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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54화 (54/221)

< 『국내편 - 054』 >

『국내편 - 054』

4월, 이달의 선수로 상을 수상 했다.

4월 한 달 동안의 기록은 말 그대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신기에 가까웠다.

일부에서는 4월 한 달간의 기록이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며, 세상 그 어떤 투수도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이라고까지 평했다.

승패 : 4승 0패.

IP(이닝) : 35.

H(피안타) : 11.

AVG(피안타율) : 0.098.

R(실점) : 0.

ER(자책점) : 0.

HR(피홈런) : 0.

BB(볼넷) : 2.

HB(사구) : 0.

SO(삼진) : 51.

TBP(상대한 타자수) : 112.

NP(총 투구수) : 441.

내가 달성한 기록이지만, 나 역시 이게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절반에 가까운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냈고, 피안타율은 0.1도 되지 않았으니 비디오게임으로 야구를 한다 하더라도 이것보다 나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보통 선발 투수는 피안타율이 0.2만 되어도 굉장히 잘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나는 0.1이하를 기록해버린 거다.

강남 맨티스의 용병 타자 크로이 러셀은 4월 한 달 동안 19개의 홈런을 쏘아올리고도 이달의 선수상을 받지 못했다.

다른 때였다면 압도적으로 이달의 선수상을 받아냈을 크로이 러셀로서는 불행이라 할 만했다.

“4월 달 보너스는 확인을 하셨습니까?”

황병익 대표의 말에 나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예.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액수가 좀 많더군요?”

“대전 호크스 구단에서 2억을 지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황병익 대표는 2억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차지혁 선수의 보너스 옵션은 승리 수당이 1천만 원이고, 완봉을 할 경우 3천만 원이 지급됩니다. 4월 동안 차지혁 선수는 4승을 기록했고, 그 중 3차례 완봉승을 거뒀습니다. 계산산으로 따진다면 1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전 호크스 구단에서 데뷔전 노히트노런에 대한 축하금으로 1억을 추가로 지급했습니다.”

황병익 대표의 말에 그제야 난 엊그제 프론트 직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전 호크스 프론트에서 축하 격려금으로 보너스를 두둑하게 지급했다고 했는데, 그걸 까먹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4월 한 달 간 차지혁 선수 이름으로 쌓인 유소년 발전 기금이 510만 원입니다. 유소년 발전 기금은 매년 마지막 달에 한꺼번에 일괄 기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매달 기부하길 원하시면 말씀하십시오. 오늘 중으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날 바라봤다.

두 분은 내가 번 돈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부모님은 바뀌지 않았다.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매달 지급해주세요.”

매년 한 번, 연말에 목돈을 기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돈이라는 게 필요할 때 쓰여야 진짜 값지다고 생각했기에 구태여 모아 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더욱이 계약 당시 대전 호크스에서 직접 내 이름으로 기부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걸 황병익 대표가 에이전시 쪽으로 빼앗아 왔기에 그것에 대한 말들도 조금 있었다.

그렇다보니 괜한 부스럼이 생기지 않도록 빨리빨리 처리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속 편했다.

황병익 대표는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스폰서 협찬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스폰서요?”

“예. 꽤 많은 스포츠 업체에서 스폰서 제의가 들어왔는데, 우선 여기 제안을 해온 스폰서 목록입니다. 이들 중 제안 내용이 괜찮은 곳은 가장 상위 그룹으로 따로 분류를 해놨습니다.”

황병익 대표가 건네주는 서류를 확인해보니 누구나 알만한 유명 스포츠 업체들이었다.

상위 그룹으로 따로 분류를 해놓은 업체들은 NIKE, Adidas, Asics, Mizuno, Reebok, New Balance였는데 협찬 품목은 운동화, 배트, 글러브, 모자, 의류로 모두 동일했지만, 계약 기간과 계약금에 차이가 있었다.

계약 기간이 가장 긴 업체는 New Balance로 5년이었고, 계약금이 가장 큰 업체는 Mizuno로 20억이었다.

“여긴 어딘가요?”

목록 중간 정도에 Woool이라는 생소한 스포츠 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낯설었지만, 계약 기간 10년에 계약금으로 1억이 명시되어 있어 눈에 들어왔다.

협찬 품목은 다른 업체들과 다를 것 없었지만, 추가 사항으로 0.3%의 수익금 분배라는 특이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울이군요. 저도 생소한 곳이라 궁금해서 알아봤더니, 이번에 국내에서 새롭게 런칭한 스포츠 업체라고 합니다. 순수 국내 브랜드로 기본적으로는 의류와 운동화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신생 업체라 딱히 믿을만한 구석은 없어 보였습니다.”

황병익 대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업체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스포츠 브랜드 시장은 이미 몇몇 거대 공룡 기업들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놓은 상태라 신생 기업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 놓은 브랜드 이미지가 거대 공룡 기업들의 가장 확실한 힘이다.

그러니 울이라는 신생 업체는 황병익 대표의 말처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우선 계약 기간도 황당할 정도로 길었고, 그에 반해 계약금은 장난인가 싶을 정도로 적었다.

협찬 품목도 다른 곳과 다르지 않았지만, 글러브나, 배트 등은 전문적으로 생산 하지 않으면 제대로 만들기 쉽지 않았기에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렸다.

무엇보다 이미 세계 시장에서 확고부동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해외 브랜드를 나까지 나서서 광고를 해줄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N사나, A사 등을 선택해야 옳지만 야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돈을 벌고 있고, 앞으로도 벌 자신이 있었기에 거대 기업의 광고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쪽 대표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예?”

황병익 대표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신생 기업, 그것도 국내 업체의 대표를 만나겠다니 꽤나 당황한 듯 보였다.

모든 운동선수들은 N사나, A사의 광고 모델이 되길 꿈꾼다.

두 기업의 광고 모델이 되면 운동선수로서 굉장히 유명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빛나는 광고 모델 자리를 거부하고 있으니 황병익 대표로서는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어떤 생각으로 제게 스폰서 제의를 해왔는지 궁금해서 한 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진심을 말했으니, 할 말도 없었다.

무엇보다 만난다고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다.

황병익 대표도 그 점을 떠올렸는지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마련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이후로도 황병익 대표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캔들 사건 이후로 차지혁 선수의 유명세가 더 높아졌습니다.”

히죽 웃으며 대답하는 황병익 대표였다.

웃고 있는 황병익 대표와 다르게 난 딱히 즐겁지 않았다.

정혜영이라는 여대생과 얽혔던 스캔들 사건에 뜬금없이 김하연이라는 스포츠 아나운서가 끼어들면서 하루면 정리가 됐을 일이 4일 동안이나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김하연 아나운서가 공개적으로 날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 후폭풍이 대단했다.

사건의 발달이었던 정혜영이라는 대학생은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지고, 나와 김하연 아나운서에 대한 이야기로 한 동안 인터넷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 중 가장 황당한 건 스캔들 사건으로 인해 가장 피곤해 한 사람은 내가 아닌 지아였다.

한 순간도 테블릿pc와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고 나와 관련된 기사, 게시글 등에 온갖 간섭을 하고 다녔다.

두 눈을 퀭하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앉은 지아의 모습에 참다 못 한 어머니가 테블릿pc와 핸드폰을 압수하고 나서야 일단락이 되었을 정도였다.

“그런 유명세라면 사양하겠습니다.”

진심이다.

운동선수가 스캔들로 유명해지는 건 절대 좋은 모습이 아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내일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기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하이에나처럼 날 지켜보고 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야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예 신경을 끄고 살았기에 상관없었지만, 기자들의 표적이 될 가족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는 이런 시끄러운 일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다.

“내일 상대가 광주 피닉스죠? 요즘 광주 피닉스의 상승세가 무서울 지경이더군요. 벌써 14연승을 이어나가고 있죠?”

광주 피닉스.

2025년 페넌트 레이스 1위, 한국 시리즈 우승팀.

전통적으로 투타의 조화가 아주 잘 이루어져 있는 강팀 중의 강팀이다.

20전 16승 4패로 엄청난 승률로 현재 페넌트 레이스 1위 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재 14연승을 내달리며 거침없이 상대팀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대전 호크스도 5월 1일부터 홈으로 불러들인 광주 피닉스를 상대로 2연패 중이다.

내일 경기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1승 2패로 루징 시리즈다.

반대로 광주 피닉스는 내일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5개 구단을 상대로 연속 스윕승을 달성하게 된다.

2026년도 1위 후보로 꼽힌 광주 피닉스다운 무서운 질주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광주 피닉스를 상대로 내일은 내가 선발 등판해야 한다.

“오늘 점수 차이가 내일 경기에도 영향을 미칠까 걱정입니다.”

9:1.

오늘 광주 피닉스와 대전 호크스의 최종 점수다.

처참할 정도로 짓밟혀버렸다.

무엇보다 전날 경기에서도 7:2로 졌기 때문에 팀 분위기는 말 그대로 바닥까지 떨어져버린 상황이었다.

현재 대전 호크스의 성적은 11승 9패.

시즌 초, 약체로 평가를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선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광주 피닉스를 상대로 너무나도 큰 점수차로 패배했다는 점이 팀 분위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만약, 내일 경기에서도 내가 팀 패배를 막지 못한다면?

‘분위기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겠지.’

전체적인 전력이 결코 높지 않은 대전 호크스였기에 분위기마저 가라앉으면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승리가 힘들어진다.

이게 바로 약팀의 문제점이다.

팀을 위해서라도, 내일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만 했다.

“내일 경기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런닝을 시작했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아침 런닝과 스트레칭은 내게 밥과 같은 것이었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에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반드시 빼먹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가볍게 어깨를 푸는 동안 최상호 코치가 찾아왔다.

“어쩐 일이세요?”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최상호 코치와 매주 토요일마다 훈련을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경기도 있고, 원정도 다녀야 하다 보니 규칙적으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서 훈련을 해오고 있었다.

“몸 상태나 볼까 해서 왔다.”

가볍게 캐치볼을 하려고 준비하던 아버지가 슬쩍 옆으로 물러났고, 최상호 코치는 가방에서 포수 미트를 꺼내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팡팡.

포구면을 주먹으로 두 번 두드리고 난 최상호 코치가 포수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던져봐.”

가볍게 1구를 던졌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상의 컨디션이라고까지 부르기엔 힘들었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상대는 리그 1위를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고 있는 광주 피닉스였으니까.

“컨디션이 베스트는 아닌 것 같군.”

투수의 공을 받아보면 당일의 컨디션을 알 수 있다.

구위, 구속, 제구까지 모든 것이 공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나쁘진 않다.

다만, 노히트 경기를 했을 때나 완봉승을 거뒀던 경기들처럼 베스트라 부를 수 없을 뿐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경기 때보다도 컨디션이 떨어졌다.

아무리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인 듯 싶었다.

“컨디션도 문제지만, 광주 피닉스의 타선은 쉬어 갈 틈이 없다. 하위 타선을 만만하게 여겼다가는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오늘 경기에서 7이닝만 책임지겠다는 심정으로 마운드에 서는 게 좋을 거다.”

최상호 코치의 조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이라도 컨디션을 더 끌어올리고자 오전 내내 최상호 코치와 몸을 움직이고는 대전 한밭 야구장으로 향했다.

경기 시작까지 3시간이나 남아 있었는데도 야구장 주변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접근해 있었다.

언제나처럼 티켓은 매진이다.

3배, 4배가 넘는 가격으로 암표까지 나돌아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야구장에 찾아오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에서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또 다시 다짐했다.

2026년 5월 3일 대전 호크스 21차전, 선발 투수 차지혁.

현수막이 나부끼는 야구장으로 들어섰다.

< 『국내편 - 054』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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