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68』 >
『국내편 - 068』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반기를 4위로 마감한 대전 호크스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구단과 팬들은 벌써부터 가을 야구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바란다는 건 솔직히 욕심이나 다름없었다.
“백업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약하다는 게 대전 호크스의 유일한 약점입니다.”
“그렇습니다. 1군과 1.5군의 실력 차이가 타 구단들에 비해 너무 큰 건 확실히 후반기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칠 겁니다.”
최상호 코치와 아버지는 점심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전 호크스가 전반기 4위로 무사히 7월 휴식월에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전 선수들의 피로감이 그 어떤 시즌보다 컸다.
전반기만 마쳤을 뿐인데, 벌써 후반기 중반에 이를 정도로 육체적 피로감이 상당한 주전 선수들이 다수였다.
체력이 떨어지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투수는 구속이 떨어지고, 구위가 하락하며,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가 없게 된다.
타자의 경우엔 체력적인 피로로 인해 항상 몸이 무겁다고 느낄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못하니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고, 파워가 약해진다. 더불어 주력도 하락하고 집중력도 떨어지니 선구안에 문제가 생기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수비력이 급락하게 된다.
투수에게 있어 수비력이 떨어지는 건 재앙에 가깝다.
타석에서 안타를 못 치는 타자들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수비에서 에러를 남발하고 잡아야 할 타구를 잡지 못하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수비수들을 믿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마음이 커져 무리를 하게 된다.
무리를 하게 된 투수는 체력 소모가 심해지거나,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해 제구력에 문제가 생기고 무엇보다도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투수력마저 바닥으로 추락하면 연패의 늪에 빠지고, 결국은 아무리 전반기 성적이 좋았다 하더라도 후반기 성적으로 인해 페넌트 레이스가 끝나갈 무렵에는 순위가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 어떤 구단보다 대전 호크스의 하반기가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트레이드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죠. 다만, 구단 측에서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아버지의 말대로다.
대전 호크스는 현재 트레이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트레이드는 간단하다.
어떤 선수를 내주고, 어떤 선수를 받아오느냐다.
다만, 서로 구단끼리 이해관계가 맞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구단에 필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순위 경쟁을 위해서라면 경쟁 구단에 넘어갈 선수를 중간에 가로채는 것 역시 필요했다.
말 그대로 구단을 경영하는 단장들간의 피 튀기는 싸움이 바로 트레이드다.
지금까지 대전 호크스는 트레이드에 딱히 열을 올린 적이 없었다.
매년 전반기 순위가 바닥권이니 딱히 총력을 기울여 어떤 선수를 영입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영입이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는 식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우선 1순위로 장태훈을 해외로 보낼 겁니다.”
최상호 코치의 말에 아버지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꾸했다.
“예상 가능합니다. 하지만, 장태훈 한 명으로는 후반기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장태훈을 보내고 어느 부분을 보완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공격력을 강화할 것인지, 투수력을 보완할 것인지, 수비력을 단단하게 만들 것인지. 유정학 단장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트레이드가 그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겁니다.”
“네 생각은 어떻냐?”
최상호 코치가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말없이 최상호 코치와 아버지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나는 차분하게 내 생각을 털어놨다.
“제가 단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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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호크스 칼을 빼들다! 간판 타자 장태훈 대만 리그의 이다 라이노스(EDA Rhinos)로 전격 트레이드 감행!》
결국 장태훈 선배는 트레이드를 당했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빠른 트레이트였다.
장태훈 선배로서는 굴욕이었고, 자존심이 짓밟혔다.
트레이드 거부권이라도 있으면 버텼을 테지만, 아쉽게도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는 장태훈 선배로서는 한국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평가를 받는 대만 프로 리그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프론트 직원의 말에 의하면 장태훈 선배는 트레이드가 결정된 즉시 단장을 찾아와 온갖 고성을 지르며 횡포를 부렸다고 했다.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붓고 떠났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전지훈련과 시범 경기,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부활을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대전 호크스, 청신민(Chung Hing-Man)과 조문석 트레이드!》
장태훈 선배를 내주고 이다 라이노스로부터 영입을 해온 청신민을 다시 부산 샤크스 보내버렸다.
청신민은 25살 젊은 투수로 최고 구속 157Km의 빠른 포심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을 편안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작년 대만 프로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이다 라이노스의 에이스로 활약을 했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관심을 받았지만, 이적료 문제로 인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이적이 불발되자 그에 따른 영향 때문인지 올 시즌 성적이 부진했고, 계약 기간이 1년 밖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재계약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이다 라이노스에서 과감하게 장태훈과 트레이드를 시켜버린 거였다.
물론, 이면에는 대전 호스크에서 거액의 현금을 추가로 줬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그렇게 데리고 온 청신민을 대전 호크스는 곧바로 부산 샤크스의 조문석과 맞바꿔 버렸다.
부산 샤크스의 용병 투수들이 모조리 성적 부진으로 돈 값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팩만 놓고 보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청신민은 투자 가치가 충분한 투수였다.
조문석의 경우 부산 샤크스에서 1번과 2번을 오가며 테이블 세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하게 해주고 있었지만, 부산 샤크스로서는 선발 투수가 급급한 상황이라 트레이드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대전 호크스는 장태훈을 보내고 조문석을 얻은 것이다.
이 트레이드로 인해 많은 이들은 대전 호크스가 절대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장태훈에게 투자했던 돈에다가 이적료는 고사하고 오히려 웃돈을 더 줘가며 장태훈을 내보냈으니 대전 호크스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최악의 계약이었다.
《대전 호크스, 대구 블루윙즈, 수원 드래곤즈 대형 삼각 트레이드 성사!》
역대 급의 삼각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대전 호크스에서는 전반기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던 마무리 투수 안주민을 대구 블루윙즈로 보냈다.
대구 블루윙즈에서는 4선발로 활약을 해온 투수 여민기를 수원 드래곤즈로 보냈고, 수원 드래곤즈에서는 1루수 우용탁을 대전 호크스로 보내는 대대적인 삼각 트레이트가 합의를 이뤘다.
전반기 21세이브를 올리며 세이브 부문 1위에 올라가 있는 특급 마무리 안주민을 대전 호크스에서 과감하게 포기하면서까지 얻은 1루수 우용탁은 전반기 0.275의 타율에 9개의 홈런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성적 자체만 놓고 본다면 대전 호크스 프론트가 말도 안 되는 미친 트레이드를 벌인 셈이다.
무엇보다 안주민은 이제 28살의 젊은 투수로 계약 기간도 4년이나 남아 있었다.
작년까지 선발로 뛰다가 올 시즌 마무리로 변신해서 대성공을 거둔 안주민은 벌써부터 국내 최고의 마무리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 마무리 투수를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구 블루윙즈로 보낸 것이다.
“우용탁 외에도 대구 블루윙즈로부터 내야수 강호진과 수원 드래곤즈의 외야수 고정수를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주민 선배를 트레이드 시킨 건 큰 실수인 것 같습니다.”
현대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가 갖는 중요성은 얼마나 될까?
개인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마무리 투수의 가치는 15승을 달성하는 선발 투수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무리 투수가 확실하지 못한 팀은 우승 언저리에도 못 간다는 말이 있다.
올 시즌 대전 호크스가 전반기 4위라는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안주민이라는 특급 마무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안주민을 트레이드 시켰다는 사실은 후반기 성적이 굉장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황병익 대표 역시 같은 의견이라는 듯 그렇게 말했다.
과연 후반기 누가 안주민 선배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나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내 승리를 4번이나 책임을 져준 안주민 선배였다.
이제 누구를 믿고 맡길 수 있을지 나 역시 무척이나 궁금했다.
“차지혁 선수?”
팀에서 누가 마무리를 맡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하던 내게로 잘 생긴 중견 배우가 다가왔다.
국민 배우 송강우였다.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만 5편에 이르는 송강우는 TV로 봤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동네 아저씨 같은 편안한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차지혁입니다.”
“아~ 진짜 반가워요! 요즘 차지혁 선수 덕분에 야구 볼 맛이 나더군요!”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악수를 해오는 송강우였다.
송강우는 내가 봐왔던 영화에서처럼 유쾌한 사람이었다.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주변을 즐겁고 편안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참 대단하네. 나는 그 나이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송강우의 칭찬에 나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광고 촬영장에 와 있었다.
7월 휴식월에 3편의 광고 촬영을 하기로 계약을 한 상태였다.
환경 오염에 관한 광고, 기부와 나눔에 대한 광고,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광고 방송이 되는 유니세프의 후원 광고까지 일정이 잡혀 있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일정으로 환경 오염에 관한 광고를 찍을 예정이었다.
함께 출연을 하기로 한 배우가 송강우라는 건 계약을 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촬영장에서 송강우와 만나 야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영화와 환경 오염, 기부에 대한 이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사람 사귀는 것에 서툴렀음에도 친근하게 먼저 접근을 해온 송강우 덕분에 꽤 가까워질 수 있었다.
“광고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촬영 스태프의 말에 송강우와 나는 함께 일어나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함께 걸어갔다.
“컷! 오케이!”
감독의 사인이 떨어지자 곧바로 촬영에 임했던 모든 사람들이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다, 지혁아! 웬만한 배우들보다 카메라 앞에 잘 서니 나중에 은퇴하면 배우가 되도 되겠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현역 배우의 말을 무시하는 거야? 너 정말 잘 했다니까.”
송강우의 말을 나는 그러려니 넘겼다.
이후, 하루 종일 고생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송강우가 저녁을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송강우인지라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단둘이 저녁을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결국, 황병익 대표까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술까지 마신 송강우는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모습으로 내게 종이를 내밀었다.
“지혁아, 사인 한 장 해줘라. 명색이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인데 사인 한 장은 받아둬야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바로 가방에서 사인볼을 꺼내 그곳에 글을 추가해서 건네줬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영화로 2천만 관객이 들길 기원하겠습니다.
“2천만? 하하하하! 그래! 네 말대로 내가 꼭 2천만 영화를 찍고 만다!”
송강우는 내가 쓴 글을 확인하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서로 연락처까지 교환하고 나서 나는 황병익 대표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늦었지만, 저녁 운동을 빼먹을 순 없었기에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운동을 마치고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쾅!
“오빠! 오늘 송강우랑 광고 촬영했어?”
방에 들어온 지아는 핸드폰을 내 눈 앞에 내밀었다.
액정 화면 속에는 저녁을 먹으면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송강우와 내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송강우가 sns를 통해 오늘 일을 게시해 놓은 거였다.
“오빠가 지금 인터넷 검색어 1위야!”
나에 대한 칭찬을 한없이 늘어놓은 송강우로 인해 실시간 검색어 최상위에 나와 송강우의 이름이 올랐다는 지아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는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광고 촬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고, 앞으로 2번이나 더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게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 『국내편 - 068』 > 끝
ⓒ 독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