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64화 (64/221)

< 『국내편 - 064』 >

『국내편 - 064』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6월 27일 토요일, 대전 호크스 대 창원 타이탄스의 경기를 창원 야구장에서 진행해드리겠습니다. 해설에는 박호준 해설위원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오늘 경기 박호준 해설위원께서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오늘 경기 참 재밌을 것으로 예상을 하고요, 우선 오늘 경기에 앞서 투타에서 활약을 하게 될 키 플레이어들부터 살펴볼 필요성이 있어요. 자, 대전 호크스의 키 플레이어로는 두 말 할 것 없이 선발 투수인 차지혁 선수와 3번 타자인 메이슨 발레타 선수를 꼽을 수 있겠고요, 창원 타이탄스에서는 마찬가지로 에이스 선발 투수 프레디 에르난데스 선수와 1번 타자 존 휴즈 선수가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에 따라 오늘 승패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양팀의 선발 맞대결이 아주 팽팽하겠습니다. 대전 호크스의 차지혁 선수야 두 말 할 것 없을 정도로 전반기 국내 최강의 토종 에이스로 우뚝 섰고, 창원 타이탄스의 에이스 프레디 에르난데스 선수는 현재 8승으로 차지혁 선수 다음으로 다승 2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 양팀 간의 에이스 대결이 아주 흥미로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대전 호크스와 창원 타이탄스는 현재 3, 4위 순위 싸움이 아주 치열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양팀 간의 경기 차이는 1게임 차이일 뿐입니다.

-그렇죠. 더군다나 어제 1차전에서 대전 호크스가 역전을 허용하며 아쉽게 패배를 하고 말았으니, 오늘 차지혁 선수가 선발로 나온 만큼 반드시 승리하며 승부의 추를 원점으로 돌려놓으려고 할 겁니다.

-차지혁 선수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선 차지혁 선수는 개막전 데뷔 선발부터 시작해서 오늘 경기까지 선발 등판을 로테이션에 맞춰서 꾸준히 소화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현재 14게임 선발로 등판해 무패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밖에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국내에 이런 선수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국민적으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차지혁 선수는 14게임에 선발로 등판해서 11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죠. 참, 기가 막히는 기록입니다. 오늘 경기 전까지 무려 106이닝을 소화했고, 144개의 탈삼진과 7개의 볼넷만을 기록하고 있으며, 391타자를 상대로 40개의 피안타 밖에 맞질 않았어요. 선발 투수의 피안타율이 0.104라는 게 믿기지 않을 뿐이죠. 무엇보다 106이닝을 소화하면서 실점이 고작 4점뿐인데, 평균 자책점이 0.339로 경이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말이 없어요. 차지혁 선수가 오늘 경기, 그리고 후반기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런 성적을 유지한다면 솔직한 말로 더 이상 국내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 말씀은 내년부터라도 당장 메이저리그로 가는 게 맞다고 보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사실상, 선수간 이적이 자유로운 이 시대에 구태여 차지혁 선수가 국내에 남아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차지혁 선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대단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 확실하죠. 그리고 실제로도 차지혁 선수의 바이아웃 금액이 350억으로 이미 대다수의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이적 협상을 준비 중이라고 하죠.

-올 시즌 차지혁 선수가 새롭게 경신한 기록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데뷔전 노히트노런부터 시작해서, 역대 최연소 100탈삼진과 단일 시즌 최소 경기 100탈삼진을 동시에 이뤄냈고, 57.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도 세웠습니다. 한 설문조사 기관에서 야구팬들을 대상으로 재밌는 설문을 했습니다. 올 시즌 차지혁 선수가 꼭 이뤄주었으면 하는 신기록이라는 설문인데, 박호준 해설위원께서는 혹시 예상이 되는 기록이 있으십니까?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시즌 최고 평균자책점 아닐까요? 현재 국내 기록은 1993년 선동영 투수가 기록한 0.78이죠. 현재 차지혁 선수가 0.33을 기록 중이니 새로운 기록에 도전을 해볼만 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맞습니다. 시즌 최고 평균자책점 달성이 2위로 꼽혔습니다. 그리고 1위로는 역시 투수라면 누구나 꿈을 꾼다는 퍼펙트 게임 달성입니다. 현재 국내 프로 야구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던 퍼펙트 게임을 차지혁 선수가 꼭 이뤄줬으면 좋겠다는 설문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차지혁 선수는 이미 고교 리그에서 퍼펙트 게임을 해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데뷔전 선발 경기도 사실상 퍼펙트나 다름없는 경기라 볼 수 있으니 팬들은 차지혁 선수가 국내에서 꼭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고 해외 진출을 했으면 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 기록으로는 연속타자 삼진, 연속이닝 무피안타, 시즌 최다 탈삼진, 한경기 최다 탈삼진 등으로 투수의 모든 기록을 차지혁 선수가 새롭게 경신했으면 한다는 재밌는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데뷔를 한 신인 투수에게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프로 야구의 각종 기록을 모두 깨버려 달라는 야구팬들의 설문이 한 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하군요.

-그렇습니다만, 한 편으로는 역대 최고의 투수가 나타났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차지혁 선수가 각종 기록을 경신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팀의 에이스로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면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네요. 시즌 초, 차지혁 선수가 했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이 나네요. 국내 최고가 세계 최고임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다짐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차지혁 선수라면 분명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임을 입증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1회 초 대전 호스크의 공격부터 시작되겠습니다.

프레디 에르난데스는 좋은 투수다.

195cm의 큰 키에서 내리 찍는 포심 패스트볼은 평균 구속 153Km로 상당히 빨랐다.

컨디션이 좋아 제대로 긁히는 날에는 158Km까지 던져대니 타자들 입장에서는 공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구력도 수준급이고, 공의 무브먼트도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체력이 좋지 않다는 점이 너무나도 큰 약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퍼엉!

“스트라이크! 타자 아웃!”

몸 쪽 깊숙하게 파고 들어온 155Km의 포심 패스트볼에 진주호 선배는 꼼짝도 못하고 루킹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3루수의 실책으로 1루에 나가 있는 정현우 선배는 호시탐탐 도루를 노리고 있었지만, 프레디 에르난데스의 견제가 워낙 좋아서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1루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1사 1루 상황에서 3번 타자 메이슨 발레타가 타석에 들어섰다.

현재 리그 타율 0.354라는 높은 성적과 홈런도 17개나 때려내고 있는 메이슨 발레타는 대전 호크스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였다.

4번 타자 자리를 장태훈 선배와 그랜트 커렌이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것과 다르게 메이슨 발레타는 부동의 3번 타자로 1번 정현우, 2번 진주호 선배의 테이블 세터가 만들어 주는 타점을 꼬박꼬박 잘 먹어주고 있었다.

“볼.”

초구는 바깥쪽을 살짝 빠져나가는 낮은 볼이었고, 한창 컨디션이 절정에 오른 메이슨 발레타는 꼼짝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구안을 자랑했다.

‘나라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몸 쪽 높은 공을 던진다.’

메이슨 발레타는 보통 2스트라이크가 되기 전까지는 몸 쪽 공을 잘 건드리지 않았다.

못 쳐서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타구를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타자는 3개의 스트라이크 중 하나만 제대로 때려내면 된다.

굳이 2번이나 되는 기회를 어렵게 타격할 필요가 없었다.

나와는 다르게 프레디 에르난데스는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낮은 쪽 공을 던졌다.

155Km가 나올 정도로 빠른 포심 패스트볼이었고, 자신 있게 배트를 휘둘렀던 메이슨 발레타는 생각보다 빠른 공을 제대로 맞추질 못해 주심 머리 뒤로 날아가는 파울 타구를 만들고 말았다.

1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프레디 에르난데스가 던진 3번째 공은 몸 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고속 슬라이더였고, 내 예상대로 메이슨 발레타는 배트를 휘두르기보다는 스트라이크를 먹고 말았다.

2스트라이크 1볼이 되자 프레디 에르난데스의 표정이 한결 여유롭게 변했다.

확실히 투수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였으니 같은 투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상대가 메이슨 발레타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따악!

타구는 쭉 뻗어서 우익수 옆으로 빠지면서 빠르게 굴러 펜스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우익수가 타구를 잡는 사이 1루에 있던 정현우 선배는 2루를 돌아 3루까지 도착했고, 메이슨 발레타는 느린 발로 인해 1루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저건 완벽한 2루타 코스였는데!”

더그아웃에서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다.

보통의 주력만 갖추고 있었더라도 충분히 2루까지는 갈 수 있는 타구였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깨끗하게 안타를 치고 나간 메이슨 발레타에게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무리를 해서라도 2루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만 해볼 뿐이다.

안타를 치고 나간 메이슨 발레타를 못 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던 프레디 에르난데스는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장태훈을 상대하기 위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태훈이가 한 방 해주면 오늘 경기 진짜 쉽게 갈 텐데.”

“그렇죠. 오늘 선발이 지혁이니까 아무래도 초반에 2점만 내면 승기를 잡았다고 할 수 있겠죠.”

날 믿고 의지하는 선배들의 음성을 들으며 장태훈 선배의 타율을 떠올렸다.

2할5푼4리. 좋지 않다.

시즌 초반 무섭게 홈런을 몰아쳤던 것과 비교해서 현재 홈런 13개는 분명 부진하다 할만 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3번 타자 메이슨 발레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타율, 홈런, 장타율, 출루율과 타점까지 모든 면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존재하고 있었으니 비교 대상 자체가 될 수 없었다.

딱 2가지만 장태훈 선배가 메이슨 발레타보다 높았는데, 그게 바로 삼진과 병살타였다.

부웅!

더그아웃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장태훈 선배의 배트가 무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타율은 떨어지고, 홈런은 터지질 않으니 조바심에 스윙 밸런스가 시즌 초와는 비교될 정도로 무너져 있는 것이다.

감독과 코치들이 여러 차례 조언을 했음에도 소용없었다.

장태훈 선배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슬럼프라는 건 누구에게나 온다.

문제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했는데, 장태훈 선배는 최악의 방법으로 슬럼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슬럼프에 빠지면 최대한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냉정하고 여유롭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절대 조급해해선 안 된다고 최상호 코치가 누누이 말을 해주었다.

스스로 여유를 가져야만 조금이라도 빠른 시간 안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장태훈 선배는 정 반대로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 엉망으로 배트를 휘둘러대고 있었다.

틱!

프레디 에르난데스가 던진 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면서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굴러 갔다.

쉽게 볼 수 있는 6(유격수)-4(2루수)-3(1루수)의 병살타가 나오고 말았다.

1사 1, 3루의 좋은 찬스 상황을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최악의 병살타를 친 장태훈 선배는 헬멧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성질을 부려댔고, 더그아웃에서는 많은 선수들이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혼자 삼진이나 당하지 왜 거기서 되지도 않는 공을 건드려서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몇몇 선수들이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들 사이에 좋지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재빨리 코치들이 나섰다.

괜찮다며, 고작 1회 공격이 끝났을 뿐이라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오늘도 부탁한다.”

송진욱 투수 코치가 나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고, 난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컨디션은 좋다.

최상은 아니더라고 충분히 창원 타이탄스의 타선을 7회 이상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경기 전에 있었던 연습 투구에서도 제구와 구속이 좋다며 황대훈 선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었다.

마운드에 올라 흙을 고르는 사이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았고, 손 위에 로진백을 올려 툭툭 치고는 바닥에 내려놨다.

손가락에 묻은 하얀 가루 일부를 허공에 털어내고는 공을 쥐었다.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아주 괜찮았다.

전반기 마지막 선발 경기다.

이왕이면 승리 투수가 되고 싶었다.

< 『국내편 - 064』 > 끝

ⓒ 독고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