 누구를 위한 길인지 생각해보세요. 차지혁 선수는 현재 그 어떤 선수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랐고,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닌 것이 아닌가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돌을 던진 것처럼 머릿속에 파문이 일었다.
차동호 기자가 나를 얼마나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인지, 그리고 그 이전에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알기에 그의 말을 단순하게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야구의 발전을 위해 내가 의무를 지녔다니.
솔직히 이제 갓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신인 투수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차지혁 선수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일방적인 관심만 이어지면 결국은 팬들도 지쳐서 등을 돌리고 맙니다. 특히, 미국처럼 팬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라면 더 심합니다. 최악의 경우 실력만 믿고 건방진 태도를 가졌다며 사랑이 비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차동호 기자의 말에 형수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솔직히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눈치도 없이 제가 너무 늦은 시간까지 두 분의 휴식을 방해하고 말았군요. 오늘 초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차지혁 선수께는 괜한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진심으로 전 차지혁 선수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니 너무 언짢게 여기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고개까지 숙이는 차동호 기자의 행동에 내가 재빨리 그러지 말라며 그를 붙잡았다.
나이도 나보다 한참이나 많은 인생 선배인 차동호 기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항상 존대를 하며 이렇게까지 행동을 하니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쉬십시오. 내일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바라며 경기장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차동호 기자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오니 형수가 차동호 기자에 대해서 말을 했다.
“기자라면 학을 떼는 네가 왜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지 알겠다. 기자 이전에 정말 좋은 사람이고, 야구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딱 보인다. 나도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겠다. 그리고 이쯤됐으면 호칭 문제도 좀 해결해라. 우리보다 10살이나 많은 형님이잖아.”
형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잔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홀로 1층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10분 정도가 흐른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니고, 천천히 생각을 해보자. 지금 중요한 건 내일 경기니까.”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내며 2층 방으로 향했다.
< 『해외편 - 10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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