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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31화 (31/221)

< 『국내편 - 031』 >

『국내편 - 031』

실내 훈련장이라 그런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박인수 선배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때? 좋냐?”

“좋네요. 괜히 역대급 고졸 루키라 부르는 게 아닌 모양이에요. 볼 끝이 안 죽네요. 무브먼트도 뛰어나고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투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네요.”

“그래봐야 햇병아리야. 잘 봐라. 시원하게 한 방 갈겨서 프로 무대가 고교 무대랑은 천지차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줄 테니까.”

마지막에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하는 장태훈이었다.

훈련장 한 켠에 모여 있는 선수들과 코치들의 시선을 받으며 천천히 와인드업을 했다.

장태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초구에도 과감하게 배트가 나온다는 점이다.

덕분에 초구 홈런도 꽤 많았다.

하지만, 수 싸움에 능한 투수를 만나면 볼 카운트가 몰려서 제대로 된 타격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초구는 파워 커브다.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걸치고 떨어지는 파워 커브는 초구를 노리는 타자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유인구다.

호흡을 가져간 이후, 바로 공을 던졌다.

쇄애애액-!

부웅-!

퍼엉!

바람을 쪼갤 듯 휘둘러진 배트와 그런 배트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서 포수 미트에 꽂히는 야구공.

잔뜩 힘이 들어간 장태훈은 약간 꼴사나운 모습으로 헛스윙을 하고선 누가 봐도 과장될 정도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흉포한 맹수처럼 살벌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커브가 굉장히 좋은데? 알고도 못 치겠다. 하하하!”

칭찬처럼 말을 하고 있지만,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료 선수들과 코치들이 보는 앞에서 꼴사납게 헛스윙을 해서인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얼굴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자, 원 스트라이크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는 건 흥분했다는 소리다.

그 증거로 장태훈은 방금 전과는 달라진 표정으로 배트를 바짝 조여 쥐고 있었다.

제법 신중한 듯 한 얼굴이지만, 실제로 장태훈은 흥분하면 거침없이 배트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과도 같은 타격 재능이 의외로 안타와 홈런을 꽤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태훈의 흥분한 모습을 얕잡아 보고 던졌을 때의 경우일 뿐이다.

두 번째로 장태훈을 유인할 공은 바깥쪽 높은 볼로 정했다.

어설프게 변화구를 던지기보다는 빠른 패스트볼이 정답이다.

코스는 장태훈이 가장 좋아하는 높은 공이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공 하나 반 정도 벗어나는 볼로 흥분한 상태에서는 절대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이 대결에서 포수의 존재는 단순히 내가 던지는 공을 받아주는 역할이었기에 사인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쇄애애액-!

부- 웅!

퍼엉!

예상대로 장태훈은 눈에 확 들어오는 높은 볼에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문제는 구속이 150Km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한창 시즌 중도 아니고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다른 팀보다 일찌감치 시즌을 끝내고 경기 감각이 사라져버린 장태훈에게 150Km의 빠른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이라면 모를까, 존을 벗어나는 볼은 커트조차 쉽지가 않았다.

“뭐야? 도망가는 거야?”

볼을 던졌다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볍게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씨알도 안 먹힐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볼을 던지던, 스트라이크를 던지던 그건 투수인 내 결정이고, 내 책임이다.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만 치면 그만인 거다.

괜히 볼을 건드리거나, 헛스윙을 하는 건 자신의 선구안에 문제가 있다는 단점을 걸 드러내는 꼴 밖에 되지 않았다.

대꾸 없이 포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고는 세 번째 공을 생각했다.

파워 커브?

아무리 장태훈의 감각이 바닥이라 하더라도 방금 던진 패스트볼의 구속과 파워 커브의 구속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 어떻게든 커트 정도는 해낼 것이 분명했다.

시합 중이라면 커트를 한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과감하게 파워 커브를 던지겠지만, 지금은 처참하게 짓밟아주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기에 완벽한 1구가 필요했다.

파워 커브를 제외했으니 남은 구종은 패스트볼과 컷 패스트볼.

장태훈은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추고 파워 커브는 무조건 커트해버리겠다 마음을 먹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노리고 있을 패스트볼보다는 컷 패스트볼이 헛스윙을 유도해낼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꺾이는 각이 예리하지 못하면 커트를 당하거나, 안타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컷 패스트볼을 던지려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던지느냐, 빠지는 볼을 던지느냐의 선택이 남았다.

‘볼로 간다.’

우타자인 장태훈의 몸 쪽 아래로 떨어지는 컷 패스트볼이라면 헛스윙을 이끌어 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손에 들고 있던 로진백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피처 플레이트에 왼발을 올렸다.

장태훈의 눈빛은 이제 타들어갈 정도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올 시즌 아무리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더라도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신인에게 두 번이나 헛스윙을 당하며 궁지에 몰렸으니 거만한 성격에 자존심이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을 건 뻔한 일이다.

여기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은 어떻게든 제대로 된 안타를 만들어내는 것뿐.

장태훈의 머릿속엔 오로지 치고 만다는 일념만이 가득할 것이다.

와인드업을 하고 몸의 체중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며 중지에 걸려 있는 실밥을 낚아챘다.

쇄애애액-!

장태훈은 한복판으로 날아오는 공을 향해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쳤다! 겁 없는 신인 녀석의 공을 정확하게 때렸다!

건방지게 자신에게 헛스윙을 두 번이나 선사한 녀석에게 제대로 보여줬다!

장태훈의 눈과 입이 그렇게 웃고 있었다.

웃고 있던 눈이 찢어지고, 입가가 비틀리는 건 순간이었다.

배트는 여전히 노렸던 방향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나아가고 있었지만, 공은 달랐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미끄러지듯 각도가 꺾였다.

그것도 아주 예술적으로.

부- 웅!

퍼엉!

공은 안전하게 포수의 미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속 세 번 헛스윙을 한 장태훈은 말없이 미트에 들어가 있는 공을 바라보다 마운드 위에 서 있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싸늘했다.

눈빛이, 표정이 날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처럼 싸늘했다.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무서울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장태훈은 패자고, 난 승자니까.

삼구삼진.

타자에게는 이보다 치욕스러운 결과가 없고, 투수에게는 이보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없다.

“다시.”

장태훈은 예의 가볍고 장난스러운 음성이 아닌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다 못해 비참하게 짓밟힌 맹수가 된 장태훈은 또 다르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릴 테고, 그만큼 내가 상대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가슴 한 켠을 간질거리는 묘한 승부욕이 날 충동질하고 있었다.

붙어! 다시 한 번 짓밟아버려!

“알겠습니다.”

포수를 향해 글러브를 내밀었고, 나와 장태훈 사이에서 생겨난 무거운 긴장감에 어쩔 줄을 몰라하던 포수가 송진욱 코치를 바라봤다.

송진욱 코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포수는 곧장 내게 공을 던져줬다.

@

퍼엉!

“씨발!”

콰작!

미트에 박혀버린 공.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거친 욕설.

사정없이 내려쳐 부러트린 배트.

장태훈은 그대로 훈련장을 나가버렸다.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모습에 그가 가는 길목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재빨리 옆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장태훈과 5번 대결을 했고, 모조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패스트볼, 파워 커브, 컷 패스트볼을 뒤죽박죽 섞어가며 던졌다.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보다는 볼이 더 많았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 볼에 가까웠다.

선구안이 뛰어난 타자거나, 신중하고 침착한 타자였다면 결코 통하지 않을 유인구들이 거의 모두다 장태훈의 배트를 나오게 만들었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태훈의 컨디션이었다.

올 시즌 장태훈이 기록한 성적들이 단순한 불운이 아닌, 그의 현 상태가 얼마나 최악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했다.

제 아무리 타격 능력이 뛰어나고, 홈런을 펑펑 쳐대는 타자라 하더라도 선구안이 개판인 타자는 절대 높은 타율과 많은 홈런을 칠 수 없다.

선구안이 바닥인 타자를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아무 생각 없이 꽂아 넣는 투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구안이 좋지 못한 타자는 결코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거다.

“대단한데? 진짜 웬만한 프로 못지않은 구위네. 패스트볼도 기가 막히고, 변화구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휴우, 역시 해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나와 장태훈의 대결에 끼어버린 포수 박인수 선배가 옆으로 다가와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고생하셨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아니라는 듯 어깨를 툭툭 쳤다.

“나야 좋은 구경했지 뭐. 그런데 앞으로 조심해라. 봐서 알겠지만, 태훈 선배 자존심 무척 세서 아마 오늘 일 두고두고 기억할 거다.”

“태훈 선배님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던데… 제가 오늘 실수한 겁니까?”

모르는 척 그렇게 대꾸했다.

눈치 없는 후배가 낫지, 자존심에다가 승부욕까지 센 후배로 찍히는 것보다 나았다.

그렇지 않아도 역대급 고교 선수니, 해외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후보니 말이 많았는데 실력 믿고 거만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다.

미국이라면 모를까, 한국 사회에선 겸손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적당히 예의를 지킬 줄 아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실수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태훈 선배 자존심을 건드렸으니까. 하긴, 뻔히 보이는 볼에 마구잡이로 배트를 휘두른 게 잘못이지만.”

누가 봐도 이번 대결은 유인구에 속은 장태훈의 자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지켜본 이들 입장에서 나는 약간 도망가는 피칭을 했고, 거기에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장태훈이 달려든 꼴이었다.

내 피칭이 고졸 신인이라면 누구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라면 장태훈은 10년차 베테랑 선배로서, 고액 연봉자로서의 타격이 전혀 아니었다.

내가 잘했다고 칭찬하기보단 장태훈이 못했다고 결론을 내릴 대결이었다.

“무리한 건 아니지?”

“예. 괜찮습니다.”

“태훈 선배가 괜히 억지 부려서 네가 고생했다. 마무리 운동 꼭 하고, 다음에 보자.”

“예, 선배님!”

박인수 선배는 포수 장비를 벗기 위해 훈련장 한쪽으로 걸어갔고, 송진욱 코치가 다가왔다.

“일부러 볼을 던진 거냐?”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송진욱 코치의 눈초리였다.

“장태훈 선배님의 기세에 눌려서 도망가는 피칭을 했을 뿐입니다.”

송진욱 코치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표정도 좋지 않았다.

“타자를 피하는 투수는 결코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 송진욱 코치가 몸을 돌려버렸다.

“명심하겠습니다.”

등을 돌린 송진욱 코치를 향해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좋은 볼을 가졌으면 물러나지 말고 과감하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네!”

멀어지는 송진욱 코치에게서 시선을 떼곤 마무리 운동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선배들이 한 마디씩 내게 말을 걸었기에 깎듯이 대꾸를 해주느라 생각보다 마무리 운동이 오래 걸리고 말았다.

얼떨결에 땀을 흘리고 말았지만, 항상 가방에 여벌의 옷을 가지고 다녔기에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장을 빠져나가다 강하영과 다시 만났다.

“시간 되면 커피나 한 잔 할래요?”

“예?”

“혹시, 선약이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앞에 괜찮은 카페가 있으니까 거기로 가죠.”

앞장서서 걸어가는 강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를 따라 걸었다.

강하영이 안내한 곳은 쉽게 볼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개인 카페였다.

“전 녹차 라떼요.”

날 빤히 바라보는 강하영의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녹차 라떼 두 잔 주세요.”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계산하고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강하영의 맞은 편에 앉았다.

“자존심 강한 사람의 콧대를 제대로 꺾어놓은 기분이 어때요?”

빙긋 웃으며 물어오는 강하영이었다.

그녀 역시 훈련장에서 있었던 장태훈과의 대결을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다.

“장태훈 선배님이 흥분하셔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기에 벌어진 결과일 뿐입니다. 제대로 대결을 벌였다면 제가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내 대답에 강하영은 가만히 날 바라봤다.

송진욱 코치의 눈이 매처럼 날카로웠다면, 강하영의 큰 눈망울은 내 마음속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태훈 오빠가 흥분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오빠가 제대로 된 타격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참고로, 태훈 오빠랑 나는 외사촌 지간이에요. 외삼촌 아들이죠.”

장태훈의 외사촌 동생이라는 사실에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경계심이 생겼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이왕이면 이 자리도 빨리 벗어나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태훈 오빠 성격이 좀 그렇기는 해도 10년이나 어린 후배에게 복수를 할 정도로 치졸한 사람은 아니니까. 태훈 오빠는 사실 피해의식이 좀 있어요. 항상 하는 말이 3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을 거라고 하거든요. 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어요. 고졸 신인 지명회의 때 실력이 딱히 뛰어나지 않았으니까.”

3년.

2015년에 데뷔를 했으니 3년 뒷면 정확하게 2018년, 처음으로 신인 드래프트 시장이 바뀐 해다.

이전까지는 무조건 지명을 받은 구단과 협상권 없이 계약을 해야 했다면, 2018년부터는 지금처럼 3개의 구단과 협상을 벌일 수가 있었다.

계약 총액도 달라졌고, 해외 진출도 한결 쉬웠다.

물론,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리고 강하영의 말처럼 장태훈은 프로 입단 후, 첫 해에 갑자기 포텐이 터진 케이스였다.

구단의 입장에서는 대박 복권에 당첨된 셈이고, 장태훈 본인도 놀랄 성장이었다.

“2021년도에 메이저리그로 이적을 했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신인 지명회의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2018년도부터 FA제도가 폐지되고 이적시장이 전면 개방 되었기에 선수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외 진출이 가능했다.

국내 최고 타자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장태훈은 해외로 나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국내에 남았고, 180억이라는 거액을 보장받으며 대전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오빠도 당연히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 몸에 문제가 있었어요.”

“예?”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메이저리그 몇 개의 구단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왼쪽 무릎에서 약간의 통증이 있다는 걸 발견했죠. 그걸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알아버렸고, 계약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떨어졌죠. 자존심이 상한 오빠는 국내 잔류를 선택했고, 큰 부상도 아니고 관리만 잘 하면 딱히 문제가 될 일 아니라고 여겼기에 대전 호크스에서 계약을 진행했어요. 오빠도 몸 관리만 좀 신경 쓰면 2년 안으로 다시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다 여겼던 거죠.”

“여전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은 겁니까?”

“작년엔 괜찮았는데, 올해 다시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더라고요.”

순식간에 그림이 그려졌다.

크진 않지만,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통증 속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 타자가 되어야 했을 장태훈은 모든 구단들의 견제 속에서도 어떻게든 성적을 내려고 하다 몸 상태가 더 악화되어 자연스럽게 성적이 떨어진 거다.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냉정하게 말해 그건 장태훈의 개인사정이다.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기를 뛴 것 또한 장태훈의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다.

강하영은 날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늘 일을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예?”

“오빠는 여전히 자신이 최고라 여기고 있거든요. 통증 따윈 별거 아니라 여기고 있고, 언제든 다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올해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아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심리적으로 꽤 궁지에 몰렸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 차지혁 선수를 상대로 자존심이 완전히 꺾였으니 아마 오빠도 많은 걸 느꼈을 거예요. 시즌 중에 상대 투수들에게는 느낄 수 없는 아주 비참한 기분을 느꼈겠죠. 오늘 일을 계기로 오빠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오빠의 문제고. 어쨌든 이렇게 계기를 만들어 준 차지혁 선수에게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두고 싶었어요.”

드르르륵. 드르르륵.

진동벨이 울렸고, 몸을 일으켜 주문한 녹차 라떼를 가져왔다.

“오빠 이야기는 이쯤하고 차지혁 선수는 여자 친구 있어요?”

“없습니다.”

“몇 살까지 만날 수 있어요?”

“예?”

“나 스물셋인데, 차지혁 선수는 지금 열아홉이죠? 와~ 우리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네요?”

< 『국내편 - 031』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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