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41』 >
『국내편 - 041』
“음식은 입에 맞습니까?”
“예. 맛있습니다.”
유명한 한식당답게 정갈하고, 깔끔하니 입맛에 잘 맞았다.
오전 훈련으로 배가 고팠기 때문인지도 몰랐지만,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쉬지 않고 입에 넣어 꼭꼭 씹었다.
그렇게 적당히 음식을 섭취하고 나자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차동호 기자는 녹음기를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차지혁 선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나왔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차동호 기자가 그런 걸 모르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의도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님의 훈련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언가 독특하다거나, 특별하다 여기십니까?”
“기본기만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고, 독특한 훈련법도 없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제가 해온 훈련법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뿐 입니다. 다만, 1년 365일을 꾸준하게 훈련하게끔 하셨습니다. 정말 몸이 아픈 날에는 한 번씩 쉬었지만, 딱히 몸에 문제가 없을 때엔 비나 눈이 와도 제 곁에서 항상 함께 훈련을 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곁에서 함께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셨다면 저도 반항심이 들어 버티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만큼이나 힘들게 훈련을 하셨던 아버지가 곁에 있었기에 어린 나이에도 제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참 대단하셨군요.”
“예. 지금의 제가 있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입니다. 물론, 뒤에서 항상 응원해주고 맛있는 음식과 포근한 품으로 보듬어 주신 어머니와 운동하는 오빠를 둬서 부모님의 사랑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여동생 또한 어긋나지 않고 착하게 자라줬기 때문에 전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족 모두가 하나가 되어 지금의 차지혁 선수를 만들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조금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 대답에 차동호 기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가식적이지 않아 보는 나 역시도 마주 웃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은사님들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차지혁 선수 야구 인생에 있어 가장 고마운 은사님을 말하라면 누구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제게 야구를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이 고마운 은사님들입니다.”
약간은 부담스러운 질문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가르쳤던 감독, 코치들을 일일이 호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동호 기자로서는 내 야구 인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 예를 들자면 현 개인 코치인 최상호 코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그럴 순 없었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사람들은 딱 세 사람 뿐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초빙한 레슨 코치 최태식, 중학교 시절 여러 가지로 날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명성 중학교 서대호 코치, 아직까지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며 개인 훈련을 봐주고 있는 최상호 코치다.
이들 세 사람은 내 인생에 평생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야구 기술과 훈련은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기본 과정, 기초 과정, 중급 과정 정도라고 할까?
한 사람이 여러 명을 가르쳐야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어느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가 없다는 점과 예전과 다르게 에이전시 시스템이 보편화 되면서 에이전시에서 선수에게 붙여주는 전담 코치로 인해 학교 교육은 예전만큼 디테일한 면이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나마 일석 고등학교는 좀 달랐지만, 내 경우엔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최상호 코치가 개인 코치로 붙어 있는 바람에 학교에서 다른 코치들이 날 가르치는 걸 살짝 부담스러워 했을 뿐이었다.
내가 대답을 두루뭉술하게 회피하자 차동호 기자가 눈치 빠르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국내 잔류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간단하게나마 차지혁 선수의 진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예상했던 질문이고, 할 말도 많은 질문이다.
그러나 길게 이야기해봐야 요란하다는 소리밖에 더 듣겠나 싶어 짤막하게 대답했다.
“국내 최고 투수가 세계 최고 투수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
내 대답에 차동호 기자가 살짝 감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너무 의외의 말이었기 때문인지 그는 잠시 내 대답으로 인한 여운을 느끼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기까지 했다.
“정말 멋진 포부입니다. 차지혁 선수를 열렬히 응원하는 팬의 한 사람으로써 반드시 차지혁 선수의 말처럼 국내 최고의 투수가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되길 밤낮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감격한 얼굴로 말을 하는 차동호 기자의 모습에 괜히 쑥스러워졌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마시며 시선을 피해버리자, 차동호 기자가 다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대전 호크스와 계약을 하는 것에 있어서 부담감은 없었느냐, 팀 분위기는 적응이 되느냐, 선배나 동기들과의 관계는 좋으냐, 여자 친구는 있냐, 이상형이 누구냐 등 굉장히 포괄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쉽고 편안하게 대답을 했고, 대답하기 난감하거나, 대답이 필요치 않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와 질문 자체를 거부했다.
전체적으로 대답한 질문보다는 노코멘트와 거부한 질문들이 더 많았지만, 차동호 기자는 단 한 번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차지혁 선수가 생각하는 야구 선수, 특히 투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건 부상 없이 꾸준하게 마운드 위에 서서 투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최고의 순간을 그 누구보다 오래 누리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부상을 당하면 슬럼프를 겪거나, 예전의 구위를 찾지 못해 하락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니 투수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족한 실력은 훈련을 키우면 되고, 모자란 재능 역시 꾸준한 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부상을 방지하는 것이야 말로 투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동호 기자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지혁 선수가 그토록 부상을 대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날 갑자기 차지혁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은 듣지 않아도 될 거라 믿겠습니다.”
“최소한 무리한 투구로 인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도록 할 겁니다.”
타자가 친 타구에 맞아 부상을 입거나,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몸을 다치지 않는 이상 부상을 당했다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게 할 자신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 목표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느덧 마지막 질문이고, 당연하다 싶은 질문이었다.
“투수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얻고 싶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대로 기사가 나가면 많은 말들이 나올 수도 있는 대답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신인왕부터 시작해서 MVP까지 욕심을 낼 작정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목표가 높을수록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볼 작정이다.
팀 성적이야 어차피 내가 마운드 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투구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기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삑.
차동호 기자가 녹음기를 끔으로써 인터뷰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성심성의껏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노코멘트로 응수해서 제대로 인터뷰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충분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차지혁 선수를 응원하는 팬 분들에게는 아주 큰 즐거움이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차지혁 선수 광팬입니다. 당연히 좋은 기사를 써야죠! 밤을 새서라도 좋은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자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차동호 기자만큼은 믿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저번에 차지혁 선수의 피칭을 보고 며칠 동안이나 잠을 설쳤습니다.”
“예?”
차동호 기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놀라운 말을 했다.
“오키나와에서 주니치 드래건즈와 있었던 친선경기를 봤습니다. 차지혁 선수가 선발로 등판한다는 소식을 듣고 갔었죠.”
“그 경기는 비공식이라 기자분들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지 않아도 경기 관람을 못할 상황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는 지인의 도움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아쉽다면, 그런 멋진 경기를 기사로 쓸 수 없었다는 겁니다. 만약, 기사로 쓸 수 있었다면 한국 야구팬들이 놀랄만한 멋진 기사를 쓸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이후로 차동호 기자는 주니치 드래건즈와의 친선경기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치 내가 이미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는 완성된 엄청난 투수였나 싶을 정도의 착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유쾌하지 않을 거라 여겼던 인터뷰는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반가운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 잘 지내고 있는 거냐? 흐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살스런 웃음이 내 입가에도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전화를 하는 거야?”
시계를 확인해보니 3시 50분이었다.
-여기? 3시가 좀 안 됐는데? 흐흐!
“편하게 훈련 받나 보다?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잠도 안자고.”
-말도 마라! 죽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나도 너처럼 국내 남을 걸 그랬나봐.
말과 다르게 목소리는 전혀 후회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전화를 걸어온 녀석은 장형수였다.
나와는 다르게 해외 드래프트 신인 시장에 나가서 4라운드에 지명을 받아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했다.
포수라는 포지션으로 인해 괜찮은 조건에 계약을 했고, 지금은 싱글A의 브레버드 카운티 매너티즈(Brevard County Manatees)라는 팀에서 한창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기뻐해라. 나 아무래도 시즌 시작과 동시에 내쉬빌 사운즈(Nashville Sounds)에서 마스크 쓸 것 같다. 흐흐흐!
“내쉬빌 사운즈?”
-트리플A 팀이다! 흐흐흐!
“벌써? 저번에 전화했을 때는 더블A도 힘들 것 같다고 했잖아?”
한 달 전쯤만 하더라도 트리플A는커녕 더블A 팀에서 뛰는 것도 힘들 것 같다며 징징거렸던 장형수였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 내에 갑작스럽게 트리플A 팀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쟁 상대 녀석들이 줄줄이 트레이드 되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자리가 비었거든! 야구의 신이 내게 기회를 주려는 거지! 흐흐!
“운 좋네. 그런데 어차피 널 써먹을 생각이니까 트레이드 시킨 것 아닐까?”
-아, 그런가? 뭐 어쨌든! 지긋지긋한 마이너 생활 하루라도 빨리 청산할 기회를 잡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마이너 생활을 시작도 안 했으면서 뭐가 지긋지긋하다는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너 이 새끼 뭘 그렇게 따지는 거야? 친구가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거가 되면 축하를 해줘야지! 넌 1라운드 지명 후보였고, 난 4라운드 지명이라고 무시하는 거냐?
왜 그 말이 안 나오나 싶었다.
4라운드 지명으로 밀워키와 계약을 맺으면서부터 장형수는 항상 저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축하한다! 하루라도 빨리 빅리그로 콜업되서 TV로 얼굴 좀 보자. 됐냐?”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어쨌든 내가 먼저 메이저리그에서 이름 좀 날리고 있을 테니까, 너도 얼른 와라. 여기 와보니까 너만큼 던지는 투수가 없다. 진짜 지혁이, 네가 얼마나 좋은 투수인지 새삼 느껴지더라!
“그래, 먼저 자리 좀 잡고 있어라. 그리고 가능하면 같은 팀에서 함께 야구하자.”
-콜! 월드 시리즈 우승하자고! 흐흐!
10분 정도를 더 떠들고 나서야 장형수와의 전화를 마쳤다.
고교 시절 배터리를 맞췄다는 이유로 단짝처럼 지낸 장형수였기에 졸업을 하고 나서도 가장 가깝게 연락을 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 외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함께 운동했던 동기들은 형식적인 친분 관계라 딱히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에 서서히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지아는 이런 내 주변 관계를 두고 혀를 차며 변변한 친구도 없는 불쌍한 인간이라고 단정 지었다.
학창 시절에는 잘 몰랐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약간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억지로 친구를 사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야구에 집중을 해야 할 시기고, 야구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친구들도 하나, 둘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없잖아 있었다.
“메이저리그라…….”
장형수가 올 시즌 트리플A에서 뛴다고 생각하니 나도 확실하게 국내 리그를 평정해야겠다는 각오가 다시 한 번 다져졌다.
그러기 위해선 시범 경기가 중요했고, 며칠 후면 시범 경기가 열린다.
< 『국내편 - 04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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