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55화 (55/221)

< 『국내편 - 055』 >

『국내편 - 055』

딱!

-유격수 박상천 몸을 날려봅니다만, 타구의 속도가 워낙 빠릅니다! 타구는 그대로 좌익수 진주호의 앞까지 굴러갑니다! 광주 피닉스의 1번 타자 김지호의 과감한 초구 배팅이 그대로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대전 호크스의 선발 차지혁 선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손에 로진가루를 묻혀봅니다. 초구부터 안타를 맞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강영수 해설위원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우선 화면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151Km의 포심 패스트볼이 완전히 몸 쪽으로 붙지 못하면서 안타를 맞았네요. 제구가 완벽하지 못했지만, 김지호 타자가 굉장히 잘 친 타격이죠. 무엇보다 선발 투수의 공을 많이 봐야 할 1번 타자가 초구부터 스윙을 했다는 건 아무래도 광주 피닉스의 작전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차지혁 투수의 성향상 초구는 대부분 스트라이크를 잡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걸 겁니다.

-선두타자가 1루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광주 피닉스의 2번 타자 박성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현재 0.347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출루율 또한 0.429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어제 경기에서는 1번 타자로 출전해서 5타수 4안타의 맹타를 휘둘렀기에 오늘도 어제의 타격감이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차지혁 투수로서는 내야 땅볼을 유도해서 병살타를 노릴 가능성이 크겠죠. 박성훈 타자는 이 점을 머릿속에 염두해둬야 해요.

-말씀하시는 순간, 차지혁 선수 1구를 던졌습니다! 아, 볼입니다.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몸 쪽 낮은 볼입니다. 150Km의 포심 패스트볼로 아무래도 김지호 선수에게 초구부터 안타를 맞은 사실이 제구력을 흔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루 주자를 바라보며 차지혁 선수 2구를 던집니다.

따악!

-박성훈 선수의 타구 아슬아슬하게 3루 파울 라인을 넘어갑니다!

-노렸네요. 박성훈 선수도 김지호 선수와 마찬가지로 차지혁 선수가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자신 있게 배트를 돌렸어요.

-1스트라이크 1볼의 상황입니다. 이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오늘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광주 피닉스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스윙을 가져갈 것 같습니다.

-1번, 2번 타자가 많은 공을 보지 않고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휘두르니 전체적으로 모든 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라는 작전이 떨어진 겁니다. 지난 4경기에서 차지혁 선수가 어떤 식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는지는 이미 분석이 끝난 상태고, 그 해법은 지금처럼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타격을 가져가야만 하죠.

-3구 던졌습니다. 이번에도 볼입니다. 바깥쪽을 살짝 빠져나가는 포심 패스트볼입니다. 황대훈 포수가 주심을 돌아보며 스트라이크가 아니냐고 다시 한 번 물어봅니다만, 주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볼이라고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방금 공은 아쉽네요. 주심의 성향에 따라 스트라이크로 선언이 될 수도 있었죠. 아무래도 오늘은 여러 가지로 차지혁 선수에게 쉽지 않은 날이 될 것 같네요.

-사인을 주고받은 차지혁 선수 4번째 공을 힘차게 던집니다! 이번에는 스트라이크입니다. 과감하게도 한 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을 집어넣었습니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이 154Km입니다. 타자 박성훈 선수 타석에서 벗어나 배트를 휘두르며 다음 공을 생각합니다.

-역시 시원시원하네요. 차지혁 투수의 최대 장점이라면 타자와의 대결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는 승부 근성이죠. 지난 4월에 있었던 모든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로 선정된 장면이 차지혁 선수의 데뷔전이자, 첫 노히트노런 경기로 8회 초, 대구 블루윙스의 4번 이규환 타자와 대결에서 한 가운데를 꿰뚫은 162Km의 포심 패스트볼이었죠. 그 외에도 차지혁 투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허를 찌르는 결정구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은 장면이 여럿 볼 수 있는데, 팬들은 이 부분을 아주 좋아한다고 하죠.

-승부사 기질이 아주 뛰어난 선수인만큼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스트라이크 2볼 상황에서 차지혁 선수 5구째 던집니다.

딱!

-박성훈 선수 배트를 던지듯 가볍게 밀어 친 타격이 안타로 이어졌습니다! 벌써 2안타를 헌납하는 차지혁 선수입니다.

-행운의 안타군요. 박성훈 타자의 타구가 2루수 정현우 선수 앞에서 크게 바운드가 되며 키를 넘겼어요. 평소였다면 평범한 땅볼로 무난하게 병살 플레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차지혁 투수 오늘 운도 따르지 않는 것 같군요.

-차지혁 선수 1회부터 무사 1, 2루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현재 35이닝 무실점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에 놓였습니다. 더불어 5경기 만에 첫 실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기회를 잡은 광주 피닉스의 타석에는 3번 타자 임태현 선수가 들어섭니다.

-위기네요. 차지혁 투수로서는 임태현 타자를 어떻게 상대하느냐가 아주 중요해졌어요. 외야로 빠져 나가는 타구라면 2루 주자 김지호 선수가 득점을 노려볼 정도로 발이 빠르죠.

-그렇습니다. 대전 호크스의 외야수들의 어깨가 그렇게 강하지 않기에 발 빠른 김지호 선수가 오늘 경기 첫 번째 득점을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차지혁 선수 2루 주자를 한 차례 바라보고 1구를 던집니다. 아!

톡.

-기습 번트입니다! 3번 타자 임태현 선수 초구에 기습 번트를 댔습니다! 타구의 방향이 3루 선상을 따라 굴러갑니다! 3루수 메이슨 발레타 다급하게 달려와 공을 잡았습니다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갑작스런 기습 번트에 대처를 하지 못해 모든 주자가 세이프 됩니다! 무사 만루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이건 의외군요. 광주 피닉스 벤치에서 3번 임태현 타자에게 기습 번트 작전을 내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더욱이 임태현 타자는 현재 타율이 0.356으로 굉장히 높은 편이죠. 대전 호크스 입장에서는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네요.

“후우…….”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조금씩 손끝에 걸리는 공의 감촉이 어긋났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나,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1회 초부터 무사 만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노리고 들어온 1번 타자에게 맞은 안타와 2번 타자의 행운의 안타에 이어 3번 타자의 기습 번트까지.

작전도 좋았지만, 행운까지 광주 피닉스의 몫이었다.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광주 피닉스의 4번 타자 한승철.

한때,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던 훌륭한 체격 조건과 재능을 갖춘 선수.

결과적으로 반 시즌 정도 메이저리거로 이름을 알렸지만, 딱히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마이너 생활만 3년을 하다가 국내로 돌아온 선수다.

전형적인 4번 타자로 한 방을 갖춘 거포였고, 작년에도 광주 피닉스에서 37개의 홈런을 터트리면서 자신의 파워를 자랑했다.

195cm의 큰 키에 체중 109kg의 체격이 타석에 자리를 잡으니 확실히 위압감이 느껴졌다.

초구는 몸 쪽 높은 공으로 정했다.

한승철이 가장 자신 없어 하는 코스였고, 배트가 나온다 하더라도 전형적인 어퍼스윙을 하는 배트 궤적이 공의 아랫부분을 맞춰 먼 거리까지 타구가 날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주자가 만루 상황이라 와인드업을 하고 힘껏 공을 던졌다.

부웅!

한승철도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바람 소리가 마운드에까지 들릴 정도로 세찼다.

예상대로 배트 궤적과 맞지 않아 헛스윙이 되었고, 한승철은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배트로 스파이크 밑바닥을 툭툭 쳤다.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빠져나가는 파워 커브.

잔뜩 응축했던 힘을 발산하듯 한승철은 맹렬하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배트와는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2스트라이크 노볼 상황.

무사 만루 상황에서 마주한 4번 타자를 상대로 굉장히 유리한 고지에 섰다.

3번째 공이 중요했다.

유인구의 볼을 던질 것이냐, 이전처럼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며 타자를 몰아붙일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황대훈 선배가 요구한 공은 몸 쪽 밑으로 떨어지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땅볼을 유도해서 홈으로 달려들 주자를 막고, 걸음이 느린 한승철까지 잡겠다는 의도였다.

나쁘지 않았지만, 오늘 컷 패스트볼이 손끝에서 조금씩 빠지는 느낌이었기에 나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실점을 막으면서 투 아웃 상황을 만들어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사실이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대로 던져준다.

과도하게 힘을 쓸 필요도 없고, 제구력에만 신경 써서 던지면 된다.

배트를 꽉 쥐고 서 있는 한승철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외야로 타구를 날려 희생플라이라도 만들겠다는 의지가 눈에 보였다.

4번 타자로서 무사 만루 상황에서 1타점도 못 올린다는 건 분명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

공을 던지는 순간 또 다시 실밥을 채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쇄애애액.

원하던 코스에서도 살짝 위로 올라갔고, 공의 무브먼트도 평소보다 밋밋했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칼날처럼 꺾여야 하는 각도 그 폭이 훨씬 좁았다.

언뜻 보면 포심 패스트볼처럼 보일 정도로 형편없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따악!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가던 공이 순식간에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갔다.

깜짝 놀라서 타구를 돌아보니 지금까지 프로에서 맞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큼지막한 타구가 3루 라인을 타고 날아가고 있었다.

-큽니다! 큽니다! 쭉쭉 뻗어 나갑니다! 넘어갔습니다! 4번 타자 한승철! 1회 초부터 만루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1회 초 4득점을 올리는 광주 피닉스입니다! 아, 3루심이 파울을 선언합니다! 2루 베이스로 느긋하게 뛰어가던 한승철 선수 인상을 찌푸리며 그대로 멈춰서서 더그아웃을 바라봅니다. 광주 피닉스 장성열 감독이 직접 움직여 주심에게 다가갑니다. 주심과 3루심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비디오 판독을 하기로 결정 내립니다. 다시 한 번 영상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음… 지금 각도의 화면상으로는 홈런인 것 같죠?

-하지만, 여기서 찍은 카메라에는 파울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정확하게 분석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위험했다.”

마운드에 올라온 황대훈 선배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맞는 순간 홈런이라고 직감을 할 정도로 타구가 컸다.

내 눈에도 라인을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여 홈런으로 판단했다.

“다음엔 파워 커브를 던져라. 홈플레이트에 맞을 정도로 각이 크게 휘어지는 공으로 던져. 블로킹 확실하게 해줄 테니까.”

“예?”

“파울이야. 홈런 아니다.”

확신에 찬 황대훈 선배의 말대로 비디오 판독 결과 파울로 판정이 됐다.

만찬을 즐긴 포식자처럼 느릿하게 베이스를 돌던 한승철은 잔뜩 독이 오른 독사처럼 타석에 서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파워 커브라…….’

확실히 오늘 컷 패스트볼의 제구가 좋지 않았으니 파워 커브를 결정구로 던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약속대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휘어질 정도로 파워 커브를 던졌다.

파울로 판정이 나긴 했지만, 어쨌든 큼지막한 만루 홈런의 손맛을 본 한승철은 다시 한 번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부- 웅!

턱! 퍽!

허무하게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공은 홈플레이를 맞고 튀어 올랐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황대훈 선배가 안정적으로 가슴으로 블로킹을 했지만, 공이 옆으로 튀며 빠져 나가버렸다.

황대훈 선배가 마스크를 내던지며 다급하게 공을 쫓았고, 동시에 먹잇감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맹수처럼 3루 주자인 김지호가 홈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 역시 혹시나 싶어 홈 플레이트 쪽으로 다가서다 황급히 달려가 황대훈 선배가 던져주는 공을 잡아 지척까지 달려온 김지호를 향해 글러브를 움직였다.

퍽! 콰당!

몸으로 밀고 들어오던 김지호와 그걸 막아 선 내가 동시에 뒤로 쓰러졌다.

충돌을 예상했음에도 가슴과 복부가 아릿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충격의 고통보다는 주심의 판정이 먼저였다.

주심은 내 글러브에 담겨 있는 공을 확인하고는 주먹을 땅으로 내리꽂았다.

“아웃!”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벌러덩 누워있던 자세 그대로 양팔을 쭉 뻗으며 환호했다.

“괜찮아?”

황대훈 선배가 가장 먼저 다가와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확실하게 블로킹을 하겠다고 했음에도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자 황대훈 선배 역시 크게 당황하고,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괜찮다며 부축하는 손길에 이끌려 천천히 일어났다.

더그아웃에서 송진욱 투수 코치가 달려 나오며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오늘 게임 정말 안 풀리네…….”

블로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도 공이 튀었다.

만루 홈런이 파울로 바뀐 건 행운이라 할 만했지만, 그 외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경기가 안 풀리고 있었다.

< 『국내편 - 055』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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