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33』 >
『국내편 - 033』
“투심 패스트볼의 핵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제구력이네. 투심 패스트볼은 절대 쉽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아니야. 어설프게 제구력을 잡았다가는 타자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은 구종 중 하나지.”
장철민 투수 코치는 손 안에 들린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이었다.
“투심 패스트볼의 제구력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네. 어깨가 빠져라 던지는 수밖에 없어. 저번에 설명을 했다시피 투심 패스트볼은 바람과의 마찰이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의 무브먼트 또한 클 수밖에 없으니 지속적으로 던져서 감각을 찾는 방법 밖에 없네. 참고로 나는 투심 패스트볼의 제구력을 갈고 닦기 위해 하루에 200개 이상씩 던졌지.”
200개.
말이 200개지 진짜로 하루에 200개씩 공을 던지면 몸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려 자칫 부상으로 번질 위험성이 있다.
“물론, 자네에게 하루에 200개나 되는 공을 던지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네. 이미 국내에선 손에 꼽히는 포심 패스트볼과 파워 커브에 컷 패스트볼까지 갖추고 있는데 굳이 무리해서 투심 패스트볼 하나 때문에 몸을 망칠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정말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고 싶다면 꾸준하게 던지면서 자네만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감각을 찾아야만 하네.”
“알겠습니다.”
투심 패스트볼의 제구력을 정복하는 일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창 연마 중인 체인지업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는데, 투심 패스트볼까지 익혀야 하니 아무래도 올 시즌 전반기 내에는 경기에서 써먹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당장 체인지업과 투심 패스트볼의 위력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경기 중에 결정구로서의 확신을 갖고 과감하게 던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어긋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섣부르게 접근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독였다.
투수는 하나의 구종을 익히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파워 커브와 컷 패스트볼도 각각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공을 들여 겨우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 몇 개월 만에 체인지업과 투심 패스트볼을 마스터하겠다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계획이며, 순전히 내 욕심인 거다.
그저 되는대로 지속적으로 몸에 익히는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던지다보면 손 끝에 감각이 걸리는 시점이 있는데, 그 감각은 내 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고, 그때부터는 집중해서 꾸준히 연습하면 원하는 수준만큼 숙달된 제구력을 갖출 수가 있게 된다.
“참, 요즘 자네의 투구 밸런스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것 같더군. 아마도 새로운 구종을 익히면서 몸의 균형이 살짝 비틀린 것 같으니 그 부분부터 바로 잡게. 초기에 바로 잡지 못하면 몸에 고착화되어 타자들에게 어떤 구종을 던질지 모두 드러내놓는 꼴이니 반드시 고쳐야만 하네.”
뜻밖의 말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밸런스가 흔들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철민 투수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더군. 전체적인 밸런스 문제는 아니고 릴리스하는 순간 팔꿈치와 손목에 살짝 변화가 있더군. 아직까지 크게 눈에 띄는 건 아니지만, 투수의 몸이라는 게 한 번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변화하기 때문에 발견 즉시 수정을 하는 게 최선이네. 자칫 방치했다가는 다른 구종들의 제구력까지 몽땅 날아가버리는 수가 있네.”
“아…….”
투구 밸런스가 흔들린다는 건 꽤나 심각한 문제다.
장철민 코치의 말대로 던지는 구종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가 생겨나니 타자들에게 간파 당하기 좋았고, 제구력에서도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어진다.
제구력이라는 것 자체가 반복적인 습관을 통해 잡히는 부분인데, 균형이 깨지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구력이 흔들리면 투수는 정신적으로도 위기에 빠지고, 그때가 되면 소위 말하는 슬럼프에 들어서게 되는 거다.
보통의 슬럼프는 단기적인 증상에 불과하지만, 운이 나쁜 경우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무리하게 슬럼프를 극복하려다가 선수 생명 자체가 완전히 망가지는 최악의 경우도 있었으니 굉장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양천임 분석원에게 말을 하면 카메라로 투구 영상을 세분화시켜 확인할 수 있으니 우선 그것부터 확인하고 무엇이 다른지 자네가 직접 깨닫는 게 좋을 거네.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다면 내게 말하도록 하고.”
장철민 코치는 이윽고 다른 투수에게로 향했다.
투수 코치는 두 사람인데, 전지훈련에 참석한 투수는 15명이 넘으니 확실히 선수들보다 더 바쁜 사람은 코치들이었다.
그리고 그건 투수 코치뿐만 아니라 타격 코치, 주루 코치, 배터리 코치, 트레이닝 코치들까지 사실상 전지훈련 캠프에서 가장 바쁜 이들을 꼽으라면 그건 코치진과 영상실 분석원들이다.
체인지업과 투심 패스트볼의 제구력을 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당장 투구 밸런스가 흔들리는 걸 잡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훈련장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영상실로 향했다.
“차지혁 선수?”
문이 열리며 삼십대 초반의 양천임 영상실 분석원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제 투구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지금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들어오세요.”
영상실로 들어가니 이미 한 명의 선수가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노트북이 애들 장난감처럼 보이는 거구의 선수, 장태훈이었다.
장태훈은 내가 들어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노트북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 4개로 분할되어 있는 노트북 화면에는 전후좌우에서 찍힌 장태훈의 스윙 모습이 아주 느린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양천임 분석원은 다른 노트북이 설치되어 있는 테이블로 날 안내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곧바로 노트북을 능숙하게 만지더니 내 투구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장철민 투수 코치님이 그렇지 않아도 차지혁 선수가 찾아오게 될 거라면서 준비해둔 영상이 있습니다. 다른 영상도 있으니 언제든 말만 하세요. 하나의 화면만 집중적으로 보시려면 화면을 클릭하면 됩니다. 궁금하거나, 의문스러운 점 있으시면 말하세요.”
양천임 분석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노트북에서 재생되는 분할되어 있는 4개의 화면을 바라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화면은 정면에서 찍은 영상으로 화면 속의 내가 아주 천천히 와인드업을 하고 공을 던지고 있었다.
영상분석이야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상호 코치와 함께 지겹도록 봐왔던 일이라 아주 익숙했다.
“아!”
단번에 장철민 코치가 했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내 투구 폼은 오버핸드스로(overhand throw)와 스리쿼터스로(three quarter throw)의 중간 정도였다.
딱히 분류를 하자면 스리쿼터라 불리겠지만, 중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통 오버핸드로 최대한 높은 위치에 릴리스 포인트들 두고 공을 내리 꽂았었다.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기엔 오버핸드보다 좋은 자세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상호 코치와 레슨을 시작하면서 부상 방지와 다양한 구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던질 수 있도록 서서히 투구 폼을 교정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투구 폼이 완성된 것이다.
정통 오버핸드는 아니고, 스리쿼터보다는 팔의 각도나 릴리스 포인트가 높은 것이 특징이었고, 무엇보다도 최대한 공을 쥔 왼손이 타자의 시야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았기에 투구폼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 어떤 구종의 공을 던지는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투구 폼만으로도 넌 이미 타자와의 수 싸움에서 월등하게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모든 투수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투구 폼이지.”
최상호 코치는 프로 선수들 중에서도 나만큼 공을 최대한 숨기는 투수는 많지 않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노트북 화면에서 보이는 나는 공을 쥐고 있는 왼손의 팔꿈치와 손목이 조금 일찍 뒷머리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칠 일이었지만, 수년 동안 쉬지 않고 나만의 투구 폼을 봐왔던 내 눈엔 단번에 보였다.
차이점이 어디서 발생되는지 알 수도 있었다.
“체인지업?”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이 투구를 해야 하는 체인지업이 오히려 투구 밸런스를 미묘하게 흩트려놓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눈앞의 결과가 그랬다.
체인지업의 관건은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이 던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자세, 똑같은 릴리스 포인트까지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은 같아야만 했다.
공을 쥔 그립만 다를 뿐, 누가 봐도 같은 투구폼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큰 차이가 아니겠지만, 예민한 투수의 몸을 생각한다면 이 작은 미묘함이 어떤 식으로 파장을 몰고 올지 예측이 불가능했기에 최대한 문제점을 찾아내서 보완을 해야만 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영상들도 차례로 심층 분석을 했다.
다른 건 다 달라지지 않았는데 투구 직전 릴리스 포인트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확실히 왼손이 일찍 튀어나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을 하던 중, 의외의 음성이 날 흔들어놨다.
“저런 식으로 힘을 주면 체인지업의 각도 변화가 더 커지는 건가?”
갑작스런 음성에 고개를 돌리니 장태훈이 내 영상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선배님.”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장태훈이 됐다며 손을 저었다.
대결 이후, 장태훈과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실내 훈련장엔 나타나지도 않았고, 전지훈련에서도 투수와 타자는 각기 따로 훈련을 받기에 딱히 어울릴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야수 전체 훈련이나, 자체 청백전 등의 일정은 아직 멀었고 장태훈은 전지훈련 내내 미친 듯이 타격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었기에 선배들 입에서도 올해는 장태훈이 독기를 품었다고 할 정도였다.
“역시 메이저리그 1라운드 지명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닌 모양이군.”
이전과 비슷한 말투였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확연하게 달라진 게 느껴졌다.
인정하고 있다.
장태훈은 나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장태훈의 심적 변화가 이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놈이 체인지업까지 저렇게 각도 변화가 심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내저으며 등을 돌리는 장태훈이었다.
‘각도 변화가 심하다고?’
체인지업은 타이밍을 빼앗은 공이지, 각도 변화를 중요시여기는 공이 아니다.
그런데 장태훈은 내가 던지는 투구 영상을 보며 각도 변화가 크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힘을 준다고도 했다.
재빨리 투구 영상을 뒤로 돌려 확인했다.
“아!”
포심 패스트볼과 똑같이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타이밍을 빼앗으려면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구속을 줄이기 위해 나도 모르게 투구 직전 과도하게 힘을 주고 있었던 거다.
그 작은 차이가 조금 더 일찍 손이 튀어나오도록 만든 것이고, 그 결과 내가 던지는 체인지업은 구속의 변화보다도 각도의 변화에 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구속과 각도 모두 변화가 심하면 그보다 좋은 체인지업도 없다.
그러나 투구 밸런스를 붕괴시키면서까지 체인지업을 던질 이유는 없었다.
발견하기 쉽지 않은 문제를 의외로 타자인 장태훈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곧바로 영상실을 뛰어나가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가고 있는 장태훈에게 달려갔다.
“태훈 선배님!”
내 부름에 장태훈이 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봤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장태훈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뭐하는 짓이냐는 듯 날 바라봤다.
“선배님 덕분에 신경 쓰이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왔는지 모르겠지만, 도우려고 한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두 번씩이나 인사를 할 필요 없다. 그리고 너도 느끼고 있겠지만, 난 너 싫어. 그러니까 되도록 가까운 척 하지 마라.”
대놓고 싫다고 말을 하는 장태훈이었다.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치근거릴 정도로 넉살이 좋지 않았기에 돌아서서 걸어가는 장태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미련 없이 영상실로 다시 돌아갔다.
쇄애액-!
퍼엉!
포수 미트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뒤에 서 있던 장철민 투수 코치는 내 물음에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고쳐졌네.”
“그렇습니까?”
“예전처럼 다시 자네만의 완벽한 균형 있는 투구 밸런스를 되찾았네. 대단하군. 불과 며칠 만에 정상으로 돌려놓다니 말이야.”
말은 하지 않았지만, 흔들린 균형을 다시 바로 잡기 위해 매일 밤마다 쉐도우 피칭을 천 개 이상씩 해야만 했다.
그나마도 초기에 발견했기에 며칠 만에 수정을 할 수 있었지, 만약 전지훈련 내내 모르고 지나갔다면 몇 달을 죽어라 고생해야 했을 일이었다.
고생만 하면 다행이다.
시즌이 시작되면 경기력에도 큰 지장을 주게 되니 끔찍한 프로 데뷔 년도가 될 뻔했다.
“코치님께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이렇게 쉽게 고칠 수 없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코치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네. 그보다 투구 밸러스가 더 좋아졌는지, 체인지업의 위력도 훨씬 좋아졌네. 제구력도 이전보다는 나은 것 같고. 이 정도의 구위에 제구력이라면 전지훈련을 마칠 때 쯤 웬만큼 경기에서 던질 수 있는 수준이 될 것 같네.”
“모두 코치님 덕분입니다.”
투구 밸런스가 맞춰지면서 구위는 한층 좋아졌지만, 여전히 제구력은 제대로 잡히질 않았기에 아무리 주변에서 괜찮다, 던져도 된다고 말을 하더라도 올 시즌 전반기 동안은 절대 시합 중에 던지지 않겠다 다짐을 한 상태였다.
“지혁아! 감독님이 찾으시더라 가봐라.”
팀 외야수인 김추곤 선배의 말에 나는 곧바로 장철민 투수 코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감독실로 향했다.
< 『국내편 - 03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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