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72』 >
『국내편 - 072』
29일에는 타자들의 잔치였다.
실질적으로 올스타전에서 가장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 홈런왕부터 번트왕, 베이스를 누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달리는지 경쟁하는 런닝왕까지 대회가 벌어졌다.
홈런왕은 올스타 투표에서 동군 베스트 11에 선정된 지명타자 이안 모텐슨이 우승을 차지했다.
아웃 카운트 5개의 1라운드에서 7개를 터트리며 간신히 2라운드에 진출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안 모텐슨이 우승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일한 아웃 카운트에서 진행된 2라운드에서도 6개로 또 다시 어렵사리 3라운드에 진출했다.
3라운드부터 달랐다.
아웃 카운트가 4개로 줄어든 상황 속에서도 이안 모텐슨은 7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상위권으로 4라운드로 진출했고, 이어 결승 라운드인 5라운드에서는 무려 12개의 홈런을 쳐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한 거였다.
번트왕에는 서군 올스타 11에 선정된 유격수 존 휴즈가 차지했다.
번트왕은 홈 플레이트에서 베이스 안쪽으로 부채꼴로 7분할 시켜 놓은 경계선에 맞춰 퓨처스 리그의 투수가 던지는 실전 공을 사회자의 요구대로 원하는 지점으로 번트 타구를 보내야만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번트를 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데, 거기에 원하는 구역으로 타구를 보내야 하니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경기와 마찬가지로 전력으로 공을 던지는 퓨처스 리그의 투수로 인해 타자들은 타석에서 고개를 절래절래 젓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존 휴즈는 무려 12번이나 연속으로 번트를 성공시키며 당당하게 번트왕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위와는 무려 5개나 차이가 날 정도로 압도적인 번트 실력을 자랑했다.
런닝왕은 아주 간단한 대회였다.
홈 플레이트에서 1루, 2루, 3루를 찍고 홈까지 돌아오는 시간이 가장 빠른 선수를 가리는 일종의 베이스 런닝 대회였다.
빠른 발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효율적으로 각각의 베이스를 도느냐가 중요했다.
자신 있게 나섰던 번트왕 대회에서 고작 3개로 톡톡하게 망신을 당한 정현우 선배는 이를 악물고 베이스를 돌았다.
기록은 15.48로 상당히 빠른 발을 가졌다는 걸 증명했다.
하지만, 우승자는 작년 시즌부터 수원 드래곤즈의 1번 타자로 훌륭한 활약을 해온 이유성이 14.07이라는 놀라운 주력으로 14.26을 기록한 장필성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이유성은 이번 올스타 투표에서 우익수 부문 2위로 장필성에게 자리를 내줬기에 그에 따른 복수를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번트왕부터 시작해서 홈런왕까지 세 개 부문의 우승자를 가리고 난 후에야 29일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물론, 나는 이날에도 3시간 동안 사인을 하고 포토존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어야 했다.
30일.
2026년 프로 야구 올스타전의 마지막 날이 됐다.
동군 베스트 11.
투수 : 그렉 알렉산더(대구 블루윙즈).
포수 : 전영무(부산 샤크스).
1루수 : 이규환(대구 블루윙즈).
2루수 : 김재호(대구 블루윙즈).
3루수 : 이정훈(강남 맨티스).
유격수 : 정요한(수원 드래곤즈).
외야수 : 배상현(부산 샤크스, 좌), 루이스 시걸(인천 돌핀스, 중), 장필성(부산 샤크스, 우).
지명 : 이안 모텐슨(부산 샤크스).
감독 : 박태인(대구 블루윙즈).
서군 베스트 11.
투수 : 차지혁(대전 호크스).
포수 : 유현민(창원 타이탄스).
1루수 : 노기문(서울 버팔로스).
2루수 : 정현우(대전 호크스).
3루수 : 메이슨 발레타(대전 호크스).
유격수 : 존 휴즈(창원 타이탄스).
외야수 : 황정태(강북 바이킹스, 좌), 박영찬(서울 버팔로스, 중), 원태식(강북 바이킹스, 우).
지명 : 한승철(광주 피닉스).
감독 : 장성열(광주 피닉스).
동군과 서군의 베스트 11에 뽑힌 선수들의 명단이다.
당연히 오늘 선발 선수들이기도 했다.
역시나 동군에서는 열성적인 팬들 덕분에 부산 샤크스의 선수들이 무려 4자리나 차지했다.
그 외에 현재 페넌트 레이스 2위를 달리고 있는 대구 블루윙즈 역시 3자리를 차지하며 실력과 팬심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자랑했다.
반면, 서군 베스트 11에 뽑힌 선수들 중 현재 페넌트 레이스 1위의 광주 피닉스는 지명 타자로 한승철 한 명 밖에 뽑히지 못하는 굴욕 아닌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전반기 최고의 돌풍을 일으킨 대전 호크스에서 나를 포함해서 3명이 뽑혔고, 최강의 외야진을 구축하고 있는 강북 바이킹스에서는 모두의 예상대로 황정태와 원태식이라는 국가대표 외야수들이 4년 연속 뽑혔다.
“이렇게 던지면 되는 건가요?”
모델이라 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몸매의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 올스타전 시구에 초청된 김하나였는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는 여성 2인조, 투하트의 맴버였다.
문제는 김하나에게 시구를 가르쳐야 하는 게 나라는 점이었다.
김하나가 직접 선택했다는 말에 반드시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KBO 관계자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시구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야구공을 던지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네요?”
“그런가요? 저는 잘…….”
대답을 하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지아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난 척 하지 마라.
상황에 따라서는 무조건 동조하되,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지는 마라.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눠라.
괜한 헛소리를 하지 마라, 등등의 조언이 생각났다.
“차지혁 선수는 어떻게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어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는 김하나였다.
21살이라고 했던가?
나보다 나이가 1살 많았지만, 늘씬한 몸매를 제외하면 얼굴은 앳되어 보였다.
오히려 우리 둘을 놓고 보면 내가 오빠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훈련을 해오면 누구나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 난 어깨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병원 검사에 따르면 난 지극히 평범한 체질과 골격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매스컴에서는 타고난 천재니, 야구를 위해 태어난 체질이니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실제로 난 아주 정상적인 보통의 남자였다.
그런데 160Km가 넘는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해온 훈련 덕분이라 생각이 들었다.
흔하게 말하길, 강속구 투수는 타고나야 한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물론, 남들보다 훨씬 적은 훈련량만으로도 강속구를 쉽게 던지는 이들이 있다.
‘송종섭이 그랬지.’
송종섭이 사람들 말대로 타고난 강견이다.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고도 남들보다 빠른 공을 쉽게, 쉽게 던졌다.
나는 달랐다.
차근차근 꾸준히 구속을 올렸다.
송종섭처럼 타고난 어깨가 아닌 만들어진 어깨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요즘에는 누구라도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어린 시절부터 훈련을 받는다면 말이다.
다만, 같은 팀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받는 훈련은 인간이 할 수 없는 훈련이라고 했다.
“차지혁 선수는 내년에 메이저리그로 가나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적은 확정적이다.
다만, 어느 팀으로 가느냐가 남은 문제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의하면 정말 파격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계약 기간과 금액을 제시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한 손에 꼽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1억 달러는 훌쩍 넘을 거라는 말이 있었기에 작년 드래프트를 통해 역대 최고의 계약(7년, 8500만 달러)을 한 마이크 테일러보다도 훨씬 비싼 몸값을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게 아니다.
지금이야 1억 달러 이상을 주겠다는 구단들이 여럿이지만, 후반기 성적이 곤두박질을 치거나, 전반기보다 떨어지면 금액 역시 사정없이 깎여 나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20승, 0점대 평균 자책점, 250탈삼진, 200이닝.
올 시즌의 목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전반기 성적이 워낙 좋았기에 충분히 기대를 해볼 만했다.
내가 원하는 성적만 기록한다면 절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금액을 깎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차지혁 선수를 볼 수 있겠네요.”
김하나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설문조사 기관에서 20대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자로 내가 뽑혔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유도 다양했다.
당당한 체격과 외모, 자신의 일에 열성적인 모습, 메이저리그의 투수로서의 미래, 스포츠 재벌 등등 아직 불확실한 미래마저 현실처럼 여기며 날 선택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저들은 알까?
내 뒤에는 역대급 시누이가 있다는 사실을.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김하나에게 시구를 가르치고는 서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정현우 선배가 쪼르르 달려왔다.
“김하나랑 좋았냐?”
“예?”
“어때? 엄청 예쁘지? 좋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투수가 되는 거였는데!”
대꾸할 필요가 없다 싶어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 앉자, 정현우 선배가 옆에 앉으며 날 바라봤다.
“그런데 넌 연애 안 하냐? 지금 너 좋다고 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태 혼자냐? 솔직하게 말해봐. 너 어디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왜 시선이 아래로 가는 겁니까?
“절대 없습니다.”
“그럼 여자도 좀 사겨. 언제 한 번 형이랑 클럽 한 번 갈까?”
정현우 선배가 옆에서 클럽을 가자, 예쁜 여자 소개 시켜 주겠다며 날 괴롭히는 사이 올스타전 개회식이 시작됐다.
식순에 맞춰서 진행되었고, 동군과 서군의 베스트 11 선수들이 차례로 호명되며 관중들 앞에 섰다.
가장 큰 환호를 받은 사람은 나였고, 내 인기를 몇몇 선수들이 질투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는 게 보이기도 했다.
이어서 김하나의 시구가 있었는데, 나만큼이나 큰 환호를 받아서 그녀가 얼마나 유명한 연예인인지 알 수 있었다.
올스타전의 1회 초 공격은 동군부터 시작되었기에 서군 선발 투수인 내가 처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마음껏 던져라.”
오늘 처음으로 배터리를 이루게 된 포수는 공교롭게도 장태훈 선배를 대만으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창원 타이탄스의 유현민이었다.
배트 조각에 찢어졌던 상처가 아직까지도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사전에 아주 간단하게 사인을 맞춰놨기에 가볍게 연습 투구를 하고는 주심의 외침에 타석으로 들어서는 동군의 1번 타자 장필성을 바라봤다.
페넌트 레이스 경기였다면 그의 약점을 노리고 효율적으로 카운트를 잡기 위해 공을 던졌겠지만, 올스타전이라는 축제에 가까운 이벤트 경기에서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없다 여겨 쉽게 공을 던졌다.
따악!
초구부터 장필성은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약간 높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을 강타한 타구는 쭉쭉 날아가다 좌익수 황정태의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동군 2번 타자는 장필성과 마찬가지로 부산 샤크스에서 2번으로 활약하고 있는 배상현이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한 가운데로 날아가는 포심 패스트볼을 타격했고, 타구는 중견수인 박영찬의 글러브에 안정적으로 들어가며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공 2개로 2아웃을 잡았다.
페넌트 레이스 경기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테이블 세터인 1, 2번 타자들이 초구에 배트를 휘두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1회 초부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공 2개로 2아웃이라는 게 재밌기도 했고, 이런 상황이 페넌트 레이스 경기 중에도 자주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동군 3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강남 맨티스의 3루수인 이정훈이었다.
타격 기계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정교한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정훈에게는 나 역시 2개의 안타를 헌납했을 정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삼진이나 범타로 처리된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쇄애애액!
딱!
이정훈마저도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다.
2, 3루 간을 빠져나갈 총알 같은 타구를 유격수를 보고 있던 존 휴즈가 그림 같은 다이빙캐치로 이닝을 끝내버렸다.
작고 왜소한 체격임에도 엄청나게 넒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존 휴즈만의 수비력이 올스타전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공 3개로 이닝 종료라니.
이 기막힌 상황에 피식 웃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 『국내편 - 07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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