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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90화 (90/221)

< 『해외편 - 090』 >

『해외편 - 090』

“네가 그 소문의 슈퍼 루키? 코리아 쇼크?”

마이크 트라웃이 날 위아래로 바라보며 물었다.

191cm인 나보다 살짝 작은 키의 트라웃은 TV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살이 빠져 있었다.

“반갑습니다. 차지혁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에 트라웃이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고 싶다는 행동임을 알기에 웃으며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 해보자고. 한국에서 보여줬던 환상적인 실력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도 보여줘.”

트라웃의 호의적인 모습에 한결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트라웃! 이번에 새롭게 다저스로 트레이드 된 장형수라고 해! 포지션은 포수! 여기 있는 지혁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배터리를 맞춰왔지!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형수가 불쑥 끼어들며 언제 봤다고 트라웃에게 친근하게 말을 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단어 하나, 하나 신경 써서 말을 하는 나와 다르게 형수는 그런 걸 별로 생각하지 않는 듯 정말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드? 아! 마리아 파헬슨을 밀워키로 보내고 데리고 왔다는 유망주가 너였어?”

트라웃의 시선이 호기심에 가득차서 형수를 훑어봤다.

197cm의 큰 키에 미국에서 근육량을 더 늘려서 더욱더 큰 체격이 되어버린 형수는 트라웃을 굉장히 작게 만들어버렸다.

“포수라고?”

트라웃은 형수의 체격 조건이 포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차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가 될 몸이지!”

자신감 하나는 정말 최고인 형수다.

내 앞에서 소주를 마시며 메이저리그 성적이 처참하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 잘해봐.”

트라웃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이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드러냈을 형수의 태도였지만, 트라웃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입단식은 언제지?”

트라웃이 나에게 다시 관심을 드러냈다.

“이틀 뒤입니다.”

“이틀 뒤? 어쨌든 다저스에 온 걸 환영한다. 그리고 나한테는 편안하게 말을 해도 돼.”

웃으며 어깨를 툭 치는 트라웃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수의 말처럼 성격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지금은 비시즌, 그것도 훈련을 전혀 하지 않는 시기였다.

거기에 LA 다저스는 현재 감독도 없었다.

2026년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서 성적이 3위에 머물면서 감독이 경질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새로운 감독과 계약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선수들도 없고, 감독도 없는 다저 스타디움이란 소리다.

“구경하려고. 앞으로 우리가 몇 년은 뛰어야 할 홈 구장이니까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

형수가 대신 말을 했고, 트라웃은 그럴만하다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신이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을 하려는 나보다 형수가 먼저 흔쾌히 받아들이며 트라웃에게 달라붙었다.

트라웃의 안내를 받아 다저 스타디움의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국내의 야구장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라운드부터 시작해서 클럽 하우스, 실내에 마련되어 있는 웨이트 트레이닝 센터, 전력 분석실 등등 모든 곳이 훌륭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좋은 환경을 하루라도 빨리 국내의 구단들이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트라웃! 덕분에 정말 고마워! 보답으로 저녁은 우리가 살게. 시간 괜찮아?”

형수의 말에 트라웃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밥은 다음에 같이 하지. 나는 훈련을 해야 해서 말이야.”

0.332/0.416/464/342.

0.275/0.342/9/8.

앞의 수치는 마이크 트라웃이 LA 에인절스 시절에 달성한 통산 타율, 출루율, 홈런, 도루의 기록이다.

뒤의 수치는 2023년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를 한 이후의 통산 성적이다.

더 정확하게는 2023년부터 작년까지 고작 35게임을 치르고 난 성적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없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어깨연골파열이었다.

보통은 투수들에게 잘 나타나는 부상이었는데, 타자인 트라웃에게 이런 부상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증상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로는 회복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LA 에인절스가 트라웃을 트레이드 시킨 이유다.

2022년에도 34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준수한 활약을 해줬지만, 확실히 전년도에 비해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진 트라웃이었다.

언론에서는 트라웃에게도 슬럼프가 왔다, 노쇠화가 시작된 증거다며 떠들어댔지만, 당시 트라웃의 나이가 32살이라는 걸 감안하면 너무 이른 판단이었다.

실제로도 노쇠화나 슬럼프가 아닌 어깨연골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었고, 그 사실을 비밀로 취급하던 에인절스는 당장 2023년부터 트라웃이 제대로 된 활약을 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걸 예견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에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역대급 선수임에도 에인절스가 트레이드를 감행한 이유는 매년 350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연봉 때문이다.

트라웃의 부상 정도가 그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몰랐지만, 어깨연골파열 자체가 워낙 야구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이었기에 에인절스로서도 앞으로 6년이나 남은 2억 달러가 넘는 연봉을 지급하는 것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다저스의 초특급 유망주와 2선발 투수를 받고 트라웃을 내준 거다.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야 트라웃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한 다저스는 부랴부랴 수술대에 트라웃을 올렸지만 경과는 너무 나빴다.

많은 언론에서도 트라웃은 끝났다고 할 정도로 부정적이었지만, 당사자인 트라웃은 달랐다.

치명적인 어깨연골파열에도 불구하고 재활을 통해 드디어 2027년 재기의 신호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재기할 수 있을까?”

구단 훈련장으로 향하는 트라웃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형수가 말했다.

“트라웃이잖아.”

천재 중의 천재, 야구를 위해 태어난 선수라 불리는 트라웃이다.

전 세계의 내노라 하는 야구 천재들이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독보적인 재능으로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트라웃이라면 반드시 재기에 성공할 것 같았다.

‘설마, 장태훈 선배처럼 되진 않겠지.’

@

펑펑펑!

정식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입단식을 치뤘다.

엄청난 수의 기자들과 다저스 팬들이 다저 스타디움으로 몰려들었다.

기자들이나 팬들이나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등번호는 결국 7번을 달았다.

원래는 13번이나 3번을 달 생각이었는데, 7번이었던 선수가 이적을 하면서 행운의 번호라 할 수 있는 7번을 차지할 수 있었다.

미국과 한국의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질문을 퍼부었고,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담담하게 대응했다.

“다저스에서 뛰는 동안 한 가지만 생각할 겁니다. 월드 시리즈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다저스가 우승하는 것이야 말로 제 개인의 가장 큰 영광이고, 다저스 또한 우승을 위해 절 영입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 외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포부를 말해달라는 기자의 답변에 그렇게 대답했다.

신인왕과 사이영상에 도전을 할 것이냐, 투수로서 MVP를 차지할 수 있겠냐 등등 온갖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부분의 답변은 한 결 같았다.

오로지 팀을 위해 마운드에 설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하이에나 무리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에 대한 내 대응능력에 구단주를 비롯한 임원들과 단장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쇼맨십이 없는 것 같은 단답형의 대꾸와 무미건조한 인터뷰에는 아쉬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나도 안다.

슈퍼스타는 야구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는 쇼맨십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기자들 앞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인지 쉽게 바뀌질 않았다.

꽤 화려했던 입단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황병익 대표가 선물이라며 준비한 자동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었다.

“S65 AMG!”

M사의 자동차라는 사실만 알고 있는 나와 다르게 형수는 모델명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형수는 자동차의 외관을 꼼꼼히 살펴보며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 내가 보기에도 꽤 멋진 외형을 갖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도착했어야 할 자동차였는데, 영업점에서 내가 타는 자동차라는 걸 알고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해주느라 시일이 늦어다며 차를 가지고 온 영업사원이 그렇게 말했다.

“시트 봐! 죽여준다! 지혁아! 얼른 앉아봐!”

형수는 내 손을 잡아당기며 억지로 운전석에 앉혔다.

“시동! 시동!”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묵직하게 깔리는 조용한 엔진 소리가 날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자동차 학원에서 운전했던 자동차나, 아버지의 차와는 차원이 다른 엔진음이었다.

“소리 봐라! 죽인다!”

형수는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자동차를 내부까지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나도 한 대 뽑을까?”

“그러던지.”

나에 비해 적을 뿐이지, 형수의 연봉도 꽤 많은 편이었다.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에는 비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정식 메이저리거도 아닌 형수의 연봉은 한국의 웬만한 대기업 임원보다 훨씬 많다 할 수 있었다.

“생각 좀 해봐야겠다!”

말과 다르게 형수의 눈동자는 이미 자동차를 사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예. 그런데 너무 좋은 차를 선물로 주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황병익 대표는 그저 웃기만 했다.

솔직히 자동차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운전도 초보인 내가 이렇게 좋은 자동차를 끌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선물로 주겠다는 걸 억지로 돌려줄 수도 없었기에 조심해서 타기로 했다.

“희소식이 있습니다.”

입단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굴 만나고 오겠다고 했던 황병익 대표였는데, 어떤 정보를 들은 모양이었다.

“다저스 구단의 전력 보강 계획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럼 크레이그 바렛이 다저스로 온다는 말입니까?”

크레이그 바렛.

2020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골든 글러브를 놓친 적이 없는 현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타격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수비 능력 하나만큼은 무결점이라 불리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주전 유격수로 올 시즌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적 시장에 내놓았고 현재 6개의 팀에서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투수에게 최고 수준의 수비 능력을 보유한 유격수는 말 그대로 가장 든든한 방패다.

다저스의 약점 중 하나가 바로 내야 수비다.

그 중 유격수는 정말 처참했다.

항상 공격력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수비 실력이 형편없었고, 그로 인해 다저스의 많은 투수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어야만 했다.

그랬기에 특급 유격수 유망주 마리아 파헬슨을 트레이드 시킨 것이 팬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었던 거다.

“더불어 2명을 트레이드 중이라고 합니다. 그 중 한 명이 에단 체이스입니다.”

“누구라고요?”

자동차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던 형수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에단 체이스 선수를 다저스에서 트레이드 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싸!”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형수였다.

그럴 수밖에. 에단 체이스는 현재 다저스의 백업 포수였으니까.

다시 말하면 다저스에서 형수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거나, 다른 포수 자원을 물색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도 후자보다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마리아 파헬슨까지 트레이드 시켜가면서 형수를 데리고 왔는데, 여기서 에단 체이스를 보내고 다른 포수 자원을 영입한다? 굉장히 웃기는 트레이드가 된다.

눈치 빠른 형수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선수와 이적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또요?”

“정보를 알려준 사람의 말에 의하면 상당한 스타급 선수라고 합니다.”

“이왕이면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였으면 좋겠군요.”

순전히 내 바람일 뿐이다.

하지만, 최고의 수비 능력을 갖춘 크레이그 바렛을 영입한 다저스에서 또 다시 수비 능력이 좋은 선수를 데리고 올 리가 없다.

분명 공격력이 강한 타자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누구인지 모르나, 맥브라이드 단장의 말처럼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다저스는 역대 최고의 돈보따리를 풀거라는 말이 확실해지고 있습니다.”

나 한 사람에게만 하더라도 벌써 2억 9천만 달러, 근 3억 달러를 퍼부었다.

여기에 크레이그 바렛을 데리고 오려면 이적금까지 포함해서 최소 1억 달러 이상을 써야 한다.

두 명을 위해 4억 달러를 썼다.

그런데 스타급 선수 한 명을 더 이적 준비 중이라고 하니 최소 5억 아니, 6억 달러다.

여기에 장형수를 데리고 오기 위해 트레이드 시킨 마리아 파헬슨의 가치, 그 외 여러 선수들과의 재계약이나 새로운 계약 등을 생각하면 전체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마지막으로 2주 후에 있을 스프링캠프에서 맥브라이드 단장이 말했던 투수 코치가 누구인지 확인을 했습니다.”

‘차지혁 선수를 위해 내가 정말 어렵게 투수 코치를 영입했죠.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 기대해도 좋아요. 하하하.’

첫 만남 자리에서 맥프라이드 단장이 자신 있게 말했던 새로운 투수 코치.

무엇보다 나를 위한 투수 코치였기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입니까?”

< 『해외편 - 090』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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