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45화 (45/221)

< 『국내편 - 045』 >

『국내편 - 045』

시범 경기 기간 동안 대전 호크스는 5승 4패라는 괜찮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덕분에 올 시즌 예상 순위에서 당당하게 중위권을 예상해 볼 수 있다는 전문가와 기자들의 의견이 다소 있었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10년이 넘도록 항상 하위권을 형성하며, 언제나 약체로 평가를 받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만 했다.

시범 경기에서 대전 호크스의 중위권 도약이라는 예상 성적을 받아들게끔 만든 수훈 선수들을 꼽자면 투수조에서는 외국인 용병 투수 데이빗 하이드와 리처드 애스틴이 꼽혔다.

두 사람 모두 시범 경기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음으로써 대전 호크스의 선발진을 훌륭하게 담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거기에 작년 에이스로 활약했던 오주영도 두 번째 등판에서는 작년 전반기의 포스를 보여줬고, 김현기 역시도 괜찮은 컨디션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슈퍼 고졸 신인이라 불리는 나 역시 아주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며 시즌 초기부터 완벽하게 5선발 체재를 갖춘 유일한 팀이라는 소리와 함께 올 시즌 투수 왕국은 대전 호스크가 유력하다는 의견도 흘러나올 정도였다.

항상 하위권을 맴도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마운드는 리그 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받은 대전 호크스였으니 타선만 잘 받쳐주면 충분히 상위권도 노려볼 만했다.

다행이라면, 물방망이 타선이라며 리그 최하위에서 놀던 대전 호크스의 타자들이 이번 시범 경기 기간에는 심상찮은 폭발력과 집중력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는 역시 올 시즌부터 국내 프로 선수들 중 톱3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는 장태훈이 있었다.

작년 시즌 초라하다 못해 비참할 정도의 성적을 냈던 장태훈은 올 시즌 확실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듯 시범 경기 내내 불방망이를 뿜어냈다.

시범 경기 기간 동안 보여준 0.458의 타율과 5개의 홈런은 올 시즌 성적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장태훈이 중심이라면 그를 에워싸고 있는 3번 메이슨 발레타와 5번 그랜트 커렌의 외국인 용병 듀오도 타 구단들의 견제를 받기에 충분할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다.

올 시즌 1번으로 낙점을 받은 정현우와 함께 2번으로 여러 차례 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진주호는 평균 이상의 테이블세터를 구축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항상 문제가 되는 하위 타선도 시범 경기 기간 동안에는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절대 쉬어가는 타선이 아님을 어필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물들은 고작 9경기에 불과했다.

전문가들과 기자들의 예상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었기에 마냥 좋아만 하다가는 작년 시즌처럼 하위권에서 맴돌다 시즌이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오빠, 무조건 신인왕은 오빠거야. 알았지?”

“뭐?”

갑작스런 지아의 말에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아는 아직까지도 나에게 악플을 달고 다니는 악플러들과 싸우고 있었고, 그들의 기를 확실하게 꺾기 위해선 신인왕 타이틀이 필수라는 소리였다.

“그런 악플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 사람들은 어차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야. 내가 신인왕이 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아마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날 비난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래도 짜증나잖아! 그러니까 오빠는 올해 무조건 신인왕을 해. 그러면 최소한 그 망할 악플러들을 상대로 훌륭한 무기가 생기는 거니까! 알았지?”

“그래, 노력해볼게.”

웃으며 대답을 하자, 지아는 결의가 부족하다며 내 등짝을 후려치고는 제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지아야! 걱정 마! 오빠가 신인왕이랑 MVP도 차지할 테니까!”

내 외침에 지아가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신인왕 하나나 제대로 타!”

지아의 외침에 듣고 피식 웃고는 소파에 앉아서 TV를 틀었다.

야구 여신이라 불리며 야구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미모의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야구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침 세 명의 전 선수 출신 해설위원들과 함께 올 시즌 프로 야구 예상 순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각각의 예상 순위는 모두 달랐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분명했다.

3강 4중 3약으로 정리되는 그룹이었다.

3강에는 광주 피닉스, 대구 블루윙즈, 창원 타이탄스가 꼽혔다.

6~7년 동안이나 세 팀이 시즌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부터 3위를 다투고 있었으니 올 시즌도 강팀으로 분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

4중으로는 부산 샤크스, 강북 바이킹스, 강남 맨티스, 서울 버팔로스를 꼽았고, 3약으로는 인천 돌핀스, 대전 호크스, 수원 드래곤즈를 언급했다.

중팀과 약팀 역시도 지난 5~6년 동안의 성적을 참고한 것이기에 프로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간 그룹에서 상위 그룹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팀을 꼽으라면 그건 부산 샤크스일 겁니다. 부산 샤크스는 마운드와 타선이 모두 중간 수준이지만, 한 번 탄력을 받으면 그 기세를 가장 오래 끌고 가는 팀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한 여름 부산 홈에서의 승률은 굉장히 높습니다. 열성적인 홈관중들의 응원도 한 몫이라 할 수 있겠죠.

-부산 샤크스가 기세를 타면 무서운 팀인 건 분명합니다만, 올 시즌 가장 기대가 되는 잠룡 후보로는 대전 호크스 아닐까요? 벌써 막강한 5선발 체재를 구축했고, 타선도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어 많은 전문가들과 기자들도 대전 호크스의 성적이 작년과는 확실하게 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니까요.

-물론입니다. 사실, 모든 야구팬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팀은 대전 호크스입니다. 우선 투수 부분부터 말을 해보자면 무엇보다 대전 호크스에는 올 시즌 신인왕 0순위로 지목되는 차지혁 신인 투수가 있습니다. 고교 졸업 첫 프로 데뷔 무대에서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따라서…….

“첫 등판 경기는 4월 11일 홈경기 선발이네.”

백유홍 감독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말입니까?”

“부담이 되겠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니 컨디션 조절에 차질이 없도록 하게.”

믿는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다독이는 백유홍 감독이었다.

놀랐다. 너무 놀라서 할 말이 없었다.

선발로 경기에 나가는 건 당연하다 여겼지만, 문제는 시기였다.

애초부터 백유홍 감독이 나에게 제안했던 내용이 전지훈련과 시범 경기 동안 흡족한 모습을 보이면 1선발이나, 2선발로 기용하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확실하게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 결과가 바로 4월 11일 개막전 홈 경기 선발이다.

외국인 용병 투수들과 작년 에이스로 활약했던 투수를 뒤로 밀어내고 고졸 신인 투수를 과감하게 개막전 선발 경기에 올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백유홍 감독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개막전 선발 투수로 올리겠다는 건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는 거다.

프로 야구 역사상 개막전에서 신인 투수가 선발로 등판한 건 총 8번이다.

그나마도 94년을 끝으로 더 이상 없었다.

그런데 무려 32년 만에 개막전 선발로 신인 투수 그것도 고졸 신인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게 생겼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한참 만에 내가 백유홍 감독에게 한 말은 굉장히 짧았다.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에 백유홍 감독이 인자하게 웃었다.

“기대하겠네.”

이걸로 정해졌다.

개막전 선발 투수.

이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난 폭풍이 일어난다.

당장 개막전 상대팀인 대구 블루윙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명히 보였다.

강팀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대구 블루윙즈의 입장에선 기가 막힐 테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무시를 당했다 여길지도 모른다.

고졸 신인 투수를 선발로 내세운 대전 호크스를 처참하게 짓밟겠다, 명장이라 불리는 백유홍 감독의 명성을 처참하게 짓뭉개려고 달려들겠지.

내 예상대로 개막일을 하루 앞두고 선발 라인업이 발표됐다.

난리가 났다.

경험과 실력을 갖춘 용병 투수가 둘이나 있었고, 작년 에이스로 활약했던 오주영도 시범경기 막바지에 컨디션이 올라왔다는 걸 증명했다.

그런데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투수들을 젖혀두고 고졸 신인 투수가 선발 투수라는 게 발표되자 모든 사회적 관심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한국 프로 야구 32년 만에 고졸 신인 투수 개막전 선발 등판! 과연 가능한가?》

《슈퍼 루키 차지혁! 32년 만의 신인 투수 개막전 선발 등판 계보 잇다!》

《대전 호스크의 개막 선발은 신인 투수 차지혁!》

《차지혁! 프로 데뷔 첫 선발 경기로 개막전 출격!》

《백유홍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인 투수 차지혁!》

《대구 블루윙즈 박태인 감독 백유홍 감독의 선택 존중하지만, 잘못된 선택임을 증명하겠다!》

《대전 호크스 백유홍 감독 차지혁 선수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전지훈련 당시부터 계획했다!》

《대전 호크스의 팀 동료들도 신인 투수 차지혁의 개막전 선발에 호의적인 반응!》

《개막전 신인 투수 선발 등판에 대구 블루윙즈 선수들 프로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

실시간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는 내 이름과 백유홍 감독의 이름 등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야구 커뮤니티 게시판도 온통 내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고졸 신인 투수에게 개막전 선발을 맡기겠다는 건 올 시즌 에이스로 낙점을 받았다, 단순 홍보용으로 대전 호크스가 티켓을 팔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등등 각종 추측과 오해가 난무했다.

당연히 그 사이에서 지아는 기사가 터짐과 동시에 학교에선 핸드폰으로, 집에서는 컴퓨터 앞에서 식음까지 전폐하며 악플러들과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엄청난 소란을 일었지만, 난 적당하게 어깨를 풀며 내일 있을 개막전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하루를 앞당겨 집으로 찾아온 최상호 코치와 몸을 만들고 있었다.

“떨리지는 않는 거냐?”

“글쎄요. 코치님 말씀처럼 타고난 축복인지 별 감정이 없습니다.”

“녀석.”

최상호 코치가 피식 웃었다.

“대구 블루윙즈는 강팀이다. 조금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정없이 널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거다.”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전략 분석이야 끝났을 테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다.”

잠시 말을 멈춘 최상호 코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공만 믿어라. 타자들의 데이터도 분명 중요하지만, 투수는 자신의 공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갖고 포수 미트만 보고 던지면 된다. 장담컨대 네 공은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다. 네가 흔들리지 않으면 네 공도 흔들리지 않는다. 투수의 공이 흔들리는 건 투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단단하게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네. 지켜보세요. 제가 내일 어떤 공을 던지는지.”

딱히 어떤 대단한 성과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아니지만, 개막전 선발 투수로서 당당하게 첫 승을 신고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었다.

더불어 국내 프로 야구에서 그 누구도 쌓지 못한 최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첫 데뷔 선발 등판부터 패배를 할 순 없었다.

우선은 7이닝 무실점.

내가 정한 목표다.

시범 경기에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하더라도 그건 시범 경기일 뿐이다.

시즌 개막전에 임하는 자세와는 분명 달랐고, 내일 마주하게 될 대구 블루윙즈의 타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해서 신인 투수인 나를 철저하게 무너트리려고 할 거다.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경기인 만큼 중압감을 이겨내야 하고, 대구 블루윙즈 타자들에게도 결코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된다.

내일.

4월 11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차지혁이 왜 슈퍼 루키라 불리는지, 어째서 메이저리그 구단이 수천만 달러의 계약을 하려고 했는지를 똑똑하게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일찍 잠에 들었고, 일찍 일어났다.

생애 첫 프로 선발 데뷔 전, 그것도 개막전이라는 부담감 따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평소처럼 잠자리를 정리하고 런닝을 했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좋다.

컨디션은 최상이다.

< 『국내편 - 045』 > 끝

ⓒ 독고진

작가의 말

개막전 선발을 예상하신 분~?

참고로, 메이저리그는 1943년 알 게르히우저를 끝으로 단 세 명뿐이며, 그들 모두 마이너경력이 있는 메이저 신인 투수들이었습니다.

국내는 본문에 언급했다시피 1983년 장호연(OB) 선수를 시작으로 94년 강상수 선수 이후 계보가 끊겼습니다.

신인 투수가 개막전 선발로 등판한다는 건 사실상 지금 시대에는 아주 희박한 확률입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유명한 괴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도 마이너부터 시작했죠. 나이 제한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워싱턴에서 애지중지여기는 보물인데 함부로 다루진 않았을 겁니다.

낮에 한 편 더 써서 개막전과 함께 돌아오도록 노력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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