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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81화 (81/221)

< 『해외편 - 081』 >

『해외편 - 081』

사무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커다란 방.

방안을 채우고 있는 값비싼 가구와 장식품들만 보더라도 방 주인이 얼마나 돈이 많은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커다란 방 한쪽 벽면에 달아 놓은 대형 TV에서는 한 투수의 투구 영상이 쉬질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맥브라이드, 정말 멋진 투수 아닌가? 난 저 투수를 꼭 우리 구단으로 데리고 오고 싶어.”

최고급 가죽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금발의 남자가 좌측에 앉아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6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남자는 여전히 TV에만 시선을 고정시켜놓고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 양키스에서 제시한 금액이 5년 1억 5천만 달러입니다. 차지혁을 영입하려면 그 이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5년 1억 5천만이라…….”

“양키스의 제시 금액은 이번 이적 협상의 기준점이 될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최소 2억 달러까지 치솟을 거라 생각합니다.”

“최소 2억?”

금발의 남자가 처음으로 TV에서 시선을 떼며 맥브라이드를 바라봤다.

너무 많은 금액이 아니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맥브라이드는 결코 자신이 생각이 과하질 않다는 듯 곧바로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 프로 무대에서 데뷔 첫 해에 신인왕, MVP, 올스타 팬투표 1위, 올스타 MVP, 포스트 시즌 MVP까지 모조리 석권한 선수가 차지혁입니다. 수상 내역 그대로 2026년 한국 프로 야구는 차지혁 한 사람의 독무대였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한국 프로 리그의 수준 차이를 생각한다면 크게 주목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바로 그의 기록들입니다. 퍼펙트 게임 1회, 노히트노런 게임 1회, 완봉승리 9회, 230이닝,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기록, 평균 자책점 0.51, 탈삼진 277개, 출루허용률 0.39에 한국 프로 무대에서 무패를 달성한 최초의 선발 투수이기도 합니다. 이 정도의 기록은 아무리 수준 차이가 나는 한국 프로 리그라 하더라도 메이저구단 에이스급 투수라 하더라도 달성하기 쉽지 않은 기록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스카우팅 리포트로 확인을 했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다나카보다 뛰어난 투수라고 생각하나? 아니군. 이미 양키스에서 차지혁을 다나카보다 조금 더 높게 생각하고 배팅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다나카 마사히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대단한 투수.

일본 프로 무대를 정복하고 25살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다나카는 뉴욕 양키스와 7년 1억 550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엄청나게 파격적인 금액이었고,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초거대 계약이었다.

이후에도 다나카는 뉴욕 양키스와 연장 계약을 하며 양키 스타디움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맥브라이드였다.

“이유는?”

“차지혁은 좌완 파이어볼러입니다. 평균 96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강인한 어깨와 정교한 제구력은 다나카보다 한 수 위라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83마일의 파워커브와 95마일의 컷 패스트볼 또한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이라 부를 만 합니다. 여기에 차지혁은 한국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83마일의 서클 체인지업 또한 BA 구종 평가에서 수준급(Above-average)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구단 스카우트들의 공통된 의견이 있었습니다. 2025년에 있었던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지적했던 단점들도 모두 무의미한 예측이었다는 걸 차지혁은 한국 프로 무대에서 확실하게 보여줬습니다. 확신하건데, 차지혁은 다나카보다 훨씬 좋은 투수입니다.”

“다나카보다 좋은 투수라…….”

재작년 은퇴를 한 다나카 마사히로는 금발 남자가 그토록 영입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뉴욕 양키스의 보물과도 같은 투수였다.

메이저리그 11년 통산 154승을 달성하며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로 부족함 없는 활약을 했던 다나카였다.

단 한 가지 다나카의 약점이라면 사이영상을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경력뿐이다.

다나카가 떠난 자리에 뉴욕 양키스는 차지혁을 넣으려고 준비 중이다.

양키스와의 돈 싸움이라면 밀릴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여론이다.

양키스만큼 천문학적인 연봉을 들였지만, 리그 성적은 양키스보다 훨씬 아래였다.

쉽게 말해 돈을 들인 만큼 만족스러운 활약을 해준 선수들이 너무 적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지역 언론사마저 큰돈을 들여 선수를 영입하려고하면 삐딱한 시선으로 날선 비판을 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처지의 구단이 또 있다는 것 정도였다.

“텍사스에서도 차지혁을 노리겠지?”

“그렇습니다. 처음 6년 1억 3500만 달러를 준비했다가 양키스로 인해 지금은 한 발 물러났지만, 본격적으로 협상이 시작되면 절대 적지 않은 금액으로 차지혁을 차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먹튀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구단이다.

덕분에 매년 지출 연봉은 천문학적인데 비해, 성적은 부끄러울 지경이라 지역 언론의 비판을 항상 받는다.

그럼에도 텍사스 레인저스는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고자 할 때면 돈 보따리를 풀어댔다.

언론의 비판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텍사스가 점찍은 선수라면 이번 영입 전쟁이 얼마나 치열해질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양키스와 텍사스 외에 또 주목해야 할 구단이 어디지?”

“보스턴, 에인절스, 디트로이트, 콜로라도, 샌디에이고 정도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그래, 보스턴이 빠질 리가 없겠지.”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

뉴욕 양키스만큼이나 유명한 명문 구단으로 전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구단이다.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외국 자본에 흔들릴 때에도 팬심으로 굳건하게 버텼던 몇몇 구단 중 하나였다.

덕분에 외국 자본이 유입된 타 구단들에 비해 자금력이 떨어졌지만, 10년이 훌쩍 넘도록 타 구단들처럼 큰 돈을 푼 적이 없었기에 이번 기회에 쌓아뒀던 돈 보따리를 풀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욱이 근 10년 동안이나 지구 우승권의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 덕분에 그토록 단단했던 팬심도 흔들리고 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그건 곧, 이번 이적 협상에서 최고의 다크호스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에인절스와 디트로이트도 충분히 역량이 있지.”

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의 강팀이다.

선수단 전체의 연봉 총액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일부 몇 명의 선수들에게 있어서만큼은 파격적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연봉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 말을 돌리면, 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절대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리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Detroit Tigers).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의 절대 강자인 디트로이트 역시 돈이라면 부족하지 않았다.

더욱이 해외 자본까지 끌어들이며 공격적으로 선수를 수급하면서도 적극적인 트레이드로 항상 내실을 다지는 구단으로 매년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구단이다.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라…….”

말을 흐리는 금발 남자의 표정이 기분 나쁘다는 듯 일그러졌다.

콜로라도 로키스(Colorado Rockies)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San Diego Padres).

구단주가 바뀌면서 엄청난 돈 보따리를 풀고 있는 구단들이었다.

구단주가 가진 순수 자본으로만 따지면 메이저리그 30개의 구단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갑부들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었다.

“양키스나 텍사스보다 더 위험한 곳들이 바로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입니다. 작년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들 두 구단 때문에 어쩌면 차지혁의 몸값이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치솟을지도 모릅니다.”

“맥브라이드,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절대 살 수 없는 게 있지. 그게 뭔 줄 아나?”

맥브라이드는 굳이 대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안다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았다.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들은 양키스나 보스턴, 그리고 우리처럼 명문이라는 명성을 살 수가 없어. 차지혁이 돈만 밝히는 투수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명문 구단에서 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쉽게 콜로라도나 샌디에이고와 계약을 하는 일은 없을 테지.”

맞는 말이다.

명문 구단이라는 이름은 절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물론, 돈을 투입해서 지속적으로 스타 선수들을 영입하고, 그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 자연적으로 흐르는 시간만큼 명성도 쌓인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근 2~3년만 하더라도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는 슈퍼스타라 불리는 선수들의 영입에 열을 올렸다.

결과는 참혹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선수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실력은 떨어지는 선수들만 우글거리는 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들에게도 반전의 시기가 왔다.

2025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콜로라도는 톱3의 한 명인 사토시 슌을 영입할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역시 빅4라 불리던 앤드류 폴이라는 천재적인 투수를 끌어안았다.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콜로라도와 샌디에이고의 이미지가 달라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습군. 톱3나 빅4에 아시아 넘버원이라 불리던 니노마에 류지보다 아래라 평가를 받았던 차지혁이 불과 1년 만에 모든 메이저구단들이 가장 먼저 영입하려는 최고의 투수가 될 줄이야.’

2025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차지혁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면 당시 가장 유력했던 미네소트 트윈스와 5년 계약에 최고 4천만 달러 정도에 계약을 했을 거란 소문이 무성했다.

맥브라이드 역시 당시 차지혁의 가치는 딱 그 정도라 여겼다.

그런데 1년 만에 차지혁의 가치는 톱3와 빅4의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기본 시작점이 5년 1억 5천만 달러다.

여기에 이적료 3400만 달러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차지혁과 협상 테이블을 차리려면 기본으로 1억 8천만 달러가 들어간다는 소리다.

아무리 메이저구단들이 돈이 많아도 이제 갓 프로 데뷔 1년 밖에 되지 않는 투수에게 1억 8천만 달러를 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이런 쉽지 않은 결정을 아주 우습게 할 구단들도 여럿 있었다.

‘정말 올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겠군.’

맥브라이드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금발 남자가 TV 속에서 멋진 투구를 이어나가고 있는 차지혁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정말 끝내주는군! 제2의 커쇼라 해도 손색이 없겠어!”

클레이튼 커쇼(Clayton Kershaw).

메이저리그 통산 271승을 거둔 최고의 좌완 에이스!

7차례에 걸친 사이영상 수상으로 로저 클레멘스(Roger Clemens)와 함께 최다 사이영상 수상자인 클레이튼 커쇼는 실력과 동반한 인성으로 모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투수 1위라는 명예를 갖고 있기도 했다.

“맥브라이드, 두 말하지 않겠네. 차지혁을 꼭 우리 구단으로 영입하게.”

“알겠습니다.”

마크 앨런 구단주가 직접 결정을 내렸다.

이것으로 차지혁의 영입에 대한 절대적인 지원은 충분했다.

돈? 얼마든지 줄 수 있다.

명문? 양키스나 보스턴과 같은 명문 구단이라는 파워도 내세울 수 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맥브라이드는 차지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다른 구단들은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아주 효과적인 비장의 한 수!

< 『해외편 - 08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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