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78』 >
『국내편 - 078』
파죽(파죽지세)의 6연승!
페넌트 레이스 4위에 가까스로 턱걸이를 하며 가을 야구를 하게 된 창원 타이탄스의 이야기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3강 중 하나로 꼽혀 왔던 창원 타이탄스였지만, 대전 호크스와 부산 샤크스의 반란에 전반기 순위를 5위로 마감하며 자존심을 구겨야만 했다.
그랬던 창원 타이탄스는 후반기 막판에 1경기 차이로 간신히 부산 샤크스를 누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을 하게 됐다.
페넌트 레이스 4위와 3위가 다투는 준플레이오프.
4위 창원 타이탄스는 3위 대구 블루윙즈를 상대로 1, 2, 3차전을 연달아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대구 블루윙즈의 주전 선수 3명이 시즌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창원 타이탄스의 플레이오프 상대는 광주 피닉스.
1차전부터 두 팀은 연장 13회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1점차이로 창원 타이탄스가 승리를 거뒀다.
이어진 2차전과 3차전에서는 창원 타이탄스가 과감한 불펜 운용으로 광주 피닉스를 누르고 결국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왔다.
이제 남은 건 대전 호크스뿐이다.
약팀으로 분류되었던 대전 호크스와 강팀으로 지목되었던 창원 타이탄스의 한국 시리즈는 10월 27일 대망의 1차전을 시작으로 11월 4일까지 총 7차전으로 4승을 먼저 차지하는 팀이 우승 트로피를 손에 들게 된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일전은 1차전이다.
승률 84%.
역대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우승을 할 확률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경기가 바로 1차전이다.
쇄애애액!
퍼- 엉!
최상호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다! 구위, 구속, 무브먼트 모두 최고다!”
웬만해선 나오지 않을 극찬이 나왔다.
실제로 공을 던진 나 역시 온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고, 힘이 넘쳤다.
무려 2주를 넘게 쉬었다.
10월 8일 페넌트 레이스 마지막 게임에서 선발 등판을 한 이후, 18일이나 휴식을 취했다.
강도를 조절해가며 한국 시리즈 1차전에 맞춰서 꾸준하게 훈련을 해왔고, 페넌트 레이스로 인해 떨어진 체력까지 완벽하게 충전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몸 상태가 좋았다.
손에 착착 감기는 공의 촉감도 좋아서 던지고자 하는 곳에 마음 놓고 투구를 할 수 있었다.
“떨리지는 않는 거냐?”
거의 모든 야구팬들, 야구에 관심없는 사람들까지도 지켜보게 될 한국 시리즈 1차전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온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긴장되지는 않았다.
살짝 흥분감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날이다.
“괜찮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다 생각해라.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네가 던지고 싶은 공을 마음껏 던지면 된다. 단판 승부가 아닌 7차전까지 준비가 되어 있는 시리즈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라.”
최상호 코치의 조언에 고맙다고 말하고는 오전 운동을 마쳤다.
“아들,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가 저녁 이야기를 꺼냈다.
경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끝나고 난 직후 음식을 먹지 않는 날이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는 저녁 메뉴를 물어왔다.
오늘 한국 시리즈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하는 날 어떻게든 편안하게 대해주려는 행동이다.
“어머니가 해주는…….”
짝!
“엄마! 아직 젊으니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어머니가 내 등짝을 시원하게 후려치며 그렇게 말했다.
인터뷰 등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붙어버린 호칭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쉽게 불렀지만, 어머니에게는 엄마라는 말만 해왔기 때문인지 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
“감자탕! 감자탕 해줘.”
따끔한 등을 식탁 의자에 비벼대며 재빨리 메뉴를 외쳤다.
“엄마가 감자탕 맛있게 끓여놓을 테니까 오늘 경기 잘 하고 집에서 다 같이 감자탕에 소주 한 잔 할까?”
“그게 좋겠네. 시간 괜찮으면 최 코치님도 같이 술 한 잔 하실까요?”
아버지의 말에 최상호 코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 다음에 초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은 가족분들끼리 맛있게 드십시오.”
“그럼, 한국 시리즈 끝나고 나면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거하게 한 잔 하시죠. 올해 지혁이가 이렇게까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최 코치님이 다 신경 써주신 덕분이니 그 답례를 제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밭 야구장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와서 확인을 해보니 정혜영이었다.
오늘 경기 잘 하세요.
차지혁! 파이팅!
정혜영과는 첫 만남 이후로, 따로 사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종종 문자는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문자라고 해봐야 지금처럼 정혜영이 먼저 경기 잘 해라, 경기 잘 봤다, 수고했다 등의 내용들뿐이었고, 나 역시 간단하게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다.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고는 구단에서 나온 프론트 직원의 차를 타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
“떨리지?”
오주영 선배가 내게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오늘 하루 종일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다.
당사자인 나는 이제 면역이 돼서 그런지 괜찮았는데, 정작 내게 떨리냐 물어오는 이들의 얼굴이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전 호크스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 한 게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건, 27년 전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차전 선발 투수인 나보다 훨씬 더 떨고 긴장하는 선수들이 눈에 밟힐 정도로 많았다.
특히, 대전 호크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선수들의 경우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오죽했으면, 떨지 말라고 내가 역으로 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평소처럼 던져. 평소처럼만 던지면 돼.”
나에게 말을 하는 오주영 선배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대전 호스크에서만 16년 동안 프로 생활을 한 오주영 선배다.
지금까지 프로 선수가 되어서 가을 야구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한 오주영 선배였기에 아무리 배테랑이라 하더라도 생에 첫 한국 시리즈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 그리고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리다는 게 차라리 이럴 때는 더 나은 것 같았다.
오주영 선배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한국 시리즈겠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기회가 남아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일부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자신 있고 커다란 내 목소리에 오주영 선배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는 것 같았다.
“휴우~ 넌 정말 대단한 놈이다. 오늘 다시 한 번 클래스가 뭔지를 보여줘라.”
대전 호크스 선배들이 자주 하는 말, 클래스(class).
선배들은 항상 날 두고 클래스가 다르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듣기 좋은 말이지만, 말을 하는 선배들 입장에서는 입안이 쓴 말일 수밖에 없다.
“오늘 세이브 준비 해주세요.”
내 말에 오주영 선배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심장마비로 나 죽는 모습 보고 싶지 않으면, 오늘 같은 날은 그냥 혼자 해결해라.”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에는 의지가 가득했다.
세이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세이브를 하고 말겠다는 열기가 오주영 선배의 눈동자에서 느껴졌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2026년 한국 프로 야구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한국 시리즈 1차전이 시작되겠습니다! 해설에는 도영석 해설위원님께서 함께 하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도영석입니다.
-이제 2026년을 마감하는 한국 시리즈 1차전이 잠시 후 시작됩니다. 도영석 해설위원님께서는 오늘 경기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많은 분들께서 예상하시는 것처럼 오늘 대전 호스크의 우세가 점쳐집니다.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를 함으로써 무려 18일을 쉬지 않았습니까? 경기 감각이 떨어졌을 거라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 오늘 선발 투수가 차지혁 선수이질 않습니까? 한국 프로 야구가 낳은 역대 최고의 신인이자, 올 시즌 MVP가 확실시되는 선수인만큼 제 실력만 발휘한다면 어렵지 않게 1차전을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을 해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대전 호크스의 1차전 선발 투수로는 올 시즌 각종 기록을 새롭게 쓰며 대한민국 최고의 좌완 투수로 우뚝 선 차지혁 선수입니다. 무엇보다 차지혁 선수는 현재 한국 프로 야구 무대에서 단 한 번도 패배를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적으로 오늘 승리를 대전 호크스라 예상하시는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리즈와 페넌트 레이스의 경기와는 선수 본인이 느끼는 부담감과 중압감이 완전히 다르질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아무리 베테랑 선수라 하더라도 한국 시리즈라는 큰 경기 앞에서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수가 긴장을 하게 되면 실수를 하거나,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차지혁 선수가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 하더라도 이제 갓 프로 무대를 경험한 1년차 신인 선수이질 않습니까? 한국 시리즈처럼 큰 무대에서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다는 건 아무리 굳건한 심지를 가진 선수일지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팬들 사이에서 차지혁 선수를 다이아멘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데뷔전부터 시작해서 줄곧 자신의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고, 위기 상황이나, 실점을 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국 시리즈 1차전인만큼 제 아무리 대단한 차지혁 선수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도영석 해설위원님의 말씀처럼 차지혁 선수 본인 스스로 긴장감과 부담감의 중압감을 얼마나 해소하며 실투를 줄이느냐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차지혁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국 시리즈 1차전 이제 시작합니다!
프로 선수가 되면서 언제나 만원 관중 앞에서 공을 던졌다.
1만 5천 명의 관중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여졌다고 이제와 긴장될 이유가 없었다.
한국 시리즈 1차전이라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중압감 때문에 긴장해서 내 공을 던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난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을 던질 뿐이다.
“플레이볼!”
주심의 외침에 손에 쥐고 있던 로진백을 내려놓으며 올 시즌 누구보다 내 공을 훌륭하게 받아준 황대훈 선배가 내민 포수 미트를 바라봤다.
한 가운데 위치에서 넓은 포구면을 드러내고 있는 포수 미트.
초구에 대한 사인은 없다.
경기 직전 이미 말을 맞춰놨다.
‘지혁아, 창원 타이탄스 놈들 완전히 기가 살았더라. 하긴, 겨우 턱걸이로 준플레이오프에 올랐는데 3위, 2위를 무패로 이기고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기가 살만하겠지. 처음부터 확실하게 눌러버리지 못하면 오늘 경기 생각보다 힘들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가장 자신 있는 강속구로 초구를 던져. 창원 타이탄스 놈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오늘 네 공을 칠 수 없다는 걸 똑똑히 알려줘서 초장부터 확실하게 기를 꺾어버려라.’
확실히 오늘 야구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던 창원 타이탄스의 분위기는 좋았다.
제대로 상승세를 탔으니 분위기가 나쁠 수가 없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한 번 흐름을 타면 좀처럼 꺼지질 않는 게 야구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연승도 많고, 연패도 많은 이유다.
1차전에서 우리가 진다면 2차전, 3차전 모두 힘들어진다.
많은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경기 감각은 확실히 창원 타이탄스에 비해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창원 타이탄스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모두 3연승으로 깔끔하게 이기고 올라옴으로써 체력 소모도 많은 상태가 아니었다.
체력을 제외한 모든 것이 대전 호크스보다 우위에 서 있는 창원 타이탄스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선배들의 말처럼 마운드에 서 있는 내가 클래스가 다른 투수라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주는 거다.
페넌트 레이스 내내 언터처블이라 불리던 모습을 이번 경기에서 또 다시 증명하는 거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키며 와인드업을 했다.
타석에 서 있는 창원 타이탄스의 1번 타자, 올 시즌 최고의 리드오프 존 휴즈의 모습을 눈에서 지워버렸다.
오로지 내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공을 던질 뿐이다.
쇄애애애애액-!
퍼- 어엉!
미트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전광판을 바라본 모든 관중들이 놀라서 소리를 내질렀다.
< 『국내편 - 07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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