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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80화 (80/221)

< 『국내편 - 080』 >

『국내편 - 080』

-아, 아웃입니다! 주심의 선언에 넘어졌던 조문석 선수가 벌떡 일어나 격렬하게 항의를 합니다! 자신의 팔이 먼저 베이스를 찍었다는 제스처와 함께 항의를 해봅니다. 주심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판정에 대한 번복을 거부합니다. 대전 호크스 더그아웃에서 백유홍 감독이 걸어 나옵니다. 판정에 대한 항의와 함께 비디오 판정을 요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방송용 카메라로 느린 그림이 나오고 있습니다. 확실히 우용탁 선수의 타구가 다소 짧았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조문석 선수의 주력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승부수를 걸어볼만한 거리인 건 확실합니다.

-화면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창원 타이탄스의 중견수 채관우 선수의 송구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채관우 선수의 송구 중 최고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정돕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포수 미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채관우 선수의 송구도 대단했고, 더불어 유현민 선수가 포구와 동시에 허리를 비틀며 조문석 선수를 태그 한 동작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다른 게 볼 수 있겠지만, 확실히 이번 판정은 창원 타이탄스에게 조금 더 우세하게 보일 수가 있겠습니다. 결국 비디오 판정에 들어갔습니다.

-백유홍 감독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입니다. 이번 판정이 번복되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질 않습니까? 무엇보다 이번 판정을 초조하게 지켜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차지혁 선수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9이닝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습니다만, 대전 호크스의 득점 지원이 없어 연장전으로 넘어갈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차지혁 선수는 9이닝 동안 16탈삼진을 잡아내며 완벽하게 창원 타이탄스의 타선을 잠재웠습니다. 놀라운 건 8회 처음으로 선보인 서클 체인지업에 창원 타이탄스의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8회부터 9회까지 연속 여섯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차지혁 선수의 구위로 봤을 때, 연장전에 돌입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마운드에 오를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9회까지 차지혁 선수는 총 97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올 시즌 최대 118개의 공을 던진 경험이 있는 차지혁 선수인만큼 연장전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적게는 1이닝, 많게는 2이닝까지도 마운드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아,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웃입니다! 비디오 판정 결과도 아웃으로 판명이 나면서 한국 시리즈 1차전부터 연장전으로 돌입하겠습니다!

벗어뒀던 모자를 다시 눌러 썼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우용탁 선배의 타구가 약간 짧게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평소 채관우의 어깨와 조문석 선배의 주력을 비교하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

운이 안 좋았을 뿐이다.

9이닝 퍼펙트 게임.

역시 퍼펙트 게임이라는 건 하늘이 내려주는 기록이다.

9회 초, 퍼펙트를 달성했을 때만 하더라도 양팔을 높이 들고 환호했던 내 모습이 이렇게 민망하게 변할 줄은 몰랐다.

-짝짝짝짝짝짝!

연장 10회 초에 마운드에 오르자 대전 한밭 야구장에 입장한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쳐주었다.

창원 타이탄스의 원정팬들마저도 기립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경기는 비록 끝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해!’

모든 관중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부- 웅!

“스윙! 아웃!”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는 주심의 외침과 동시에 턱선을 타고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끈질기에 커트를 하며 버텼던 창원 타이탄스 6번 타자 이영태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날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11회.

12회에 또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가 없다.

129구.

체력도 떨어졌고, 손아귀 힘도 떨어졌다.

더 이상 던지라면 못 던질 것도 없었지만, 문제는 더 이상 창원 타이탄스의 타선을 막을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까지.

더 이상 욕심 부릴 이유가 없다.

11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 만족스러웠다.

내 기록을 위해 팀의 승리까지 위태롭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다음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줄 때다.

“수고했다!”

송진욱 투수 코치가 가장 먼저 날 반겨줬다.

“교체하겠습니다.”

내 말에 송진욱 투수 코치가 정말 괜찮겠냐는 듯 날 바라봤다.

그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퍼펙트 게임 중이다.

여기서 교체를 한다는 건 퍼펙트 게임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투수로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점수를 주고, 퍼펙트가 깨지더라도 끝까지 마운드에 서려고 하는 게 투수의 자존심이다.

“아마 다음 회에도 또 공을 던지면 홈런 맞을 지도 모릅니다.”

진심이다.

장난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 더 던질 여력이 없었다.

구위와 구속이 떨어진 투수는 언제든 타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퍼펙트 기록이 깨질 것이 두려워 교체를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팀의 승리를 위해서 교체를 하겠다는 뜻이다.

“아이싱 하겠습니다.”

내 말에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야수들과 대기 선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11회까지 퍼펙트를 기록한 투수가 미련 없이 게임을 포기한다면 타자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지독한 모멸과 무능력함에 자존심이 걸레짝 취급을 받을까?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퍼펙트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 미리 발을 빼려는 비겁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분명한 건 12회에도 내가 마운드에 서는 일은 없을 거란 사실이다.

아이싱을 준비하는 동안 무겁게 가라앉은 더그아웃에서 웬만해선 경기 중에 특별히 말을 꺼내지 않는 백유홍 감독이 입을 열었다.

“12회는 없다. 12회로 이어지면 우린 이 경기에서 패배한다.”

그 말에 선수들은 물론, 나까지도 굳은 얼굴로 감독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 말처럼 그럴지도 모른다.

11회까지 퍼펙트로 타선을 막은 투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승리를 못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경기에서 패배하면 그 데미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더욱이 창원 타이탄스는 에이스 투수까지 로테이션을 바꿔가며 2, 3, 4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대전 호크스의 내일 경기는 오늘보다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단 소리다.

그런데 퍼펙트 기록을 달성하고도 패배한다면?

선수들의 사기와 자신감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창원 타이탄스는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진다.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하면 우승한다는 84%의 확률까지 거머쥔 창원 타이탄스를 과연 대전 호크스가 막을 수 있을까?

어렵다.

자칫하면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포스트 시즌을 전승으로 우승까지 하는 팀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딱! 하나만 생각하고 타석에서 집중해! 한국 프로 야구 최초의 퍼펙트 게임을 망친 무능력자에 민폐 선수로 남지 않겠다고! 그렇게만 여기자고!”

황대훈 선배의 외침에 모든 선수들이 그를 바라봤다.

“제발 나 좀 도와줘라. 내 인생에 두 번 씩이나 투수의 퍼펙트 게임을 날려버린 포수라는 오명이 남지 않도록 꼭 좀 도와줘라!”

울상까지 짓고 있는 황대훈 선배의 모습에 몇몇 선수들이 피식 웃었다.

무겁게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녹았다.

연장전까지 오며 무득점 경기로 인한 자괴감에 빠져 있던 선수들의 눈동자가 서서히 살아났다.

“이번 공격으로 깔끔하게 경기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푹 쉬자!”

정현우 선배가 우렁차게 외치자 선수들이 하나, 둘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11회 말 공격은…….

-2루에 있던 박상천 선수 홈으로 들어옵니다! 2사 2루 상황에서 좌중간을 깨끗하게 뚫어버린 결승 타점의 주인공은 황대훈 선수입니다!

내 퍼펙트 게임을 지켜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황대훈 선배였다.

1루 베이스를 돌며 껑충껑충 뛰는 모습이 정말 기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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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호크스 차지혁,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첫 퍼펙트 게임 달성!》

《한국 시리즈 1차전, 연장 11회 접전! 차지혁 11이닝 퍼펙트 게임!》

《차지혁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22K! 역대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 수립!》

《차지혁 신무기 서클 체인지업! 12타자 연속 삼진 신기록 세우다!》

《한국 시리즈 1차전은 차지혁의 신기록들로 장식 된 경기!》

《11회 말, 결승 타점 황대훈! 차지혁 데뷔전의 빚을 갚다!》

한국 시리즈 1차전이 끝나자 모든 언론 매체에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식을 줄을 몰랐다.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첫 퍼펙트 게임이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 대한민국 전체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모든 뉴스에서조차 메인으로 장식을 했으니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은 온통 내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고,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퍼펙트 게임과 동시에 세운 또 다른 두 가지의 기록도 화제가 됐다.

우선 한 경기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새롭게 썼다.

이전까지의 기록은 1991년 18개로 선동영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22개를 기록하면서 본의 아니게 선동영의 이름이 다시 한 번 기록에서 밀려나버리고 말았다.

2026년 한 해 만에 자신이 세운 대기록들이 줄줄이 갈아치워졌으니 선동영으로서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 기록은 연속 타자 삼진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이었던 10명에서 2명이 추가된 거다.

고교 시절 17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 시켜 버린 기록도 가지고 있었지만, 프로의 기록과는 확연하게 그 무게가 달랐기에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었다.

한 경기에서 무려 3가지나 되는 기록을 한꺼번에 달성하자 인터넷에서는 나를 두고 외계에서 온 야구 선수라며 외계인 취급까지 할 정도였다.

덕분에 한국 시리즈 2차전의 결과가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까지 했다.

《대전 호크스! 창원 타이탄스와의 한국 시리즈 2차전에서 압승!》

《1차전의 무기력했던 대전 호크스의 타선 4홈런 폭발!》

《홈에서 1, 2차전을 승리한 대전 호크스 기분 좋은 원정길 나선다.》

《대전 호크스 백유홍 감독, 원정 경기에서 시리즈 마무리 짓겠다!》

《창원 타이탄스 양종호 감독, 홈 경기는 다를 것!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다!》

예상 밖에 한국 시리즈 2차전이었다.

로테이션까지 바꿔가며 아낀 창원 타이탄스의 에이스 프레디 에르난데스가 4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더불어 전날 있었던 무능력했던 득점력에 독이 오른 듯 대전 호크스의 타자들이 쉬질 않고 점수를 내며 너무나도 손쉽게 승리를 챙기며 원정길을 떠났다.

《뼈아픈 실책이 낳은 패배! 창원 타이탄스 3연패로 위기에 섰다!》

《잘 되는 집안은 뭘 해도 잘 된다? 대전 호크스 상대 실책으로 3차전 승리!》

3차전은 창원 타이탄스가 스스로 무너지며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7회까지 2점차 리드를 잡고 있던 창원 타이탄스는 8회 초, 대전 호스크의 1사 만루 상황에서 정현우 선배의 타구가 유격수 존 휴즈에게 날아갔다.

존 휴즈가 재빨리 공을 잡아 2루로 던진 공이 악송구로 이어지면서 2점을 헌납하며 동점이 되었고, 이후 조문석 선배의 볼넷과 메이슨 발레타의 만루 홈런으로 경기가 완벽하게 뒤집히고 말았다.

대전 호크스로서는 상대의 실책으로 얻은 기분 좋은 승리였고, 창원 타이탄스로서는 기분 나쁜 패배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반전 드라마를 보여주마! 창원 타이탄스 4차전에서 값진 승리!》

《벼랑 끝에서 1승을 거둔 창원 타이탄스!》

《차지혁! 5차전 선발 등판! 대전 호크스 5차전으로 한국 시리즈 끝낸다!》

《4일 휴식 끝! 차지혁 5차전 선발 등판 준비 마쳤다!》

《퍼펙트 투수, 차지혁! 대전 호크스 우승을 직접 마무리한다!》

《차지혁, 대전 호크스 27년의 우승 한(恨) 풀까?》

한국 시리즈가 끝났다.

5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나는 8이닝 무실점으로 창원 타이탄스의 타선을 또 한 번 막아냈고, 대전 호크스의 타선은 1차전의 무기력했던 모습을 잊어달라는 듯 7회까지 5점을 내며 승부의 추를 완전히 넘겨받았다.

최종 스코어 5:0.

한국 시리즈 전적 4:1로 대전 호크스는 시즌 초반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페넌트 레이스 1위에 이어 한국 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경기 직후 뽑힌 한국 시리즈 MVP에는 만장일치로 내가 뽑혔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프로 생활이 끝났다.

< 『국내편 - 080』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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