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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104화 (104/221)

< 『해외편 - 104』 >

『해외편 - 104』

충격과 공포의 데뷔전.

LA 다저스의 신인 투수 차지혁의 개막전 선발 데뷔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국 전역이 들끓었다.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차지혁의 고국인 한국은 당연했고, 일본과 대만을 넘어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은 국가와 지역이라면 차지혁에 대한 기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열기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백, 수천 개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신인 투수가 데뷔전에서 15타자 연속 삼진 신기록을 세웠고, 23개의 삼진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퍼펙트 게임까지 만들어냈다.

미국 땅을 밟은 지 3개월 만의 일이었고, 공식적인 첫 번째 시합에서 만들어 낸 놀라운 업적이다.

“나왔어! 나왔어!”

뉴욕 타임즈에 첫 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차지혁의 기사를 보며 60대 후반의 금발 남성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느껴지는 힘 있는 목소리였다.

엔길라 허바드, 현 국제야구연맹인 IBAF의 회장이다.

2017년 세계 야구 개혁을 이룩해낸 인물로 세계 야구계에서 가장 힘 있는 권력자라 부를 만했다.

특히,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야구 발전,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인물이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온갖 비리로 얼룩져 있는 FIFA의 어떤 욕심 많은 비리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과는 정 반대였다.

“로사! 자네 생각은 어때? 미스터 차라면 충분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선수일 것 같지 않나?”

엔길라 허바드의 앞에 조용히 서 있던 갈색 머리카락의 30대 후반의 안경 쓴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하루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사람이 바로 지혁 차입니다. 모든 미국의 방송사들도 메인 기사로 지혁 차의 이야기를 다뤘고, 세계의 각 언론사들도 온통 지혁 차의 이야기뿐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던 야구계의 발전을 위한 전 세계적인 스타로서의 첫 발은 충분하다 판단합니다.”

“당연하지! 충분하고 말고!”

“하지만, 이후 경기력이 문제가 될 겁니다. 데뷔전부터 워낙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이후 경기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주목도가 크게 달라질 겁니다.”

“으음! 그렇겠지. 한 경기만 반짝하고 사라진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겠지.”

뜨거워졌던 가슴이 차갑게 식어버린 엔길라 허바드였다.

야구를 세계 최고의 스포츠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도 아닌 세계적인 스타선수가 나와야 한다.

미국 NBA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마이클 조던의 역할이 지대했다.

스포츠 브랜드와 합작해서 마이클 조던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 이후 세계적이라 부를만한 농구 선수는 딱히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NBA의 인기는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시들해졌다.

지구상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말하라면 누구나 축구를 말한다.

축구 그 자체라 불리는 펠레와 마라도나.

그 외에 호나우두, 베컴, 메시, 호날두 등 축구는 항상 세계를 주름 잡는 월드 스타급의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된다.

인기가 시들해질 이유가 전혀 없다.

반면, 그 외의 스포츠들은 맥이 끊기고 만다.

한때 골프로 세계를 주름 잡았던 타이거 우즈,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 등등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후 그들을 대신할 월드 스타가 배출되지 않으며 활활 타오르던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야구 또한 마찬가지다.

야구 하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선수라고는 베이브 루스뿐이다.

미국 내에서는 최고의 스포츠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야구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따졌을 때는 아직 한참 부족했다.

일본, 한국, 대만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야구에 대한 열기가 높은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세계 야구 개혁 이후 국제야구연맹인 IBAF의 노력에 의해 유럽 등 세계 각국에 야구가 보급되었다고 하지만, 그 수준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것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돈과 노력을 들여 서서히 야구의 위치를 격상 시킬 순 있으나, 그건 말 그대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를 일이다.

지름길이 있다면 단 한 가지뿐이다.

모든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이다.

지금 차지혁은 그 첫 걸음을 뗐다.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터넷 세상은 이미 차지혁의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 감탄을 할 것이고, 야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선수이기에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지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차지혁에 대한 호기심이 야구에 대한 관심으로 변하고, 종래에는 야구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다.

축구가 왜 세계적인 스포츠일까?

그 기본적인 이유는 돈이다.

돈이 되니까 축구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가 된 것뿐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에 기업이 투자를 하고, 시스템이 발전하고, 선수가 많은 연봉을 받으며, 거기서 많은 이들이 꿈을 키운다.

이 단순한 구조의 순환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몸집을 불리는 거다.

“다음 경기라…….”

엔길라 허바드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입맛을 다셨다.

야구의 세계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면 차지혁이 아니라 그 어떤 선수라도 협회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성적이다.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 낼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

“부디 내가 원하는 그런 선수가 되어야 할 텐데!”

자신이 죽기 전까지 야구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가 되는 모습을 꿈꾸고 있는 엔길라 허바드에게 차지혁이 깊게 각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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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한국보다 더 하네!”

지아는 창밖을 조심스럽게 확인하고는 재빨리 커튼을 쳤다.

“한국이랑은 비교를 할 수가 없지. 당장 밖에 나가면 못해도 백 명은 넘는 파파라치들이 셔터를 눌러댈걸?”

형수의 말에 지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바보로 보여? 무슨 백 명이 넘는 파파라치들이 있다는 거야!”

“진짜라니까! 지금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누구야? 바로 지혁이야! 대통령도 아니고, 헐리웃 스타도 지금은 지혁이보다 아래야! 이런 지혁이를 파파라치들이 가만히 둘 것 같아? 절대 아니지!”

“오빠가 무슨 헐리웃 스타보다 유명하다고…….”

“CNN에서도 지혁이 이야기를 하는 것 못 봤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여긴 미국이야. 야구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그것도 역사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기록을 세운 지혁이가 유명하지 않으면 누가 유명하겠어? 어제 봤지? 마이크 테일러라가 3연타석 홈런을 쳤는데도 대충 몇 마디 말만 해주고 지혁이 이야기로 한참이나 방송을 했던거. 신인 타자가 3연타석 홈런을 친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아? 그런데! 지혁이 기록이 워낙 대단하니까 완전히 밟혀버렸잖아. 네 오빠가 지금 얼마나 유명한지 지아 넌 지금 그 빙산의 일각조차도 느껴보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형수의 말에 지아가 가만히 날 바라봤다.

“오빠, 형수 오빠 말이 진짜야?”

“뻥이야.”

간단하게 대꾸하고는 방으로 올라갔다.

등 뒤로 지아와 형수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어제 있었던 일이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퍼펙트 게임을 완성하고 토렌스와 부둥켜안았던 모습부터 모든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와 축하를 해주었고,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박수를 쳤다.

개중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펑펑 눈물까지 쏟으며 감정을 이기지 못한 관중도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울려 퍼졌던 내 이름.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할 때는 정말이지 나 역시 코끝이 시큰했다.

“카메라맨이 엉뚱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코끝이 시큰해져 있을 때였다.

대형 스크린에 부모님과 지아의 모습이 비춰졌는데, 두 분 모두 눈물을 흘리고 계셨고, 지아 역시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결국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방송이 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엄청난 수의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했고, 기억도 나지 않을 무수히 많은 질문세례를 어찌어찌 넘겼다.

구단주까지 직접 기념행사에 참석해 10년 지기처럼 날 옆에 끼고 다녔고, 덕분에 부모님과 지아까지도 불편한 자리를 계속 지켜야만 했다.

“그래도 환상적인 밤이었으니까.”

하루가 지났음에도 TV를 틀면 내가 했던 경기의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방송 채널이야 워낙 많고 그들이 각기 다른 시간마다 경기 중계나, 하이라이트를 틀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몸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퍼펙트 게임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국 무대와는 분명 그 차이가 있었기에 느끼는 기분은 확연하게 달랐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게임을 지배했다는 사실에 대한 만족감이 굉장히 컸다.

“이제 시작이지.”

메이저리그의 시즌은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득히 멀었다.

나보다 앞서 위대한 대기록들을 세운 투수들의 발자취만 좇는다 하더라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당장 신인왕이 되어야 하고, 사이영상을 받고, MVP도 거머쥐어야 한다.

당연히 LA 다저스를 월드 시리즈에 진출시키면서 우승반지도 낄 생각이다.

그렇게 시즌이 한 번, 두 번 넘어갈 때마다 차곡차곡 기록이 쌓여 전설이라 불리는 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끝내는 그 어떤 투수도 오르지 못한 곳까지 올라설 작정이다.

데뷔전 퍼펙트 게임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첫 걸음일 뿐이다.

오늘 이후, 더 이상 흥분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훈련하고, 마운드에 서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죠?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투수가 될 생각이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한 기자의 질문에 난 분명하게 대답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로 우뚝 서는 것이 바로 제 목표입니다.”

일상은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과 지아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나와 형수의 생활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투수인 나는 정해진 스케줄대로 훈련을 하며 팀의 경기를 관전했지만, 형수는 이제나, 저제나 출전할 순간만을 대기하며 불필요한 초조함으로 나까지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개막전에서의 환상적이었던 퍼펙트 승리와는 다르게 이후 2번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아주 치열한 경기 끝에 1승 1패를 주고받으며 겨우 위닝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하루의 달콤한 휴식 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원정길에 나섰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찬가지로 3연전이 준비되어 있었고, 마지막 3차전에 나는 2번째 선발 등판이 예고된 상태였다.

“하아아아아…….”

호텔 방에서 형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애리조나와의 1차전에서 대타로 기대하던 첫 번째 출전을 했지만, 아쉽게도 공 4개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투수 대타로 이어진 타석이었기에 딱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기회였지만, 결과는 최악이었기에 경기 내내 풀이 죽어버린 형수의 모습이 안쓰럽게까지 보였다.

“바보 같은 새끼! 뻔히 높이 날아오는 공이었는데 거기다 대고 배트를 휘두르면 어쩌냐고!”

이제는 하다하다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대며 자해까지 하는 형수였다.

“그만해. 기회는 계속 주어질 테니까 지금처럼 자책하기보다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각오를 다지든, 연습을 하든 해. 괜히 엉뚱한 짓 하다가 컨디션만 더 떨어트리지 말고.”

내 말에 형수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상태로 날 바라봤다.

“기회가 있겠지?”

“당연하지. 시범 경기 후반처럼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해.”

“나도 아는데… 타석에만 서면 온 몸이 흥분되서 말이야.”

“고등학교 때처럼 자신 있게 해. 위축 든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쉽지.”

풀이 죽은 형수의 음성에 나도 더 이상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내가 아무리 옆에서 조언을 하고, 격려를 해준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애리조나 타자들의 자료를 들고 침대에 몸을 누이자 곧바로 호텔 방에 비치되어 있는 전화벨이 울렸다.

여전히 테이블에 얼굴을 뭉개고 있던 형수가 손을 더듬어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서류철의 첫 번째 페이지를 몇 줄 읽지도 못했을 때였다.

“뭐라고요? 예! 물론이죠!”

벌떡 일어나며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형수의 모습에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느끼곤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형수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날 돌아보며 외쳤다.

“지혁아! 나 내일 선발이다!”

< 『해외편 - 104』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내일은 토요일입니다.

주말 재밌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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