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48화 (48/221)

< 『국내편 - 048』 >

『국내편 - 048』

“스윙! 타자 아웃!”

주심의 아웃 콜을 들으며 모자를 벗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후우우.”

크게 숨을 내쉬며 모자를 고쳐 썼다.

7회 초, 두 번째 타자까지 아웃 카운트를 만들었다.

원성훈은 축 늘어진 어깨로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3타수 무안타 2삼진은 개막전 최악의 성적표다.

원성훈보다 더 심한 타자들도 있다.

전 타석을 삼진 당한 선수도 있었으니까.

‘이걸로 열 개 째인가?’

고개를 돌려 전광판 우측, 대전 한밭 야구장 글램핑존 잔디 위를 바라봤다.

K K K K K K K K K K

삼진을 잡을 때마다 하나씩 늘어난 플라스틱 판넬이 어느새 열 개였다.

이걸로 신인 데뷔전 탈삼진 기록은 타이가 됐다.

여기서 하나만 더 추가하면 그대로 신기록을 수립하는 거다.

애초부터 삼진 기록을 세우겠다고 생각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느새 타이가 되어버리니 하나 정도는 더 추가해서 신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7회 투 아웃,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김재호였다.

2타수 무안타.

2개의 땅볼만 기록하고 있는 김재호의 눈엔 독기가 가득했다.

두 타석 모두 초구에 배트를 휘두르며 각각 3루와 유격수 정면으로 굴러가는 쉬운 타구로 1루 베이스를 밝기도 전에 아웃 선언을 당했다.

까다로워야 할 타자였지만, 초구에 배트가 나와서 내 투구수를 줄여주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퍼엉!

“볼!”

살짝 빠졌다.

어느덧 투구수가 80개를 넘어섰고, 서서히 악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제구력만 잡으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전과 같은 구위가 나오지 않았다.

볼이라고 판단해서인지, 앞선 두 타석에서 성급할 정도로 초구에 배트를 휘둘러 벤치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인지, 김재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까다롭게 됐군.’

김재호는 만만한 타자가 아니다.

앞선 타석에서 초구에 배트를 휘둘러 2번 연속 땅볼 아웃을 당하긴 했지만, 강팀 대구 블루윙즈 클린업 트리오의 첫 번째 선봉장이고, 테이블세터들이 주자로 나가 있으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타점을 기록해왔다.

그 말은 집중력을 발휘하면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배트에 갖다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확실하지 않으면 휘두르지 않겠지.

투수의 공을 따라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스트라이크 존을 만들어 두고 거길 통과하는 공에만 스윙을 할 거다.

황대훈 선배도 그걸 알곤 2구로 오늘 강력한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걸치는 컷 패스트볼을 요구해왔다.

구위보다는 제구력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코스였기에 애써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공을 던졌다.

퍼엉!

“스트라이크!”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김재호가 눈만 한 번 일그러트렸다.

이미 오늘 경기 내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있는 공에 더 이상 불만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

자칫 주심의 신경이라도 건드리면 그만큼 타자에게 손해가 오니 보이지 않게 인상만 찌푸리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1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황대훈 선배가 요구한 3번째 공은 타자 몸 쪽 스트라이크 존을 걸치는 컷 패스트볼이었다.

오늘 두 번이나 김재호에게서 땅볼을 유도한 구종과 코스였다.

이번에도 김재호의 배트가 나와서 범타 처리가 되면 좋고, 안 나온다 하더라도 스트라이크가 선언되니 투수와 포수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 없었다.

내가 던지는 컷 패스트볼처럼 무브먼트가 좋은 공이 몸 쪽을 파고들면 확실히 타자 입장에서는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

작정하고 노린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타자 입장에서는 아주 짜증나는 공이 될 수밖에 없다.

따악!

공을 던지고 난 후,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대로 맞았다.

작정하고 노린 타격이었다.

김재호는 2타석에서 모두 같은 구종의 같은 코스에 당했다는 걸 노리고 타석에 들어섰던 거다.

포심 패스트볼을 머리에서 아예 지워버렸다는 뜻이다.

컷 패스트볼만 노린 타격은 정확하게 배트에 맞고 3루수와 유격수의 키를 가볍게 넘겨버렸다.

안타다.

오늘 첫 피안타를 맞았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퍼펙트로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방금 김재호를 상대로 안타를 맞았다는 생각이 아쉬웠지만, 한 편으로는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은연중에 부담감이 있었던 거다.

-우와아아아아아!

구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터졌다.

원정팀 타자가 안타를 쳤다고 함성을 지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니 좌익수 진주호 선배가 그라운드 위에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 상태에서 글러브를 머리 위로 살짝 들고 있었다.

“그걸… 잡았어?”

완벽하게 안타라 여겼다.

맞는 순간 타구가 날아가는 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3루수와 유격수의 키를 넘겨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될 타구였다.

그런데 그걸 좌익수 진주호 선배가 잡아낸 거다.

설마 시프트를 걸어놨던 건가?

그럴 리가 없다.

타자의 성향에 맞춰서 수비수의 위치를 조정하는 수비 시프트는 공을 던지기 전 내야수들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만 하더라도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외야수들만 조정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김재호는 장타 능력도 제법 좋았기에 외야수비가 전진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주호 선배가 아주 귀중한 아웃카운트를 잡았기에 나는 모자를 벗어 살짝 고개를 숙여주고는 마운드를 내려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황대훈 선배가 내 옆으로 얼른 달려와 어깨를 툭 쳤다.

“어때? 기분 좋지? 주호가 저런 나이스 캐치를 하는 건 시즌 동안 3번도 되지 않는다. 아마도 네 기록을 의식해서 죽어라 뛰어서 잡은 모양인데, 경기 끝나면 인사라도 해라.”

“예. 맞는 순간 안타라고 확신했었는데, 그걸 잡아서 얼떨떨합니다.”

“네 구위가 너무 좋아서 외야 수비를 약간 전진시켰다.”

“아…….”

그런 거였나?

보통 구위가 좋은 투수들은 장타를 잘 맞지 않는다.

벤치에서는 황대훈 선배에게 내 구위에 대해 듣고는 빗맞은 안타를 의식해 외야수비를 전진시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금 김재호의 타구를 잡아낸 건 오롯이 진주호 선배의 눈부신 수비력 덕분이었다.

“자자! 이제 한 점 뽑아보자! 알렉산더도 힘 빠져서 이제 슬슬 실점할 때가 됐잖아!”

정현우 선배가 더그아웃에 들어선 선수들을 향해 힘있게 격려를 했다.

오늘 경기는 눈부신 투수전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렉 알렉산더는 6이닝 동안 고작 2개의 볼넷과 2개의 피안타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삼진도 7개나 잡았으니 확실하게 개막전 선발 투수의 집중력과 실력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어깨는 어때?”

송진욱 투수 코치가 다가와 상태를 물어왔다.

6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날 향해 말을 걸어주는 선수나, 코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퍼펙트로 게임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투수인 나에게 조심을 하는 거였다.

그러던 것이 7회에 안타라 여겼던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내면서 팀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6회까지만 하더라도 쥐죽은 듯 있던 정현우 선배가 큰 소리로 선수들을 격려했고, 송진욱 투수 코치도 조심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경기에 집중을 하는 건 좋아도 같이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며 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부담감과 긴장감을 주기는 싫었기에 오히려 지금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다.

“아직 괜찮습니다.”

내 대답에 송진욱 투수 코치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더그아웃 분위기는 한결 밝아져 있었지만, 여전히 내 주변에는 선수들이 없었다.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지만, 휴식을 방해하는 이들이 없다는 건 만족할만했다.

7회 말, 선취 득점에 성공했다.

5번 타자 그랜트 커렌이 중견수 앞 안타로 1루로 나가자, 6번 타자 김추곤 선배가 끈질기게 승부를 물고 늘어지며 기어이 볼넷으로 살아나갔다.

순식간에 무사 1, 2루의 찬스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백유홍 감독은 안전하게 가겠다는 의지로 7번 황대훈 선배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고, 1사 2, 3루 상황으로 이어졌다.

외야 플라이로 타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8번 장근범 선배는 허무하게 삼진을 당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분위기가 식은 상황에서 9번 박상천 선배가 초구에 종아리를 스치는 데드볼로 살아서 1루를 채웠다.

2사 만루.

타선은 1번 타자 정현우 선배였고,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한 정현우 선배는 기어이 알렉산더를 상대로 1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단타를 치면서 타점을 올렸다.

1루에서 포효하는 정현우 선배가 멋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어서 앞선 이닝에서 눈부신 호수비를 보여줬던 진주호 선배가 좌중간을 꿰뚫는 2타점 2루타로 대전 한밭 야구장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호수비 이후 좋은 타격이라는 전형적인 야구계 속설을 증명하는 한 방이었다.

결국, 대구 블루윙즈의 선발 투수 그렉 알렉산더는 거기까지였고, 이후 바뀐 투수를 상대로 메이슨 발레타가 펜스 앞까지 날린 타구가 중견수 글러브에 들어가며 아쉽게도 공격을 마쳤다.

8회 초, 이제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아웃 카운트는 오직 6개.

무엇보다 6명의 타자만 잡으면 경기는 끝나고, 고졸 신인 투수가 개막 선발 데뷔전에서 퍼펙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퍼펙트 게임.

투수라면 누구나 꿈을 꾸는 대기록이다.

이미 고교 리그에서 퍼펙트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해봤지만, 프로에서 느끼는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8회에 마운드에 오르니 약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6개의 아웃 카운트만 잡으면 된다.

사람인 이상 퍼펙트 게임에 대한 욕심이 없을 순 없다.

다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번 이닝이 고비다.’

8회 초, 대구 블루윙즈의 타선만 잘 넘기면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두게 된다.

오늘 대구 블루윙즈의 7, 8, 9번의 하위 타선은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 타석에 서는 4번 이규환, 5번 애덤 코든, 6번 유경석을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아주 중요했다.

“후우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였다.

타석에 들어서는 4번 타자 이규환은 당장이라도 거구의 몸을 이끌고 마운드로 달려와 날 죽일 것처럼 사나운 눈을 하고 있었다.

고졸 신인 투수 데뷔전에 퍼펙트 게임을 준다?

대구 블루윙즈의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일이다.

‘배트를 짧게 쥐었어?’

대구 블루윙즈 4번 타자로서의 자존심을 버린 타격 자세다.

확실했다.

퍼펙트만큼은 막는다.

의지가 느껴졌다.

오늘 경기 최고의 승부가 될 것 같았다.

내외야 수비 위치를 살펴보니 조금씩 좌측으로 이동해 있었다.

외야수들은 이규환의 힘을 알고 있음에도 살짝 전진 수비를 하고 있었다.

공이 뒤로 빠진다 하더라도 이규환의 주력이 워낙 느렸기에 2루타 이상은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구는 몸 쪽 높은 위치의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포심 패스트볼.

자칫하면 홈런을 얻어맞을 수도 있는 코스였지만, 황대훈 선배는 과감하게 사인을 보냈다.

믿는 거다.

오늘 내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가 이규환이라는 타자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다는 걸 믿기에 이런 사인을 보낼 수 있는 거였다.

투수는 포수의 믿음에 보답하는 포지션이다.

포수가 믿지 못하는 투수는 결코 마운드 위에서 자신 있게 공을 던지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대훈 선배는 오늘 내 공을 그 어떤 투수보다 굳건하게 믿고 의지하고 있었다.

쇄애애액!

퍼- 엉!

“스트라이크!”

이규환의 어깨가 움찔 거리며 살짝 떨었다.

뭘 노렸을지 짐작이 갔다.

바깥쪽 컷 패스트볼을 노렸겠지.

확실하게 카운트를 잡고 갈 수 있는 오늘 최고의 공이었으니 이규환은 그걸 노리고 타석에 섰을 거다.

배트를 짧게 쥐었다고 타구를 펜스 밖으로 넘겨버리지 못할 타자가 아니었으니까.

우선 초구는 잡았다.

이제부터 중요하다.

이규환은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보고 확실하지 않은 공은 커트를 해내고, 확실한 공에 대해서는 그대로 스윙을 할 거다.

오늘 삼진만 2개 당하며 자존심과 체면을 완전히 구긴 이규환으로서는 반전의 한 방이 필요했다.

거기에 8회였으니 타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는 시간이다.

선발 투수인 나는 초반보다 월등하게 힘이 빠져 있지만, 타자는 공이 어느 정도 눈에 익었기에 앞선 타석과는 다르게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반대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황대훈 선배가 선택한 2구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서 아래쪽으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파워 커브였다.

이규환의 배트를 이끌어 내기 위한 유인구로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보고 있을 이규환으로서는 배트를 낼 공산이 컸다.

딱.

배트가 나왔고, 파울이 됐다.

3구는 몸 쪽으로 파고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이었고, 역시 이규환은 커트해냈다.

4구 역시 공 하나가 빠지는 낮은 볼이었지만, 커트에 성공했고, 5구와 6구는 바깥쪽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공 반 개 차이로 연달아 던졌지만 배트를 휘두르지 않으며 볼을 얻어냈다.

2스트라이크 2볼 상황에서 황대훈 선배가 선택한 결정구는 바깥쪽 컷 패스트볼이었다.

글러브에 들어가 있는 공을 손가락으로 굴리며 황대훈 선배의 포수 미트를 바라봤다.

동시에 이규환의 타격 자세가 홈플레이트 쪽으로 아주 약간 붙었다는 점과 배트를 쥔 손이 느슨하다는 게 보였다.

느낌이 좋지 않다.

이건 투수의 감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

이 공을 던지면 타자가 맥없이 헛스윙을 할 것 같거나, 안타를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랬다.

이규환의 사나운 눈동자가 맛있는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아가리를 벌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보였다.

까끌까끌한 야구공의 그립이 손에 잡혔다.

컷 패스트볼… 아니다.

여기서 컷 패스트볼은 이규환이 노리고 있는 공이다.

황대훈 선배의 사인을 받았지만, 섣부르게 공을 던질 수 없었다.

결국 투구판을 밟고 있던 오른발을 뒤로 뺐다.

내 행동에 황대훈 선배가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고는 마운드로 달려왔다.

“왜? 어디 문제라도 있어?”

“선배님.”

“응?”

“개막전 초구 기억하시죠?”

“개막전 초구?”

“그걸로 가겠습니다.”

“지금?”

황대훈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봤다.

대구 블루윙즈 4번 타자 이규환을 상대로 한 가운데를 던지겠다니 놀랄 수밖에.

포수 마스크 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베테랑 포수 입장에서 고졸 신인 투수를 리드하는 건 당연했다.

다른 때라면 설득을 하거나, 자신을 믿어보라며 자신 있게 리드를 했겠지만, 황대훈 선배는 굳게 다문 입을 쉽사리 열지 못했다.

퍼펙트 게임이 진행 중이다.

부담이 되는 거다.

여기서 자신의 사인대로 던져달라고 했다가 안타를 맞으면?

그 무거운 책임을 며칠 아니,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한다.

한국 프로 야구 통산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퍼펙트 게임인데, 고졸 신인 투수가 데뷔전 그것도 개막전에서 퍼펙트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포수인 황대훈 선배의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게 되면 황대훈 선배 개인적으로도 평생 자랑할 만한 업적이 되지만, 달성하기 전까지의 부담감과 중압감은 살이 떨릴 정도로 살벌했다.

“자신 있는 거냐?”

황대훈 선배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왔다.

“제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공입니다.”

자신 있는 대답에 황대훈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 믿고 던져라.”

황대훈 선배가 내 어깨를 툭 치고는 포수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뒷모습에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듯 보였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어떻게든 내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황대훈 선배였으니 그 마음은 고마웠다.

“죄송합니다.”

황대훈 선배가 주심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마운드에 올라갔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주심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듯 경기를 속행하라는 제스처만 보였다.

“가자! 가자!”

자리에 앉은 황대훈 선배가 힘차게 외치며 긴장이 풀어졌을 야수들을 일깨웠다.

동시에 부산스러울 정도로 움직였다.

타자인 이규환의 집중력을 흩어놓으려는 베테랑 포수만의 연륜 묻어 나오는 행동이다.

지금 이 순간 나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을 사람이 타석에 서 있는 이규환이었다.

어떤 공이 어떻게 코스로 날아올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겠지.

무엇을 노리든 내가 던질 공은 결국 하나다.

투수는 피해선 안 된다.

타자와 정면으로 마주서서 승부를 봐야만 한다.

타자가 거친 야생성을 지닌 포악한 맹수라면 투수는 노련한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사냥꾼인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포수 미트를 꿰뚫어 버릴 듯 손 끝에서 뿜어져 나가는 불 같은 강속구다.

“후으으으읍.”

와인드업을 하며 호흡을 들이켰다.

온 몸의 힘을 오른발 축에 모아서 허리를 지나쳐 어깨를 관통해 손끝으로 이끌었다.

단단하게 움켜쥔 둘레 23cm의 딱딱한 야구공을 내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던졌다.

오늘 내가 던진 최고의 공이 되어야 한다.

개막전 초구만 생각했었던 제구력을 버린 최고의 강속구를 8회에도 던지게 될 줄이야.

야구공의 실밥이 손가락 끝에 제대로 채였다.

엄청난 백스핀과 함께 포수 미트를 향해 총알처럼 쏘아진 야구공.

타석에 선 이규환이 눈을 부릅뜨며 짧게 쥔 배트를 휘둘렀다.

< 『국내편 - 048』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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