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마일-26화 (26/221)

< 『국내편 - 026』 >

『국내편 - 026』

“확실하게 마음을 정한 거겠지?”

“네.”

“그럼 됐다.”

아버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곁에 앉은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을 적극 존중해줄 분들이었다.

다만.

“미쳤어! 오빠 제정신 아니지?”

우리 집 사춘기 소녀 지아만이 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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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고교 투수 국내 신인 드래프트 시장 등록 완료!》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몇 시간 전, 국내 프로 야구 신인 드래프트 선수 등록 명단에 한 선수의 이름이 전산 등록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그 주인공은 역대 최고의 고교 투수로 이름을 날리며, 웬만한 국내 프로 선수들보다 더욱 인지도가 높은 일석 고등학교 3학년 차지혁 선수다.

국내 고교 리그를 완전히 제패하며 모든 야구 관계자들을 흥분케 한 역대 최강의 고교 투수인 차지혁 선수는 국내 고졸 선수로는 유일하게 해외 드래프트 시장 1라운드 지명 후보로 지목되어왔다.

공신력 높은 스포츠 전문 미디어 ESPN은 2025년 유망주 평가 해외 선수 3위로 차지혁 선수를 꼽았으며, 미국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야구 잡지사 베이스볼 아메리카(Baseball America) 줄여서 BA에서는 해외 신인 드래프트 시장에서 차지혁 선수가 1라운드 15~16위로 메이저리그 구단의 지명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해왔다.

차지혁 선수는 아시아 신인 투수로 이번 해외 드래프트 시장에서 일본의 니노마에 류지와 더불어 초특급 유망주로 분류되어 왔다. 최고 구속 156Km 패스트볼과 153Km 컷 패스트볼, 135Km 파워 커브는 국내 프로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BA 구종 평가에서도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국내 잔류를 선언한 차지혁 선수의 돌발 행동에 국내 프로 구단은 활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당장 국내 드래프트 지명 1, 2, 3순위의 구단으로는 수원 드래곤즈, 대전 호크스, 서울 버팔로스다. 이들 세 구단 중 한 곳에 정착하게 될 차지혁 선수의 몸값 때문에 세 구단의 프론트는 긴급회의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다.

더불어 차지혁 선수의 국내 잔류로 인해 그를 상대해야 하는 다른 구단들은 차지혁 선수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지만, 모 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차지혁 선수가 아무리 고교 리그에서 압도적인 투구를 보였다 하더라도 프로에선 쉽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걱정 할 것 하나 없다며, 오히려 프로 세계의 무서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중략…

고졸 신인인 차지혁 선수를 메이저리그가 아닌 국내 프로 리그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관계자들은 내년 프로 야구의 인기가 한층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도 고교 리그에서 차지혁 선수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는 상당한 수의 관중들이 몰려들 정도로 이미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번 국내 신인 드래프트에서 차지혁 선수가 어느 팀과 계약을 하게 될지, 또 그 액수가 얼마나 될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분명한 건 역대 최대 금액이 될 것이고, 당분간은 쉽게 깨지지 않을 금액이 될 것이란 사실이다. 기자이기 이전에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써 차지혁 선수의 내년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천지일보 강만수 스포츠 기자. 작성일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 차지혁 돌았음? 메이저리그 1라운드 지명이면 최소 2천만 달러인데! 완전 미쳤네!

┗ 작년 1라운드 15위로 지명 받은 케이타 오렐 계약금, 연봉 다 합쳐서 3천6백만 달러! 차지혁 아시아 선수라는 핸디캡 받더라도 3천만 달러는 그냥 넘겨버림!

┗ 요즘도 아시아 선수 핸디캡 있음?

┗ 아무래도 아시아 선수는 내구성 문제 때문에 핸디캡이 적용됨.

┗ 3천만 달러 개 부럽다! 나도 야구나 할 걸…….

┗ 왜? 3천원 받고 주전자 나르려고? ㅋㅋㅋ

- BA 구종 평가 점수 정도는 당연히 찾아서 기사에 써야 하는 거 아니야? 하여간 우리나라 기레기들 아주 날로 먹는다니까!

- 차지혁 BA 20-80스케일 평가 점수. 패스트볼 65, 컷 패스트볼 55, 파워 커브 55점. 참고로 80점 만점으로 70점이면 메이저리그 정상급(Well-above-average)이라는 평가를 받고, 60점이면 수준급(Above-average)이라고 평가함. 보통 50점만 넘어도 메이저리그 수준이니 평가 점수로만 보면 당장 메이저리그 선발로 뛰어도 꿀리지 않을 스팩임.

┗ 생각보다 별로 높지 않군.

┗ 뭘 좀 알고 말을 하세요. 유혁선 선수가 메이저로 갈 때, 패스트볼 60점, 슬라이더-체인지업 55점 받았어요. 국내 프로 리그 씹어 먹었던 유혁선보다 고교 졸업 예정 선수인 차지혁 선수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겁니다.

┗ 유혁선은 저평가 받았잖아! 그러니까 헐값에 갔지!

┗ 유혁선 국내 마지막 시즌에서 10승도 못했는데 메이저에서 신인 첫해에 14승 했으니 말 다한 거지.

┗ 유혁선의 성공 요인은 주변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마이웨이 투구! 강철 멘탈! 차지혁은 고교에서 너무 편안하게 공 던졌음. 고교 넘버 원이라 불리는 일석 고등학교는 솔직히 끝판왕인데, 거기서 무슨 걱정하면서 공 던졌겠음? 차지혁 메이저로 갔으면 초반에 털릴 확률 90퍼센트!

┗ 동감! 까놓고 차지혁 고교 리그에서 상대 타자들 수준 미달 아님? 같은 수준의 유망주들이 죄다 팀 동료라서 무슨 긴장감으로 공을 던지겠음? 차지혁이 6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없다는 것이 증거. 무조건 콜드 승으로 게임 끝남.

┗ 차지혁도 대전으로 와서 유혁선처럼 강철 멘탈을 장착해서 메이저 가자!

┗ ㅋㅋㅋ 대전 호크스 메이저리거 양성 훈련소!

- 니노마에 류지는 어떤 선수죠?

┗ 이 새끼도 사기 캐릭터. 최고 구속 159Km의 패스트볼에 스플리터, 커터, 체인지업을 던지는데 그 중에서도 스플리터가 완전 예술이죠. 참고로 스플리터는 BA 구종 평가에서 70점 받아냈죠. 일본 고시엔을 완전히 아작아작 씹어버린 괴물 투수! 일본은 어떻게 매년 괴물이 나오냐! 부럽다! 부러워!

┗ 부럽기는! 니노마에 사토시한테 개 털리는 영상 보고 와라. 존 불쌍하다 ㅋㅋㅋ

┗ 사토시 4타수 4안타. 2루타 2개, 3루타 1개. 니노마에 사토시만 나오면 덜덜 떨었음 ㅋ

┗ 나도 봤는데 사토시는 진짜 괴물 중 괴물! 그래도 니노마에 아시아 원탑 유망주 투수라고 평가 받았어요.

┗ 일본에 니노마에 류지와 사토시 슌이 있다면 한국에는 차지혁과 장형수가 있어서 부러울 것 하나 없어요.

┗ 급 차이가 좀 많이 난다? ㅋㅋㅋ

┗ 일본인이냐? 개 같은 친일파 새끼! 꺼져!

- 차지혁이 프로에서 통할 확률은?

┗ 솔직히 높지는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댓글에서도 나왔지만, 차지혁은 고교 리그에서 제대로 된 타자들과 상대를 한 전적이 없습니다.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고졸 신인 선수가 첫 해부터 프로에서 활약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 제2의 유혁선처럼 될지 또 누가 압니까? 신인 첫해 다승, 탈삼진, 평균자책 1위에다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 받을지도 모르죠.

┗ 대전 호크스로 와라! 유혁선의 재림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대전 다시 화날려고 하는데! 내년을 위해 과감하게 배팅 좀 했으면 좋겠다!

┗ 1지명 수원! 드래곤즈 프론트 돈 박박 긁어서 차지혁하고 무조건 계약!

┗ 1지명이 무슨 상관임? 어차피 1, 2, 3지명 팀 모두 차지혁하고 협상 가능한데. 어설프게 간 보려고 했다가는 차지혁 빼앗길 수 있으니 아마도 역대 최대 계약 성사시킬 듯! 벌써부터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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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 말대로 정말 차지혁 선수가 국내 시장에 나왔군요.”

유정학 단장은 눈앞에 앉아 있는 김태열 팀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 표정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김태열 팀장은 지금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분석대로 됐다는 만족감, 기대감, 혹은 흥분감 따윈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정학 단장은 김태열 팀장의 저런 포커페이스가 꺼려지기도 했다.

“이것부터 보십시오.”

김태열 팀장은 두 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뭡니까?”

“드래곤즈와 버팔로스에서 차지혁 선수에게 제시할 계약 총액 예상금액입니다.”

국내 프로 야구 구단은 10개였지만, 차지혁을 지명할 수 있는 협상권을 가진 구단은 자신들과 수원 드래곤즈, 서울 버팔로스뿐이었다.

다른 구단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차지혁과 절대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차지혁이 국내 프로 리그에서 뛰려면 이들 세 구단 중 한 곳과 계약을 해야만 했다. 물론, 다른 구단과 계약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러 계약을 모두 거부하면 드래프트 이후, 12월과 내년 1월, 2월에 자유 계약 신분으로 어느 구단과도 계약이 가능했다. 하지만, 기존 프로 선수가 아닌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을 거부한 신인 선수는 부정한 방법으로 타 구단과의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전년도 드래프트 계약 최저금액으로만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하게 돈으로 신인 선수를 영입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장치인 것이다.

유정학 단장은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에 적혀 있는 예상 계약 총액을 확인한 유정학 단장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유정학 단장이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김태열 팀장을 바라봤다.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상향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아래로는 금액이 조정되지 않을 겁니다.”

“허!”

유정학 단장은 혹시라도 자신이 잘 못 봤나 싶어 다시 한 번 계약 총액을 확인했다.

역시 잘 못 본 것이 아니었다.

수원 드래곤즈.

계약 기간 : 5~6년.

계약 총액 : 100억.

서울 버팔로스.

계약 기간 : 5~6년.

계약 총액 : 90~100억.

무려 100억이다.

고졸 신인 선수와의 계약에 100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붓는다? 국내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고졸 최고 계약 총액이 30억이 안됐으니 무려 3배가 넘는 금액이다.

해외 드래프트 시장에 나갔다면 최소 300억을 받았을지 모를 차지혁이었지만, 그가 국내 시장에 남기로 한 이상 욕심을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한다.

해외에서 받을 수 있었던 금액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100억이라는 금액도 현재 국내 프로 구단 내에서 핵심 선수 2~3명에게나 해당되는 금액이다.

웬만한 성적으로는 절대 받아낼 수 없는 엄청난 금액으로 고졸 신인에게 이런 거금을 투자한다는 건 지금까지 지켜온 시장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일이고, 기존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였다.

50억.

유정학 단장이 차지혁과 마련된 협상 테이블에서 제시할 수 있는 최고 금액이었다. 사실, 50억도 상당히 무리한 금액이었는데 드래곤즈와 버팔로스에서 그 두 배를 준비한다고 하니 이건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큰 금액을 제시할 여력도 그럴 수도 없습니다.”

수원 드래곤즈와 서울 버팔로스에서는 여력이 있어서 100억을 꺼내든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입장은 자신들과 비슷했다.

선수단의 반발도 엄청날 것이고, 그에 따른 부담감도 차지혁 입장에선 결코 좋을 것 없다.

역대급 고졸이니, 해외 드래프트 1지명이니 뭐니 하는 소리도 통하지 않는다.

기존 선수들은 박탈감을 느낄 것이고, 그것을 알게 모르게 차지혁에게 표출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신인 선수인 차지혁 또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본인 선수 생활에도 큰 마이너스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고졸 신인이 100억이라는 거액을 감당하기엔 그 받침이 탄탄하지 않았다.

이건 구단과 차지혁 모두에게 최악의 계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유정학 단장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도 그 정도의 계약은 독이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이건 독이다.

구단과 선수를 모두 중독시켜 망쳐버릴 치명적인 독!

그럼에도 수원 드래곤즈와 서울 버팔로스가 이런 무리한 계약을 준비하는 건 그만큼 차지혁을 얻고 말겠다는 욕심인 거다.

고교 선수로서 이미 상당한 팬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 선수라서?

유니폼과 티켓을 많이 팔아줄 것 같아서?

구단의 성적을 한껏 끌어 올릴 것 같아서?

모두 아니다.

그건 작은 부산물일 뿐이다.

드래곤즈와 버팔로스가 노리는 건 차지혁을 메이저리그로 보내면서 얻을 천문학적인 이적료다.

만약, 차지혁이 국내 리그에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짧게는 2~3년, 길게는 4년 이내에 메이저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올 것이다.

차지혁과 계약하기 위해 무리해서 사용한 100억 따윈 우스운 금액이 될 가능성이 컸다.

고작 2~4년 만에 투자금액의 몇 배를 뽑을 선수라고 판단했기에 이런 거금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거다.

고작 고교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이미 차지혁이 갖추고 있는 스팩 자체가 워낙 뛰어났다.

당장 국내 프로 선수들과 비교해도 정상급이라 불릴 스팩이었으니까.

“김 팀장은 어떤 식으로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생각입니까?”

드래곤즈와 버팔로스의 돈질을 독이라고 말한 김태열 팀장이다.

그건 곧, 다른 방법으로 접근을 하겠다는 뜻이다.

유정학 단장으로서는 어떻게 차지혁과 협상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하고, 좋은 조건을 내걸어도 결국 돈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니까.

김태열 팀장은 살짝 내려온 안경을 검지로 올리며 대답했다.

“프로 선수의 가치는 결국 돈으로 증명됩니다. 우리 역시 돈을 써야 합니다.”

유정학 단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분명히 말했지만, 우리는 드래곤즈나 버팔로스처럼 큰 금액을 제시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당장 큰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미간을 찌푸린 유정학 단장과 다르게 김태열 팀장은 오늘 처음으로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 『국내편 - 026』 > 끝

ⓒ 독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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