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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마일-29화 (29/221)

< 『국내편 - 029』 >

『국내편 - 029』

“오! 차지혁 선수! 우리 대전 호크스에 입단 하신 걸 정말 환영합니다!”

대전 호크스의 홈구장인 한밭 야구장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60세가 넘은 경기 관리인이었다.

한 평생 대전에서 살았고, 대전 호크스의 열렬한 팬인 그는 내가 대전 호크스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듣고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고 했다.

실제로 춤을 췄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를 대하는 눈빛과 표정만큼은 정말로 진실되었기에 가방에서 3개의 사인볼을 꺼내 건네주었다.

팬을 사랑해야 한다, 팬이 없으면 스타도 없다.

최상호 코치가 대전 호크스에 입단한 나에게 해준 말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팬이 있기에 야구라는 프로 스포츠가 있는 거고, 스타플레이어도 있는 거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좋아해주는 팬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프로 선수가 되면 날 응원해주는 팬이 단 한 명이라도 그를 위해 열심히 공을 던지고, 팬서비스를 해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멋진 사인볼을 3개씩이나 줘서 제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 보답이라니요? 절 응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가 감사한 입장입니다. 그리고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신인 선수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나보다 몇 배나 나이가 많은 경기 관리자가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하자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부상 없이 대전 호크스에서 좋은 활약을 기대한다는 말을 들으며 구단 사무실로 향했다.

“차지혁 선수! 반갑습니다! 전 강석영이라고 합니다!”

“양영미예요.”

“박선호입니다!”

구단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직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강석영의 안내를 받아 단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익숙한 유정학 단장의 목소리에 강석영이 문을 열어주곤 들어가라며 손짓을 했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단장실로 들어가니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던 유정학 단장이 날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일개 선수에게 보이는 행동이라기엔 과한 듯 했지만,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선수에게 이렇게 행동을 하는 유정학 단장의 성격이었기에 인사말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이사는 잘 했습니까?”

“덕분에 잘 마쳤습니다.”

“이사 하면 필요한 것이 많을 겁니다. 구단 사무실로 말만 하면 웬만한 것들은 다 지원을 해줄 겁니다.”

“모든 선수들에게도 지원을 해주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합니까?”

웃으며 반문하는 유정학 단장의 모습에 방금 들었던 말은 깨끗하게 잊기로 했다.

필요하다고 덥석 구단에 요청을 했다가 무슨 소문이 나게 될지는 안 봐도 뻔했다.

더욱이 계약금으로 30억을 받은 상황이라 더 이상 금전적으로 부족함을 느끼진 않았다.

“어떻습니까? 내년부터 3년 동안 우리 대전 호크스를 위해 공을 던져야 하는데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단어 선택에 미묘한 반발심이 생겨났지만, 무시하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입단을 한 것입니다. 결코 손해 보는 계약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드리겠습니다.”

“꼭 증명해주길 바랍니다.”

유정학 단장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은 그나마 논란이 약간 줄어들었지만, 나와의 계약을 두고 정말 시끄러운 소음이 많았다.

특히 계약 기간 3년에 대한 부분과 이적료 일부 지급은 대전 호크스의 극성스런 일부 팬들조차도 고개를 흔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 대전 호크스는 이적료 지급 문제로 인해 모든 프로 구단들의 공공의 적으로 찍힌 상황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11월, 12월 동안 가장 많은 악플에 시달린 사람을 꼽으라면 그건 나와 유정학 단장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뜻이 완벽하게 일치할 수 있었다.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우선 훈련장에 들러볼 생각입니다.”

“백 감독님이 훈련장에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비활동 기간에는 훈련장을 찾는 선수들이 많지 않아 백 감독님도 매일 훈련장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송 코치님은 있을 테니 우선은 인사를 해두길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대전 호크스의 투수 코치진의 실력은 그 어떤 구단보다 뛰어나다 자신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달 15일에는 전지훈련을 떠나니 자세한 일정과 준비 사항들은 프론트 직원을 통해 전달 받길 바랍니다.”

“예.”

악수를 하고 단장실을 나와 실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어? 차지혁 선수?”

계단으로 내려가던 중 마주 계단을 올라오던 여자가 날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밝은 갈색 톤으로 염색한 긴 생머리의 여자였다.

“차지혁 선수 맞죠?”

내 앞으로 다가와 날 빤히 올려다보며 물어왔다.

“예.”

“와~ 반가워요!”

손을 내밀며 악수를 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가볍게 손을 맞잡아줬다.

부드러운 살결에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얼굴도 상당히 예뻤기에 연예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170cm 초반의 작지 않은 키 역시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아! 전 대전 호크스 프론트 직원 강하영이에요. 차지혁 선수가 우리 호크스와 계약을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사실, 저 차지혁 선수 열렬한 팬이거든요! 고교 리그를 아작아작 씹어 먹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멋있던지…….”

살짝 흥분한 모습으로 말을 쏟아내는 여자였다.

프론트 직원이라고 말을 하니 자주 볼 사이 같았고, 밝게 웃으며 그냥 팬도 아니고 열렬한 팬이라고 밝히니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난 후에 고맙다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오늘 출근한 건가요?”

출근이라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야구 선수와 출근이라는 단어가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 틀린 소리도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간단하게 답을 해주었고, 곧바로 퇴근하냐는 말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훈련장에 간다고 말했다.

“지금 훈련장에 가봐야 사람도 별로 없어요.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비시즌이고 더욱이 휴식월이잖아요. 휴식월에는 훈련장에 나오는 선수들이 별로 없어요.”

프로 야구 선수에게는 비시즌 기간 중 12월과 1월 15일까지는 휴식월이다.

선수가 자발적인 훈련을 갖지 않는 이상 구단에서 강제적으로 단체 훈련이나 훈련 스케줄을 짤 수가 없는 기간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개인적인 일정들을 소화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일정이 바로 결혼이나, 여행이었다.

12월은 프로야구 선수 결혼 기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때가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시즌 기간 동안에는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인해 가족, 친구, 연인과의 여행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12월만 되면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는 선수들도 꽤 있었다.

“있는 분들께라도 얼굴 도장 정도는 찍어야죠.”

애초부터 많은 선수들과의 만남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강하영의 말대로 비시즌, 그것도 휴식월인 지금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선수는 정말 몇 없었으니까.

당장 내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날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의 1군 선수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선수들은 완전한 휴식을 취한다.

경우에 따라선 휴식월에 훈련을 하는 것보다 편안하게 휴식을 하는 편이 더 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긴, 앞으로 함께 시합을 뛰어야 할 선배님들과 미리미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겠죠. 좋아요, 날 따라와요!”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 강하영이었다.

“뭐해요? 따라와요! 내가 훈련장으로 안내해 줄게요.”

빙긋 웃으며 손짓을 하는 강하영의 모습에 괜찮다는 말을 하려다 이내 고맙다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공을 잘 던질 수 있죠?”

“해외로 진출할 거라 생각했는데 국내 잔류를 선언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후회는 없죠?”

“듣기로는 다른 구단에서 훨씬 더 많은 연봉 총액을 제시했다고 했는데 어째서 우리 대전 호크스와 계약을 한 거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가 작년에 은퇴한 유혁선 선수였거든요! 그런데 유혁선 선수가 은퇴하자 기다렸다는 듯 차지혁 선수가 눈에 들어온 거 있죠? 그런데 내가 일하는 대전 호크스와 계약까지 했으니 당연히 차지혁 선수만 응원해야하지 않겠어요? 호호호!”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메이저리그겠죠?”

“아! 그 전에 2028년 부산 올림픽에서 금메달부터 따야겠네요?”

조잘조잘 참 말이 많은 여자였다.

그렇다고 딱히 듣기 싫은 소리를 하거나, 음색이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투가 활기찬 느낌이 많이 들어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업되는 느낌이었다.

메이저리그. 그리고 올림픽.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병역.

나 역시 병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2028년 부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면제를 받는 것이 근 미래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예전에나 인맥, 구단의 압력으로 인해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성적으로 차출을 하고 있었다.

어느 특정 파벌에 들어야 하고, 구단의 힘에 의지해야 하는 일 따윈 없어진지 오래였다.

“꽤 과묵하네요? 나이도 어리면서…….”

뒷말을 흘리듯 중얼거렸지만, 똑똑히 들렸다.

자주 듣던 말이다.

특히, 지아는 내가 애늙은이 같다, 야구하는 로봇 같다며 투덜거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 애로사항이 될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고쳐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성격을 어떻게 고치지?

“투수코치 송진욱이다.”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대전 호크스의 레전드 송진욱!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

대전 호크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프로 야구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살아있는 전설적인 투수가 바로 송진욱이다.

프로 통산 3000이닝을 소화한 유일한 투수.

최다승에서는 255승을 거둔 황종연에게 밀리지만, 210승을 거두며 역대 두 번째 최다승 투수로서 21년이라는 긴 세월을 프로로 활동한 모든 프로 야구 선수들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송진욱 선배님은 진정한 자기 관리의 달인이다.”

대전 호크스와 계약을 마친 후, 최상호 코치가 내게 했던 말이다.

더불어 프로 야구 투수로서 어떻게 오랜 세월 부상을 예방하며 롱런을 할 수 있는지 반드시 배우라고 했었다.

3000이닝이라는 무지막지한 이닝 소화능력 또한 모든 투수들이 갖고자 하는 능력 중 하나였다.

악수를 하고 나자 송진욱 코치가 내 팔과 어깨를 주물럭거렸다.

“웨이트는 얼마나 하지?”

“웨이트보다는 튜빙을 하고 있습니다.”

“투수가 사용하는 근육들은 최대한 유연할수록 좋지.”

그걸 모른다면 굳이 튜빙을 할 이유가 없다.

투수의 근육은 야수의 근육과는 확연히 다르다.

최대한 부드럽고 유연해야 한다.

“하지만, 웨이트를 멀리해서도 안 된다. 적당한 웨이트도 필요하니까 꾸준히 근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해. 무리할 필요는 없고 체중의 60~70%의 무게로 천천히 근력을 강화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송진욱 코치는 내 허벅지와 엉덩이, 종아리를 주물러댔다.

“예상대로 하체가 아주 탄탄하군. 웬만한 프로 선수들보다 좋아. 이렇게 하체가 단단하니 투구 동작에 전혀 군더더기가 없지. 아버님이 가르쳤다고 했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면서 운동을 시켰습니다.”

“지금의 자네를 만든 사람이 아버님이군. 런닝도 꾸준히 할 테고. 자네를 전담해서 코칭하는 사람이 최상호니 딱히 훈련장에 나올 필요가 없겠는데?”

“예?”

훈련장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고졸 신인 선수가 훈련장에 나오지 않는다?

선배들에게 나 좀 욕해주세요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짓이다.

특별한 훈련이 필요치 않아도 훈련장에는 꼬박꼬박 나가야 하는 게 신인 선수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투구는 유연한데 생각은 딱딱한 놈이군.”

송진욱 코치의 말에 그제야 그가 농담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늘 같은 선배에다 코치이기까지 한 사람이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는데 어떻게 농담이라 여긴다는 건지.

작게 고개를 흔들고는 가만히 송진욱 코치를 바라봤다.

어느덧 육십이라는 나이를 먹은 송진욱 코치였지만, 여전히 선수 시절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굉장한 자기 관리다.

야구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운동선수들은 은퇴 후, 몇 년만 지나도 살이 팍팍 찐다.

운동량은 거의 사라졌는데, 먹는 양은 여전하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송진욱 코치의 몸매가 선수 시절과 비슷하다는 건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뜻이다.

어느덧 은퇴를 한지도 15년이 넘은 송진욱 코치는 이듬해 코치 연수를 받고 그 다음해부터 대전 호크스의 투수 코치로 지금까지 머물러 있는 중이었다.

감독이 되어도 부족함 없는 경력과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송진욱 코치였지만, 자신은 감독보다 투수 코치가 어울린다며 몇 번이나 구단의 감독직을 거절한 뚝심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송진욱이라는 걸출한 투수 코치가 있기 때문인지 대전 호크스의 투수력은 프로 야구 10구단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는 항상 들었다.

문제는 뒤에서 두 손가락에 꼽히는 타력에 있었다.

소위 물방망이 구단이라는 놀림까지 받는 대전 호크스의 심각한 타력 부재는 매년 지적 받는 일이었다.

당연히 구단 측에서도 거액을 들여 타격 능력이 뛰어난 교타자와 거포를 줄줄이 영입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대전 호크스에만 오면 거짓말처럼 타격 능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쳐댔다.

타격 코치를 바꾸기도 하고, 훈련 시스템을 바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타격이 바닥을 기고 있는 대전 호크스였다.

“여어~ 이게 누구야? 우리 대전 호크스의 슈퍼 루키 아니야!”

훈련장이 떠나가라 우렁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나랑 비슷한 키지만, 몸무게가 훨씬 더 많이 나가는 한 선수가 히죽 웃고 있었다.

< 『국내편 - 029』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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