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61』 >
『국내편 - 061』
“정말 끝내주는 친구군!”
케인 브레이는 테블릿pc의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운드 위에서 태연하게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에게서 케인 브레이는 전율을 느낄 만큼 강력한 힘을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투수들을 봤지만, 단언컨대 영상 속의 투수만큼 매력을 갖춘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
“브레이, 뭘 그렇게 보는 거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는 듯 케인 브레이가 입만 열었다.
“해리스! 자네도 이것 좀 봐봐!”
“뭔데?”
해리스가 다가오자 케인 브레이가 재빨리 영상을 보여줬다.
해리스는 케인 브레이가 보여주는 동영상을 확인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코리아 쇼크(korea shock)잖아?”
“코리아 쇼크?”
“차지혁 투수를 말하는 거 아냐?”
“차지혁?”
“뭐야?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해리스는 케인 브레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 정말 양키스의 스카우트가 맞긴 한 거야?”
“해리스, 난 2년 유럽을 돌다가 이제 막 귀국을 했다고! 아시아 쪽에는 신경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아아, 그랬지! 미안. 그럼 알려주지. 네가 보고 있는 동영상 속의 투수는 한국의 투수야. 작년에 한국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 나왔던 선수로 올해 18세로 루키지. 그 투수 때문에 지금 메이저리그 대부분의 구단에서 한국으로 스카우트를 보낸 상태야. 자세한 데이터는 셀라를 찾아가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나한테 묻지 말고.”
“그것보다 코리아 쇼크라니?”
“아아, 봐서 알겠지만. 말 그대로 충격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거든.”
“얼마나 충격적이기에?”
“현재 한국 리그에서 6번 선발로 등판해서 5승 무패를 달리고 있지. 하지만, 단순히 이런 무패 기록만으로 충격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겠지?”
케인 브레이는 당연하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스도 그럴 줄 알았다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놀랄 준비를 하라고. 6경기에 나와서 지금까지 소화한 이닝 수가 50이닝, 투구수가 620개였던가? 이건 확실하지 않아. 하지만, 630개를 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중요한 건 50이닝 동안 볼넷은 고작 3개 밖에 되지 않으며, 피안타도 23개뿐이라는 거지. 70개에 가까운 탈삼진 능력에 무엇보다 놀라운 건 루키 주제에 데뷔전에 노히트노런을 달성하고 현재까지 무실점이라는 사실이야. 이제 왜 충격적이라 부르는지 알겠지? 한국 리그가 아무리 메이저리그보다 아래라 하더라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기록이거든. 그런데 차지혁은 현재 그 말도 안 되는 기록으로 한국 리그를 완전히 평정하고 있어. 루키 주제에 말이야!”
해리스는 자신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내일 새벽 4시에 한국에서 7번째 선발 등판을 하겠군.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직접 경기를 보도록 해. 나도 항상 차지혁의 선발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보고 있으니까. 오늘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한국 경기를 보려면 일찍 자야겠어.”
해리스가 몸을 일으키자 케인 브레이가 재빨리 물었다.
“우리는?”
“무슨 소리야?”
“우리 구단에서는 누가 한국에 간 거야? 설마, 아무도 가지 않은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벌써부터 단장이 얼마나 몸이 달아올랐는데! 바이아웃 금액도 고작 350억 밖에 되질 않는다고. 잘 됐지. 만약, 차지혁이 작년에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로 왔다면 몸값이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엄청나게 비쌌을 테니까. 덕분에 단장이 얼마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줄 알아? 코리아 쇼크를 붙잡기 위해서 제프가 직접 한국까지 가 있는 상황이야.”
“제프? 이적 계약까지는 아직까지 몇 달이나 남아 있는데?”
“그만큼 차지혁을 양키스로 데리고 오고 말겠다는 구단의 의지 아니겠어? 사실, 나도 굉장히 궁금하긴 하거든. 코리아 쇼크가 과연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지 말이야. 물론, 지금 한국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겠지만,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거든.”
케인 브레이는 해리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선수의 능력과 재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팀장인 제프가 직접 한국까지 날아갔다는 건 구단에서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으며, 반드시 붙잡고 말겠다는 의지인 거다.
단순 성적만으로 이렇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해리스의 말처럼 한국 리그는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 하더라도 트리플A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야기해서 트리플A에서 현재 차지혁 정도로 던지는 투수가 있다면?
장담하건데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
아니, 기대를 하게 만든다.
단순히 통한다가 아니다.
반드시 통한다.
바이아웃 금액이 350억이니 비싸지도 않다.
최고의 선수들만 사들이는 양키스에는 이적료가 1천억 원이 넘어가는 선수도 있었다.
평균적으로 이적료만 500억 이상의 선수들만 모였다고 보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양키스는 양키스다.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이고,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프로 팀이다.
“절대적으로 양키스에 어울리는 투수다!”
당장 내년부터 핀스트라이프를 입고 양키 스타디움(Yankee Stadium)에서 공을 던질 차지혁을 떠올리는 케인 브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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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유~! 오늘도 꽉 들어찼군!”
짙은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경기장 가득 들어찬 관중들을 바라보며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예상했던 일이라 전혀 놀랍지 않았다.
오늘은 그가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가 등판하는 날에는 언제나 이렇게 구름처럼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프로 구단에게 있어 이렇게 확실한 티켓파워를 갖춘 선수는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와도 같았다.
보물인 셈이다.
절대 타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보물.
“잭!”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러 갔던 핸리가 호들갑을 떨며 나타났다.
사러 갔던 음료와 간식거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핸리, 도대체 뭘 봤기에 목적도 잃어버리고 온 거야?”
“지금 음료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저길 봐!”
핸리가 한 곳을 가리키자 잭은 도대체 뭔데 그러냐는 듯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금발에 뚱뚱한 중년인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잭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저 돼지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잭은 원수를 만난 것처럼 화를 냈다.
“예상은 했지만, 설마 양키스에서 제프를 보낼 줄이야.”
핸리가 제법 심각한 음성으로 말을 했고, 잭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토미는 어디로 가고 저 빌어먹을 돼지가 나타난 거야?”
“제프가 한국까지 온 이상 토미는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렇겠지.”
잭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프다.
이적 성공률이 100%였기에 스카우트 세계에서는 ‘퍼펙트 제프’라 불리는 인간이었다.
잭은 그런 제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하는 구단이 다르기도 했지만, 제프의 협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제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돈을 좋아하는 선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돈을 제시했고, 여자를 좋아하는 선수에게는 아름다운 여자들을 붙여줬다.
가족을 중시하는 선수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가족들의 환심을 샀다.
선수 본인의 취향과 성격, 상황을 이용해서 마음을 얻는 기술은 분명 제프만의 성공 방식이다.
본받아야 할 점이기도 했지만, 제프의 경우 성공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양키스에서 돈으로 해결을 한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 선수만 이적시키면 관대하게 용서를 해주는 양키스라는 거대한 악의 제국이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었다.
“어! 제프가 이쪽으로 온다!”
핸리의 말처럼 뚱뚱하다 못해 비대한 금발 돼지, 제프가 뒤뚱거리는 모양새로 다가왔다.
“잭! 보스턴에서 여기까지 언제 온 거야? 이렇게 먼 한국에서 만나니까 괜히 더 반갑잖아?”
“난 전혀 반갑지 않은데? 토미는 언제 갔지? 한국에서까지 널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싫은 티를 대놓고 내는 잭이었지만, 제프는 피식 웃기만 했다.
“벌써부터 날 경계하는 거야? 설마 저번 일을 아직까지 담아두고 있는 거야?”
“넌 이쪽 세계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암세포 같은 인간이니까.”
“푸하하하! 실력이 부족해서 선수를 빼앗긴 패배자의 변명인가? 이제 보니 잭 네가 왜 번번이 나에게 선수를 빼앗기는지 알 것 같군. 넌 뼛속까지 패배의식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야. 그러니 너에게 마음을 줄 선수가 있겠어? 너와 만나서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기분 나쁜 패배감이 전염 될 테니 말이야.”
“뭐라고!”
잭이 벌떡 일어나자 핸리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잭! 그만둬! 여기서 사고를 치면 곤란하다고!”
“폭력적인 성격도 여전하군. 선수 시절에도 그렇게 주먹질을 하더니 아직도야? 그런 성격을 하루라도 빨리 고치지 않으면 보스턴에도 네 일자리가 남아 있진 않을 걸?”
제프의 빈정거림에 잭은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고 싶었지만, 핸리의 말처럼 한국에서 사고를 치는 순간 일자리를 잃을 것이 분명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차지혁은 내년부터 우리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게 될 거야. 왜냐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괜한 노력 하지 말고 당장 항공사에 전화해서 보스턴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티켓을 끊는 게 좋을 거야. 하루라도 출장비를 아끼고 싶다면 말이야. 하하하하!”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제프의 모습을 보며 잭은 바득바득 이를 갈아댔다.
“어쩌지?”
핸리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잭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가?”
“제프가 나타났잖아. 제프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차지혁은 양키스의 선수가 된 거나 마찬가지잖아.”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이적 협상은 시작도 하지 않았어! 차지혁의 에이전시에서도 분명히 말을 했잖아!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어느 곳과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잭은 그 말을 믿어? 모든 에이전시는 언제나 그렇게 말을 하는 거라고. 선수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
핸리의 말에 잭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긴 하네. 고작 한국 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위해 제프까지 한국으로 날아왔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5월이잖아? 5월부터 이렇게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다니. 잭, 네가 보기엔 어때? 정말 차지혁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우와아아아아아!
핸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열렬히 반겨주는 선수, 차지혁은 언제나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르고 있었다.
“저걸 봐. 굳이 내 대답이 필요해?”
“저건 관중들의 반응일 뿐이잖아? 우리는 스카우트라고. 스카우트는 달라야지.”
“핸리, 차지혁의 스팩을 몰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저만한 선수는 드물어. 거기에 네 말대로 고작 5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의 모든 야구팬들이 열광하고 있어. 더불어 최고의 선수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제프를 보낸 양키스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해? 정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미안한 소리겠지만, 핸리 넌 스카우트로서의 자격 미달이야. 내일이라도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핸리는 자신의 볼을 긁적거리며 그냥 해본 말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잭은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익숙한 얼굴의 스카우트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온 노리스, 디트로이트에서 온 길리언, 시카고에서 온 폴터, 한때 같이 일을 했던 LA의 디든 외에도 텍사스, 세인트루이스, 애리조나 등등 아는 얼굴만 하더라도 두 손으로 수를 세야 했다. 자신이 모르는 이들까지 생각한다면 메이저리그의 모든 스카우트들이 이 경기장에 모였을지도 몰랐다.
“스트라이크!”
-와아아아아아아!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
움직임 하나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담고 있는 각종 미디어.
작은 흠만 발견해도 놓치지 않는 기자.
수많은 스카우트까지.
이토록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에서도 젊은 18세의 신인 투수는 자신의 투구를 묵묵하게 해내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완벽한 투수가 존재한다면 난 지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거야.”
아직은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잭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투수가 될 자질을 타고난 선수가 바로 이곳, 아시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 『국내편 - 06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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