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42』 >
『국내편 - 042』
“아들! 내일 등판한다고 했었지?”
“예!”
“우리 아들 프로 데뷔해서 처음으로 야구팬들 앞에서 공 던지는데 보러가질 못해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
“괜찮아요. 어차피 시범 경기잖아요? 나중에 정식으로 시즌 시작하면 그때 구장에서 응원해주면 되요. TV로 중계도 해주니까 집에서 응원하면 제가 멋지게 던지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엄마가 꼭 TV로 볼 테니까 우리 아들 멋지게 던지는 모습 보여줘? 알았지?”
“예!”
“엄마가 아들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그럼요! 저도 항상 사랑해요.”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구단으로 향했다.
구단에 도착하니 곧바로 내일 있을 부산 샤크스와의 시범 경기를 위해 선수단 전용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호텔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부터 사직 야구장에 도착해 가볍게 몸을 풀고 나니 평일 한 낮의 시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관중들이 관중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야구 열기가 가장 뜨거운 지역이 부산이다. 그렇다보니 부산을 연고로 삼고 있는 부산 샤크스는 프로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산 샤크스를 응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릴 정도로 야구라면 열광하는 도시가 바로 부산이었다.
“역시 부산이군!”
황대훈 선배는 고작 시범 경기임에도 관중석을 꽤 차지하고 있는 부산 야구팬들의 모습에 살짝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야구 선수라면 강력한 팀만큼이나 열성적인 팬을 보유한 구단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대전 호크스도 적지 않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국내 최고의 팬층을 자랑하는 부산 샤크스와는 확실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불펜이라고 했지?”
“예.”
내가 시범 경기 동안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마운드에 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지만, 포수인 황대훈 선배는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훈련 때마다 호흡을 맞춰봐야 하는 배터리다보니 모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5회나, 6회에 마운드에 오를 거다. 오늘 기온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봄 날씨니까 어깨를 충분히 풀어둬라. 시범 경기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첫 등판이라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굳을 수도 있어. 그 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네. 충분히 풀어 두겠습니다.”
굳은 어깨로 투구를 하다간 부상으로 이어진다.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모를까봐 잔소리처럼 말을 하는 황대훈 선배가 아니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첫 피칭을 해야 하는 고졸 신인 선수가 긴장할 것을 염려해서 하는 선배로서의 따뜻한 조언이다.
“하긴, 주니치 드래건즈를 상대로도 괴물 같이 마운드를 지켰던 너한테 할 말은 아니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포수 미트를 들고 실내 불펜 대기실로 향했다.
경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오늘 선발로 마운드에 오를 오주영 선배와 최종 점검을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은 2026년 프로 야구 첫 번째 시범 경기가 열리는 날입니다. 현재 부산의 사직 구장, 광주의 신광주 구장, 대구의 신대구 구장, 창원의 창원 구장, 서울의 고척 돔구장에서 각각 첫 번째 시범 경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다행스럽게도 3월 중 기온이 가장 높은 날로 선수들의 부상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울 내내 야구만을 기다렸던 전국의 야구팬들에게 선수의 부상만큼 치명적인 손실이 또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선수의 부상은 단순히 선수만의 불행이 아닙니다. 구단과 팬들에게도 커다란 불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직 구장에는 시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6천 명이 넘는 관중들이 입장을 한 상태입니다.
-시범 경기라고 하기엔 상당히 많은 야구팬들이 구장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모두 부산 샤크스의 팬심 아니겠습니까? 부산 하면 야구, 야구하면 부산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니까요. 그것보다도 올해도 시범 경기 입장료로 개인당 1천 원씩을 받고 있질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오랜 기간 시범 경기에 대해서는 입장료를 일절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부터 국제야구연맹인 IBAF에서 세계 야구 발전 기금에 대한 기부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미국, 일본, 한국의 야구협회에서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그 중 시범 경기와 같은 경우 미국은 1달러, 일본은 1백 엔, 한국은 1천 원씩 입장료를 받아 전액 세계 야구 발전 기금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좀 민감한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국내 자본이 해외로 나가는 일이라 정확하게 세계 야구 발전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해 하는 시청자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박인만 해설위원께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세계 야구 발전 기금이라는 건 말 그대로 야구를 발전을 위해 쓰이는 돈입니다. 그 중 국제야구연맹, IBAF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활동이 바로 전 세계 야구 보급화입니다. 지금이야 야구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리그가 형성되어 매년 경기를 하는 국가는 절대 많지 않습니다. 그 중 프로 리그가 돌아가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 대만뿐입니다. 그 외 쿠바, 멕시코, 호주, 중국, 중남미의 몇몇 나라들만이 아마추어 리그를 꾸려나가고 있는 실정이죠. 하지만, 2017년 세계 야구 개혁이 이뤄지고 이듬해부터 IBAF가 FIFA와 협력해서 유럽 지역과 미국에 각각 야구와 축구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이 협력을 두고 FIFA의 무조건적인 이득이라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축구에 비해 야구라는 스포츠가 정착하기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지 않겠습니까?
-축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FIFA로서는 이번 협력을 통해 미국 3대 스포츠 시장에 축구를 끼워 넣고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축구가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건 사실이지만, 미국의 거대 자본 시장에서 야구가 차지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생각하면 FIFA로서는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FIFA가 원하는 수준인 미국 3대 스포츠를 4대 스포츠로 만들겠다는 의지만큼의 큰 성장세를 이루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축구의 인기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확실하게 축구 성장에 큰 발전을 이룬 것 또한 사실입니다. 흠, 말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어쨌든 야구의 규칙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유럽 시장에서 IBAF가 원하는 건 야구라는 스포츠를 어떻게든 알리는 것이었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으로까지 유럽인들에게 야구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야구라는 스포츠가 어떤 것이며, 규칙이 어떻다 정도는 알린 것이죠.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재벌들이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한 것 또한 커다란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모든 사업에는 자본이 필요하죠. 사실, 유럽 축구 시장이 과열된 이유가 바로 세계적인 재벌들이 직접적으로 구단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죠. 그들이 축구 자체의 발전을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많겠지만, 그 외적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만큼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겁니다. 어쨌든 그런 세계적인 재벌들이 야구 특히,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메이저리그에 눈독을 들이면서 소위 스몰마켓이라 불리던 팀들이 하나, 둘 인수되어 이제는 빅마켓, 스몰마켓이라는 말조차 사라지질 않았습니까? 야구 외의 스포츠에 관심 있던 미국인들마저 야구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로 인해 돈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말도 있었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야구팬이 늘어나면 구단의 수익이 증가하니 재벌들 입장에서는 투자의 개념이고, 딱히 손해 볼 것도 없는 안전 사업으로 속된 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인 셈입니다. 거기에다 미국뿐만 아니라 야구에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한 유럽과 중국, 인도에도 중계권이 팔리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야구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IBAF는 많은 유럽 국가와 아시아 특히, 동남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야구를 보급하고 알리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데 거기에 사용되는 돈이 바로 세계 야구 발전 기금입니다.
-박인만 해설위원께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덤으로 추가를 하자면 IBAF에서 국제 공식 야구 코칭 시스템을 도입했기에 어려서부터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웠지만, 부상이나, 실력 부족으로 야구 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한 많은 이들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야구를 보급하는데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제기구 소속원으로 소속감도 굉장히 높고, 실질적으로 연봉도 꽤 높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말씀을 하셨네요. 지금처럼 IBAF의 힘이 크기 전에도 야구 보급을 위해 여러 국가에 야구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제대로 된 야구 교육 시스템도 없는 곳에 장비만 준다고 뭐가 되겠습니까? 흐지부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그때의 일을 교훈삼아 전문 코치진을 꾸려 그들로 하여금 야구 교육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하기에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야구를 보급한다는 사명감과 상당히 높은 수준의 연봉으로 인해 IBAF 소속 국제 코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공부하는 것보다 야구 배워서 IBAF에 취직하는 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말도 있질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몇 번 지원을 했습니다만…….
-떨어지셨군요?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1회 초 공격을 마친 대전 호크스의 선수들이 수비를 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시범 경기 선발로는 작년 15승을 달성하며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던 오주영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가 있습니다. 7월 휴식월이 되기 전, 전반기만 하더라도 굉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전만큼 빠른 패스트볼을 구사하진 못하지만, 정교해진 제구력과 노련한 피칭으로 인해 전반기에만 9승을 달성했었죠. 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감이 커져서인지 후반기에는 전반기만큼의 피칭을 보이지 못하며 몇 번이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었습니다.
-올 시즌 오주영 선수의 성적을 예상한다면 어떻게 보십니까?
-체력적인 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정교한 제구력과 노련함을 생각하면 10승은 무난하지 않을까 예측해 봅니다. 하지만, 작년처럼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전 호크스의 에이스 역할을 누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외국인 용병 투수인 데이빗 하이드와 리처드 애스틴을 염두해봐야 합니다.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 경험도 있고, 트리플A에서도 꽤 안정적인 성적을 거뒀기에 올 시즌 외국인 용병 투수들 가운데 수위권이라 부를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13승을 거뒀던 김현기 선수도 주목해볼 만합니다. 성장세가 아주 뛰어난 선수로 타선의 지원만 제대로 받았어도 작년에 4승 정도는 더 추가했을 테니까요.
-외국인 투수 두 명과 김현기 선수 외에도 한 선수를 주목해볼만하지 않겠습니까?
-고졸 슈퍼 신인 차지혁 선수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글쎄요, 전 좀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차지혁 선수가 분명 역대 그 어떤 고졸 투수들보다 빼어난 고교 성적과 스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인 투수에게 팀 내 에이스 역할을 맡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백유홍 감독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차지혁 선수가 올 시즌 에이스로 대전 호크스를 이끌어 나가는 일은 어렵지 않나 판단을 해봅니다. 그렇다고 차지혁 선수에게 에이스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차지혁 선수의 스팩 자체만 놓고 본다면 국내 그 어떤 토종 투수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경험 부족이 문제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차지혁 선수가 경험만 쌓으면 국내 어느 팀을 가더라도 에이스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저 역시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차지혁 선수로서는 올 시즌 프로 무대를 어떻게 경험하느냐가 선수 인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될 것임을 알고 확실하게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회 말, 부산 샤크스의 1번 타자로 우익수 장필성 선수가 들어섭니다. 부산 샤크스에서만 7년 째,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장필성 선수는 좋은 타격 능력에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 오주영 선수의 초구를 그대로 지켜봅니다. 오주영 선수의 초구 포심 패스트볼이 142Km가 나왔습니다. 작년 시즌과 비교하면 비슷한 페이스로 보여 집니다.
-가운데 몰렸습니다만, 초구부터 배트가 잘 나오지 않는 장필성 선수의 성격을 잘 알고 오주영 선수 과감하게 초구를 한 가운데 포심 패스트볼로 집어넣었습니다. 오주영 선수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커브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때문에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고 나면 타자 입장에서는 수 싸움에서 꽤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오주영 선수 와인드업을 하고 두 번째 공을 던집니다.
따악!
커브가 몰렸다.
오주영 선배의 제구력이 오늘 영 좋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포심 패스트볼은 구속이 144Km를 넘지 못하니,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제대로 통하질 않았고, 덤으로 제구까지 안 되니 난타를 당하고 있었다.
2회 말에 벌써 5점이나 실점하고 있었다.
스코어 5:0.
아무리 시범 경기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건 좋지 않았다.
“지혁아, 준비해라.”
오주영 선배가 3이닝, 중간 불펜 투수 한 명 추가 투입 이후에 등판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지금 분위기에서 오늘 2군에서 끌어올린 투수를 시험하는 건 적절치 못했다.
최소한 대전 호크스 타자들이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투수가 필요했다.
그 역시 고졸 신인 투수에게 맡기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주니치 드래건즈와의 친선경기 이후, 나에 대한 선수들의 신임이 워낙 커졌기에 믿고 맡겨볼 만하다 여기는 것 같았다.
“3이닝만 책임져 주면 된다.”
장철민 투수 코치의 말을 들으며 더그아웃에서 나와 관중석 코 앞에 있는 불펜 마운드에 서자 깜짝 놀랄 정도의 함성이 들려왔다.
< 『국내편 - 04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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