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34』 >
『국내편 - 034』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에 앉게나.”
감독 맞은편에 앉았다.
백유홍.
올해 63세로 올 시즌 처음으로 대전 호크스의 감독직을 맡은 사람이다.
선수 시절의 커리어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지도자로서는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하던 선수 시절 도저히 선수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그는 서른이 되던 해에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었다.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21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아 수석 코치의 자리까지 올랐다.
고작 1달이었지만,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해고가 되면서 감독 대행으로 메이저리그 팀을 이끈 경험도 있다.
당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감독이라며 국내 언론이 꽤나 시끄럽게 떠든 적도 있었다.
물론, 정식 감독도 아닌 감독 대행으로 시즌 후반기 1달이 전부였지만.
이후로도 수석 코치로 일을 하다 국내 대학팀에서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권유에 길었던 미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2년 만에 하위권을 맴돌던 대학팀을 우승시키는 저력을 발휘한다.
그렇게 대학팀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2번이나 우승을 하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강북 바이킹스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리그 하위권을 맴돌던 강북 바이킹스마저 3년 만에 우승팀으로 변화시키고, 2연패를 달성하며 그 능력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후로도 강북 바이킹스를 확실하게 강팀으로 만들어 놓고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다 재작년 건강에 문제가 생겨 감독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요양을 하던 그를 대전 호크스에서 간곡하게 설득해 올 시즌과 내년 시즌까지 사령탑으로 세우게 된 것이다.
“몸은 어떤가?”
“좋습니다.”
씩씩한 내 대답에 백유홍 감독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웃는 모습이 특정 패스트푸드 기업의 상징과도 같은 할아버지와 굉장히 비슷하게 보였다.
체격 또한 상당히 크고 좋았기에 더욱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열흘 후에 주니치 드래건즈와 친선 경기가 잡혔는데, 그때 선발로 나설 수 있겠나?”
“예? 제가 말입니까?”
“팀에서 가장 확인하고 싶은 선수는 당연히 자네니까.”
이해는 갔다.
작년 시즌에 에이스 역할을 했던 오주영이나, 12승을 달성했던 2선발 김현기 등의 기존 선발진들은 확실히 백유홍 감독의 눈에 익은 투수들이었다.
그러니 그들보다 날 먼저 시험대에 올려 프로 무대에서 얼마나 활약을 할지 판단해보고 싶다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내가 메이저리그에 오래 몸을 담아왔다는 건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정말 대단한 리그네. 20년이 넘도록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다 국내로 돌아와서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수준 이하. 딱 그것뿐이었네. 나 역시 국내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거리며 별 볼일 없는 선수 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왔지만,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오니 국내 리그의 수준이 정말 형편없다는 걸 깨달았지. 물론, 그런 국내에서 실패한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
씁쓸한 미소가 백유홍 감독 입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지도자로는 성공하고 계시질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내가 이런 말을 한 이유가 궁금하겠지? 자네는 메이저리그 1라운드 지명으로 구단과 계약을 하는 루키 선수들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나?”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1라운드 지명 루키 선수들은 위대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네. 국내 선수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재능만 놓고 봐도 국내 선수들 중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네. 스팩 또한 마찬가지네. 당장 국내 무대에 데뷔를 한다 하더라도 상당히 훌륭한 성적을 거둘 테지.”
말을 하는 백유홍 감독의 음성엔 확신이 가득했다.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메이저리그를 21년 경험하고, 국내 무대도 경험한 사람이니 단순한 주관적인 견해로만 치부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크네. 부담이 되겠나?”
“모두가 절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도 그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담? 없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부담감에 위축될 이유는 없다.
잘난 체하긴 싫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항상 느껴왔던 감정들이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부담감 따위에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야구만 하면 된다.
“다행이군. 자네는 국내 무대를 대전 호크스에서만 끝낼 생각이겠지?”
계약 내용만 봐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일이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전 호크스와의 계약 기간 내에 메이저리그로 갈 생각입니다.”
“재능이야 충분하고도 넘치고, 남은 건 성적이군. 이번 친선 경기에서 확실하게 자네의 능력을 발휘하게. 그럼 이번 시즌 1선발이나, 2선발 자리에 자네를 고려해보겠네.”
1선발, 2선발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백유홍 감독을 바라봤다.
그의 말처럼 내 재능과 스팩이 국내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졸 신인 선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날 1선발이나 2선발로 내세웠을 때 호의적인 시선보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더 클 것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다.
물론, 몇 번 선발로 세웠다가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얼마든지 보직을 변경할 수도 있다지만, 그러기엔 백유홍 감독이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당장 고졸 신인을 1, 2선발로 내세우면 기존 투수조 전체의 불만이 커진다.
그런 상황에서 백천홍 감독이 자신의 선택이 잘 못 됐다는 걸 깨닫고 기존 투수들을 위로 끌어 올린다 한들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감독에 대한 신뢰만 깨지게 되니 팀 전체의 성적이 좋게 나올 리가 없다.
“그렇다고 단 한 경기만으로 자네에 대한 모든 평가가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이번 전지훈련 기간 내에 자네는 2번 정도 친선경기에 등판을 할 예정이고, 이후 시범경기에서도 짧게나마 자네의 실력을 확인할 거네.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두는 건 자네의 뜻을 나는 적극 지지하고 있으니 확실하게 내 도움을 받고 싶다면 어떤 경기든 허투루 임하지 말라는 걸 말해주고 싶은 것 뿐이네.”
“감사합니다.”
감독이 날 지지해준다니 내 입장에서는 확실히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구단주와 단장의 힘이 아무리 크더라도 선수 기용만큼은 감독 고유의 절대 권력이다.
아무리 구단주와 단장이 압력을 가해도 감독이 고집을 부려버리면 끝이니, 감독이 날 도와주겠다는 건 분명 엄청난 희소식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내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길 기대하겠네.”
백유홍 감독의 말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을 하고 방을 나왔다.
비공식이지만, 프로 선수로서 첫 경기가 열흘 후라 생각하니 등판일에 맞춰 컨디션 조절과 체력 관리에 들어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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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친선경기라니.”
CBC 인터넷 스포츠 기자 차동호는 한껏 기대를 품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얼굴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늘 선발로 예정 된 선수가 차지혁이었다.
비공식이라지만 고교 졸업 후 첫 번째 프로 데뷔 무대였기에 차동호는 대전 호크스와 주니치 드래건즈의 친선경기가 잡혔다는 소식에 부장을 졸라서 오키나와까지 날아왔다.
그런데 경기 당일, 갑작스럽게 비공개로 경기를 한다는 대전 호크스 측 프론트의 말에 차동호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경기장 주변만 맴돌던 차동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환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키와구치!”
“응? 자네가 여긴 무슨 일… 아! 대전 호크스와 주니치 드래건즈의 친선경기를 취재하러 왔군!”
일본 요미우리신문 스포츠 기자인 키와구치의 말에 차동호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비공개라는군.”
“주니치 쪽에서 비공개를 요구했다고 하더군.”
“주니치가 왜?”
“오늘 선발 라인업으로 만약 패배라도 한다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렇겠지.”
말을 하는 키와구치는 은근히 주니치가 망신을 당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몇 년 동안 한신 타이거스보다도 더욱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앙숙이 되어버린 주니치 드래건즈였으니 요미우리신문 스포츠 기자인 키와구치 입장에서는 대전 호크스에게 주니치가 패배하는 것만큼 통쾌한 일이 없었다.
“설마 친선경기를 베스트로 꾸리기라도 한다는 소리야?”
“용병들이 빠지기는 했지만, 작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맴버로 라인업을 짰다고 하더군.”
“정말?”
차동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키와구치를 바라봤다.
“나도 솔직히 좀 놀랐지. 고작 친선경기에 베스트 라인업을 짰으니 말이야.”
그게 다 차지혁 때문이라는 걸 차동호는 느낄 수 있었다.
근 7~8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도 3위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는 주니치 드래건즈에게 대전 호크스는 한 수 아래의 팀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대전 호크스를 상대로 베스트 라인업을 가동한다는 건 일본에서도 차지혁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는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치겠군! 이런 게임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울 텐데!’
차동호는 기자 이전에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 경기를 꼭 보고 싶었다.
“키와구치,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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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드 위에서 능수능란하게 공을 던지는 일본인 투수.
마츠 타카야. 주니치 드래건즈의 에이스로 작년 시즌 19승을 거두며 에이스로서의 위용을 과시했고, 무엇보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2번이나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며 일본 최고의 에이스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투수가 바로 마츠 타카야다.
“미쳤네! 미쳤어! 친선경기에 마츠 타카야가 왜 나오는 건데? 에이스를 너무 막 굴리는 거 아냐?”
양학준 선배의 말에 정현우 선배가 평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상대가 마츠 타카야든, 뭐든 우리는 우리의 플레이만 하면 되는 거야!”
정현우 선배의 말에 곁에 앉아서 포수 미트를 주물럭거리던 황대훈 선배가 나만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렸다.
“말이야 쉽지. 경기 감각도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타격을 할 타자가 몇이나 되겠어? 현우 녀석 또 괜히 의욕 넘쳐서 어디 다치지나 않을지 걱정이네. 특히 일본이라면 이를 바득바득 갈아대는 놈인데. 그나저나 프로 6년 동안 사와무라상을 2번이나 차지하고 특히 작년에는 진(眞)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마츠 타카야도 이제는 슬슬 메이저리그로 갈 때가 되지 않았나?”
사와무라상.
오직 선발투수들만이 수상 가능한 사와무라에이지상은 본래 7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25회 선발 등판, 15승 이상, 10경기 이상 완투, 평균자책점 2.50 이하, 승률 6할 이상, 200이닝 이상 소화, 탈삼진 150개 이상.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져 있는 프로 야구판에서 사와무라상의 7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하기란 실질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도 사와무라상을 받은 투수들과 모든 조건을 충족한 투수들을 분류하기 위해 진 사와무라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마츠 타카야는 6년 동안 두 번이나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는데, 첫 수상 때는 완투, 자책점, 승률에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었다. 그러다 작년에는 모든 조건을 충족하며 사와무라상을 받아 주니치 드래건즈뿐만 아니라 자타공인 일본 에이스라 불리고 있는 중이다.
고작 비공개 친선경기에서 주니치 드래건즈의 에이스가 선발로 나선다는 게 나로서도 조금은 의아스러웠다.
거기에 공개였던 경기가 비공개로 바뀌고, 1.5군으로 예상했던 선발 라인업도 베스트로 바뀌었기에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까지 모두 불만스러운 상태였다.
무엇보다 우리 팀에서 가장 걱정을 많이 받는 사람은 당연히 선발 투수인 나였다.
“주니치에서 무슨 의도로 이런 식으로 친선경기를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부담감도 털어내고 편안하게 던져라. 어차피 이런 비공개 친선경기에서 실점 좀 한다고 널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알겠지?”
황대훈 선배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웃어줬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상대는 국내 프로 리그보다 한 수 위라 평가를 받는 일본 프로 리그에서도 몇 년 동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 주니치 드래건즈였다.
타자들에 관한 데이터를 부랴부랴 전달 받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오늘 경기는 온전히 내 실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플레이 볼!”
주심의 외침에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고, 원정 경기나 다름없었기에 1회 초 공격은 대전 호크스부터 시작되었다.
대전 호크스의 1번 타자는 팀의 주장이자, 주전 2루수인 정현우 선배였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타석에 선 정현우 선배의 모습이 꽤 크게 보였다.
간단하게 사인을 주고받은 후, 마츠 타카야가 와인드업을 하고 초구를 던졌다.
쇄애애액!
펑!
“스트라이크!”
과감하게도 한 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을 꽂아 넣어버리는 마츠 타카야였다.
“152Km? 뭘 저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던지는 거야?”
황경수 배터리 코치가 손에 들고 있던 스피드건에 찍힌 구속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비시즌에다 동계훈련 기간이라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투구 내용이었다.
물론, 160Km의 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대는 투수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마츠 타카야의 최고 구속이 157Km, 평균 구속 152~154Km라는 걸 감안하면 확실히 지금의 구속은 무리하게 투구를 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퍼- 엉!
“스트라이크!”
두 번째 역시 한 가운데를 묵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로 153Km를 찍어줬다.
정현우 선배는 타석에서 물러나 두어 번 허공에 배트를 휘두르고는 머리를 툭툭 쳤다.
“현우 제대로 열 받았나 보다.”
지켜보고 있던 황대훈 선배의 말처럼 정현우 선배의 눈빛이 죽일 듯 마츠 타카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츠 타카야는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쇄애애액!
부웅!
퍼엉!
“스윙! 아웃!”
한복판으로 날아오다 바깥쪽으로 날카롭게 꺾여 나가는 고속 슬라이더에 정현우 선배는 무기력하게 헛스윙을 하고 삼진이 되어 버렸다.
삼구삼진이라는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정현우 선배의 얼굴엔 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2번, 3번 타자마저 완벽하게 마츠 타카야의 구위에 눌려버리면서 공수 교대가 이뤄졌다.
“자, 가볼까?”
황대훈 선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히죽 웃었다.
< 『국내편 - 03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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