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65』 >
『국내편 - 065』
창원 타이탄스의 1번 타자는 국내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영입한 용병 교타자, 존 휴즈다.
국내 프로 야구 시장에 영입되는 외국인 타자들은 절대 다수가 장타력을 갖춘 거포형 타자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교타자를 영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국내 선수들 중 발 빠른 교타자는 어느 정도 공급이 충족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에 창원 타이탄스에서는 놀랍게도 테이블 세터 자리를 맡을 발 빠른 교타자를 영입했다.
거기에 수비 부담이 가장 심한 유격수로 자칫 완전히 실패한 영입이 될 수 있다는 주변이 우려에도 불구하고 존 휴즈와 계약을 했다.
존 휴즈.
169cm의 키에 62kg의 체중은 굉장히 왜소하게 보였다.
체구도 작은데 마르기까지 했기에 이제까지 익숙하게 봐왔던 덩치 큰 외국인 타자들과는 확실하게 이미지가 달랐다.
존 휴즈와 계약을 발표하고 가장 크게 반발을 한 건 다름 아닌 창원 타이탄스의 팬들이었다.
극성스러운 일부 팬들은 구단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심지어 찾아가서 계약을 철회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다른 구단에서는 딱 봐도 포스가 느껴지는 체격 좋은 거포형 용병 타자들을 영입해오는데,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에서는 비쩍 말라서 야구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왜소한 타자를 외국인 용병으로 영입했으니 속이 터질 만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존 휴즈의 경력은 웬만한 외국인 용병 타자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지명으로 캔자스시티 로열스(Kansas City Royals)에 입단을 했고, 3년 만에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활약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유격수로 출전해서 2시즌 동안이나 통산 타율 0.268을 기록했고, 수비실력도 수준급이라며 칭찬을 받았다.
머지않아 주전 유격수로 활약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핑크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존 휴즈에게 악몽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주루 플레이 도중 수비수와 충돌을 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충돌로 큰 부상을 당해버린 거다.
3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고, 힘든 재활을 거쳐서 돌아왔지만, 팀에는 이미 실력 좋은 유격수가 이적해와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존 휴즈의 자리는 없었다.
결국, 2차례나 트레이드를 당하며 팀을 돌아다니는 사이 경기력은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끝내는 트리플A에서 근근이 활약하다 이번에 창원 타이탄스와 계약을 맺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한국행을 결정하며 존 휴즈는 독기를 품기라도 했는지, 현재 국내 최고의 리드 오프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0.334의 타율에 0.439의 출루율, 전반기에만 무려 23개의 2루타와 7개의 3루타를 치고 있었고, 도루도 21개나 기록하고 있었다.
거기에 유격수로서의 수비도 국내 그 어떤 유격수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렇게 계약 철회를 외치던 창원 타이탄스의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타석에 들어선 존 휴즈는 특유의 웅크린 타격 자세로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거구의 타자들에 비해 던질 곳이 넓게 보였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던질 수는 없다.
홈플레이트를 중심으로 타자의 체격에 따라 조금씩 스트라이크 존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격이 컸던 타자를 상대로 던졌던 바깥쪽 스트라이크가 존 휴즈에게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판정을 내리는 주심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체격이 크건, 작건 정해진 규격의 스트라이크 존만 냉정하게 바라보는 주심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은 스트라이크 존부터 확인을 해야겠지.’
포수인 황대훈 선배와는 경기 전 미리 말을 맞춰놨기 때문에 초구를 바깥쪽 높은 코스로 잡았다.
쇄애애액!
퍼엉!
“스트라이크!”
주심은 망설이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성향에 따라 공 반개 정도는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는 아주 고마운 선언이었다.
반대로, 존 휴즈는 포수의 미트와의 거기를 가늠하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약간 멀다는 행동이었지만, 주심에게 반발해봐야 오히려 불이익만 당할 것을 알기에 인상만 찡그렸다.
2구는 몸 쪽 높은 코스.
“스트라이크!”
어김없이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외쳤고, 공을 받은 황대훈 선배는 포수 마스크 뒤에서 하얀 이가 들어날 정도로 웃고 있었다.
이번에도 공 반개 차이는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했으니 나는 던질 곳이 넓어져서 좋았고, 존 휴즈는 배트를 휘두를 공간이 너무 커서 곤란해졌다.
3구는 당연히 바깥쪽 낮은 코스.
전형적으로 [Z]자를 그리며 던지는 스트라이크 존 확인 투구였다.
하지만, 3구는 확인을 하기도 전에 존 휴즈의 배트에 커트를 당하고 말았다.
투수인 나는 2스크라이크 상황이니 볼이 된다 하더라도 부담 없이 공을 던질 수 있었지만, 타자인 존 휴즈는 만약, 이번에도 스트라이크가 선언되면 꼼짝없이 루킹 삼진을 당하게 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존 휴즈 때문에 굳이 공을 뺄 이유가 없었다.
자칫 공을 뺏다가 주심의 존이 좁아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승부를 하는 게 좋다.
아니면 이미 스트라이크 존을 확인한 곳을 공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떨어지는 파워 커브?’
황대훈 선배의 사인에 나는 슬쩍 존 휴즈를 바라봤다.
짧게 쥔 배트와 더욱더 웅크린 자세가 확실한 볼이 아니면 모조리 커트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렇다면 허를 찌르는 공격적인 투구가 답이다.
어설프게 유인구를 던져 볼을 만들거나, 괜히 투구수를 늘릴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황대훈 선배에게 살짝 높은 코스의 포심 패스트볼 사인을 줬다.
시즌 초와는 다르게 황대훈 선배는 두 말하지 않고 내 사인을 받아들였다.
신인 투수라 하더라도 리그 최고의 투수로서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천천히 호흡을 다듬은 후에 곧바로 포수 미트만을 노려보고 공을 던졌다.
아니, 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쇄애애애액!
부웅!
퍼- 어엉!
“스윙! 타자 아웃!”
존 휴즈는 고개를 흔들며 타석에서 벗어났다.
방금 공은 확실히 생각하지 못한 빠른 강속구로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커트조차 쉽지 않은 공이었다.
-차지혁 선수 157Km의 포심 패스트볼로 1번 타자 존 휴즈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정말 보는 사람들이 속이 시원할 정도의 빠른 강속구였습니다!
-이게 바로 차지혁 선수의 강점이죠. 방금 존 휴즈 선수는 타석에서 유인구를 생각했을 거예요. 차지혁 선수가 던지는 명품 파워 커브를 머릿속에 담아뒀을 테죠. 하지만, 반대로 차지혁 선수는 아주 공격적으로 확실하게 카운트를 잡아버렸죠. 문제는 차지혁 선수가 공격적인 피칭을 한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알면서도 파워 커브를 머릿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죠. 이 점이 현재 타자들이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힘들어 하는 점이죠.
-한 마디로 강속구와 파워 커브를 구사하는 차지혁 선수의 투 피치 스타일이 타자들에게 잘 먹혀든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강력한 패스트볼과 확실한 브레이킹 볼. 단순하지만 가장 오래된 투수의 무기죠. 중요한 건 차지혁 선수는 평균 155Km의 포심 패스트볼과 135Km의 파워 커브를 완벽하게 컨트롤 한다는 점이죠. 이런 멋진 조합은 투수들에게 가장 이상적이고, 타자들에게는 악몽을 선사할 수밖에 없어요.
-말씀하시는 순간 창원 타이탄스의 2번 타자 강민수 선수 초구를 건드리며 포수 플라이 아웃으로 무기력하게 돌아서고 맙니다.
-방금도 154Km의 포심 패스트볼이죠? 강민수 선수 스트라이크 존으로 파고들어오는 공을 참지 못하고 뒤늦게 배트를 휘두르는 바람에 공이 위로 뜨고 말았어요. 늦었다 싶으면 차라리 배트를 휘두르지 말아야 하죠. 스트라이크를 하나 먹는다 하더라도 차지혁 선수의 공을 최대한 많이 보며 눈에 익히는 것이 중요해요.
-배형진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작년까지 창원 타이탄스에서 4번을 맡았습니다만, 올 시즌부터는 스캇 데이비스 선수가 4번을 맡게 되면서 타석이 앞당겨져 3번을 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시즌 성적은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3할 2리에 19개의 홈런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홈런 페이스가 작년보다 확실히 빠르죠? 타순을 4번에서 3번으로 옮기면서 상대 투수들이 4번 스캇 데이비스 선수보다는 차라리 익숙한 배형진 선수와 상대를 하면서 벌어진 결과죠. 배형진 선수 입장에서는 상대 투수들이 적극적으로 상대를 해오니 오히려 편안한 마음으로 타격에 임할 수 있어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초구는 몸 쪽을 찌르는 포심 패스트볼입니다. 언제 봐도 참 시원시원한 공입니다. 차지혁 선수의 투구를 보고 있으면 마치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것 같질 않습니까?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만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흔하지 않죠.
-2구는 배형진 타자의 무릎을 스치고 지나가는 낮은 스트라이크입니다. 역시나 포심 패스트볼로 지금까지 차지혁 선수는 일곱 개의 공을 던졌습니다만, 모두 포심 패스트볼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이 되었으니 확실히 대단한 강심장을 소유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차지혁 선수의 멘탈은 이미 유명하죠.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자신의 공을 던지는 점은 최대 강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다이아멘탈이라는 소리까지 있습니다. 보통 멘탈이 좋은 선수들을 가리켜 강철 멘탈이라고 하는데, 차지혁 선수는 그 이상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차지혁 선수, 와인드업 합니다. 제 3구 던졌습니다!
“이봐, 테일! 필리스에서 차지혁에게 얼마를 제시할 예정이라고 했지?”
뚱뚱한 금발 머리의 중년인이 바삭하게 잘 튀겨진 닭다리를 입에 넣으며 옆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있는 갈색 머리 청년에게 물었다.
“기본 7년 1억 달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미친놈들! 그놈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루키에게 1억 달러라니! 망할 놈들! 이번 겨울은 필리스가 완전 물을 흐려놓겠어!”
“하지만, 대체적으로 최소 1억 달러는 써야 차지혁과 계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죠.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 가장 큰 대어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차지혁이니까요.”
테일의 말에 금발 머리의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지혁의 스팩이라면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겠지. 하지만, 고작 1시즌, 그것도 한국 프로 리그에서만 뛴 루키에게 1억 달러를 쓰는 건 확실히 좋지 않아. 빌어먹을! 예전이 좋았지. 예전이었다면 포스팅 입찰을 통해서 넉넉잡고 7천이나 8천만 달러면 충분히 데리고 올 수 있었을 텐데!”
“그 시절이라면 차지혁은 이곳 한국에서 7시즌을 뛰어야만 하죠. 그리고 만약, 지금처럼 7시즌 모두 이런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한다면 아마 역대 최고의 포스팅 입찰액과 계약금을 지불해야 했을 테죠. 아마도 2억 달러도 부족할 것 같네요.”
테일의 말에 중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해본 말이야.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19살짜리에게 1억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뿐이라고!”
테일은 피식 웃고 말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구단주가 원하니 얼마가 들더라도 지갑을 열어야죠.”
“그러니까 내가 온 것 아냐. 얼마를 쥐어줘야 우리 양키스의 투수가 될 것 같아?”
“그건 퍼펙트 제프가 결정할 문제 아닌가요?”
“흐흐. 그렇지. 얼마를 원하던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돈을 제시해야지. 그런데 차지혁은 정말 야구 외엔 관심이 하나도 없는 거야?”
“그렇더군요. 부유한 편도 아닌데 한국에서 광고도 하나 찍지 않더군요. 한국 내에서는 최고의 개런티를 받을 수 있는데도요. 에이전시도 그런 걸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고요. 그나마 스폰서 하나와 계약을 했는데, 계약금하고 계약기간이 영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더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돈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현재로서는 딱히 파고들만한 틈이 없어요.”
“여자 관계도 깨끗하다고 했지?”
“스캔들이 있기는 했지만, 기자들과 여자 쪽에서 일방적으로 좋다고 한 거더군요. 차지혁은 전혀 관심도 없어요.”
“이상한 놈이야. 돈과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이해가 돼?”
“정말 야구에 미쳤다면 가능하겠죠.”
테일의 말에 제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야구에 미쳤어도 돈과 여자를 거부할 순 없어. 정상적인 남자라면 말이야! 오!”
제프가 벌떡 일어나며 전광판을 바라봤다.
161Km가 찍혀 있었다.
차지혁이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그런 그를 바라보며 제프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넌 반드시 우리 양키스의 투수가 되어야만 해!”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투수는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에도 많다.
하지만, 차지혁은 단순하게 100마일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8회에도 던질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었고, 과감하게 타자와 승부를 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도 갖추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차지혁의 피칭 스타일에 반할 수밖에 없다.
물러서지 않는 용감하고도 과감한 투수!
제프는 차지혁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팬들이 언제든 지갑을 열 것이라고 확신했다.
< 『국내편 - 06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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