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84화 (84/221)

< 『해외편 - 084』 >

『해외편 - 084』

-장호길 기자께서는 차지혁 선수가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께서 접하셨겠지만, 뉴욕포스트 칼럼리스트인 다윈 비버트의 칼럼에도 그 이유가 아주 상세하게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설령, 뉴욕포스트의 칼럼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어떤 구단도 아닌 뉴욕 양키스에서 거액을 들여 차지혁 선수를 영입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뿌듯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 양키스는 29년 동안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조사에 따르면 2026년 전 세계 프로 구단 가치에서도 30억 달러가 넘는 높은 가치로 전 세계 3위에 올랐습니다. 이런 엄청난 프로 구단에서 차지혁 선수를 모셔가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다른 메이저구단들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라는 상징성을 떠올린다면…….

TV에서 차지혁이 뉴욕 양키스로 가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말을 하는 기자의 모습에 제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차지혁 이적에 대한 소문과 진실]이라는 특별 편성된 TV프로였고,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사회자와 전문 패널들 모두 제프의 작품이었다.

당연히 TV 내용은 차지혁이 뉴욕 양키스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제시를 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

제프의 말에 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타 구단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계약 조건을 제시할 것이니 차지혁에게도 결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여론 몰이는 그저 양념일 뿐이다.

“우호적인 언론사 한 곳을 섭외해서 차지혁이 어느 구단으로 이적을 했으면 좋겠냐는 대대적인 설문조사도 의뢰해. 물론, 조작을 해서라도 압도적으로 뉴욕 양키스가 되도록 하고.”

여론 몰이는 한 번 시작했을 때, 정신없이 몰아붙여야 한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차지혁이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스포츠 스타며, 모든 국민들이 그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IMF 시절, 국민적 영웅이자 희망으로 불렸던 박호찬과도 비교할 수 없었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 불렸던 유혁선도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박호찬과 유혁선이 메이저리그에서 대단한 투수로 한국인의 기상을 널리 알린 건 사실이지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대투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차지혁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대심리는 달랐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사이영상을 노리는 투수!

메이저리그를 초토화 시키며 에이스로 우뚝 설 수 있는 투수!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영입하려는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단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프로 데뷔 1년 밖에 되지 않는 신인 투수에게 2억 달러 이상의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다른 놈들 얼굴이 참 볼만하겠어.”

제프는 자신이 해놓은 일들로 인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타 구단 스카우트와 단장들을 생각하며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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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조사 결과 뉴욕 양키스로 이적을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무려 82%나 되더군요.”

황병익 대표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내 앞에 신문을 내밀었다.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언론사의 신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왜 이런 설문조사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내가 뉴욕 양키스로 가길 원한다고 하니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뉴욕 양키스.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나 역시 어린 시절 동경을 했던 구단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뉴욕 양키스에 반드시 입단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린 시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는 건 분명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영광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의 설렘도 없었다.

“텍사스에서 정식으로 이적 협상 요청이 왔습니다. 7년 2억 달러부터 시작할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7년 2억 달러부터 시작을 하겠다니.

“정말 대표님 말씀처럼 되겠군요.”

연 평균 3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내겠다고 했던 황병익 대표였다.

협상 시작부터 그 말이 이뤄졌다.

“차지혁 선수는 충분히 그만한 연봉을 받을 자격이 됩니다.”

웃고 있는 황병익 대표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10%.

내가 이적 협상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 황병익 대표는 계약금과 연봉 총액의 10%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2억 달러면, 2천만 달러다.

한화로 200억이 넘는 돈이다.

말 그대로 대박.

황병익 대표의 YJ에이전시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2억 달러는 시작점일 뿐이란 사실이다.

앞으로 구단들과의 협상에서 얼마까지 금액이 치솟을지 알 수 없으니 황병익 대표에게 올 겨울은 인생 최고의 겨울이라 불러도 좋을 거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내 말에 황병익 대표가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적 협상도 중요했지만, 더 중요한 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팀에 합류해서 훈련을 하고, 동료들을 사귀는 거였다.

“우선 이번 달 안으로 이적 협상을 원하는 모든 구단들의 담당자들의 1차 협상 내역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예.”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TV로 눈을 돌렸다.

며칠 전에 나왔던 내 이적에 관한 TV프로가 재방송 되고 있었다.

뉴욕 양키스로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내용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패널들과 그 부분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회자들의 모습이 살짝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온통 양키스에 대한 말 뿐이네.’

이해는 한다.

그만큼 뉴욕 양키스는 세계적인 명문 구단이니까.

@

“에바! 이것 좀 봐!”

에바는 정혜영의 말대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거기엔 인터넷 신문 기사가 띄워져 있었고, 그 내용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차지혁에게 10년 3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3억 달러면… 3천억?”

정혜영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모니터만 바라봤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정혜영에게 3천억이라는 돈은 제대로 가늠도 되질 않았다.

대한민국 평균적인 직장인의 연봉과 비교하면 이건 상상이 가질 않는 액수였다.

“디트로이트는 힘들겠네.”

에바의 말에 정혜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3억 달러나 준다는데 힘들다니?”

“엊그제 기사 못 봤어?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7년 3억 달러를 제시했다고 나왔었어. 그런데 3년이나 더 기간을 연장하고도 금액은 똑같은 3억 달러잖아. 혜영이라면 어디랑 계약을 하겠어?”

“당연히…….”

콜로라도 로키스다.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다.

어느 누가 3년을 더 허비하면서 같은 금액을 받겠는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필리스는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연일 차지혁에 대한 이적 기사가 대한민국을 넘어 미국까지도 뒤흔들고 있었다.

차지혁과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고 있는 에바와 정혜영으로서도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에바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광팬으로 활동을 해온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도통 차지혁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갔다.

이미 차지혁의 몸값은 3억 달러를 돌파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한 선수에게 3억 달러를 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장기 계약자들이 즐비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3억 달러를 쓴다?

필리스 팬들부터 거부하고 나설 일이다.

현재 필리스는 투수가 아닌 타자에게 투자를 해야 할 상황이었다.

‘투수 2명 정도 트레이드로 내놓고 차지혁을 영입하면 좋겠지만.’

에바만의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 필리스 구단주나 단장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결정을 내릴 문제가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차지혁의 몸값을 따라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현 상황에 울상을 짓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처음만 하더라도 차지혁의 몸값으로 7년 2억 3천만 달러에서 최대 2억 5천만 달러까지 상한선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8년 3억 달러를 제시한 거다.

구단주가 알아주는 세계적인 갑부라 하더라도 이건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선수 이적 금액에 대한 건 어디까지나 지불할 능력을 갖춘 구단의 힘이다.

차지혁의 몸값으로 과하다는 말이 나오던, 말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며 영입을 하겠다고 하면 그만인 셈이다.

덕분에 이적 경쟁을 벌이던 구단들만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3억 달러가 나온 이상 그에 준하는 금액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거다.

가장 먼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 도전장을 내민 곳은 역시나 세계적인 갑부가 구단주로 버티고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였다.

협상 금액으로 제시한 7년 3억 달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보다 계약 기간을 1년이나 줄이면서 금액은 동등하게 3억 달러를 불렀다.

연 평균 연봉으로 본다면 4천만 달러가 넘는 역대 최고의 대형 계약이다.

메이저리그 최초 연봉 4천만 달러를 돌파한 선수가 나온 셈이다.

그것도 메이저리그에서 공 한 번 던져본 적 없는 투수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했으니 메이저리그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미국 현지에서도 온갖 기사들이 쉬질 않고 나오고 있었다.

차지혁의 가치가 그 정도인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시장의 질서를 파괴하며 선수 몸값을 다시 폭등시키고 있다, 차지혁에게 양심이 있다면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계약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계약 질서가 필요하다 등등.

언론과 팬들 사이가 난리가 났다.

에바로서는 지금의 사태가 차지혁에게는 결코 이롭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많은 돈을 받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차지혁은 한국 프로 무대를 고작 1년 경험했고, 생애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성을 하는 투수다.

그의 실력과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 들, 연간 4천만 달러나 되는 비상식적인 연봉을 받으며 공을 던지려면 주변에서 쏟아질 부담감과 중압감에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도 컸다.

차지혁의 멘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호적인 시선이 다수인 한국과 작은 틈만 보여도 칼날을 휘둘러대는 미국 언론은 극명하게 달랐다.

더욱이 동양인에 용병 투수라는 신분까지 더해지면 아닌 말로 7이닝 2실점을 한다 하더라도 일부 극단적인 언론에선 4천만 달러를 받는 투수가 그것밖에 못 했다며 맹렬하게 비난을 할 경우도 예상하고 있어야만 한다.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지만…….’

에바로서는 차지혁이 돈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선수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에바로서는 차지혁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계약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적 계약으로 한창 정신없을 차지혁에게 따로 연락을 할 정도로 사이가 가깝지 않으니 그저 지켜볼 뿐이지만, 정상적인 계약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으면 하는 에바였다.

“이러다가 4억 달러를 부르는 구단이 생기는 거 아냐?”

정혜영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마냥 즐겁게만 생각하는 정혜영과 다르게 에바로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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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포함해서 4억 달러 계약을 제시할 생각도 있다고 합니다.”

4억 달러?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계약에는 절대 사인하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더불어 샌디에이고와 콜로라도와는 계약하지 않을 생각이니 더 이상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프로 선수의 가치는 돈으로 증명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가치가 모두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다면?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에서 제시하는 협상 금액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황당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식으로 돈질을 한다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도 이건 받아들일 수가 없는 조건이었다.

3억 달러?

받을 순 있다.

디트로이트에서 제시한 10년 3억 달러라면 고려해볼만 했다.

하지만, 7년 3억 달러는 나 스스로도 부담이 너무 심했다.

더불어 그런 큰 돈을 받고 메이저리그로 향한다면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도 불편해질 가능성이 굉장히 컸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를 누가 환영하겠는가?

나부터 반감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계약 기간은 최대 7년으로 잡아주세요. 금액도 2억 5천만 달러까지만 받았으면 합니다.”

이것도 솔직히 부담스러운 금액인 건 사실이다.

연 평균 3600만 달러에 가까운 큰 돈이다.

당장 내년 메이저리그 투수들 중 최고 금액이니 사실상 이 정도로까지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럼에도 7년 2억 5천만 달러로 정한 이유는 미국 현지에서 나에 대한 가치 평가를 이 정도까지는 보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병익 대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너무 많은 금액을 받으면 선수가 얼마나 부담을 느끼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청난 고액 계약을 한 선수들 대부분이 돈 값을 못했다.

내년이면 이제 21살이다.

투수의 생명이 아무리 짧다 하더라도 최소 15년은 현역으로 뛸 생각이었기에 7년 계약이 끝나더라도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계약을 더 해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처음부터 너무 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2억 5천만 달러도 솔직히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미국 현지에서 측정한 가치보다 낮은 금액에 계약을 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그만한 가치를 실력으로 확실하게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12월 10일까지 세부 계약서를 받아오겠습니다.”

앞으로 딱 10일 후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언론 때문이라도 서둘러 이적 계약을 끝내고 싶었다.

< 『해외편 - 08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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