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73』 >
『국내편 - 073』
공 3개로 공격이 끝나버린 동군과 다르게 서군은 말 그대로 1회 말부터 동군 선발 투수인 그렉 알렉산더를 무참할 정도로 두드려댔다.
1번 타자, 존 휴즈가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좌중간 안타를 터트리며 1루로 출루를 하면서부터 그렉 알렉산더는 구위, 구속, 제구 모든 걸 잃고 말았다.
축제나 다름없는 올스타전에 전력 피칭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그렉 알렉산더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 것 같았다.
반면, 서군 타자들은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올스타전 MVP로 뽑힐 확률이 높다는 걸 알기에 맹렬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2번 정현우 선배가 우익수 앞 안타로 출루를 하자, 3번 타자 메이슨 발레타가 기다렸다는 듯 싹쓸이 2루타를 터트렸다.
4번 타자 한승철마저 깊숙한 코스의 2루타를 때려대자 동군에서는 재빨리 투수를 바꿔버렸다.
동군 올스타 감독 이전에 대구 블루윙즈의 감독인 박태인은 대구 블루윙즈의 에이스 그렉 알렉산더가 올스타전으로 인해 후반기 성적에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한 발 빠른 조치였다.
1회 만에 동군 투수가 강남 맨티스의 변성길로 바뀌었다.
변성길은 이번 시즌 강남 맨티스가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선발 투수였다.
하지만, 한 번 불이 붙어버린 서군 타자들을 상대로 변성길은 본래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교체가 된 것도 문제였다.
끝내 변성길마저 4점이나 자책점을 내주며 1회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1회 만에 스코어가 8:0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는 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투수를 교체해줬으면 싶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승리를 굳히고 싶은 마음인지, 장성열 감독은 여전히 날 마운드에 올렸다.
동군의 2회 초 공격은 대구 블루윙즈의 4번 타자이자, 동군 올스타에서도 4번 타순을 차지한 이규환이었다.
타석에 들어서는 이규환의 표정이 상당히 비장하게 보였다.
서군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페넌트 레이스 전반기 내내 나를 상대로 단 하나의 안타도 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올스타전이라 하더라도 타자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필요는 없었기에 초구부터 몸 쪽을 꽉 채우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156Km의 포심 패스트볼에 이규환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두 번째 공은 바깥쪽을 걸치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로 이규환은 배트도 휘둘러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2스트라이크를 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3구는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는 파워 커브를 던졌다.
속아서 휘두르면 좋고, 휘두르지 않으면 그만인 유인구였다.
부- 웅!
꼼짝없이 루킹 삼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조바심 때문이었을까?
이규환의 배트가 크게 돌아 나왔다.
하지만, 완만하게 꺾이며 포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에 배트는 스치지도 못했다.
“스윙! 타자 아웃!”
3구삼진이 나오자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이규환의 뒷모습이 한 편으로는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수는 자비를 모르는 냉혹한 사냥꾼이 되어야만 한다.
한 번 자신감을 얻은 타자의 배트는 정말 무섭기 때문이다.
이규환이 떠난 타석으로 인천 돌핀스의 외국인 용병 타자인 루이스 시걸이 들어섰다.
피부가 새하얀 루이스 시걸은 길쭉길쭉한 체형으로 팔과 다리가 참 길게 보였다.
중견수로 발도 빠르고, 수비력도 좋아서 인천 돌핀스에서는 수비와 공격, 양쪽에 있어 중심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팀 내 4번 타자임에도 선구안이 굉장히 뛰어난 루이스 시걸이었기에 초구부터 확실하게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고 가야만 했다.
전반 동안 내가 던졌던 공들 중 타자들이 가장 싫어했던 공이 바로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이다.
“스트라이크!”
어김없이 루이스 시걸도 바깥쪽을 걸치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에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내주고 말았다.
건드려봐야 범타 처리 될 확률이 워낙 많은 공이었기에 노리지 않는 이상 초구부터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2구는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딱!
배트에 빗맞으며 공이 파울 라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파워 커브, 컷 패스트볼 모두 루이스 시걸의 머릿속에 있을 공들이다.
특히, 방금 전 이규환을 파워 커브로 잡는 모습을 봤기에 가장 많은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가 던질 공은?
쇄애애액!
퍼- 엉!
허를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그것도 오늘 경기 최고의 공이라 할 수 있는 160Km의 공을 살짝 높은 코스로 던졌다.
뒤늦게 루이스 시걸이 배트를 휘둘러봤지만, 이미 타이밍이 한참이나 늦어버린 상황이라 허무하게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이규환에 이어 루이스 시걸까지 3구삼진으로 잡아내자 관중들의 열광적인 목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타석에 들어선 동군 6번 타자는 부산 샤크스의 이안 모텐슨이었다.
전날 홈런왕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안 모텐슨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너무 과도했기 때문일까?
부웅!
“스윙! 타자 아웃!”
3번을 연달아 배트를 휘두르며 이안 모텐슨마저 3구삼진을 당하며 기고만장하던 자신감을 저 멀리 내쫓아버렸다.
동군의 4, 5, 6번을 모조리 3구삼진으로 잡아냈다.
관중들의 열기는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을 만큼 뜨겁게 변해 내 이름을 연호해댔다.
“3회까지 던질 수 있겠나?”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장성열 감독이 내게 물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날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듯, 말을 하는 장성열 감독의 얼굴에 난처함이 엿보였다.
본래 2이닝 정도를 생각했을 장성열 감독일 거다.
그런데 2회에 너무 압도적인 투구로 동군 타자들을 압살하고, 더불어 관중들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궈버리자 투수 교체가 쉽지 않은 거다.
“3회까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지.”
나 역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기에 3이닝까지만 던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동군의 마운드는 또 다시 투수가 교체되어 있었다.
벌써 3번째 투수로 수원 드래곤즈의 임정한이었다.
선발 투수가 아닌 불펜 투수로 수원 드래곤즈 불펜의 핵심이었다.
불펜 투수가 선발 투수와 다른 가장 큰 점은 언제든 경기에 출전을 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 항상 준비를 해둔다는 사실이다.
임정한은 1회 활활 불타올랐던 서군 타자들을 상대로 아주 안정적인 투구 내용을 보였다.
2명의 타자들을 출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임정한은 단 1점도 실점하지 않으며 2회 말 공격을 막아내곤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제 마지막 이닝이다.
다시는 없을 지도 모르는 기회다.
내년 메이저리그로 이적을 하면 다시 한국 프로 무대로 돌아올 일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지금이 내 인생에 있어서 한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마지막 이닝이 될 가능성이 컸다.
-차지혁! 차지혁! 차지혁! 차지혁!
관중들이 하나가 되어 내 이름을 불렀다.
1회와 2회에 보여줬던 투구 내용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지, 그들 역시 내가 한국 올스타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던지는 투구가 될 걸 직감했는지,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해주는 관중들의 과분한 호응에 마운드에 올라가기 직전 모자를 벗어 모든 방향의 관중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로진백을 손바닥 위에 올려 가볍게 주물렀다.
타석에 들어서는 동군 올스타 7번 타자, 부산 샤크스의 주전 포수 전영무를 바라보며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저렇게 뜨겁게 응원해주는 관중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줘야 한다.
애써 무리를 할 필요는 없지만, 깔끔하게 3이닝을 책임지고 마운드를 내려가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피처 플레이트 위에 발을 올려놨다.
《서군 선발 투수 차지혁, 눈부신 호투로 올스타전 MVP에 선정!》
『2026년 프로 야구 올스타전이 열렸다. 이번이 45번째 올스타전으로 매년마다 야구팬들에게는 하나의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이날의 올스타전은 1회에 이미 승부가 나고 말았다. 서군 올스타 타자들이 동군 올스타 선발 투수인 대구 블루윙즈의 에이스 그렉 알렉산더를 1회부터 강판 시켜버렸고,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강남 맨티스의 변성길에게도 4점을 더 뽑아내며 1회부터 8:0으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반면, 동군 올스타 타자들은 서군 올스타 선발 투수, 대전 호크스의 에이스 차지혁에게 꽁꽁 묶이고 말았다. 1회 초부터 차지혁은 공 3개만으로 이닝을 종료시켜버렸고, 뒤이어 2회 초에는 동군 올스타에 뽑힌 4번 타자 이규환(대구 블루윙즈), 5번 타자 루이스 시걸(인천 돌핀스), 6번 타자 이안 모텐슨(부산 샤크스)을 모두 3구삼진으로 잡아내며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에도 변함없는 돌풍을 이어나갈 것을 예고했다. 예상외로 3회에도 마운드에 올라온 차지혁은 특유의 공격적인 투구 내용으로 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다.
3이닝 동안 정확하게 9명의 타자를 상대로 삼진 5개를 잡아내며 깔끔하게 투구를 마친 차지혁은 이날 경기 직후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올스타 투표에서 94표 중 87표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MVP로 선정이 되었다. 올스타전에서 투수가 MVP를 차지한 건, 11년 만의 일이며 역대 4번째 투수 MVP로 기록됐다.
동군 올스타 타자들은 차지혁이 마운드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점수를 뽑아냈다. 하지만, 이미 10점 이상 점수를 낸 서군을 쫓아가기엔 버겁기만 했다. 결국 12:7로 서군 올스타가 승리를 차지하며 올스타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차지혁이 올스타전 MVP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기록의 가능성 또한 열렸다. 바로 페넌트 레이스 MVP와 올스타전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미 내정된 신인왕 자리까지 더한다면 한 선수가 신인왕, 페넌트 레이스 MVP, 올스타전 MVP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주인공이 탄생하게 된다.
내일(8월 1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페넌트 레이스 후반기에서 차지혁이 전반기에 달성했던 성적들의 절반만 거둔다 하더라도 페넌트 레이스 MVP의 강력한 후보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올스타전 선발 등판으로 인해 8월 4일(화요일) 선발 등판이 예상되는 차지혁이 후반기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지 그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CBC 인터넷 스포츠 차동호 기자. 작성일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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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됐다.
전반기를 4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마무리한 대전 호크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7월 한 달 동안 있었던 트레이드가 결코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진 않고 있었다.
특히, 전반기 특급 마무리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던 안주민 선배를 트레이드 시킨 일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장태훈 선배야 어차피 골칫거리였으니 대부분의 선수들이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안주민 선수는 정 반대였다.
무엇보다 선발 투수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선발진에 비해 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불펜진이었다.
실제로도 전반기에 꽤나 여러 번 선발 투수들의 승리를 날려먹은 전적이 있었다.
1, 2점 차이의 리드로 마운드를 넘겨주면 불안해서 지켜보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주민이라는 확실한 마무리 카드가 사라져버렸으니, 당장 승리를 날려먹을 가능성이 몇 배나 더 높아진 선발 투수들의 불만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7월 트레이드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공격력과 수비력이 확실하게 보강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반기 내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진주호 선배를 대신해서 2번 타자로 나서게 될 조문석은 정현우 선배와 함께 리그에서 손꼽히는 테이블 세터를 구성 할 예정이었다.
다만, 장태훈 선배를 대신해서 중심 타선 역할을 맡게 될 우용탁에 대한 선수들의 기대심리는 그리 높지 않았다.
출장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2할 7푼의 타율과 9개 밖에 되지 않는 홈런 개수는 중심 타선을 맡기기에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야 멀티 자원인 강호진과 외야 멀티 자원인 고정수는 수비력 하나는 리그에서 알아줬다.
다만, 타석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었기에 수비가 중요시되는 시점이라면 충분히 제 능력을 발휘하며 팀에 도움이 될 선수들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변화 속에서 후반기 레이스가 시작됐다.
< 『국내편 - 07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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