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편 - 030』 >
『국내편 - 030』
장태훈.
대전 호크스의 간판 타자로 당장 내년부터 26억이라는 거액의 연봉을 받아 챙길 선수.
한국 프로 야구 톱3에 속하는 고액 연봉자로 대전 호크스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남 맨티스에서 6시즌을 뛰며 통산 타율 0.317에 227홈런을 기록한 초대형 거포로 많은 팀들과의 이적 협상 후, 연봉 총액 180억에 대전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적과 동시에 장태훈의 타율과 홈런수가 서서히 떨어졌고, 올해 성적은 0.225의 타율에 19홈런으로 프로 무대 데뷔 이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말았다.
덕분에 대형 먹튀라는 불명예를 달고 있었다.
30살이라는 젊은 나이가 아직까지는 기대감을 주고 있었지만, 당장 내년부터 26억을 연봉으로 지급해야 하는 대전 호크스의 입장으로서는 장태훈이 제대로 된 타율과 홈런을 양성하지 못하면 최악의 이적 계약이라는 흑역사를 남길 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차지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먹튀건, 뭐건 내게는 선배였고, 대전 호크스의 간판 타자였기에 깍듯하게 인사부터 했다.
“어~ 그래! 자식, 거만할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싸가지가 있는 놈이네?”
약간은 껄렁껄렁한 느낌의 장태훈이었다.
“태훈이, 네가 무슨 일로 이 시간에 훈련장에 나온 거냐?”
송진욱 선배의 눈빛이 곱지 않게 느껴졌다.
“이제 갓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인 햇병아리 앞에서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프로 선수가 돼서 훈련장에 왜 왔겠습니까?”
대꾸하는 장태훈의 표정과 말투도 곱진 않았다.
더 이상 송진욱과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화면보다 실물이 몸이 훨씬 좋은데? 어디… 오우! 이 새끼 허벅지가 장난 아니네? 기집애들 좋다고 달려들겠네. 괜찮은 애인은 있냐?”
행동이 가볍다.
한국 프로 야구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 선수인 장태훈은 항상 뒷말이 많을 정도로 말투와 행동이 가벼웠다.
장태훈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천성이 거만하고 행동이 신중하지 못하다고 했다.
말이 좋아서 신중하다는 표현을 넣은 거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천박하고, 싸가지 없다는 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장태훈이 대전 호크스의 간판 타자로 활약하는 건 그 동안 그가 쌓은 커리어가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 당시 2차 신인 드래프트 지명회의에서 3라운드에 지명을 받으며 강남 맨티스와 계약을 했다.
주전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며 고졸 신인 선수임에도 장태훈이 시즌 초부터 선발로 경기에 나서게 되었고, 데뷔 첫 해부터 3할의 타율에 30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는 신인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강남 맨티스로서는 엉뚱한 곳에서 대박이 터진 셈이다.
당연히 장태훈은 신인상을 수상했고 2년차 징크스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듬해 3할 중반의 타율에 48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홈런왕과 동시에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그의 가치가 한껏 치솟았다.
이후로도 매년 3할의 타율을 꾸준히 유지하면서도 홈런은 30개와 40개를 왔다갔다 하면서 명실상부 한국 프로 야구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을 활약을 해왔다.
엄청난 이적료를 기록하며 대전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은 장태훈이었기에 물방망이 타선을 한껏 끌어 올려 줄 것이라 믿었지만, 이적 첫해부터 2할 후반의 타율과 가까스로 30개의 홈런을 넘기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장태훈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타자가 없는 대전 호크스의 타선이었기에 집중 견제를 당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프로에게 변명 따윈 필요치 않았다.
이후로도 장태훈은 타율 3할을 넘기지 못했고, 홈런의 개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작년엔 부활하나 싶었었지.’
0.294의 타율에 34개의 홈런으로 다시 예전 기량을 되찾나 싶었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완전 바닥을 찍어주면서 모두의 기대를 한 방에 무너트려 버렸다.
문제는 내년부터는 26억이라는 연봉을 받아먹는다는 사실이다.
행동이 천박하든, 싸가지가 없고 거만하든 실력만 있으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프로의 세계다.
일부 팬들은 비난할지 몰라도, 당장 성적이 좋은 프로 선수는 범법자가 아닌 이상에야 시합에 출전 시켜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온갖 비난만 받는다.
실력도 없는 놈이 싸가지도 없네, 인성이 글러 먹었네, 저런 놈은 프로 자격이 없네 등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까지도 인터넷에 도배가 된다.
송진욱 코치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장태훈은 이전까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거기에다 팀 불화설도 끊임없이 기사화 됐었지.’
대놓고 다른 타자들의 실력이 별 볼일 없어 자신이 집중 견제를 받는 거라며 불만을 터트렸었던 장태훈이었다.
인터뷰가 기사화되고 장태훈은 팀 불화를 일으켰다는 사실로 인해 징계성 출장 정지를 받아야만 했고, 자숙은커녕 보란 듯이 여자들과 염문이나 뿌리며 대전 호크스의 프론트를 상당히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올해 성적이 개판 나면서 이제는 옹호해주던 팬들조차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이라 장태훈의 입장에서는 내년이 아주 중요한 한 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선수 생활 자체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으니 놀기 좋아한다고 소문난 장태훈이 비시즌 기간, 그것도 휴식월에 자발적으로 훈련장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나 진짜 궁금한 거 있었는데, 물어도 되냐?”
싫다고 하면 안 물을 건가?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었다.
“말씀하십시오.”
“아직 고딩이라 그런지 말투가 참 듣기 좋네. 너 왜 국내에 남았냐?”
질문을 하는 장태훈의 눈빛이 의외로 매서웠다.
이해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시선이 아니었다.
칼날처럼 차갑기도 했고, 성난 맹수가 먹이를 잡아먹기 전에 살기를 억누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해외 드래프트 시장에 나가면 당장 1라운드 지명이 확실한 네가? 국내 웬만한 투수들은 평가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오만한 BA에서 상당히 훌륭한 평가를 받은 네가? 진심으로 말해봐. 너 국내에 남은 이유가 뭐야? 넌 나 같은 놈이랑은 다르게 시대 잘 타고 태어나서 국내 프로 선수들도 만져보기 힘든 거액을 계약금으로 받으면서 화려하게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었잖아? 안 그래?”
눈빛이 한층 더 날카로웠다.
이유모를 적의까지 느껴졌다.
어째서 나에게 이런 시선을 보내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에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다.
“저는 단지…….”
“장태훈! 그만해!”
당황한 날 구해준 사람은 송진욱 코치였다.
장태훈이 날 노려보던 시선보다 더욱더 사납게 느껴지는 송진욱 코치의 눈빛이었다.
장태훈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당장 3천만 달러 이상의 돈 보따리를 싸들고 달려들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두 곳도 아닌 놈인데 무슨 생각으로 국내에 남았는지 솔직히 너무 궁금했습니다. 송 코치님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전 진짜 이해가 가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면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어야 그 엄청난 돈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나 같은 놈은 고작 몇 천 만원에 협상권도 없는 지명회의에 지명을 받고 좋아했는데 말이죠. 송 코치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장태훈의 말에 송진욱 코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내 앞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참는 듯 한 모습이었다.
팀의 간판 타자,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코치.
둘의 미묘한 신경전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송진욱 코치는 대전 호크스에 있어선 절대적인 존재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장태훈이 고액 연봉자라 하더라도 송진욱 코치가 이룩한 업적을 뛰어넘기엔 부족했다.
문제는 장태훈이 송진욱 코치에게 결코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메이저리그인데, 누군 오라고 해도 가기 싫다고 거부했으니… 웃기는 세상이야. 그렇지?”
장태훈의 말 속에 뼈가 담겨 있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걸 그대로 표출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기에 그저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훈련하러 왔으면 훈련이나 해.”
송진욱 코치의 말에 장태훈은 건들거리며 고개만 까딱거리다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징그럽게 웃었다.
“어이, 차지혁! 공 한 번 던져봐라.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서로 데리고 가려는 역대급 고졸 루키의 공은 얼마나 다른지 확인이나 한 번 해보자.”
굉장히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였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투수의 몸이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는 거냐? 헛소리 그만하고 네 훈련이나 해!”
진심으로 화난 송진욱 코치의 모습에도 장태훈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몸 풀 시간은 충분히 줄게? 어때? 너도 팀의 간판 타자를 상대로 네 공이 얼마나 통하는지 한 번 시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너 이 새끼! 그만 하라고 했지!”
더 이상 참지 못한 송진욱 코치의 입에서 거친 단어가 튀어나왔다.
덩달아 훈련장에서 묵묵히 훈련에 열중하던 몇 명의 선수들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솔직히 코치님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고졸 신인에게 쏟아 부은 돈이 있는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코치로서 당연히 파악해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차지혁 후배! 너도 설마 나처럼 먹튀 소리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 새끼가 진짜!”
송진욱 코치가 장태훈을 향해 다가갔고, 그 순간 내가 입을 열었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도 제 공이 과연 프로에서 얼마나 통할지 꽤 궁금해 하던 참이었습니다. 장태훈 선배님께서 직접 상대를 해주신다니 저로서는 영광일 뿐입니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정도로 난 물렁하지 않다.
한국 최고의 타자? 그런 건 옛 말일 뿐이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장태훈은 허접한 타율에 뜬금포나 한 번씩 터트리는 별 볼 일 없는 타자일 뿐이었다.
거기에 질투를 동반한 피해의식까지 갖고 있다.
짓밟는다.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질 정도로 짓밟아 버리고 싶어졌다.
“프로에 가면 널 밟아놓으려는 선수들이 수도 없이 많다. 선후배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넌 정당하게 경쟁을 펼치는 프로 선수다. 그라운드 위에서만큼은 선후배를 떠나 동등한 프로 선수일 뿐이다. 절대 물러나지 말고, 밟히지도 마라.”
최상호 코치의 조언이다.
솔직히 그의 조언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 역시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로서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었다.
선배든, 후배든 마운드 위에서 만나면 반드시 쓰러트려야 할 상대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태훈 역시도 선배 이전에 내 자존심을 건드리며, 나에게 도발을 해온 현역 프로 선수로 반드시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상대였다.
툭툭.
로진백을 가볍게 손바닥 위에서 움켜쥐며 장태훈을 바라봤다.
부웅! 부웅!
배트가 돌아갈 때마다 위협적인 바람 소리가 들렸다.
신인왕에 이듬해 홈런왕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장태훈이다.
대형 먹튀라는 조롱을 듣는 처지였지만, 10년차 베테랑이 되어 있었고, 아직까지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충분히 젊었다.
타자로서 얼마든지 다시 반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거냐?”
장태훈의 대결을 받아들인 날 향해 송진욱 코치가 한 첫 말이었다.
“제 공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던져라.”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극구 말릴 거라 여겼던 송진욱 코치가 의외로 대결을 허락한 거다.
내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서? 정말로 내 공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면, 프로의 냉정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유야 많다.
내가 아닌 장태훈을 위해서 날 재물로 삼은 것일지도 모른다.
장태훈이 문제가 많은 선수인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는 팀의 간판 타자고, 반드시 부활을 해야 할 핵심 선수니까.
그에 반해 나는 고졸 루키였으니 이 대결에서 진다 하더라도 손해 볼 것 없다 여길지도 모른다.
송진욱 코치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말대로 난 적당히 던질 생각이 전혀 없다.
전력으로 장태훈을 상대할 작정이다.
갑작스럽게 성사된 대결이지만, 준비 운동을 소홀히 할 수 없었기에 런닝부터 시작해서 스트레칭과 캐치볼로 충분히 어깨를 풀어줬다.
덕분에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마운드에 올라설 수 있었다.
실내 훈련장 마운드라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쇄애액- 퍼엉!
손끝에서 느껴지는 실밥의 감촉도 베스트라고 부르긴 힘들었지만, 완전히 나쁘지도 않았다.
“휘우~ 볼 끝 죽이는데? 역시 해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후보답네!”
장태훈의 말을 무시하며 몇 차례 공을 더 던졌다.
“됐습니다.”
내 말에 장태훈이 피식 웃고는 어슬렁거리며 타석에 들어섰다.
“시작할까?”
거만하게 웃고 있는 장태훈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국내편 - 03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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