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편 - 089』 >
『해외편 - 089』
“마음에 드십니까?”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보다도 형수가 먼저 외쳤다.
“죽입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집은 본 적이 없습니다!”
형수의 말대로 나 역시 황병익 대표가 구한 집을 구경하면서 상당히 놀랐다.
겉으로 보기엔 딱히 놀라울 것이 없었다.
외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앞마당이 딸린 2층짜리 주택이었으니까.
외형만 놓고 본다면 평범해서 일반 가정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집을 돌아서 뒷마당으로 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보다 그 크기가 훨씬 더 큰 박스 형태의 창고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내부가 기가 막혔다.
우선 지하와 지상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지하에는 25m의 길이로 만들어진 실내 수영장과 따로 분리되어 있는 넓은 공간에는 각종 헬스 운동 기구가 구비되어 있어 웬만한 헬스장보다 나아 보였다.
1층은 투구 연습을 할 수 있는 마운드와 간단하게 몸을 풀 거나 튜빙을 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무실처럼 따로 분리 독립된 공간에는 제법 커다란 모니터 3대와 각종 영상 장비 및, 촬영 카메라들이 놓여 있었다.
“다저 스타디움 바로 옆에 이런 좋은 집이 있다니! 도대체 누가 이런 집을 지어놓고 임대를 한 겁니까?”
누가 봐도 야구 선수를 위한 집이었다.
그것도 타자보다는 투수에게 더욱 효과적인 훈련 시설이었다.
형수의 말처럼 다저 스타디움까지는 고작 2마일(mile), 즉 3킬로미터 밖에 되질 않았다.
“케디올라 벨로 선수가 직접 설계했던 집이라고 합니다.”
“케디올라 벨로!”
2019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입성을 한 쿠바 선수 케디올라 벨로를 모를 리가 없다.
데뷔년도에 15승을 거두며 단번에 다저스 2선발로 자리를 잡은 케디올라 벨로는 2020년 23승을 거두며 사이영상까지 거머쥐었다.
데뷔 2년 만에 일궈낸 놀라운 성과였다.
당시 실력만 놓고 본다면 상징적인 에이스였던 커쇼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에이스라 불리며 다저스의 1선발로 올라선 케디올라 벨로였다.
하지만, 2021년 5승을 끝으로 케디올라 벨로는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시 7게임에 등판해서 5승을 거머쥐고, 평균자책점 1.64라는 뛰어난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모든 야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줄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이 집을 완공하고 교통사고로 떠나기 직전까지 딱 3개월 살았다고 합니다. 케디올라 벨로의 약혼녀가 이 집을 다저스에 넘기고 이후로는 다저스에서 케디올라 벨로 선수의 집을 유지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몇몇 유망주 선수들에게 임대를 해주려고 했었는데, 모두 싫다고 했답니다.”
“나 같아도 싫겠네요. 아무리 좋은 집이라고 하더라도 꺼림칙하잖아요.”
집 좋다고 연신 환호를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인상을 찌푸리며 괜히 주변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형수였다.
하긴, 집 주인이었던 케디올라 벨로가 집에서 살기 시작하고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혁이 넌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 있었어.”
“알고도 여기 살겠다고 한 거라고?”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사람이 죽어 나간 집이잖아! 아무래도 좀 불길하지 않냐?”
케디올라 벨로가 집에서 죽었나?
교통 사고로 길에서 죽었다.
집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형수의 말대로라면 사람이 죽거나, 다친 집은 절대 살아선 안 된다는 말인가?
말 같지도 않는 소리다.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자세히 개인 훈련장을 살펴봤다.
연습 벌레라는 말을 달고 다녔을 정도로 훈련에 집착했다는 케디올라 벨로가 얼마나 공을 들여 설계를 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훈련 시설도 좋지만, 방음부터 시작해서 통풍과 환기를 위한 시스템들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이만한 개인 훈련시설을 가지고 있다는 건 운동 선수에겐 커다란 자랑거리였다.
“정말 여기서 살 거야? 그냥 다른 데로 가면 안 될까? 어차피 운동 시설은 다저스 훈련장이 훨씬 더 좋잖아? 코 앞에 최고의 훈련시설을 갖춘 다저 스타디움이 있는데 왜 개인 훈련장이 필요한 거야?”
“훈련은 집에서도 해야 하니까.”
형수의 말을 단번에 거절하곤 집으로 향했다.
개인 훈련장은 상당히 공을 들인 반면, 집은 딱히 별다를 게 없었다.
일반 가정집과 하나도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했다.
어째서 케디올라 벨로의 약혼녀가 미련 없이 다저스에 이 집을 넘겼는지 알만했다.
“엄마한테 부적이라도 좀 보내달라고 하던가 해야지.”
형수는 툴툴거리면서도 자신의 방에 짐을 풀었다.
1층에는 부엌 겸 식탁이 놓여 있는 식당, 가죽 소파와 TV가 놓여 있는 중앙의 거실, 화장실, 적당한 크기의 방 하나가 있었는데 형수와 상의 끝에 손님방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2층에는 3개의 방과 화장실 겸 샤워실이 전부였다.
형수와 나는 각각 서로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장 멀리 떨어진 방을 각자 사용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부터 들고 왔던 가방을 내 방에 내려놓자, 형수가 날 불렀다.
“지혁아! 1층에서 음료수라도 한 잔 하자!”
알겠다고 대답하고 1층으로 내려가니 쿠키와 과자, 빵 등이 소파 앞 테이블에 널려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형수가 대뜸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넌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태연할 수 있는 거냐? 옛날부터 네 심장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구단주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을 줄은 몰랐다.”
“왜?”
“구단주랑 단장을 비롯해서 임원들이 널 바라보는 눈 못 봤어? 옆에 서 있던 내가 다 부담스럽더라! 눈으로 넌 무조건 20승을 해야 해! 20승 투수를 위해 우리가 그 큰 돈을 쓴 거야! 라고 하는 거 못 봤어?”
“아.”
충분히 느꼈다.
구단주를 비롯한 임원과 단장의 시선은 굉장히 뜨거웠다.
이해한다.
막대한 돈을 들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거다.
막말로 내가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나야 먹튀 소리 듣고 말지만, 다저스 구단의 피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때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호구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판이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소리를 듣고 있는 상황이지만.
“구단주가 차지혁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뜨겁긴 하더군요. 하하하.”
황병익 대표의 말에 형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좀 뜨거운 정도가 아니라 완전 이글이글 타들어가던데요?”
내가 피식 웃자 형수가 혀를 찼다.
“좋다고 웃을 일이 아니야. 성적 못 내봐라. 널 쳐다보던 눈빛이 살기가 되어 널 죽이려고 할 걸?”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형수가 진저리를 쳤다.
하긴, 일개 선수에게 구단주는 말 그대로 하늘과도 같은 존재이질 않은가.
그런 구단주가 작정하고 선수 하나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정말 인생 괴롭게 꼬일 거다.
“국제 면허증은 발급 받아 오셨죠?”
“네. 받아는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차를 운전하고 다닐 일이 많겠습니까?”
미국이 넓다는 건 인정한다.
아무래도 대중 교통보다는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도 편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군말하지 않고 한국에서 면허증을 땄고, 그걸 국제 면허증으로 발급 받아서 왔다.
하지만, 집과 야구장의 거리가 이렇게 짧은데 운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 정도의 거리는 솔직히 걷거나, 뛰어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동 선수는 몸이 편해지기 시작하면 그만큼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생각하는 나였기에 3km의 거리 정도는 튼튼한 두 다리로 다녀야 할 거리였다.
“미국에서는 차를 끌고 다니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차는 미리 신청을 했습니다. 3일 이내로 집까지 올 겁니다. 차지혁 선수가 딱히 원하는 회사나 모델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어울릴만한 걸로 직접 골라봤습니다. 아, 그리고 차는 제가 차지혁 선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따로 돈을 드리겠습니다.”
“차지혁 선수가 우리 에이전시에 준 이익이 얼마나 큰 줄 아신다면 그냥 받아서 잘 타고 다니시면 됩니다.”
“선물로 주겠다는 걸 왜 굳이 마다하고 그러는 거야. 황 대표님 진짜 센스쟁이시네! 아무래도 진짜 저 황 대표님 회사로 옮겨야겠습니다. 흐흐흐!”
“그럼 내일부터 장형수 선수 에이전시 대표에게 계약 해지 절차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황병익 대표가 진지하게 나오자 형수가 슬쩍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모습에 나와 황병익 대표가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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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에는 2명의 슈퍼스타가 있다.
필 맥카프리.
전형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으면서 야구를 해온 선수다.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으로 다저스에 입단, 1년 간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하게 키워져서 데뷔 년도부터 꾸준하게 선발의 한 축을 담당, 이제는 명실상부 LA 다저스의 에이스가 된 투수.
필 맥카프리는 데뷔 년도부터 꾸준하게 10승 이상을 책임졌다.
부동의 에이스 커쇼, 혜성처럼 등장했던 케디올라 벨로의 그늘에 가려 있던 필 맥카프리는 2022년 24승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하면서 지금부터 자신의 세상임을 알렸다.
이듬해에도 필 맥카프리가 22승을 달성하자, LA 다저스는 발 빠르게 5년 1억 8천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명실상부 평균 연봉 3천만 달러를 넘기는 슈퍼스타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2026년에도 18승을 따내며 다저스 선발진의 중추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었다.
“이 인간은… 아마도 널 지독하게도 싫어할 것 같다.”
형수는 다저 스타디움으로 향하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호의적이지는 않겠지.”
충분히 예상이 되는 시나리오다.
“소문에 따르면 성질도 더럽다고 하더라. 원래 성격 자체가 잘난 체가 좀 있는 편인데 다저스 에이스라는 것까지 더해졌으니 엄청 거만할 거다. 그런데 신인 투수가 에이스인 자기보다 훨씬 더 큰 계약을 체결했으니 안 봐도 뻔하지.”
형수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에이스와의 충돌.
대전 호크스의 경우엔 충돌이라 할 것도 없었지만, 다저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리그, 그 속에서도 명문이라 불리는 다저스의 에이스다.
3천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는 에이스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묻지 않아도 알만했다.
필 맥카프리와의 감정 싸움은 다저스와 계약을 생각하면서부터 각오했어야 할 일이다.
이건 다저스가 아닌 다른 어떤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했어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필 맥카프리와는 어차피 좋은 사이로 지내기 힘들 테니까 네가 공략해야 할 대상은 바로 트라웃이야.”
투수조에 필 맥카프리가 있다면 야수조에는 메이저리그 역대급 신인, 은퇴를 하면 명예의 전당에 반드시 이름을 올릴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마이크 트라웃이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신인 데뷔부터 충격적이다.
30-30클럽에 가입하고 MVP 투표 2위를 차지한 괴물 중의 괴물인 마이크 트라웃은 2023년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초대형 트레이드로 LA 에인절스에서 LA 다저스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지역 라이벌인 두 팀 간에 이뤄진 트라웃 트레이드는 말 그대로 모두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끔 만드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이크 트라웃을 트레이드 시킨 에인절스의 팬들은 폭동에 가까운 항의까지 벌이며 트레이드를 되돌리라고 외쳤다.
하지면,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트라웃은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었고, 에인절스는 12년 동안 엄청난 활약을 해준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를 망설임 없이 라이벌 팀으로 보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트라웃은 성격이 좋아서 따르는 선수들이 많아. 지혁이 네가 트라웃과 관계만 잘 맺어도 널 시기하고 질투하는 선수들 속에서도 편안하게 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요즘 어때?”
내 물음에 형수가 씨익 웃으며 고갯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다저 스타디움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선수, 마이크 트라웃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이크 트라웃!”
형수가 다짜고짜 마이크 트라웃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마이크 트라웃이 몸을 돌려 나와 형수를 바라봤다.
< 『해외편 - 08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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